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27화 (27/159)

27. 소년기(9) - #마나와 마법

“여기, 드세요!”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와 레비아 씨에게 채소볶음을 건넸다.

개인적인 취향이라면 두툼하게 썬 삼겹살이나 목살을 추가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렇다 할 재료가 없었다.

“이야, 냄새가 죽이는데?”

생소한 요리에 거부감을 느낄 만도 했지만, 두 사람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채소볶음을 입으로 가져갔다.

“어때요?”

내가 기대를 담아 묻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였다.

“빠르게 만든 것 치고는 꽤 그럴듯하구나.”

칭찬에 인색한 데커드 할아버지의 입에서 그럴듯하다는 말이 나왔다는 건, 입에 맞는다는 이야기였다.

반면에 레비아 씨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채소볶음이 담긴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혹시, 입에 안 맞으세요?”

아무렴.

엄마와 아빠 또한 평생을 함께 살았지만, 취향도 입맛도 다르다.

게다가 재료는 이곳에서 채취했지만 조리 방식이나 맛은 전생의 레시피를 참고했다. 레비아 씨는 우리나라 음식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이라고도 볼 수 있었으니 채소볶음의 풍미에 거부감을 느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조금은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런 침묵을 먼저 깬 쪽은 데커드 할아버지였다.

“꽤 마음에 들었나 보군.”

데커드 할아버지는 채소볶음이 마음에 들었는지, 부지런히 포크를 놀리며 한 마디 툭 던지셨다.

마음에 들었다는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다시금 레비아 씨를 쳐다봤다.

아니, 아무리 봐도 맛있을 때 짓는 표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던 레비아 씨가 돌연 무어라 중얼거렸다.

“있어.”

“네?”

“맛있다. 이건······ 진짜로 맛있어!”

레비아 씨가 퍼뜩 고개를 들며 외쳤다.

방금 전의 심각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환희로 가득 차있었다.

뭐야, 진짜로 맛있어서 저런 표정이 나온 거라고?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벙찐 얼굴로 레비아 씨를 쳐다봤다.

정작 레비아 씨는 이런 내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채소볶음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호오, 저 녀석의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군.”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데바라는 놈들은 원래 밥을 잘 먹질 않아.”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요?”

소식을 하는 거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기겠는데······ 지금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은 그게 아니라 아예 음식 자체를 잘 먹지 않는다는 뉘앙스에 더 가까웠다.

이어진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데커드의 말대로다. 데바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건 마나거든.”

“마나요? 그게 뭐예요?”

“음? 마나를 모르는 거야? 뭐야, 데커드가 그런 것도 안 가르쳐 줬어?”

“흥, 알려주지 않은 게 아니라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것도 그러네. 아무래도 마나라는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릴 테니······.”

어쩐지 어물쩍 넘어갈 것 같은 예감에 나는 냉큼 손을 들었다.

“궁금해요!”

“응? 궁금해?”

“네! 엄청 궁금해요!”

나는 으레 그러하듯 어린아이 특유의 호기심 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내 갈망 어린 눈길에 레비아 씨가 픽 웃었다.

“뭐, 알려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지. 음······. 그래, 마나라는 건 모든 곳에 존재하는 힘이야.”

“모든 곳에 존재하는 힘?”

“그래. 뭐, 혹자들은 신이 내려준 축복이다 뭐다 하는데. 그런 헛소리는 신경 쓸 것 없고. 아, 그래. 이 채소볶음을 보면 마쉬룸, 캐로트, 파플리칸이 들어갔지?”

“네.”

“마나도 마찬가지야. 이 채소볶음에 들어간 것처럼 하나의 재료지. 그리고 이 재료들을 하나로 모아서 요리를 만드는 것처럼, 마나를 모아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게 마법이고.”

“아하!”

나야 어려운 말을 사용해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를 모르는 레비아 씨는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게 유치원 선생님으로 전향해도 금방 적응할 것 같은 타입이네.

그나저나 그 마나라는 걸 다룰 수 있으면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건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레비아 씨가 하하, 웃었다.

“뭐, 나이를 떠나서 아예 마법의 마도 모르는 사람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이야기야. 애당초 마나는 평범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정 궁금하면 나중에 데커드한테 다시 알려달라고······ 아니지, 마법에 대한 거라면 나한테 와도 돼.”

“어, 진짜요?”

“당연하지. 다른 건 몰라도 마법에 대해서는 내가 훨씬 더 많이 안다고.”

좋았어.

레비아 씨는 그냥 예의상 건넨 말일지 몰라도, 나는 와도 괜찮다고 하면 올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이미 내 머릿속에는 이곳으로 오는 길이 저장되어 있거니와 혼자라면 1시간 내로 도착할 자신이 있었으니 조만간 따로 찾아와야겠어.

“아, 처음에 물어본 질문에 답을 하자면······. 데바가 아무것도 안 먹는다는 건 아니야. 필요한 양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돼. 단지, 우리가 살아가는데 더 중요한 건 마나고, 다른 종족들처럼 먹는 행위에 큰 의미를 두진 않을 뿐이야.”

그러고 보면 내 주변만 해도 그렇다.

세상에 알려진 맛집이라는 맛집은 모조리 찾아다니는, 정말로 먹는 것이 곧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살기 위해서 먹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먹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그렇다고 꼭두새벽에 텐트까지 치면서까지 미식을 고집하는 수준은 아니었으니 전자와 후자의 중간쯤 위치한다고 보면 되려나.

레비아 씨 아니, 데바라는 종족의 대다수는 후자에 속하는 듯했다.

여기서 맹점은 그냥 먹는 걸 귀찮아해서 대는 핑계가 아니라, 진짜 생존을 위해서 먹는다는 게 다르다면 달랐다.

어쩐지 집에 식재료가 하나도 없다기에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어, 그럼 지금 드시는 것도 억지로 드시는 거 아니에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묻자 레비아 씨가 픽 웃었다.

“아, 응. 솔직히 말해서 예의상 먹으려고 했던 건 맞아. 근데······.”

레비아 씨가 내게 슬그머니 접시를 흔들었다.

꽤 넉넉하게 덜어줬음에도 접시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먹어보니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가더군.”

다행이네.

난 또 채소볶음의 맛이 없어서 기분이 나빴나, 싶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구나.

레비아 씨가 묵묵히 채소볶음을 먹는 데커드 할아버지를 힐끗 쳐다봤다.

“양이 좀 많은 것 같은데. 내가 좀 먹어줄까?”

“헛소리하지 마라.”

레비아 씨는 적잖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아직 재료가 많이 남았는데, 더 해드릴까요?”

“그, 그래? 너무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에이, 뭘요!”

“그럼 사양은 하지 않을 게. 이야, 그나저나 고작 채소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는 거지?”

레비아 씨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 이름으로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솔직히 이 채소볶음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먹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거나, 채소를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다들 맛있게 먹으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자고로 요리에 있어서 단연 중요한 걸 꼽자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재료다. 같은 재료라도 보다 신선하고 품질이 좋은 게 맛있다.

직장 상사였던 김 아무개 씨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재료든 가격이 비쌀수록 맛이 좋으며, 이는 3살짜리 아이조차도 아는 사실이다.

나야 평소에 비싼 요리를 먹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100% 공감하는 건 아닐지언정, 품질이 높을수록 그 맛과 가격이 정비례한다는 점은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사용한 재료들은 하나같이 고품질이다.

물론 채소볶음에 들어간 재료들은 오늘 처음 보고 접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재료들의 품질이 좋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내는 고성능 레이더는 기본이요.

겉으로만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캐치하며, 보다 좋은 품질의 재료를 엄선하는 센스까지 갖춘 만능 채집꾼 겸 도우미.

반디가 있었으니까.

단언컨대, 채집의 베테랑이자 안목이 뛰어나다 알려진 미슐레 아주머니라고 한들 반디보다 더 빠르게 정확하게 엄선할 순 없으리라.

물론 레비아 씨에게도 반디가 보이지 않는 것 같으니, 이를 설명하는 건 패스.

요리에서 중요한 두 번째는 바로 양념이다.

“이거 때문이에요.”

나는 레비아 씨가 볼 수 있게끔 양념이 든 통을 흔들었다.

“응? 그거 아까 뿌렸던 가루 아니야?”

“네!”

제아무리 재료가 좋다고 한들 그냥 익히기만 해서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

자고로 맛있는 요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재료에 걸맞은 양념이나 소스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재료라도, 양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맛이 살아나기도 하니까.

나는 텅 빈 불판 위에 다시금 라드를 바르고 손질이 끝난 재료를 올렸다. 주걱으로 휘저어 달달 볶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시즈닝을 뿌렸다.

이때다 싶었는지, 레비아 씨가 얼굴을 내밀어 시즈닝을 살폈다.

“콜록!”

하필이면 가루가 코로 들어갔는지, 레비아 씨가 기침을 토했다.

“아우. 죽겠네.”

“클클클.”

그 모습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비웃음을 날렸다.

“푸훗. 아, 괜찮으세요?”

나도 자칫 웃음이 터져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삼키며, 물을 건넸다.

“푸하! 으······. 죽는 줄 알았네.”

“그나마 코에만 들어가서 다행이지, 그거 눈에 들어갔으면 엄청 아플걸요?”

나도 이 시즈닝을 만들다가 실수로 엎은 적이 있는데, 하필이면 눈에 들어가서 엄청 고생했었지.

내 말에 레비아 씨가 냉큼 뒤로 물러났다.

“끄응······. 그나저나 칼릭이랑 후츠가 들어간 건 알겠는데, 다른 건 도저히 모르겠네.”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도 그럴게, 사실 이 통에는 도합 38가지의 재료들이 들어갔으니까. 게다가 곱게 빻아서 섞어버렸으니 제아무리 후각이 뛰어나도 일일이 구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마저도 칼릭과 후츠의 자기주장이 워낙 강해서 다른 재료들의 향이 묻히기도 했고.

“다 됐어요!”

“먹어도 되는 거야?”

“네. 그냥 이대로 두고 드시고 싶은 만큼 떠서 먹는 걸로 해요!”

보아하니 한 접시로 끝날 것 같진 않을 것 같았으니, 내가 일일이 떠주는 것보다는 알아서 먹는 편이 서로에게 편하겠지.

“그럼, 사양 않고 먹을게.”

그 말을 시작으로 레비아 씨는 채소볶음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 * *

마치 폭풍과도 같았던 식사시간이 끝났다. 우리는 소화를 시킬 겸 근처에서 티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휴우, 잘 먹었다. 이렇게 포식한 건 거의 40년 만인 것 같은데.”

레비아 씨의 말대로였다. 어찌나 열심히 먹던지, 포크를 놀리는 그의 모습은 진짜 포식자를 넘어 채소볶음 학살자에 가까웠다. 보아하니 혼자서 거의 6인분은 먹은 것 같더라.

“잘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레비아 씨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흐음, 거기다 이 차도 너무 맛있단 말이지. 아까 그 가루도 그렇고, 이 차도 그렇고. 장터에 가져가면 아주 환장하고 달려들겠군. 대체 어디서 이런······ 아참.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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