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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9화 (19/159)

19. 유년기(18)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금은?

“아······.”

그랬던 거구나.

데커드 할아버지의 귀가 뾰족하게 생긴 건 에프렐이라는 종족의 피가 섞여있기 때문이었구나.

“그럼 왜······.”

나는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지려다가 급하게 삼켰다.

“왜 이곳에 있느냐고 묻고 싶은 게냐?”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멋쩍게 웃었다.

“네. 근데, 알려주지 않아도 괜차나여.”

“흥,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래, 이미 다 오래된 이야기야.”

데커드 할아버지는 다 오래된 이야기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마치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째서일까.

그 모습에서 이제는 시간이 지났으니 아무래도 괜찮다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던 때가 겹쳐 보였다.

“그래······.”

이내 데커드 할아버지가 평소의 나지막한 음성으로 운을 뗐다.

“내 아버지란 작자는 에프렐이었다. 어머니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지.”

아, 아버지 쪽이 에프렐이셨구나. 근데, 작자라는 다소 가시 돋힌 단어 때문인지 썩 좋은 감정을 지니진 않은 것 같았다.

“먼저 이 얘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어떤 얘기여?”

“너는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이 언제 생겼는지 아느냐?”

“어······.”

그러고 보면 나는 어떻게 이런 곳에 마을이 생겼는지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으나, 언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선뜻 답을 못하자 데커드 할아버지는 미리 예상했다는 듯 답을 내놓으셨다.

“길어 봐야 40년도 채 되지 않는다.”

“40년이여?”

“그래. 40년이다.”

잠깐만.

내가 알기로 도리아 아주머니의 나이는 50대 중반이다. 그 말은 이 마을이 생겨나기 이전에 태어나셨다는 이야기다.

“그럼 그 전에는······?”

“없었지.”

“없었다구여?”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래. 에프렐은 늘 이런 말을 하지.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되기 마련이라고. 저 숲에 살아가는 종족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중에서도 고브는 약한 종족이다.”

잠시 말을 멈춘 데커드 할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인간은······고브보다 더 약한 종족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빠는 사냥을 업으로 삼는다. 늘 숲을 다니며 다양한 마수들을 잡아오지만, 한편으로는 늘 상처를 달고 살았다.

아무렴.

제아무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그건 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 육체능력이 뛰어나서는 아니었다.

일평생 몸을 단련한 사람이라도 야생 멧돼지 한 마리 감당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했고.

게다가 지구였더라면 총이나 각종 장비들이 있어서 사냥이 크게 어렵진 않지만, 이곳은 아니다.

당장 아빠가 사냥에 쓰는 도구만 하더라도 창 내지 활이 고작.

명색이 사냥꾼인지라 함정같은 걸 활용했지만, 지구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감히 엄두조차 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제대로 된 기술은커녕 마땅한 무기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곳의 기술력이라면 인간이 최약체라 불리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럼 그 전에는 다들 떠돌이 생활을 했던 거예여?”

“호오, 떠돌이라는 말도 아느냐?”

“네? 아, 헤헤.”

“네 말대로다. 힘이 없는데, 별수 있겠느냐. 그저 다른 종족의 눈에 띠지 않게끔 조용하게 살면서, 혹여나 다툼이 생기면 그보다 더 조용하게 떠나는 게 인간의 삶이었어.”

“그랬구나······.”

솔직히 지금 마을 사람들을 이렇다 할 근심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냥 평화로운 세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와 아빠의 나이가 20대 중반이었지.

비교적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 미슐레 아주머니도 30대 후반이었으니, 예전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자세히 모르고 있을 터였다.

“그럼 도리아 아주머니가 걱정하시는 게······.”

“그래, 그 꼬마는 나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겪어봤다. 그러니, 숲이 시끄러워지면 불안하지 않겠느냐?”

이런······.

나는 우리 마을에 이런 역사가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도리아 아주머니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마을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얘기해준 적이 없으니까.

따지고 보면 가장 힘들고 답답했던 건 도리아 아주머니 본인이었을 텐데. 행여나 마을 사람들이 불안에 떨까, 홀로 고민하고 또 걱정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너무 걱정할 건 없다. 아직은 계약기간이 남아있으니까.”

“계약기간이요?”

“그래.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인간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느냐?”

“아!”

그러고 보면 마을에 정착한 지 약 40년이 흘렀다고 했으니, 마땅한 대비책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대비책이라면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결계 말씀하시는 거예여?”

“어디서 주워 들은 건 있는 모양이구나.”

“헤헤.”

나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달리 말해 삼라만상에 관심이 있었으니 항상 두 눈은 시퍼렇게 뜨고, 귀는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셌구나. 너도 알겠지만, 이 숲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거대하다.”

확실히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대로다.

당장 이 마을에서만 보더라도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다.

마을이야 비교적 평탄한 구릉지대였기에 망정이지, 숲으로 들어가면 진짜 녹색바다에 빠진 기분이 든다.

나나 엄마가 채집을 가는 곳이야 볕이 들어서 별로 문제가 될 건 없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낮과 밤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컴컴한 것이다.

제아무리 야생 전문가라고 한들 방향을 잃었다가는 열에 아홉은 빠져나오지 못하리라.

실제로 우리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베테랑 채집꾼들 사이에서도 홀로 깊은 숲까지는 홀로 들어가지 않는 게 불문율이기도 했다.

“뻔한 이야기다. 당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어머니는 무리에서 나와 채집을 하던 중 길을 잃으셨다. 어떻게든 숲을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걸으셨겠지. 그래봐야 숲을 벗어나기란 요원했고, 결국 몇날 며칠을 헤매던 끝에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어.”

“아······.”

“놀랄 거 없다.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테니 말이야.”

“그렇져!”

“어머니가 눈을 뜨셨을 때 앞에 한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지.”

“아, 그럼 그분이!”

“그분이라······. 흥, 딱히 마음에 들진 않는 호칭이로구나. 그래, 그 작자가 내 아버지다. 주변 순찰을 나섰던 에프렐이었다지.”

“그래서여?”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냐?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빠진 게지.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가 싫진 않았던 것 같고.”

“오오오.”

우연히 숲에서 길을 잃은 숙녀와, 그런 숙녀를 구해준 에프렐의 청년이라니.

여기까지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달달한 로맨스 그 자체였다.

“이전에 에프렐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느냐?”

에프렐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 숲이 자기들 세상이라고 떠드는 광오한, 아니 멍청한 자들이라고 하신 거여?”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에프렐은 꽤나 강한 종족이다. 울창한 숲이라면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하지. 반면에 인간은······약하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아.”

알겠다.

에프렐은 강하다. 그리고 숲에서는 적수가 없다. 즉 그들이 광오한 건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자신들보다 약한 종족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깔보는 것이다.

자칭 신의 아이이며, 그 누구보다 고귀하고 우월한 존재이니 모두가 받들어야만한다는······이른바 선민사상이 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자신들 외의 종족들은 무시하고, 배척했으며,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다고 믿는 놈들이다. 그런 광오한 에프렐과 나약한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하플링. 과연 그들이 달갑게 생각하겠느냐?”

“아니요.”

지구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차별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지 익히 보고 겪어왔다.

데커드 할아버지가 그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는, 굳이 겪어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떠나주기로 했다. 대신.”

“대신?”

“내가 떠나는 조건으로 인간이 정착할 수 있게 결계를 쳐달라고 했지.”

“아······.”

그런거였구나.

그럼 지금까지 이 마을이 생겨나고, 또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었던 건 데커드 할아버지의 희생이 바탕에 깔려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근데, 순순히 결계를 쳐줬어여?”

분명히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면, 호락호락 해줄 것 같진 않은데 말이야.

이런 내 질문에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데커드 할아버지의 입가가 씰룩였다.

“클클클, 이를 말이냐. 그 녀석들이 쉽게 해줄 리가 있겠느냐? 그래도 어쩌겠느냐, 끝까지 버티고 또 버텼지. 놈들도 하플링에게는 어떤 자비도 베풀 수 없다며 버티더구나.”

“오오오, 그래서여?”

“별 거 없다. 그저 버티다 보니, 나에게도 에프렐의 피가 섞여 있다는 걸 깨닫고는 방법을 바꿨을 뿐이야.”

어쩐지 데커드 할아버지의 미소가 짙어지는 게······뭔가 몹쓸 장난을 계획할 때의 파멜라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뭐, 결과적으로 내가 나가는 조건으로 결계를 쳐주기로 했다.”

“할아버지 대단해여!”

아프렐이 대체 어떤 종족인지 자세한 건 알 수 없었지만 데커드 할아버지는 그저 하플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유 없는 괄시와 무시를 당했다.

그럼에도 데커드 할아버지는 엄연히 하나의 종족을 대상으로 꿋꿋하게 버틴 것도 모자라 마을의 안전을 위한 장치까지 쟁취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승리가 아니고 뭐겠는가.

더불어데커드 할아버지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나도 떠돌이 생활은 전전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더니, 데커드 할아버지도 그렇고 도리아 아주머니도 그렇고······.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았다.

“할아버지 최고!”

내가 엄지를 추켜세우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픽 웃었다.

“후후. 대단할 것도 없다. 그래봐야 결계의 기간은 50년밖에 안 되니까.”

“어, 그럼······.”

“그래, 앞으로 10년만 있으면 결계는 사라지게 된다.”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여?”

“별수 있느냐,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으니까.”

데커드 할아버지가 가만히 날 응시했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느냐?

“네. 할아버지가 무서워여? 왜여?”

역으로 질문을 던지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허, 내가 괜한 질문을 했구나. 그래, 참으로······. 참으로 아이넬스러운 대답이로구나.”

“네? 아이넬스러운 대답이여?”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아이넬스럽다는 건 뭐지?

“클클클, 그런 게 있다. 그래서, 내 머리는 다 자른 게냐?”

“아직이요! 그래도 거의 다 끝났어요!”

“에잉, 굼뜬 녀석이로구나. 얼른 자르고 그 줄잇긴지 뭔지나 알려주거라.”

“헤헤, 싫다구 하셔두 알려드릴건데여? 진짜 엄청 재미있어여! 기대하세여!”

“흥,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지.”

나는 할아버지의 투덜거림을 배경음 삼아 가위를 놀렸다.

그나저나 아프렐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데커드 할아버지.

한 번의 죽음으로 인해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환생한 나.

어떻게 보면 하나의 영혼에 두 개의 삶이었으니 나 또한 하플링이 아닐까, 라는 시답잖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게 노인의 실수 아니라면?

정말로 내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거라면?

만에 하나라도 이런 내 추측이 맞다면······대체 그게 뭘까?

“우으, 모르겠다.”

“흐음? 뭘 모르겠다는 게냐?”

“아무것도 아니에여! 이제 묶으면 끝나니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세여!”

그래, 세상에서 비싼 금은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느니, 어떻게 하면 보다 즐겁고 행복하고 보람찬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게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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