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20화 (20/159)

20. 소년기 - #소독약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내 나이 8살이 되었다. 가장 큰 변화라면 역시나 육체였다. 엄마의 허리에 닿을락 말락 했던 키는 부쩍 자라, 가슴께에 닿았고 짧고 오동통했던 팔다리도 길어졌다.

얼굴을 뒤덮었던 젖살도 빠져 이제는 제법 날렵한 턱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 일찍부터 집안이 시끌시끌했다.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으하하하! 이거, 아침부터 실례가 많소이다!”

한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던지 집이 흔들리는 착각이 든다. 목소리만 큰 게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사람들 중 가장 키가 큰 사람은 데커드 할아버지다. 정확한 수치야 모르겠지만, 아무리 못 잡아도 2미터 40센티는 넘어보임직했다.

눈앞의 남자도 얼추 2미터쯤 되어보이는 게 데커드 할아버지를 제외한다면 가장 컸다.

물론 단순 신장으로는 데커드 할아버지보다 작았다.

하지만 두께로 따지자면 달랐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데커드 할아버지 여섯명을 합친 것보다 거대했다.

거기다 우락부락한 근육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지 안 그래도 큰 몸이 더더욱 커 보인다고 해야 할까.

얼굴도 반 이상이 수염으로 덮여 있어 산적을 연상케하는 외모였다.

저 솥뚜껑처럼 두툼하고 커다란 손에 정글도 하나만 쥐어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남자의 이름은 페드릭이었다. 아빠의 오랜 친구이자 마을에서 제일가는 나무꾼이었다.

아울러 이 남자야말로 마을 제일가는 악동인 파멜라의 아빠이기도 했다.

“우리 사이에 실례가 뭐야.”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 그럼요! 페드릭 씨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저번에 만들어주신 것도 잘 쓰고 있답니다.”

엄마도 페드릭 아저씨를 웃으며 반겼다. 그러고 보니 페드릭 아저씨는 이것저것 만드는 게 취미이자 특기라고 들었다.

미슐레 아주머니가 채집이 업이고 특기가 요리인 것처럼 말이다.

당장 우리 집에 있는 가구의 대다수는 페드릭 아저씨의 손을 거쳤다고 하는데, 페드릭 아저씨는 다소 험악한 인상과는 다르게 손재주는 훌륭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손재주에 비해서 미적감각은 영 꽝이었다.

“으하하! 뭘, 그런 걸 가지고! 나야말로, 넬슨이나 아일라에게 늘 신세를 지고 있잖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쇼!”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페드릭 씨도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아, 그 얘기를 듣고 생각난 건데······저번에 나한테 준 약 있잖소.”

페드릭 아저씨가 나무꾼이자, 제작이 특기이고 미슐레 아주머니가 채집꾼이자 요리사가 특기다. 엄마는 채집꾼이자 약을 제조하는 게 특기였다.

아무래도 아빠가 사냥꾼인지라 예전부터 그쪽에 관심을 가졌거니와, 데커드 할아버지에게 배운 게 있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다친 사람들이 곧잘 엄마를 찾아오곤 했다.

“약이요?”

“그, 독특하게 생긴 약 말이오. 그······이름이 외 뭐라고 했던가?”

“아! 외상약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거요! 그거! 효과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 큰 상처가 금세 낫더군! 역시 아일라의 약은 마을에서 제일 간다니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하나 더 부탁해도 되겠소이까?”

페드릭 아저씨가 민망하게 웃으며 슬쩍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커다란 자상이 생겨나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이 나무꾼이다 보니 나무에 긁히거나 부딪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나아가 저 정도 사이즈의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옷감도 엄청나게 들어갈 터. 자칫 찢어지기라도 하면 난감하니 아예 벗고 생활하는 게 익숙하기도 하리라.

특히 저런 상처가 생긴 뒤에 옷을 입었다가는 자꾸만 걸리적거리거니와 자꾸 쓸릴 테니 자칫 상처가 덧나기 십상이기도 했고.

“호호, 그거 제가 만든 게 아닌데요?”

엄마의 말에 페드릭 아저씨가 눈을 꿈뻑였다.

“음? 아일라가 만든 게 아니오?”

“그때 드린 건 넬이 만든 거랍니다.”

“호오?”

페드릭 아저씨가 놀란 얼굴로 내 쪽을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나는 눈앞의 남자에게 인사했다.

“흐음, 그 소문이 자자한 아이넬이 바로 이 꼬맹이였군.”

페드릭 아저씨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날 훑어봤다.

하기야, 이제까지의 나는 늘 엄마랑 함께 다녔다. 따라서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은 엄마와 같은 채집꾼 아니면 평소 왕래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사냥꾼이나 나무꾼처럼 마을 바깥을 자주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당장 아빠가 매일 만나는 동료들 중에서는 최근까지 내가 태어났다는 걸 모르던 사람도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자신들이 하는 일에 바쁜지라 정작 마을 내부의 사정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건 매일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녔거니와, 그동안 내가 행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 시발점이라면 역시나 호미였다. 단순히 엄마에게 드리려고 만들었던 그 호미 하나로 말미암아 일약 스타아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페드릭 아저씨야 파멜라의 아빠였으니 굳이 소문이 아니더라도 내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겠지만.

“거참, 보기엔 내 딸이랑 비슷한데 말이야. 그래서, 그 약은 니가 만들었다는 말이렷다?”

“네!”

딱히 숨길 것도 아니라서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페드릭 아저씨가 턱을 매만지더니 대뜸 내 팔을 움켜잡았다.

마치 상어가 먹이를 낚아채듯, 내 팔이 한 손에 쏙 들어갔다.

“호오. 제법 단단한데?”

페드릭 아저씨가 눈을 빛냈다. 어쩐지 수산물시장의 좌판에 놓인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어린아이치고는 근골이 아주 튼튼하군. 나이에 비해 근육도 제법 단단한 게 장차 힘 좀 쓰겠어.”

이내 신선도 검수를 끝낸 유통업자처럼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어우!

어디까지나 페드릭 아저씨의 입장에서나 툭툭이지, 내 입장에서는 퍽퍽이었다.

그나저나 페드릭 아저씨는 곰처럼 둔해보이는데 비해 눈썰미는 엄청 좋구나.

“그래, 마음에 드는 처자는 있고?”

“네?”

정말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예전에 세라 누나도 비슷한 뉘앙스로 말하더니······이제는 페드릭 아저씨까지 이러시네.

하물며 이제 8살이다.

그냥 같은 또래 중에 좋아하는 아이가 있느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처자라니!

누가 들으면 늦게까지 장가 못간 노총각 조카를 걱정하는 큰아버지인 줄 알겠네.

이런 내 생각과는 달리 페드릭 아저씨는 진심이었는지, 큰 소리로 물었다.

“어이, 넬슨! 어때? 이참에 파멜라랑 맺어주는 것도 좋은 것 같지 않나?”

“호오, 그것도 괜찮지. 파멜라가 올해 몇 살이었지?”

“올해로 10살이지.”

“그래? 이럴 게 아니라······.”

아빠는 페드릭 아저씨의 말에 맞장구를 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호호, 지금 두 분께서는 무슨 얘기를 그리도 열심히 하는 걸까요?”

“어?”

“커험.”

갑작스럽게 등장한 엄마에 아빠와 페드릭 아저씨가 흠칫했다.

“우리 넬은 아직 8살밖에 안 됐답니다. 그리고 원하는 짝은 스스로 찾아야지, 두 분이 정하면 쓰나요? 파멜라도 아직은 어리지만, 저랑 같은 여자예요. 진짜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맺어지고 싶은 게 여자의 마음이니 모쪼록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엄마가 정론을 앞세우자 아빠와 페드릭 아저씨는 그저 눈치만 볼 뿐, 선뜻 반박하지 못했다.

역시는 역시다.

엄마가 겉보기에는 되게 착해보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 집에서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엄마의 비호에 든든함을 만끽하던 중이었다.

“야아아압!”

후욱, 다가오는 그림자에 재빨리 고개를 꺾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뚫으며 파멜라의 주먹이 지나갔다.

첫 공격은 명백한 실패였다.

그러나 명색이 파멜라다. 한 번의 공격이 빗나간다고 여기서 멈출 녀석이 아닌 것이다.

다음으로 날아올 공격이라면 뻔하다.

나는 살짝 무릎을 굽혔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내가 무릎을 굽히며 자세를 낮추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두 번째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후웅!

10살치고는 제법 힘이 실려있었는지 바람소리가 매서웠다.

찰나의 시간동안 약 다섯 차례의 공방이 오고 갔다.

결국 먼저 지친 쪽은 파멜라였다.

“으아아!”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 땀까지 뻘뻘 흘리며 제풀에 쓰러졌다.

“헤엑, 헤엑······. 이씨, 너 또 피했어!”

하여간, 파멜라는 이제 10살이 되었음에도 무엇 하나 변하지······않은 건 아니구나.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키가 제법 컸고, 유년기였을 때에 비해서 이목구비도 뚜렷해져 완연한 소녀가 되어있었다.

그나저나 내가 파멜라와 알게 된 지도 어언 5년이 되어가건만, 매번 볼 때마다 날 못 때려서 안달이다.

그래봐야 파멜라의 집요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의 일격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뭐, 따지고 보면 내가 전부 피했기 때문에 더더욱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낫겠지만 말이야.

“자.”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는 파멜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은 왜?”

“왜긴. 거기 있으면 지저분해지니까 그러지.”

“······흥, 됐거든?”

파멜라는 내게 널름 혀를 내밀더니, 스스로 일어났다. 하지만 이내 다리가 풀렸는지 그대로 나자빠졌다.

“아욱!”

“그러게 내 손 잡았으면 됐잖아.”

“흥!”

파멜라가 코웃음을 쳤지만, 나자빠지며 부딪힌 부위가 꽤 아팠는지 금세 표정을 찡그렸다.

나는 홀로 끙끙거리는 파멜라의 손을 억지로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제 보니 찰과상을 입었는지, 절뚝거리는 다리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손 치워 봐.”

“왜, 왜?”

“상처 좀 보게, 치워 봐.”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파멜라가 주춤거리며 손을 치웠다.

역시나 방금 전 넘어진 탓에 살이 까졌다. 큰 상처는 아니지만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자칫 흉터가 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허리춤에 멘 가방을 열었다.

이는 내가 항시 착용하고 다니는 가방으로 안에는 나이프부터 시작해, 가위, 접이식 낫 같은 게 들어있었다. 그 외에도 응급상황에 쓸 약들도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나는 가죽을 꿰어 만든 수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알싸하면서도 진한 약초냄새가 흘러나왔다.

“호오, 그건 뭐냐? 어째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어느샌가 근처에 온 페드릭 아저씨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페드릭 아저씨가 술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누가 애주가가 아니랄까봐 바로 맞춰버리네.

나는 군침을 삼키는 페드릭 아저씨를 보며 웃었다.

“이거 술 아닌데요?”

안타깝게도 반은 맞았지만, 나머지 반은 땡이었다.

“음? 술이 아니라고?”

“네, 소독약이에요.”

“소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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