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유년기(17) - #하플링
늘 그렇듯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걸치고 있던 지게를 내리고 작업대로 향하던 중이었다.
“응?”
어째선지 데커드 할아버지가 내 작업대 근처를 서성이고 계셨다.
“할아버지?”
내가 부르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좀 늦었구나.”
오늘은 아침부터 이것저것 할 게 있어서 평소보다는 조금 늦긴 했는데······.
“혹시, 저 기다리고 계셨어여?”
“기다리긴 뭘. 그냥 잠깐 바깥 바람을 쐬고 있었던 게지.”
에이, 저런 새빨간 거짓말은 안 통하다니까 그러시네.
“근데여 할아버지, 또 안 주무신 거예여?”
자고로 늦바람이 무섭다고들 한다. 데커드 할아버지는 처음 알까기를 맛본 뒤 재미있으셨는지, 곧잘 나와 시합을 벌였다.
나도 오랜만에 하니 재미있기에 틈만 나면 데커드 할아버지와 알까기를 했다.
근데,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내가 바둑판을 만든 뒤로 약 두어 달이 흘렀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알까기를 하고 또 했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아예 알까기 삼매경에 빠져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 그대로 주야장천 알까기만 했던 날도 더러 있었다.
그래봐야 내 알까기 실력이 조금 더 위라서 데커드 할아버지는 매번 쓴물만 삼켜야 했지만 말이야.
언제였던가. 데커드 할아버지가 혹시 전적을 기억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야 외우려고 외운 게 아니지만, 머리가 알아서 기억을 해버리니 별수 있나.
현재까지 내가 1,492승이고 할아버지는 421승이라고 말씀드렸다.
단순 수치로만 3배 이상이며, 며칠 더 있으면 4배에 다다르는 차이였다.
데커드 할아버지도 자신의 승률이 떨어진다는 걸 알고계셨지만, 이렇듯 정확한 숫자를 들으시고는 표정이 굳으시더라.
더불어 잠자고 있던 승부욕에 불이 붙었는지, 내가 없을 때면 홀로 연습에 매진하셨다. 보아하니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글쎄올시다.
막 자리를 이리저리 옮기거나 손가락을 기괴하게 꺾어가며 연습하는 걸 나는 다 봤단 말이지.
어휴, 누가 보면 알까기 세계 선수권 대회라도 참가하는 줄 알겠어.
보나마나 오늘도 밤새 알까기를 연습했음이 분명했다.
그 증거로 초췌했던 얼굴에는 짙은 다크서클마저 드리워져 있었다.
이래서 늦바람이 무섭다고들 하는 거라니까.
“커흠, 시끄럽고. 얼른 와서 앉거라!”
나는 미리부터 판을 깔아놓은 할아버지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할 게 있어여!
“할 거라니? 알까기보다 중요한 게 있더냐?”
데커드 할아버지의 눈매가 매섭다. 마치 신성한 알까기를 두고 딴짓을 한다는 건 신성모독이라고 외치는 듯한 눈이었다.
“그때, 약속한 거 있자나여!”
내가 약속이라는 말을 꺼내자 방금 전 매서웠던 눈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당혹감이라는 감정이 서렸다.
약속이라고 해봐야 막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할아버지의 머리를 조금 다듬어주고 싶었다.
솔직히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데커드 할아버지의 상태는 조금 심각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은 봉두난발이고, 명치까지 오는 수염도 들숙날쑥했다. 게다가 데커드 할아버지는 곧잘 숲을 돌아다니는지라 알게 모르게 묻은 얼룩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좋게 말하면 일평생 망나니로 살다가 한 10년쯤 무인도에 조난당한 간달프요.
있는 그대로 보자면 서울 지하철역에 거주하시는 노숙자 아니, 왕고참도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리라 여겨질 상거지였다.
안 그래도 내 머리를 조금 다듬을까, 생각한지라 겸사겸사 데커드 할아버지의 머리도 손질하고 싶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게냐?”
“당연하죠!”
데커드 할아버지는 내가 잊어버린 줄 알았나 본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내 기억력은 SSD를 상회한다. 거기다 부가적인 기능까지 따진다면 인공지능 알파고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자신한다.
물론 하드웨어는 하이엔드급인데 비해서, 소프트웨어가 조금 빈약하긴 하지만······그건 단순히 지식이 부족할 뿐이니,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애당초 데커드 할아버지나 마을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배우고 또 익히면서 하루가 다르게 버전업을 하고 있었고.
“그리 급하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
데커드 할아버지가 머뭇거렸다.
“네! 그리구, 이렇게 늦어진 건 할아버지가 자꾸 알까기 하자구 해서자나여!”
이발을 할때 필요한 도구라고해야 가위나 빗이면 충분하다. 만드는 방법이야 기억하고 있으니 문제 없고, 재료인 마수의 뼈도 아직은 많이 남아있었다.
물론 호미나 지게에 비하자면야 가위의 난이도가 훨씬 높긴 했다. 날을 갈아야 하는 건 물론, 날이 잘 맞물리게끔 각도나 손잡이도 만들어야 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빠르면 이틀 안에 뚝딱 만들 수 있었는데, 알까기에 푹 빠진 나머지 얼추 한 달이나 되어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뭐, 솔직히 나도 알까기가 재미있었거니와 막 급한 건 아니라서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말이야. 그래도 언제까지고 미뤄둘 순 없는지라, 오늘 거행하기로 결심했다.
“끄응······.”
본의 아니게 2개월의 유예기간을 줬으니 마음을 정리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조금 망설여지는 모양이다.
“대신, 제가 알까기 말구 다른 것두 알려드릴게여!”
“다른 거라고?”
내 말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눈을 빛냈다.
“네! 줄잇기라는 건데여!”
오목이었다.
마땅하게 대체할 말이 없기도 하고, 돌을 이으면 되는 놀이라서 대충 줄잇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줄잇기라······. 이름만 들어서는 모르겠구나. 흐음, 혹시 판 위에 있는 선을 활용하는 게냐?”
그러고 보면 예전에 알까기를 하던 중 데커드 할아버지가 “헌데, 알까기라는 걸 하는데 굳이 이 판 위에서 해야 되는 이유라도 있느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도 그럴게, 코팅이야 그렇다 쳐도 바둑판에 그어진 선은 아무런 활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데커드 할아버지였기에 선을 어디에 쓰는 것인지 물어본 거지,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디자인쯤으로 치부했으리라.
더불어 역시 알까기 초보라다운 질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바둑이나 오목을 두지 않을지언정 알까기는 바둑판 위에서 해야만 한다.
이건 국룰이자 이세계 알까기 9단으로써 지켜야 할 덕목이었다.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지, 할아버지한테는 ”나중에 알려드릴게여!”라고 어물쩍 넘겼다.
“맞아여! 선이 꼭 필요한 놀이에여! 그리구 엄청 재미있어여!”
오목이 재미있다는 건 세 살짜리 꼬마아이도 아는 사실이지.
내가 흥분을 담아 외치자 잠시 고민하던 데커드 할아버지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 마음대로 하거라.”
좋았어!
데커드 할아버지가 항복을 선언했다.
“그럼 여기 앉으세여!”
데커드 할아버지가 터덜터덜 걸어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웃차!”
나는 데커드 할어버지의 뒤로 가서 가죽을 두드려서 만든 가운을 입혀드렸다.
“불편한 건 없져?”
“왜 없겠느냐.”
“그럼, 시작할게여!”
데커드 할아버지의 툴툴거림을 가볍게 무시한 나는 조심스레 빗질을 시작했다.
스윽스윽.
역시 오염되지 않은 곳에 살아서 그런 걸까.
분명히 평소에 관리를 하지 않는데도 빗질이 수월했다. 게다가 멀리서 볼 땐 마냥 너저분했는데, 안쪽 머리는 비교적 엉킨 것도 없었다.
“자를게여?”
“······자르지 말라면 안 자를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어, 들켰어여?”
나는 능청스러운 대답과는 달리 과감하게 가위를 가져다댔다.
서걱.
숫돌에 부지런히 갈아둔 덕분에 머리카락은 쉽게 잘려나갔다. 이제 딱 한 번의 가위질만 했음에도 속이 다 시원해진다.
어디 보자.
데커드 할아버지의 경우 이목구비가 조금 뚜렷하되 심각하게 말랐다. 아예 짧게 자르는 것보다는 적당한 길이로 자른 뒤 묶는 쪽이 보다 깔끔하겠지. 옛날 조선시대에 트던 상투처럼 말이다.
머릿속으로 스타일을 생각하며 머리를 다듬었다. 어느 정도 모양을 잡으며, 귀쪽으로 가위를 옮겨갔다.
“아우.”
어찌나 풍성했던지, 머리카락은 귀마개처럼 귀를 덮고 있었다. 이래서 소리나 들리시나 모르겠어.
나는 귀쪽을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톡, 튀어나왔다.
다름 아닌 귀였다.
뭐지?
나는 혹시나 잘못 본건가 싶어 눈을 꿈뼉였다. 그럼에도 변하는 건 없었다. 이번에는 눈을 비볐다.
역시나 변하는 건 없었다.
“······.”
내가 당황한 이유는 단순했다.
할아버지의 귀가······이상하리만치 크고 뾰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귀의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라는 건 알고 있다. 나만 하더라도 전생에는 부처님 귀라고 불렸으니까.
하지만 데커드 할아버지의 귀는 마치······나뭇잎을 연상케하는 모양이었다.
“놀랐느냐?”
데커드가 할아버지가 물었다.
“네? 뭘요?”
나는 짐짓 태연하게 대꾸하며 머리카락을 빗었다.
데커드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쯧, 모르는 척 해봐야 소용 없다는 걸 모르는 게냐?”
“헤헤.”
역시 내가 데커드 할아버지의 성향을 알고 있듯, 데커드 할아버지 또한 내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 쓸 것 없다. 그래, 내 귀가 왜 그런 모양인지 궁금하진 않느냐?”
“어······솔직히 궁금해여.”
“솔직해서 좋구나. 그건 그렇고, 손이 멈췄다만?”
“아, 네. 자를게여!”
나는 행여나 데커드 할아버지의 귀에 상처라도 생길까, 한층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독특한 모양새의 귀에 자꾸만 시선이 갔지만 애써 잡념을 털어냈다.
어디까지나 데커드 할아버지의 개인적인 일이다.
설령 가족이라고 한들 비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고, 데커드 할아버지의 분위기를 봤을 땐 썩 좋은 기억은 아닌 것 같았으니 캐묻는 건 지양해야겠지.
그래.
나에게도 차마 말하기 힘든 비밀이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비밀도 지켜줄 줄 알아야 그게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내가 궁금하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건 철부지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착해빠진 녀석이로군. 아니, 신기한 녀석이라고 해야겠구나.”
“네? 아, 헤헤.”
때 아닌 칭찬에 멋쩍게 웃었다.
“이전에 다른 종족이 궁금하다고 물어봤었지.”
“네. 에프렐이랑 고브요!”
그때 데커드 할아버지한테 두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엄마랑 아빠한테도 물어봤는데, 두분은 두 종족에 대해서 자세히 알진 못했다.
그나마 미슐레 아주머니는 에프렐이 타고난 채집꾼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했었지.
“에프렐의 생김새는 아이넬, 너랑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키가 크고, 나름 봐줄만하게 생겼지. 그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은 귀가 나뭇잎처럼 생겼다는 거다.”
“어, 그럼 할아버지는······.”
에프렐이냐고 여쭤보려던 찰나였다.
데커드 할아버지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하플링이다.”
“하플링······이여?”
“그래.”
하플링.
완전하지 못한 자라는 의미였다. 내게 익숙한 단어로 번역하자면 혼혈아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 있었다.
“나는 에프렐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