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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2화 (12/159)

12. 유년기(11) -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선수필승이라고 했던가. 역시나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세라 누나답게 곧바로 내게 달려왔다.

“넬?”

세라 누나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든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톤이었으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안에는 강렬한 열망과 함께 은근한 압박이 들어있다는 것을.

세라 누나가 내 목에 슬그머니 팔을 둘렀다.

여기서 “야, 친한 척 해라, 웃어, 웃어. 돈 있냐, 얼마나 있냐.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한 대다.”라고 대사 몇 줄만 뱉어준다면 더 할 나위 없는 양아치 A로 자리매김 했을 텐데.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아직 내 키가 작은 탓에 세라 누나는 약간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왜여?”

“아니, 뭐. 저 호미라는 거 말이야. 넬이 직접 만들었다면서?”

“네!”

“손재주도 좋네. 그래서, 누나 건 없니?”

“누나 꺼여?”

뭐, 서당개 삼년이면 컨트롤 비트로도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엄마의 저런 팔불출 본색은 조금 의외였지만, 적지 않은 주목을 받으리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세라 누나의 성격이라면 이러지 않는 게 더 이상하기도 했고.

그대로 무릎을 굽혀, 세라 누나의 포박에서 벗어났다.

너무나도 손쉽게 빠져나가자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는 세라 누나에게 씨익 웃어준 나는 곧장 뒤쪽으로 향했다.

“잠깐만여.”

그곳에는 내가 미리 주차시켜 둔 애마가 있었다.

이름하여 아이넬표 지게 타입 원. 이 또한 내가 정성스레 만든 역작이었다. 매번 채집을 갈 때마다, 심부름을 갈 떄면 양손에 바구니를 짊어지는 게 영 불편한 것 같아서 하나 장만했다.

덕분에 두 손이 자유로워졌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이세계표 핸즈프리가 아니겠는가!

쉼 없는 망치질에 지문이 조금 닳긴 했지만, 이렇듯 완성된 물건을 보고 있노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나아가 내게는 지식의 보고인 훈수요정님이 보우하시고, 필요한 도구들이 주어졌다.

앞으로도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다 만들 수 있었으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어디 보자.”

나는 지게에 얹어 놨던 각종 도구들 사이에서 호미만 따로 꺼냈다.

저마다 다른 마수의 뼈로 만들어서 그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사용에는 큰 지장이 없을 뿐더러 그 나름의 매력포인트였다.

하나, 둘, 셋, 넷······ 열다섯 명이구나.

“다 줘도 남네.”

처음이 어렵다는 말처럼, 제작에 한 번 맛이 들리자 나는 아예 몰입하다시피 호미를 만들었다.

점점 더 그 모양새나 마감이 깔끔해지는 게 보이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더라. 옛날에는 DIY나 프라모델을 왜 재미있어 하는지 잘 몰랐는데, 이것저것 만들어 보니 백번 이해가 갔다.

오죽 집중했으면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무려 20개가 넘는 호미가 쌓여있었다.

안 그래도 이걸 어떻게 해냐 하나 고민하던 차.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을 사람들한테도 나눠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챙겨왔다.

“여기여!”

나는 세라 누나한테 호미 하나를 건넸다.

“어? 지, 진짜 주는 거야?”

하기야. 세라 누나가 아무리 푼수라고 한들, 진심으로 호미를 달라고 한 말은 아니었을 터.

장난 삼아 건넨 말에 진짜로 호미를 건네주니 당황했으리라.

“네! 누나 주려고 만들었어여!”

정확히는 만들다 보니, 주는 거지만 아무렴 어떤가.

“지, 진짜? 고마워!”

세라 누나는 감동한 표정을 짓더니 짐짓 경건한 자세로 호미를 받아들었다.

세라 누나의 오버 액션도 알아줘야 한다니까. 사실 호미라는 게 기술이나 방식이 없어서 그렇지, 만드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뭐, 기술이나 방식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원주민에게 최신식 스마트폰을 쥐어준 격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직 놀라긴 이르다. 아직 내 머릿속에는 호미 말고도 만들 게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나는 호미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세라 누나를 뒤로하고 엄마에게로 향했다.

“호호호, 저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넬이 아직 어린 아이니까, 그냥 이것저것 가지고 노는 줄 알았거든요.”

엄마는 아직까지도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엄마를 옷깃을 잡아당겼다.

“엄마, 엄마.”

“어, 응?”

“이거여!”

“아, 그랬지! 세상에, 이것 좀 보세요. 넬이 글쎄, 다른 분들도 드려야 한다고 잔뜩 만들어왔지 뭐예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내 칭찬으로 이어지는 스킬에 감탄하기도 잠시였다.

“어머나, 착하기도 하지. 우리도 주려고 직접 만든 거야?”

“어쩜······.”

“어휴, 아일라도 그렇고 넬도 그렇고 마음씨가 너무 고운 것 같아.”

사람들 또한 칭찬 겸 덕담 한 마디씩 건넸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라면 모를까, 이렇게 대놓고 칭찬을 듣고 있자니 괜스레 콧잔등이 가려워진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만약 고래로 태어났더라면 끝없는 칭찬에 춤을 추다 못해, 지느러미가 탈골될 때까지 어깨를 들썩였으리라.

“어?”

사람들의 칭찬에 멋쩍게 웃던 중이었다. 저 멀리 도리아 아주머니가 보였다. 평소라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펴야 할 그녀는 홀로 떨어진 바위에 앉아있었다. 이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는데,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가 풍겼다.

에이, 마음 약해지네.

나는 슬금슬금 엄마에게서 떨어져 도리아 아주머니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여!”

“······음? 아, 아이넬이구나. 무슨 일이니?”

꾸벅, 배꼽 인사를 건네자 도리아 아주머니가 씁쓸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평소에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긴 했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안색이 나쁜 게 컨디션이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괜찮으세여?!”

“응? 아, 걱정해주는 거니? 고맙구나, 나는 괜찮으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엄마한테 가렴.”

애써 괜찮다며 손짓했지만, 목소리도 축 쳐진 게 영 힘이 없었다.

역시 이대로는 못 가겠다.

“제가 안마해드릴게여!”

“아, 안마?”

내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는지 도리아 아주머니가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내 손이 더 빨랐다.

“마음은 고마운데, 나는 정말 괜찮······.”

“엄청 딱딱해요.”

“그, 그러니?”

“네, 돌 같아요.”

빈말이 아니었다.

어찌나 딱딱했는지, 진짜 그냥 돌덩어리를 주무르는 감각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도리아 아주머니의 평소 스케쥴이라면 근육이 뭉치는 게 당연했다.

그도 그럴게, 촌장님과 함께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한다.

중요한 일이라면 회의를 통해 결정하지만, 그 외에 것들은 전부 촌장의 대리 격인 도리아 아주머니가 맡는다.

일례로 이웃끼리 소소한 말다툼이라도 벌어질라치면 가장 발 빠르게 나서는 게 바로 그녀이기도 했다.

몸은 하나인데, 여기저기 신경 쓰고 맡아야 할 일은 넘치니 본인의 건강을 신경 쓸 겨를이나 있을까. 거기다 도리아 아주머니의 성격상 뭐 하나라도 허투루 처리하지 않는다.

이렇듯 마을의 안녕을 위해 늘 촉각을 곤두세울 뿐 아니라 거기서 오는 긴장과 중압감도 클 터.

근육이 뭉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으리라.

늘 표정이 좋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

“엄마가 그랬는데여, 어깨가 딱딱하면 안 좋다고 했어여! 막, 머리도 아프구, 잠을 자도 계속 졸리대여!”

“그, 그렇지. 잘 아는 구나.”

나를 뿌리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지, 도리아 아주머니는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니, 뿌리치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을라나.

그도 그럴게 나는 고작 5살이다.

세상에 무서울 것도 거칠 것이 없는 나이이자 말썽을 부리는 게 지극히 당연한 시기다. 따라서 내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그냥 거기서 끝내지,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아예 귀여운 애교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많기도 했고.

이는 다소 엄한 이미지가 강한 도리아 아주머니라고 다르지 않았다.

방금 전에는 내 친근한 태도에 살짝 경계하는 듯 했지만, 이내 “참으로 밝은 아이구나.”라고 홀로 중얼거리더니 아예 눈을 감은 채 몸을 맡기고 있었다.

“시원하구나. 어디서 이런 걸 배웠니?”

“헤헤, 엄마가 알려줬어여!”

10중 9은 유튜브가 알려줬지만 말이야. 나는 전생에서 보고, 또 받아봤던 안마에서 늘 강조하는 위치와 혈자리를 집중적으로 풀었다.

“그렇구나. 어어, 거기······.”

도리아 아주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놀라 허겁지겁 삼켰지만, 이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여기여?”

“응? 아, 응. 거기가 참 시원하구나.”

“헤헤.”

그렇게 도리아 아주머니에게 안마를 해주던 중이었다.

도리아 아주머니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듯 운을 뗐다.

“혹시 말이다.”

“네.”

“음······. 혹시 말이다. 혹시······.”

그러나 연신 “혹시.”라는 말만 계속해서 되풀이하더니, 이윽고 내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무슨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니?”

“소리요?”

도리아 아주머니는 자기가 말하고도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설명을 덧붙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라던가······. 그게 아니라면 특이한 꿈을 꾼 적이 있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라······. 뭐, 그런 소리는 엄청 자주 듣는다.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 멀리서 “갸아아아악!”하는 괴상망측한 소리를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땐 심장이 벌렁거렸는데, 카락스라는 녀석이 짝을 찾는 소리라는 걸 알고 난 후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다.

꿈······도 마찬가지다. 전생에 관련된 게 대다수였고, 이따금씩은 엄청나게 거대한 그루버들 사이에 낑겨 호떡이 되는 꿈은 몇 번 꾼 적이 있다. 그 외에는 크게 기억에 남는 꿈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네!”

“혹시 뭔가 보이거나 하진 않니?”

“어······.”

도리아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멈칫했다.

그도 그럴게, 나한테는 뭔가가 보인다.

심지어 내가 환생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무려 5년을 봐왔고, 이제는 아예 한 몸처럼 함께 지낸다.

그렇다.

다름 아닌 반디였다.

반디는 자신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지, 나와 도리아 아주머니의 사이를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슬쩍 도리아 아주머니의 눈을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은 정확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만약 도리아 아주머니에게 반디가 보였다면, 필히 눈동자가 움직였을 터.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그녀의 눈에는 반디가 보이지 않는다.

즉 내 눈에는 반디가 보인다는 걸 알고 있어서 물어본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걸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

찰나 간에 여러 생각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괜한 걸 물어봐서 미안하구나. 그냥 아줌마가 조금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본 거니까, 아이넬은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도리아 아주머니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딱 봐도 궁금한 것 이상으로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지만, 당장은 그걸 물어볼 상황은 아니었다.

애써 의문을 뒤로 미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줌마한테 안마 해줘서 고마워. 확실히 몸이 가벼워진 것 같네. 너무 오래 있으면 엄마 걱정하니까, 얼른 엄마한테 가 있으렴.”

“네! 나중에 또 아프면 말해주세여!”

“그래, 고맙구나.”

도리아 아주머니가 한결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작게 기도문을 읊었다.

그나저나 아직 채집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은 것 같은데.

별안간 상념에 빠진 그때였다.

“하아아압! 이거나 머거라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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