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26화 (26/159)

26. 소년기(8) - #데바

“와······.”

나는 감탄했다.

장소는 넓지 않았다. 주변에는 바위 절벽이 감싸고 있었고, 그 밑에는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라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아담한 목조주택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렇다.

그냥 지금까지 봤던 오두막이 아니라 진짜 목조주택이었다.

“예쁘다.”

내가 이곳에 살면서 내 나름 명소로 꼽는 곳들이 있다.

첫 번째는 드라고스 산맥이다. 딱 봐도 엄청나게 거대한 게 엄청난 위용과 위압감을 뿜어낸다. 진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며, 자신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

두 번째는 마을이다.

나야 늘 보기에 처음의 감동은 많이 희석됐다고는 한들, 마을의 정경은 그 어떤 어딘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세 번째는 나만의 호수다.

밤 산책 코스이자 나만의 비밀장소인 호수는 마을과는 또 다른 안정감을 주는 곳이었다. 특히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른 날에 호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동안 쌓였던 피로는 날아가고, 그 자리에는 활기가 차오른다.

이곳을 보고 가장 처음 떠오른 감정은 아늑함이었다.

탁 트인 장소도 나쁘진 않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만 하더라도 하나같이 드넓은 자연이기도 했고.

반면에 이곳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마치 어릴 적 자주 들어갔던 장롱 같다고 하면 적절하려나. 개인적인 취향일지도 모르겠으나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단언하건대 이 장소는 네 번째에 들어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분수라니······.”

지구에서 분수는 아주 흔한 건축물이다. 그냥 동네 어딜 가더라도 하나, 둘쯤은 있다. 심지어 휘황찬란한 레이저를 쏘아대는 분수쇼도 곧잘 볼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지구의 이야기였지, 이곳에서는 다르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쏘아지는, 그것도 인위적으로 만든 분수를 보는 건 환생한 이래 처음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투박하고, 솟아오는 물기둥도 평범했다.

근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저 분수 또한 마법으로 만들어냈으리라는 걸 염두에 두니 왠지 모르게 신비로워 보이는 착각이 일었다.

별안간 주변을 둘러보던 중, 목조주택의 문이 열리며 한 인물이 걸어나왔다.

나이는 20대 후반쯤 되었을까. 훤칠한 키와 더불어 시원시원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가죽으로 만든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어딘가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풍겼다.

무엇보다.

“뿔······?”

청년의 양 관자놀이에는 뿔이 달려있었다. 그 끝이 둥글게 말려올라간 것이 꼭 산양의 뿔을 떼다가 붙여놓은 것 같았다. 단순한 장식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원래 그 자리에 있는 게 맞는 것처럼 조금의 이질감도 느껴지질 않는다.

이런 내 의문 섞인 혼잣말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넌지시 말했다.

“내가 만날 녀석이 있다고 했지 그게 인간이라고는 한 적은 없다.”

확실히 데커드 할아버지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인간이라는 말을 한 적은 없긴 했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느닷없이 다른 종족을 만날 줄이야.

이내 청년이 이쪽을, 정확히는 데커드 할아버지를 발견하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떤 녀석이 내 구역을 침범했나, 했더니. 이게 누구야! 데커드 아닌가! 이야, 이거 진짜 오랜만인데?”

딱 봐도 50년의 간극이 있었음에도, 청년은 데커드 할아버지에게 반말을 사용했다. 이 또한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에 별다른 위화감은 없었다.

“오랜만은 무슨, 얼마 전에도 오지 않았나? 그리고 착각하지 마라. 네 녀석의 뺀질한 얼굴이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니니까.”

데커드 할아버지가 툴툴거리며 청년의 인사를 받았다.

“하하하! 그 빈정대는 말투는 여전하군. 그나저나 그 옆에 계신 작은 손님은 누구실까?”

청년의 시선에 나는 배꼽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이넬이라고 합니다!”

“아이넬? 어······아이넬······. 아하! 네가 아이넬이었군! 데커드한테 자주 들었다.”

청년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청년의 손을 맞잡았다.

“호오? 이 녀석 보게. 혹시 데커드한테 이야기를 들었나?”

“이야기요?”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청년에 대해서 들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음? 그럼 내 손을 잡은 이유는 뭐지?”

“그거야······.”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는 건 곧 악수를 하자는 제스처다. 즉 청년이 악수를 요청했으니 이에 응하는 건 지극 당연하잖아.

아, 잠깐만.

그러고 보니 마을에서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긴 했다.

“아이넬, 일일이 받아줄 필요는 없다. 이 녀석은 누굴 만나면 늘 손부터 내미더군. 쯧, 괴상한 취미를 남한테 강요하는 건 보기에 좋지 않다.”

“괴상한 취미라니, 그거 너무하네. 이렇게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는 건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이라고. 얼마나 좋아?”

아!

청년과 데커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이곳에 악수가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보니 손님 한 마리 더 있었군.”

“아, 네! 큐우라고 해요!”

나는 막 잠에서 깨어난 큐우를 보여줬다.

“큐우? 데미르 드라고스치고는 귀여운 이름이로군. 아, 이거 내 소개가 늦었구나. 내 이름은 레비아다.”

남자는 스스로를 소개하며 슬쩍 자신의 뿔을 만졌다.

에프렐의 대표적인 특징이 귀라면, 데바는 저 뿔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데바라.

데바.

어두운 피가 흐르는 자라고 해석하면 되려나. 어두침침한 것이 어딘가 비밀스러운 냄새가 나는 이름이었다.

내가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 청년 아니, 레비아 씨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보아하니 데바를 모르는 모양이로군?”

“네?”

데바에 대해서 모르는 건 맞다. 근데, 레비아 씨는 단순히 종족이 아닌 다른 의도로 물어본 것 같았다.

“데바인 내가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우린 꽤 악명이 자자하거든.”

“악명이요?”

레비아 씨의 미소가 짙어졌다.

“데바는 과거 대륙을 초토화시킨 전적이 있지.”

오호.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비아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얘, 반응이 왜 이래? 대륙을 초토화시켰다는데, 무섭지도 않은 거야?”

“무서워해야 돼요?”

내가 역으로 질문을 던지자 도리어 당황한 쪽은 레비아 씨였다.

“어, 뭐······.”

“흥, 그런 시답잖은 장난이 통할 녀석이라고 생각하느냐?”

“하기야,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고서야 데커드를 상대할 순 없겠지. 아, 이럴 게 아니지. 오랜만에 손님이 오셨는데······.”

레비아 씨가 멈칫하더니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이거 어쩌지? 지금 당장 대접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자유로운 여행자라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푼수 끼가 다분한 사람이었다.

“아, 괜찮아요! 제가 따로 준비한 게 있거든요!”

“음? 준비한 게 있다고?”

“네! 할아버지도 시장하실 텐데, 그럼 바로 식사부터 할까요?”

나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짊어졌던 배낭을 내렸다.

* * *

“이거,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데 오히려 대접을 받고 있어서 미안하구만.”

“에이, 괜찮아요!”

어차피 다 같이 먹으려고 준비했던 거였으니, 굳이 마음 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달리 데커드 할아버지의 핀잔이 날아들었다.

“흥, 게으른 녀석까지 챙겨줄 필요는 없다.”

이에 레비아 씨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게으른 건 맞지만, 어디 에프렐만 할까? 아니지, 내가 게으르게 된 건 너한테 옮은 거라고.”

“허? 고브도 웃을 말을 잘도 지껄이는구나!”

“에프렐이 게으른 종족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알 텐데?”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나를 그런 놈들과 똑같이 생각하지 마라.”

두 사람의 언쟁에 나도 모르게 웃었다.

언뜻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오랫동안 사귄 친구이자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었으니까.

“예예. 그나저나, 이건 다 뭐야?”

레비아 씨가 내가 꺼낸 도구들을 보며 물었다.

“이거요? 이건, 화로라는 건데요, 불을 붙여서 쓰는 거예요.”

역시 이럴 땐 말보다는 행동이다.

나는 탁탁, 부싯돌을 부딪쳐 불똥을 만들었다.

하도 자주 쓰나 보니 요령이 붙어 불을 피우기까지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호오, 화로를 작게 만든 건가? 근데, 이 튀어나온 부분 때문에 주변으로 불이 옮겨붙지 않는군.”

레비아 씨는 스마트 컨슈머처럼 미니 화로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네! 그리고, 이건 불판이라는 건데 음식을 구울 때 써요!”

“그렇군. 음? 그건 또 뭐냐?”

“이거, 피기에서 나오는 기름을 굳힌 거예요!”

정확한 명칭은 라드였다. 돼지의 지방을 은근한 불에 끓이면서 나오는 기름만 따로 걸러 요리에 쓴다는 게 떠올라서 만들었다.

거기다 라드는 요리에만 쓰이는 게 아니었다. 비누를 만들거나, 가죽을 손질할 때에도 쓰인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곳에 쓰임새가 있는 재료라서 아빠가 피기를 잡는 날마다 꾸준하게 만들었다.

“호, 기름을 굳혔단 말이야?”

“네, 이렇게 기름을 굳히면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고, 되게 맛있어요!”

“흐음, 괜찮은 방법이군.”

옛말에 끼리끼리 논다고 했던가. 레비아 씨는 데커드 할아버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탐구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쵸? 이렇게 뜨겁게 데운 돌 위에 올리면 돼요.”

나는 적당한 크기로 자른 라드를 불판 위에 얹었다.

치이이이!

딱딱하게 굳힌 라드가 뜨거운 불판에 닿자 흐물흐물 녹아내리더니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아, 고작 기름하나 둘렀을 뿐인데 벌써 맛있네.

한창 아프루를 씹고 뜯고 맛보던 큐우도 덩달아 불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게 자칫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코를 처박을 기세였다.

나는 흐르는 군침을 삼키며, 한편으로는 큐우가 달려들지 않도록 감시하며 재료들을 손질했다. 아까 오면서 틈틈이 딴 작물이었다.

많이 따놨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자칫 굶을 뻔했다.

“호오, 요리도 할 줄 아는 거야?”

레비아 씨가 놀란 듯 물었다.

내가 식재료를 능숙하게 다루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네, 조금요!”

이래봬도 자취 경력만 15년이 넘는다.

자취 생활 5년이 넘어가서부터는 일에 치이고, 또 귀차니즘에 쩔어서 인스턴트로 때우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됐지만, 나라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시골에서도 늘 할머니를 도우면서 요리를 했거니와,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내 방 한편에는 다양한 요리책이 있었고, 휴대폰에도 자취생들을 위한 어플리케이션이 설치되어 있었다.

곧잘 이런저런 요리들을 만들어 먹다 보니 내 나름 요리에 자신감도 있었고, 직장 내에서는 요리하는 남자라 불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직장 상사한테 끌려다니게 된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었지.

내 딴에는 그냥 취미라서 취미라고 쓴 거지만, 결과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꼴이 되어버렸으니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더라.

그냥 취미란에 음악 및 영화 감상만 써뒀어야 했더라면 적어도 주말에는 푹 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여기저기 불려다님으로 말미암아 이곳에서 써먹을 스킬들을 익힐 수 있었으니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이래서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거라니까.

라드가 녹아내리며 코팅된 불판 위에 손질한 작물들을 올렸다.

촤아아악!

각종 채소들이 라드와 뒤섞이며 자글자글 익어간다. 그 위에 특제 시즈닝을 뿌린 나는 주걱을 이용해 채소들을 뒤집었다.

다른 채소들도 맛있어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라드를 잔뜩 흡수한 마쉬룸은 표면이 노릇노릇해져 유독 맛깔스러워 보였다.

“끝!”

이윽고 아이넬표 채소볶음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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