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23화 (23/159)

23. 소년기(4) - #데미르 드라고스

크기는 성인장정의 허벅지쯤 될까. 끝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꼬리가 달려있었고, 전신은 비늘로 덮여있었다. 게다가 등에는 흡사 박쥐를 연상케 하는 날개가 달려있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짐승이었다.

어디까지나 직접 본 적이 없다뿐이지, 내가 곧잘 읽었던 소설이나 각종 서브컬쳐 속에서는 단골 소재로 등장하던 짐승이었다.

“드래곤······?”

단순히 그 생김새가 드래곤과 비슷할 뿐이지, 진짜 드래곤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한눈에 보더라도 녀석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서둘러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다가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녀석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호수처럼 맑고 깊은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 눈망울에 담긴 만감에 내 가슴이 다 먹먹해진다.

큐우우우······.

녀석이 짤막한 팔을 움직였다. 그 작은 움직임조차도 고통스러웠는지 녀석이 미약한 기침을 토했다.

본능적으로 가방을 뒤지려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서야 지금 당장이라도 치료를 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아직 녀석에 대해서 모른다.

정확하게는 내가 만든 약이 녀석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어쭙잖게 응급처치를 했다가 도리어 상태가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자칫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데커드 할아버지였다.

나는 녀석을 가죽으로 감싼 뒤,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이런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반항할 법도 했지만, 날 밀어낼 힘도 없었는지 그저 죽은 듯 얌전하게 안겼다.

“반디야, 최대한 빨리 가자.”

호롱!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반디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조금만 참아.”

나는 되도록이면 녀석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끔 조절하며 숲을 내달렸다.

전력으로 질주한 지 약 20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마침내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에 도착했다.

나는 다급하게 오두막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허억, 하, 할아버지!”

내가 큰소리로 외치자, 이윽고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이넬? 지금 이 시간에 어쩐······.”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설명은 나중이다.

나는 대답 대신 품에 안고 있는 녀석을 보여드렸다.

“그건······. 어서 들어오거라.”

데커드 할아버지가 집으로 들어가셨다.

“이 위에 올리거라.”

조심스럽게 녀석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혹여나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숨이 끊어질까, 걱정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아직 살아있었다. 데커드 할아버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녀석의 상태를 확인했다.

“음······. 가서 더운물 좀 떠올 수 있겠느냐?”

“네!”

재빨리 밖으로 나가 더운물을 떠왔다. 그사이에 데커드 할아버지는 여러 약초들을 배합하고 있었다.

“소독약은 갖고 있느냐?”

“네, 여기 있어요.”

“다행이구나. 나는 일단 해독제부터 만들 테니, 그동안 소독약으로 상처 부위를 씻겨주거라.”

“넵!”

데커드 할아버지가 해독제를 만드는 사이, 나는 소독약을 꺼냈다.

멀리서 봤을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녀석의 상태는 몹시도 심각했다.

몸 전체적으로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했고, 매끄러운 비늘도 군데군데 깨지고 벗겨져 있었다.

나는 깨끗하게 소독한 손으로 녀석의 상처 부위를 닦았다.

큐우우······.

상처에 소독약이 닿자 녀석이 몸을 떨며 울었다.

“아프지, 그래도 조금만 참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

녀석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다독이며 상처 부위를 닦았다.

“이거 받거라.”

데커드 할아버지가 내게 해독제가 담긴 그릇을 건넸다.

“내가 입을 열 테니, 너는 그걸 먹이거라. 양은 충분하게 만들었으니 흘려도 상관없어.”

“네!”

이내 데커드 할아버지가 녀석의 주둥이를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거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자.”

나는 조금씩 해독제를 흘려보냈다. 이에 녀석의 울대가 꿀렁거리며 조금씩 해독제를 마셨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칠게 몰아쉬던 숨이 조금은 진정된 것이다.

“긴장 풀거라. 이걸로 당장 죽을 일은 없어졌어.”

“아······.”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깊은 잠에 빠져든 녀석에게서 시선을 거둔 나는 곧장 데커드 할아버지께 허리를 숙였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흥, 됐다. 어차피 나도 일어나 있었으니까.”

데커드 할아버지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도······.”

“쯧, 신경 쓸 것 없다고 했잖느냐. 그나저나 데미르 드라고스라니, 내 살다 이 녀석을 볼 날이 올 줄은 몰랐구나.”

나를 배려하기 위함인지, 데커드 할아버지가 냉큼 화제를 전환했다. 나는 속으로나마 재차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데커드 할아버지의 배려에 응했다.

“데미르 드라고스요?”

데미르는 피가 이어졌다는 뜻이니 아종亞種이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 있었고.

뒤에 붙은 드라고스라는 단어는 거룩한 존재라는 뜻일 텐데, 이것만으로는 대체 어떤 종족인이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나저나 아는 게 그렇게 많은 데커드 할아버지조차 처음 봤다는 건 굉장히 희귀한 마수라는 이야기라는 거잖아?

“너는 이게 뭔지도 모르고 데려온 게냐?”

“헤헤.”

내가 민망하게 웃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는 훈수요정으로 빙의할 때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드라고스는 과거. 아니, 태곳적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는 존재지.”

“오오, 태곳적이요?”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 나도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만, 드라고스의 숨결은 지상을 불태우고, 꼬리는 대륙을 쪼개고, 날갯짓은 산을 통째로 날려버린다더군.”

다소 두리뭉술한 설명에 눈을 꿈뻑이자 데커드 할아버지 픽 웃었다.

“너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맥의 이름이 뭔지 아느냐?”

“아니요!”

“드라고스다.”

“네? 산맥의 이름이 드라고스라고요?”

“그래, 전설에 따르면 저 산맥이 드라고스의 몸이라고들 하지.”

잠깐만.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 이 드라고스는 엄청나게 거대한 생명체라는 것까진 알았다. 그래봐야 크다는 기준이 제각각이라 조금 애매했는데, 산맥을 예로 들어버리니 얼마나 거대한지 확 와닿았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보이는 봉우리에는 각각 드라고스의 날개, 드라고스의 꼬리, 드라고스의 뿔이라고 부른다. 왜, 놀랐느냐?”

“당연하죠! 그럼 저 산맥이 진짜 드라고스라는 이야기에요?”

“에잉, 그게 진짜겠느냐?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야. 에프렐만 해도 드라고스는 한낱 망상이 만들어낸 미지의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지. 뭐, 놈들은 자신들의 위에 지고한 존재가 있다는 게 싫어서 그리 말할 뿐이지만 말이야.”

“아하.”

전설이란 말이지.

따지고 보면 지구에서도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다. 그래봐야 신화는 신화일 뿐이지, 그걸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근데, 이곳이라면 왠지 진짜로 저 산맥이 드라고스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 그러면 데미르 드라고스라는 건······.”

“그래, 전설에 따르자면 드라고스의 생김새가 이 녀석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한다.”

맞네.

내가 처음 데미르 드라고스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다름 아닌 드래곤이다.

즉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대로라면 드라고스는 내가 익히 알던 드래곤이랑 똑같거나 흡사한 종족인 셈이다.

신기하네.

저 산맥이 드라고스냐 아니냐, 전설이냐 한낱 망상이 빚어낸 미지의 존재냐를 떠나서.

만약에 드라고스가 내가 생각하는 그 드래곤이 맞다면, 데미르 드라고스는 그 드래곤의 친척뻘이 되는 셈이다.

쉽게 말해서 용아족龍亞族이라고 부르면 적절하리라.

“허나 그 생김새도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 실제 드라고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이는 없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은 대체 어디서 나타났을꼬.”

“호수 근처에 쓰러져 있었어요.”

“호수라. 흐음, 그럼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스나크한테 물린 게로군.”

“아, 스나크!”

스나크라면 예전에 아빠가 잡아오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익히 알던 뱀이랑 비슷하게 마수였다.

먹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녀석들이 품고 있는 독을 이용해서 함정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행여나 내게 독이 묻을까 걱정했는지, 스나크를 손질할 때면 멀찍이 떨어지라고 수차례 당부하곤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해독제라고 하셨죠. 그럼 독 때문에 이런 거였어요?”

“음? 아, 그거 말이냐? 이쪽을 보거라.”

데커드 할아버지가 데미르 드라고스의 목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자세히 들여다봐야지만 간신히 보일 만큼 미세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스나크 중에서도 카치 사르모스라는 놈의 독에 당한 게지.”

“카, 카치 사르모스······.”

호흡을 일곱 번 뱉으면 죽는다니,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름이었다. 앞으로 숲을 돌아다닐 때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겠네.

“데미르 드라고스라서 버티고 있었던 게지. 아이넬 네가 아니었더라면 금방 죽었을 게다.”

“아······ 발견해서 다행이네요.”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든 데미르 드라고스를 눈에 담았다. 딱 봐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할아버지.”

“왜, 키우고 싶은 게냐?”

“헤헤.”

역시나 데커드 할아버지는 내 의중을 정확하게 간파하셨다.

“뭐, 어차피 네가 주운 거니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만, 혹여 키우려거든 조심하는 게 좋을 게다.”

“어, 왜요? 혹시 위험한 마수에요?”

하기야, 겉모습이 귀엽다고 한들 마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성보다는 야생의 본능이 더 짙었으니 그만큼 공격성도 있으리라.

하물며 지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나 또한 시골에서 누렁이와 함께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함께 지내며, 그 야생성도 흉포함도 많이 죽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인이 있기 때문이지······. 제아무리 애교가 많아 천사라 불려도 언제든 사람을 해칠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 약에 취해서 얌전하게 자고 있지만, 이 녀석이 마수라는 점은 변하지 않거니와, 드라고스라 불리는 지고의 생명체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니 겉보기와는 달리 엄청나게 강한 마수일 가능성도 부정할 순 없었다.

만약 이 녀석이 우리 가족 혹은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즉시 이 녀석을 다른, 비교적 안전하되 우리와는 접촉하지 않는 장소에 보내야만 했다.

“오해를 한 모양이구나. 조심해야 할 건 이 녀석이 아니라, 네 녀석이다.”

“네? 저요?”

“데미르 드라고스. 방금 전 말했다시피 전설 속의 존재인 드라고스와 닮았으며, 평생을 살아도 그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운 마수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설마······.”

“이 녀석의 가죽과 피, 그리고 심장. 아니, 떨어진 비늘 한 조각에도 큰 값어치가 있다. 에프렐 중에서도 이 데미르 드라고스를 손에 넣겠다고 눈에 불을 켜는 녀석이 있었지.”

그랬구나.

“그럼, 제가 맡아서 키울게요.”

“괜찮겠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른 곳으로 보낸다고 한들 이 녀석에게 큰 값어치가 있다면, 누군가는 찾아낼 게 뻔하다. 단순히 맡아서 키우기 위함이라면 모를까.

데미르 드라고스를 원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포획하는 거다. 그 말인즉 잡히는 즉시 끔찍한 일을 당할 게 불 보듯 뻔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맡아서 키워야만 했다.

나아가 이 녀석과 처음 조우했을 당시의 그 애처롭고도 간절한 눈빛을 결코 잊을 수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네 뜻이 그러하다면, 좋다. 이 녀석의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는 이곳에 둬도 상관없어.”

“정말요?”

안 그래도 얘를 어디서 치료해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싫으면 말거라.”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의 허리를 냅다 끌어안았다.

“아뇨! 좋아요! 고마워요, 할아버지!”

“에잉, 냉큼 떨어지지 못할까?”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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