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소년기(7) - #마법!?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부랴부랴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데커드 할아버지는 진작부터 마당에 나와 짐을 싸고 계셨다. 역시 부지런하시다니까.
“할아버지!”
“왔느냐.”
“오래 기다리셨어요?”
“기다리긴 뭘 기다리느냐? 그래서, 허락은 제대로 받은 게냐?”
“네! 데커드 할아버지랑 간다니까 그냥 잘 갔다 오라고 하던데요?”
“허어?”
데커드 할아버지가 벙찐 얼굴로 날 쳐다보셨다.
사실 나만 하더라도 비슷한 표정을 짓긴 했지.
그도 그럴 게, 어른들은 항상 숲은 위험한 장소라고 말했다. 게다가 평소 엄마나 아빠의 성격상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서 내 나름 이에 적당한 핑곗거리까지 만들고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근데, 이런 내 걱정은 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는 데커드 할아버지와 함께라면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며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반면에 아빠는 못내 걱정스러웠는지 본인이 쓰던 장비를 주려고 하더라. 근데, 사실 아빠가 주려던 장비의 사이즈는 내게 맞질 않아서 거절했다.
그렇다고 내가 빈손으로 가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자고로 만사불여튼튼이라는 말마따나, 나도 곧잘 숲을 돌아다니기에 내가 쓸 수 있을 만한 무기나 함정들을 늘 지니고 다녔다.
오늘도 긴급한 상황에서 쓸만한 장비들을 잔뜩 챙겨왔다.
물론 오늘은 그것만 챙기진 않았다.
나는 어제 집으로 가기 전에 싸뒀던 배낭을 짊어지고 왔다.
“허어, 무슨 짐이 그리고 많은 게냐?”
할아버지는 내가 가져온 가방을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하기야, 내가 생각해도 가방이 조금 크긴 했다.
아마 저 멀리서 보면 가방만 둥둥 떠다니는 줄 알겠지.
“할아버지 친구인데, 선물은 준비해야죠!”
“쯧, 누가 누구의 친구란 말이더냐?”
“어, 친구가 아니에요? 그럼 설마 숨겨둔 여자친구?”
“이놈이!”
내 장난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헤헤, 농담이에요! 그래도 할아버지가 아는 분인데, 빈손으로 가면 죄송하잖아요.”
명색이 데커드 할아버지의 친구다. 그냥 인사차 가는 것도 아니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선물 정도는 준비하는 게 인지상정이리라.
“흥, 죄송할 것도 많구나. 마음대로 하거라.”
데커드 할아버지가 코웃음을 치시고는 남은 짐을 마저 정리하셨다.
“그럼 저는 큐우 데려올게요!”
짐 정리를 끝낸 나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큐우는 내 목소리를 듣고 깼는지 반쯤 눈을 뜨고 있었다.
큐하암!
그래도 아직은 졸린지 큐우가 크게 하품했다.
“졸리구나? 자, 이리 와.”
나는 반려용 전용으로 만든 펫가방에 큐우를 넣었다.
큐우는 영 어색했던지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가 숨 막힌다? 자, 머리는 이쪽으로 하고······.”
나는 큐우의 몸을 살짝 들어 머리를 바깥으로 향하도록 자세를 고쳐줬다. 더불어 기다란 꼬리를 부드럽게 쓸어 걸리적거리지 않게끔 방향을 바꿨다.
“어때, 편하지?”
큐우.
“좋아.”
이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할아버지, 준비 끝났어요!”
“갈 길이 머니, 얼른 떠나자꾸나.”
“네!”
* * *
“할아버지, 이건 뭐에요?”
나는 나무에서 돋아난 식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마쉬롬이다. 살짝 단맛이 나고, 식감이 좋아서 식용으로 쓰이지.”
“오오오.”
식용으로 쓰인다는 말에 나는 냉큼 마쉬롬을 따서 가방에 넣었다.
“마쉬롬이라고 다 똑같은 마쉬롬은 아니다. 개중에는 강한 독성을 띠는 것이 있다. 구별하기 쉬운 방법 중 하나는 갓을 살펴보는 게지. 색이 예쁘고 무늬가 화려할수록 독성이 강하다.”
“그렇구나!”
하기야. 지구에서도 화려하고 예쁜 식물에는 독이 있다고 배웠는데,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르진 않구나.
역시 데커드 할아버지는 아는 게 많다니까.
우리가 숲으로 들어온 지도 어언 2시간이 흘렀다.
듣자하니 할아버지의 지인이 사는 곳은 꽤나 깊은 산속이라고 한다. 넉넉하게 4시간 정도 걸으면 도착한다고 했으니, 이제 반쯤 온 셈이다.
전생에는 등산이라는 게 지루한 운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볼 게 어찌나 많았는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울러 나는 지금까지 숲의 초입만 오고 다녔다.
물론 밤 산책을 할땐 조금 더 멀리 나가긴 했지만, 채집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하물며 방금 전 데커드 할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작물 중에는 강한 독성을 띠는 작물이 많았다.
이곳으로 오면서 물어본 식물 중 약 7할 정도는 독이 있다고 하니, 말 다 했지.
아무리 먹는 게 좋고, 또 다양한 식재료를 먹고 싶다고 한들 그로 인해 내 목숨이 위험해진다면 그야말로 본말전도였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내가 아는 작물 혹은 사람들에게 검증을 받은 것들을 위주로 캤다.
그래서다.
이렇듯 데커드 할아버지와 함께 깊은 숲으로 들어오니 평소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으니 신이 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이런 유익한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단 말이지.
비단 신이 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큐우!
딥슬립이 취미이자 특기인 큐우 또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웃차, 그러다 떨어지겠다야.”
나는 행여나 큐우가 떨어질까, 자세를 고쳐잡으며 주섬주섬 마쉬롬을 땄다.
큣!
큐우가 짤뚱한 손을 뻗어 낚아채려고 했다.
어딜!
나는 잽싸게 팔을 들어 큐우의 손을 피했다.
큐우우!
큐우가 분하다는 듯 칭얼거렸다.
“안 돼. 익히지도 않은 걸 먹었다가는 탈 날 수도 있다고. 자, 이거 먹어.”
나는 버둥대는 큐우에게 아프루를 물려줬다. 역시나 입에 간식이 들어가기가 무섭게 얌전해졌다.
호롱!
때마침 반디가 또 다른 마쉬룸을 찾아내고는 신호를 보냈다.
“오, 저기도 있네.”
나는 우연찮게 발견한 듯 혼자말을 내뱉으며 마쉬룸을 채취했다.
주변 구경하랴, 새로운 작물을 채취하랴, 바쁘다 바빠. 게다가 그 양도 어찌나 많았는지, 아마 미슐레 아주머니가 이곳에 왔다면 천국이라고 외치리라.
한창 채집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이었다. 데커드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더니 지게를 내려놓으셨다.
“자, 이쯤에서 잠깐 쉬도록 하자꾸나.”
휴식시간이구나.
안 그래도 슬슬 출출하던 차였는데, 잘 됐다.
“할아버지도 시장하시죠? 제가 싸온 거 있는데, 같이 먹어요!”
“음? 뭘 준비했다는 게냐?”
나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바구니를 꺼내 덮고 있던 가죽을 치웠다.
안에는 삶은 치키의 알을 비롯하여, 각종 열매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소풍 때처럼 3단 도시락을 싸오고 싶었지만, 워낙 급하게 잡힌 예정이라서 간단하게 먹고 치울 수 있는 간식 위주로 준비했다.
“허어, 언제 또 그런 걸 챙겨 왔단 말이냐?”
“헤헤. 옛말에 먹는 게 남는 거라고 했어요.”
“먹는 게 남는다라······. 뭐, 오르크가 할 법한 말이로구나.”
“오르크는 또 뭐에요?”
이름에 싸움꾼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걸 보면 전투에 능숙한 종족인 것 같은데.
“먹는 걸 아주 밝히는 녀석들이지. 어린 오르크라도 다 큰 피기 한 마리는 거뜬하게 해치우는 종족이야.”
어린 피기도 아니고, 다 큰 피기 한 마리면 우리 3인 가족이 일주일은 너끈히 먹고도 남을 양일 텐데, 그걸 어린 오르크 한 마리가 먹어치운단 말이지.
엄청난 대식가구나. 뭐, 이름부터가 싸움꾼이니 그 덩치도 엄청나게 큰 모양이다.
“아, 잠깐만요.”
나는 도시락을 내려놓고 다시금 배낭을 뒤져 미니 화로와 주전자를 꺼냈다.
“허어.”
데커드 할아버지는 내가 꺼낸 캠핑 도구를 보더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숲 한복판에서 차라니, 너도 못 말릴 녀석이로구나.”
“기왕 나왔으니까요!”
데커드 할아버지가 실소를 머금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게, 데커드 할아버지는 평소에도 차를 즐겨 마셨다.
나도 하루의 반 이상을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를 접하게 됐다.
환경이 변하면 입맛도 따라 변하는 것인지, 딱히 차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은근히 마실만 하더라.
그때부터 차에 흥미가 생긴 나는 숲을 돌아다니며 찻잎으로 쓰기에 좋은 꽃이나 풀을 모았다.
특히 차는 내 취향이나 입맛에 따라 블렌딩할 수 있어서 매번 새로운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다.
오늘 내가 챙겨온 것도 내가 새롭게 블렌딩한 차였다.
나는 할아버지와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며 머그컵에 찻잎을 담았다. 끓어오르는 물을 붓자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마무리로 꿀절임을 넣어 휘휘, 저었다.
“여기요!”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께 찻잔을 내밀었다.
별안간 향을 음미하던 데커드 할아버지가 한 모금 마셨다.
“호오?”
“어때요?”
“뭐, 나쁘진 않구나.”
데커드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쁘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는 건 성공적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증거로 데커드 할아버지는 앉은 자리에서 3잔의 차를 마신 뒤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걷기를 2시간여.
“도착했구나.”
해가 중천에 뜰 무렵에서야 할아버지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어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할아버지가 멈춘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정한다.
있긴 있었다.
단지 평범한 길이 아니라, 절벽이라는 게 문제였다. 혹시 이곳을 건너가야하는 건가,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정작 있어야 할 다리는 없었다.
돌연 데커드 할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할아버지?”
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지만, 데커드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이내 데커드 할아버지가 절벽의 끝에 다다랐다.
그와 동시에 이변이 일어났다.
“어······할아버지?”
분명히 내 앞에 있던 데커드 할아버지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내 다시 데커드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단순한 눈을 속이는 마법이니 놀랄 것 없다.”
잠깐만. 방금 데커드 할아버지의 입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방금 마법이라고 하신 거예요? 진짜 마법이요?”
“그래, 마법이라고 했다.”
“우와아!”
진짜 마법이라니!
“설명을 나중에 해줄 테니, 거기서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이쪽으로 오거라.”
“아, 네!”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가 갔던 길을 그대로 밟아가며 절벽 끝에 다다랐다.
“······어우.”
이게 마법이라고?
아무리 봐도 진짜 절벽 같은데?
하물며 내 귓속을 파고드는 스산한 바람소리는 진짜 절벽에서 나는 소리와 똑같았다.
“휴우.”
괜찮다.
방금 전 이게 눈을 속이는 마법이라는 걸 들었거니와, 데커드 할아버지가 멀쩡하게 통과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다리를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기묘한 감각이 뺨을 스치더니 쏴아아아아, 하는 세찬 물소리가 내 고막을 때렸다.
그리고 내가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