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4화 (14/159)

14. 유년기(13) - #동심

“에이! 뭐야!”

“돌 아니야?”

“······.”

내 손바닥에 놓인 걸 본 파멜라와 테트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르네조차도 의문 어린 눈으로 나와 손바닥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무렴, 장난감이라고 했는데 하얀 돌멩이 5개만 덩그러니 보여줬으니 실망할 만도 하겠지.

그러나 이걸 평범한 돌멩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건 공깃돌이라는 거야! 이걸로 공기놀이를 할 수 있어!”

“공깃돌? 공기놀이?”

“공깃돌? 그게 뭐야?”

“자, 이리 와서 앉아. 내가 보여 줄게! 음······. 아, 저기가 좋겠다!”

나는 비교적 평평한 바위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내 행동에 궁금증이 생겼는지 세 아이도 바위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았다.

“자, 이걸 이렇게······.”

손에 쥔 공깃돌을 바위에 던졌다. 적당하게 모인 공깃돌 중 하나를 손에 쥐었다.

“이걸 던진 다음에······.”

손에 쥔 공기를 살짝 던진 다음 잽싸게 바위를 쓸어 다른 공기를 잡아챘다. 같은 방식으로 남은 3개의 공깃돌도 모두 손에 쥐었다.

“우와!”

“재미있겠다!”

파멜라와 테트는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아직 공기놀이의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여기가 가장 중요해!”

공기놀이 꽃이라고 한다면 손에 쥔 공깃돌을 던져 손등으로 받기다. 그 후에 다시 손바닥으로 이동시키는 것으로 1단계가 끝난다.

“잘 봐.”

나는 손에 쥔 공깃돌을 한 곳으로 잘 모은 뒤 손목을 퉁겼다.

공깃돌 5개가 허공에 떠오른다. 힐끗 보이는 세 아이의 시선도 덩달아 공깃돌을 향해 있었다. 그 모습에 미소를 짓기도 잠시였다.

적당한 타이밍에 손등을 내밀었다. 공깃돌이 손등에 닿는 순간 살짝 팔을 내리며 충격을 완화시켰다. 살짝 벌어진 손가락의 틈을 활용해 모든 공깃돌을 안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손바닥으로 되돌리기다.

나는 손가락을 살살 움직여 공깃돌을 한곳으로 모은 뒤 재차 허공으로 띄웠다.

촤악!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5개의 공깃돌을 낚아챘다.

“와아!”

“어떻게 한 거야?”

“······아.”

내 화려한 스킬에 세 아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자, 이게 공기놀이야! 어때? 재미있겠지!”

파멜라가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나, 나, 나, 해볼래!”

“나도!”

성공적이었다. 파멜라와 테트는 서로 먼저 하겠다며 달려들었다.

르네 또한 눈을 반짝이고, 손을 꼼지락거리며 공기놀이에 참가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 그럼 누가 먼저 할지 정하자!”

“어떻게?”

테트가 묻자 파멜라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나나나! 달리기 하자! 달리기!”

“다, 달리기는 싫은데······.”

이런 파멜라의 제안에 테트가 풀 죽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게, 평소 언행에서도 알 수 있듯 파멜라는 행동파다. 타고난 피지컬이 뛰어난 점에다가 성격도 워낙 당돌해서 뭐든 몸으로 해결하기를 좋아한다.

반면에 테트는 지극히 평범했고, 르네도 그다지 체력이 좋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파멜라가 의도했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가장 많이 해왔던 방법임과 동시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걸 알기에 달리기를 제안한 거겠지.

테트야 자기가 질 게 뻔하다는 걸 은연중 알고 있기에 비로소 저런 반응을 보인 거고.

“그건 안 돼.”

내가 딱 잘라 말하자 파멜라가 입술을 삐죽였다.

“왜!”

“여기는 숲이잖아. 뛰면 다칠 수도 있구, 엄마랑 아빠도 걱정해. 파멜라가 다치면 페드릭 아저씨가 슬퍼하자나. 그치?”

내가 굳이 공기놀이를 가져온 건 가볍게 즐길 수 있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도리아 아주머니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는 일정 구역을 벗어나면 안 된다.

근데, 또 아이들이 놀이에 집중하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애초부터 표식 근처를 가지 않는 편이 훨씬 좋으리라.

“우웅······ 아빠가 슬퍼해?”

“응. 그러니까, 여기서는 뛰면 안 돼.”

“으응. 그럼 순서는 어떻게 정할꺼야?”

어떻게 정하냐고 묻거든,

“가위바위보!”

라고 외치겠다.

“그건 또 모야?”

그게 뭐냐고 묻거든, 전 세계 60억 인구의 갈등과 불평, 불만을 해결해줬던 진정한 솔로몬의 게임이라 외치겠다.

물론 속으로만 외칠 뿐,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러니까, 이게 가위고, 이게 바위고, 이게 보자기야.”

나는 세 아이에게 가위바위보를 알려줬다.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간단한 손동작과 짧은 구호가 전부라서 다들 금방 외울 수 있었다.

“자, 안내면 꼬올찌!”

““””가위, 바위, 보!””””

네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었다. 작고 앙증맞은 손이 제각기 가위, 바위, 보를 만들었다.

어디 보자······.

“와, 르네가 이겼네!”

내가 승자의 이름을 연호하자, 르네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많이 낯설은 듯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모여서 논다는 게 즐거운 듯했다.

“다, 다시 해!”

가위바위보에서 진 게 억울했는지 파멜라가 재경기를 요구했지만, 어림도 없지. 어디 감히 신성한 가위바위보에 재경기를 요구한단 말인가!

“가위바위보는 다시 하면 안 돼.”

“왜, 왜!”

왜냐고 물으면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는 게 옳았지만, 파멜라에게 통할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면 아예 반박할 수 없는 근거를 대는 게 최선일 터.

“신님이 그렇게 정했대!”

“신님?”

“응. 그러니까, 가위바위보에 졌다구 막 다시 하자고 하면 신이 이놈! 하신대.”

신에게 혼난다는 말이 유효했던 건지, 파멜라가 찔끔했다.

“아, 알았써어······.”

제아무리 파멜라의 똥고집이 억세다고 한들 자신들이 믿는 신, 달리 말해 절대적인 존재까지 꺾을 자신은 없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면에서는 진짜 순수하단 말이지.

나는 전생에 아이들을 보고 또 돌봐준 경험이 있다. 이따금씩 시골에 오는 친척 동생들과 놀아주기도 많이 놀아줬고.

매번 느끼는 건데, 요즘 아이들은 지나치게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어렸을 때와 비교하자면 정신연령이 크게 높아진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나는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산타클로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그런 면에서 파멜라나 테트, 르네는 말 그대로 새하얀 도화지처럼 순진무구했다. 그랬기에 더 눈길이 가고,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든단 말이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파멜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윽스윽, 약간 곱슬끼가 있는 파멜라의 머리카락은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너, 너어! 내, 내가 누나거드은!?”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화들짝 놀란 파멜라가 내 손을 쳐냈다.

“앗, 미안!”

나는 파멜라의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재빨리 사과했다.

“흐, 흥!”

파멜라의 얼굴이 잘 익은 아프루처럼 붉게 물들었다. 파멜라가 도끼눈을 뜬 채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팩 돌렸다.

“빨리 하기나 해엣!”

“알았어, 알았어.”

가위바위보로 결정된 순서는 르네, 그리고 나, 테트, 파멜라였다.

“자, 그럼 르네부터 해볼까?”

“······응.”

나는 조심스레 손을 내민 르네의 손 위에 공깃돌을 올렸다. 나보다 손이 작은 탓에 공깃돌이 떨어지려고 하자, 르네가 서둘러 손을 오므렸다.

“아까 내가 했던 것처럼, 여기에 살짝 던지면 돼.”

“응.”

적잖이 긴장했는지, 바위를 노려보던 르네가 살짝 공깃돌을 던졌다.

저런!

너무 살살 던진 탓에 공깃돌이 뭉쳐있었다. 공기놀이 비기너인 만큼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힘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손에 쥔 공깃돌을 던진 후, 다른 공깃돌을 주우려다가 그만 다른 공깃돌을 건드렸다.

“아!”

르네도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반사적으로 날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야 그냥 넘어가고 싶었지만, 룰은 룰이다. 르네를 봐준답시고 편파판정을 했다가는 파멜라의 주먹이 날아올 터.

근데, 또 르네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마음이 약해진단 말이지.

어, 아니지.

여긴 엄연히 지구가 아닌 이세계다.

당장 지역에 따라서 룰이 달라지는 게 게임이거니와, 이곳에서 공기놀이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고로 내가 정하는 규칙이 소위 국룰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된 거 내 마음대로 룰을 지정해버리는 것도 괜찮겠는데.

“아, 맞다! 깜빡한 거 있어!”

내가 외치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파멜라와 테트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으응? 깜빡한 거?”

“뭔데?”

“점수야!”

“점수?”

“응. 내가 아까 마지막에 공깃돌 5개를 잡았자나.”

“응.”

“5개를 잡으면 5점이구,4개를 잡으면 4점이야!”

“어······그럼 하나도 못 잡으면?”

“빵점이지!”

“빵점?”

아차,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아, 응. 0점! 점수가 없다는 뜻이야.”

“그렇구나아! 꼴찌, 빵저엄!”

“꼴찌! 빵쩜!”

“꼴찌이······ 빵쩌엄······.”

아까 꼴찌라는 말도 그렇고, 빵점이라는 단어도 그렇고. 어감이 재미있었는지, 세 아이가 몇 번이고 곱씹었다.

안 그래도 옛날이야기를 듣던 르네도 내가 무심코 뱉은 한국어를 중얼거려서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거 자칫 잘못했다가는 유행어처럼 번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뭐, 상관없으려나.

“아무튼, 이거는 내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르네는 다시 하는 걸로 하자! 대신 이건 내가 실수한 거니까, 내가 꼴찌로 할게!”

“좋아!”

“알았어!”

내가 꼴찌를 자처하자 파멜라와 테트는 순순히 납득했다.

단순해서 귀엽다니까.

“자!”

나는 르네에게 공깃돌을 건넸다.

“······고마워.”

작은 목소리로나마 고마움을 표한 르네가 입술을 꾹 닫고는 공깃돌을 던졌다.

또르르륵.

그렇지!

방금 전보다 강하게 던진 덕분에 공깃돌 간의 공간은 충분했다.

시작은 아주 좋은데?

짧게 숨을 들이마신 르네가 가장 떨어져 있는 공깃돌을 집더니 공중으로 던졌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는 달리 르네의 손은 공깃돌 중 정확하게 하나만 골라 집었다. 뒤이어 다음 공깃돌까지 무난하게 잡아채며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오오!

공기놀이에 제법 소질이 있는데?

르네가 3번째 공깃돌을 집으려던 차였다. 손바닥에 얌전히 있어야 할 공깃돌이 툭, 떨어졌다.

“아!”

잘 했는데, 아쉽네.

손이 작은데다가 아귀의 힘도 약해서 제대로 고정을 시키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도 첫 시도에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한 거지.

“잘했어!”

나는 주섬주섬 공깃돌을 건네는 르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르네도 실망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는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자, 다음은 테트!”

“좋아! 나는 5점을 딸 거야!”

포부와 함께 자신만만하게 도전했지만, 테트의 이런 자신감이 과했는지 공깃돌을 저 멀리 던져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장외홈런에 테트가 멍한 표정으로 텅 빈 바위를 쳐다봤다.

“테트 빵쩜!”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파멜라가 놀렸다.

“치이. 누나가 해바!”

“흥, 잘 봐!”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파멜라가 보란 듯 공깃돌을 던졌다. 앞선 두 사람을 지켜본 덕분인지 간격은 괜찮았다.

하지만 파멜라가 간과한 게 있었다.

공기놀이는 체력이나 힘만으로는 고득점을 딸 수 없다는 거지.

파멜라가 첫 번째 공깃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

파멜라의 센스는 좋았지만 거기까지였다. 파멜라의 거침없는 손길은 바위에 깔려 있던 공깃돌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장외홈런에 이은 파울이었다.

“푸하하하! 파멜라 누나 바보!”

“이, 이거 아니야!”

파멜라가 부정했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다.

“아이넬 오뺘 여기······.”

어느 틈엔가 르네가 바닥에 떨어진 공깃돌을 모아왔다. 얼떨결에 볼걸Ball girl 된 르네만 고생하는구만.

“고마워. 자, 그럼 내 차례지?”

씨익 웃어준 나는 곧바로 공깃돌을 던졌고, 무난하게 5점을 획득했다.

더 하자면야 100점 아니, 밤새도록 “오레노 턴!”을 외칠 자신이 있었으나 내게 꽂힌 3쌍의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앗, 놓쳐따!”

나는 은근슬쩍 공깃돌을 놓으며 아쉬운 척 연기했다.

“자, 그럼 내가 8점이니까 1등! 2등은······르네!”

이미 실패해서 점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공깃돌은 주운 건 르네였다.

“또 해!”

파멜라의 말에 픽 웃었다.

어쩐지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즐겁네.

“그럴까?”

나는 채집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과 놀아줬고, 금일 최종 스코어는 이러했다.

1등. 아이넬: 23점

2등. 르네: 11점

3등. 테트: 4점

4등. 파멜라: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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