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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22화 (22/159)

22. 소년기(3) - #밤 산책 중 만난 손님

내 부름에 반디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롱!

“자, 슬슬 갈까?”

반디가 긍정의 사인을 보내고는 내 앞을 비췄다. 나는 반디에게서 흘러나오는 빛을 조명 삼아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데커드 할아버지는 주무실 시간이라 주변은 고요했다.

나는 조심조심 개인창고로 향했다.

말이 개인창고지 그냥 데커드 할아버지가 쓰던 상자들을 차곡차곡 쌓고 그 위에 가죽을 덮은 게 전부였다.

며칠 전에 페드릭 아저씨가 언제든 찾아오라 했었는데, 이참에 진짜 창고를 만들어야지 원.

“어디 보자.”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지게에 올렸다.

“읏차!”

제법 묵직해진 지게를 짊어지고는 곧장 숲으로 향했다.

바스락, 바스락.

밤이슬에 젖은 풀들을 헤치며 나아가기를 20여 분.

이윽고 내 눈앞에 커다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둥그런 호수 위에 고고히 떠 있는 달이 잔잔한 물결에 출렁이고, 그 달빛에 반사되어 형형색색의 꽃들이 바람에 살랑이며 손을 흔든다.

“히야.”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곳은 얼마 전 데커드 할아버지가 쓰러졌던 날 발견했던 바로 그 호수였다.

당시에는 급했던지라 허겁지겁 달려서 몰랐는데, 사실 이곳은 꽤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어른들이 알면 아주 혼구녕을 내겠지.”

그도 그럴 게, 이곳은 심지어 이곳은 에프렐의 결계 너머였으니까.

“뭐, 들킬 리가 없겠지만.”

애당초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호수가 있다는 걸 모른다. 게다가 비교적 자유롭게 숲을 오고 다니는 사냥꾼들도 이곳에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이 있다는 걸 알기에 되도록이면 이 주변으로 오지 않았다.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지만, 마을과 족히 3km는 떨어져 있으리라.

그러고 보면 페드릭 아저씨가 내 근골을 얘기할 때 조금 놀라긴 했지.

평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사실 내 육체적인 능력이 조금 비정상적으로 뛰어났다.

심지어 나는 운동이라는 걸 제대로 하지도 않는다.

고작 해봐야 아침에 일어나서 가볍게 마당 몇 바퀴를 뛰거나, 가벼운 맨손체조가 전부다.

그럼에도 3km가 넘는 거리를, 그것도 나무로 빽빽한 숲속을 엄청난 속도로 주파했다. 당시야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진짜 나조차도 내 피지컬에 놀랄 정도다.

그 외에도 반사신경이나 동체시력은 물론 미각, 후각, 청각, 시각, 촉각도 평범한 수준을 뛰어넘은 상태다.

그래봐야 파멜라의 주먹을 피하는 데 쓰이는 게 고작이지만 말이야.

이 또한 날 환생시켜준 노인이 준 선물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쉬이 납득할 수 있었다.

별안간 호수를 감상하던 나는 근처에 지게를 내리고 미리 챙겨왔던 물건들을 깔았다.

“흥흥흥.”

돌을 얇게 깎아서 만든 미니 화로에 적당하게 마른 풀을 쌓아 올렸다.

탁!

부싯돌을 강하게 부딪쳤다. 자그마한 불똥이 튀더니 마른 풀 위에 안착했다.

지금이다. 나는 잽싸게 허리를 숙여 바람을 불었다.

“후우! 후우!”

내 응원에 힘을 받았는지 쪼그맣던 불똥이 빨갛게 무르익으며 화르륵, 불꽃을 피워올렸다. 아주 자그마한 불꽃임에도 삽시간이 공기가 달아오르며 주변이 훈훈해진다.

적당하게 불이 오른 걸 확인한 나는 장작 몇 개를 추가하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렸다.

은근한 열기에 주전자가 달아오르며 순식간에 따끈따끈한 김이 피어오른다. 살짝 손을 가까이 대자 따스한 열기가 전해진다.

“아, 좋다.”

피이이이!

차갑게 식은 몸을 데우던 중 주전자가 거친 콧김을 뿜어냈다.

나는 잽싸게 주전자를 들어 옆에 둔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쪼르르륵, 안에 들어있던 찻잎이 적셔지며 상쾌한 향이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미슐레 아주머니께 받은 아프루 꿀절임을 조금 추가했다.

나는 컵을 들고 호숫가에 앉았다.

후르륵.

혹여 입술이 데일까 호호, 불어가며 한 모금 마셨다.

허브 티의 진하면서도 싱그러운 향에 꿀절임의 달달함이 더해지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탔지만 진짜 그 어떤 차보다 향도 맛도 좋았다.

“후아.”

따뜻한 차에 몸이 노곤해진다. 나는 멍하니 호숫가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아름답다는 말로도 표현이 되지 않는다고 장소라고 해야겠지. 진짜 세상에 그 어떤 카페를 가야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거기다 이곳은 오롯이 나만의 공간인 만큼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 행복하네.”

힐링이라는 게 뭐 있나.

이렇듯 아무도 없는 호숫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없던 스트레스도 풀리는 기분이다.

이래서 내가 밤 산책을 포기할 수가 없다니까.

호로롱!

반디도 밤 산책에 기분이 좋았는지, 호숫가를 날아다니며 즉석 레이저 쇼를 선보였다.

포옹!

돌연 잔잔하던 호수에 파문이 인다.

“음?”

뭔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려던 찰나 푸확, 커다란 물고기가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몸집이 제법 컸던 탓에 이곳까지 물방울이 튀었다. 때 아닌 소나기에 머리카락이 조금 젖었다.

“하핫.”

그마저도 기분이 좋아 무심코 웃어버렸다.

뿐만 아니었다.

샤삭!

어느 틈엔가 내 주변에 자그마한 짐승들이 모여들었다. 녀석들은 무엇이 그리도 궁금했는지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하기야.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곳은 결계의 밖이다. 달리 말해서 저 짐승들은 인간을 처음 봤다는 얘기였으니, 마냥 신기할 노릇이리라.

혹시나 싶어 짐승들을 살펴봤다.

나는 이곳에 몇 차례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타나는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언뜻 청설모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데커드 할아버지에게 녀석의 생김새를 설명하니 스코에르라고 부르더라. 녀석도 엄연한 마수라는데, 글쎄올시다. 내가 봤을 땐 무섭긴커녕 냉큼 데려다가 키우고 싶은 만큼 앙증맞았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미리 준비해온 톳토를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먹을래?”

내가 묻자,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여워라.

나는 행여나 겁을 먹을까, 숨소리마저 죽인 채 기다렸다. 이윽고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냉큼 톳토 한 알을 입에 욱여넣었다. 금세 한쪽 볼이 뽈록해진 게 누르면 톳토가 발사될 것만 같았다.

내가 가만히 있자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걸까. 근처에서 군침만 흘리던 다른 스코에르들도 재빨리 달려와 내 손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자자, 많으니까 나눠 먹어.”

나는 녀석들의 성원에 잔뜩 가지고 온 톳토를 주변에 뿌렸다. 그제야 한데 뭉쳐있던 녀석들이 흩어져 바닥에 떨어진 톳토들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내가 들고 있는 컵에 관심을 보이는 녀석도 있었다.

“이건 내 거거든?”

나는 자꾸만 코를 들이미는 녀석을 밀어냈다. 보드라운 털이 손가락을 집어삼켰다. 더불어 녀석의 두근거리는 심박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어쭈.”

녀석은 지지 않겠다는 듯 꿋꿋하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꽤나 강단이 있었다.

보아하니, 내가 마시는 차의 향이 녀석들마저 홀린 모양이다.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녀석의 집요함에 항복을 외친 나는 컵에 든 아프루 조각을 꺼내 내밀었다.

샥!

혹시나 내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싶었는지, 녀석이 양손으로 아프루 조각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킁킁, 냄새를 맡더니 혀로 핥았다. 이내 그 맛을 확인한 녀석이 톡 튀어나온 앞니로 사각사각 갉아먹었다.

“맛있지? 그거 귀한 거야.”

녀석도 아푸르의 맛에 만족했는지 손바닥까지 핥아먹은 뒤에서야 몸을 돌렸다.

“이야, 그 많던 게 다 사라졌네.”

어느샌가 내가 뿌린 톳토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잘 가.”

나는 볼이 빵빵해져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는지, 뒤뚱뒤뚱 걸어 숲으로 사라지는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내 자취를 감춘 스코에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그대로 누웠다.

찌르르, 찌르르, 밤벌레 우는 소리에 이끌린 몽마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자면 안 되는데.”

괜히 여기서 잠들었다가는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뜰 터. 게다가 제아무리 튼튼하다고 한들, 이대로 잠이 들었다가는 자칫 감기에 걸릴 수도 있었다.

“후아암!”

나는 기지개를 켜 몽마를 내쫓았다.

슬슬 돌아가는 게 좋긴 한데, 왠지 그냥 떠나기는 아쉽단 말이지.

“아, 이참에 낚시도구라도 만들어 볼까.”

그러고 보면 생선을 안 먹은 지가 꽤 되긴 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마을 주변에는 이렇다 할 호수가 없다. 그나마 물을 떠오는 곳이 있긴 했으나, 작은 연못이라서 물고기가 살진 않았다.

“낚시에 필요한 게 뭐 있더라.”

일단 낚싯대랑 얇은 줄, 그리고 바늘이 필요했다. 거기다 물고기들을 유인할 미끼도 찾아야 했다.

“뭐, 땅을 파면 나오는 게 미끼고······. 낚싯대의 재료로 쓰기에 적당한 나무가 뭐 있으려나.”

길이도 길이지만 낚싯대로 사용하려면 적당한 두께와 텐션이 필요했다.

“뭐, 이럴 게 아니라 페드릭 아저씨한테 물어보는 게 좋겠지.”

아무렴, 페드릭 아저씨는 우리 마을 최고의 나무꾼이다. 낚싯대에 딱 어울리는 나무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크, 재미있겠다.”

전생에서도 낚시를 해본 경험은 있다.

근데, 당시에도 직장 상사랑 함께 간 거라서 손맛을 보긴커녕, 내 손맛만 시컷 보여주고 왔다는 게 함정이었다.

물론 낚시터에 가면 빠질 수 없는 게 술과 고기다. 근데, 식도락에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뭔 놈의 술이랑 고기를 그리 싸왔는지.

그마저도 술에 잔뜩 취해서는 던져야 할 낚싯대는 그대로 두고 고성과 방가만 던지더라. 주변 사람들한테 어찌나 민망하고 미안했던지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이제는 다 추억이지.”

습관처럼 아저씨 같은 말을 지껄이며, 슬슬 몸을 일으키던 중이었다.

“응?”

문득 내 귓가를 파고드는 소리가 있었다.

“아아, 바람 소린가.”

다시 짐을 정리하려던 차였다.

큐우우우······.

재차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주시했다. 그래봐야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 보이는 건 시커먼 어둠이 전부였다.

뭔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소리만 들어서는 지나가던 스코에르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짐승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반디야, 저쪽으로 가서 좀 비춰줄래? 그리고 혹시 뭔가 있으면 신호 좀 보내주고. 알지?”

호롱!

반디가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윽고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반디가 그 동그란 원을 그렸다.

위험한 건 아니라는 신호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나는 오감을 곧추세우고는 반디가 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은은한 녹색 불빛 아래였다.

그곳에 한 마리의 짐승이 쓰러져 있었다.

“어,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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