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유년기(9) - #호미와 훈수요정
“아, 이거여? 어······ 땅 파는 도구여!”
“땅을 파는 도구? 그게?”
데커드가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요.”
나는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여러 형태의 호미가 그려져 있었다.
“과연, 그런 거였나.”
데커드 할아버지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림만 보고도 그 사용법을 눈치 챈 모양이다.
“이 날카로운 쪽으로 땅을 파는 거로군. 확실히 힘이 적게 들이고도 땅을 팔 수 있겠어.”
할아버지는 호미의 사용법을 단박에 알아챘다.
엄마가 스승님을 더러 똑똑한 사람이라더니, 그게 빈말은 아니었나 보다.
데커드 할아버지가 그림을 보며 길게 자란 수염을 훑었다.
“그래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냐?”
“음······. 그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나는 펜 대용으로 쓰던 나뭇가지를 들어 쓱쓱, 그림을 그렸다.
“호오.”
내 거침없이 손길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묘한 소리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금세 호미의 머리와 손잡이를 그렸다.
“이걸 이렇게 붙이고 싶어서여!”
“그래서 나무에 구멍을 내고 있었던 거군.”
“넵! 그리고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손잡이야 원통형으로 만들면 그만이라서 크게 어려운 건 없었으나 머리는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래도 땅을 파거나 돌을 걸러내는 용도인 만큼, 재질이나 그 형태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흥,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로군.”
데커드 할아버지가 콧방귀를 끼더니, 큼지막한 바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방관자와 같은 태도였다.
하지만 정작 데커드의 할아버지의 시선은 내 손에서 고정된 채 떨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쯧쯧. 나르켈 나무는 물러서 손잡이로 쓰기엔 적절하지 않거늘. 허어, 우루시오르라니, 보기만 해도 간지럽군. 독에 고생하고 싶어서 환장한 녀석이 아닌 이상에야 저걸 맨손으로 만지진 않겠지.”
내가 손잡이로 쓰고자 모아온 나무를 만지작거리고 있노라면 툭툭, 한 마디씩 던졌다.
내용만 보면 혼잣말 같은데,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린다는 게 함정이었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람서 왜 그리 집중해서 보는 걸까.
그나저나 우루시오르라면 이 나무를 말하는 것 같은데······.
어우, 어쩐지 겉에 노란 진액 같은 게 묻어있더라니 독성이 있는 나무였구나.
안 그래도 찜찜했는데 안 만지고 놔두길 잘했네.
“지지!”
나는 행여나 독이 묻을까 나뭇잎에 감싸서 저 멀리 던져버렸다. 할아버지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 아니었더라면 고생할 뻔했다.
“고맙습니다!”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흥.”
이번에도 데커드 할아버지는 무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래서 네 녀석은 어디서 온 누구더냐?”
“그 전에! 제가 드린 건 다 드신 거 맞져?”
“흥, 그 밍숭맹숭한 거라면 다 먹었다.”
밍숭맹숭하다라.
아무렴, 데커드 할아버지는 딱 봐도 오랫동안 굶은 티가 난다. 섣불리 뭔가를 먹였다가는 위에 부담이 갈 수 있는지라 비교적 소화가 편한 유동식으로 준비했다.
뭐, 말이 유동식이지 실상은 내가 어릴 적 미슐레 아주머니를 통해 배운 이유식을 그대로 본 따 만든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야.
이유식이 다 그러하겠지만, 나도 몇 달간 먹어본 입장으로서 맛이 없다는 건 백번 공감한다.
“근데, 할아버지는 체피를 좋아한다고 하던데여.”
유동식이라도 살짝 향을 가미하는 것 정도는 괜찮거니와, 체피는 소화기관에도 좋고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고 들었다.
엄마가 지나가는 투로, “스승님은 체피를 잘 드셨지.”라고 중얼거리는 것도 똑똑히 들었다. 때마침 엄마가 챙겨준 향신료 중에는 체피도 있어서 살짝 첨가해봤는데, 마음에 안 들었나?
“허? 누가 그런 헛소리를 지껄인 게지?”
어라?
“엄마가여.”
“엄마?”
“네! 엄마는 할아버지가 체피를 좋아한다고 했어여.”
왠지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는데, 혹시 엄마가 잘못 알고 있었나?
“엄마라.”
데커드 할아버지가 눈가를 찌푸리더니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것도 잠시였다. 무언가 알아차렸는지, 데커드가 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아일라······?”
“정답!”
나는 손에 묻은 흙을 탁탁, 털고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여, 아이넬임니다. 엄마는 아일라구여, 아빠는 넬슨임니다.”
“그랬군, 그랬어.”
내 능청스러운 인사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허무하다는 듯 웃었다.
“멋대로 남의 집에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거늘.”
오호. 지금까지 내가 본 엄마는 상냥하고 차분한 이미지였는데, 옛날에는 조금 달랐던 건가?
“어! 어디 가세여?”
“알 거 없다.”
퉁명스레 대답한 데커드 할아버지가 몸을 돌렸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점은 할아버지의 자못 쌀쌀맞은 태도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무뚝뚝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은근슬쩍 밥 먹었냐고 물어보시고, 틈만 나면 나를 데리고 다니며 마을 어르신들께 자랑하셨던.
내가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갔을 때도 늘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내가 전화 한 통 드릴라치면 안 그런 척 기뻐하셨던.
그저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었을 뿐, 그 누구보다 날 아끼셨던 친할아버지와 겹쳐 보였다.
그래서일까.
“괜찮으려나.”
나는 점점 멀어져가는 데커드 할아버지의 등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음.”
대화를 하는 것만 봐서는 멀쩡해보였으나, 아직 몸이 완전하게 회복된 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내 딛는 걸음, 걸음이 무척이나 위태로웠다.
“반디야.”
호롱!
“저기 데커드 할아버지 보이지? 옆에 있다가 무슨 생기면 나한테 좀 알려줄래?”
호롱!
반디가 크게 원을 그리더니, 냉큼 데커드 할아버지에게 따라붙었다.
“이걸로 일단 안심. 그나저나, 이거 머리는 또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데커드 할아버지가 자리를 비우자 삽시간에 적막해졌다.
“뭐, 금방 오시겠지.”
애써 걱정을 털어낸 나는 홀로 호미 제작에 열중했다.
* * *
“아직도 하고 있었나.”
깜짝이야!
어느 틈엔가 데커드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언제 오셨어여?”
“흥, 그게 중요하더냐? 너는 언제 돌아갈 생각이더냐?”
“몰라여!”
태양이 기운 각도를 보아하니 아직 이른 오후다.
어차피 이곳은 마을 안이었고, 나는 툭 하면 바깥을 돌아다니는 탓에 엄마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내 말에 코웃음을 친 데커드 할아버지가 내 앞에 무언가를 던졌다.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에페펫!”
입에 들어온 흙먼지를 뱉으며 손을 휘저었다.
“어? 가방?”
딱 봐도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었다. 생김새는 더플백과 비슷했으며, 내 몸집보다 커다랬다.
“이건 왜여?”
내가 묻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고개를 팩 돌렸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정황상 나한테 준 건 맞는 것 같은데.
이게 뭘까?
나는 굳게 여민 끈을 풀었다.
“어, 이건······.”
안에는 온갖 마수 뼈로 추정되는 것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특이한 건 하나같이 턱과 골반 뼈로 추정되는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그 형태나 생김새가 호미 머리로 쓰기에 적절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방에는 또 다른 가방이 들어있었다.
“우와!”
가방을 연 나는 환호했다.
그도 그럴게, 손대면 베일 듯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하게 돋아난 물건은 더 볼 것도 없는 톱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톱을 꺼냈다.
그 밑에도 각종 도구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나무에 돌을 끼워 놓은 망치는 기본이요. 헤챠드라 불리는 마수의 가시를 뽑아 만든 못도 가득 들어있었다.
헤챠드는 전신을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한 짐승이었다.
실물을 본 적은 없었고, 평생 사냥을 업으로 삼은 아빠조차 쉽사리 사냥하기 힘든 마수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 외에도 없어서 아쉬웠던 도구가 잔뜩 들어있었다. 이 정도라면 호미는 물론, 내 머릿속에 있는 각종 도구들도 뚝딱 만들 수 있겠는데?
“어, 이건 뭐지?”
가방 한쪽에 들어있던 작은 통을 꺼냈다. 겉에는 두꺼운 나뭇잎으로 겹겹이 싸여 있었다.
“오, 냄새 좋다.”
꼼꼼하게 밀봉이 되어있음에도 달달한 냄새가 풍겼다.
내가 뚜껑을 열려고 하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설마하니, 로툰드의 점액을 맨손으로 만질 생각은 아니겠지. 허어, 그 정도로 멍청한 인물은 어디에도 없을 게야. 암, 그렇고말고.”
이번에도 데커드 할아버지의 어딘가 다급하면서도 나지막한 훈수가 귓가를 맴돌았다.
“로툰드?”
달콤한 죽음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죽음이면 죽음이지, 거기에 달콤함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붙자 왠지 소름이 돋는다.
“아!”
생각났다.
언제였던가. 아빠가 사냥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이상하게 생긴 마수 한 마리를 가져온 적이 있다.
불에 녹아내린 것처럼 흉측하게 생겼는데, 듣자하니 로툰드가 소화시키다가 뱉어놓은 걸 들고 왔다나.
“로툰드는 달콤항 향이 나는 점액으로 미끼를 꾀어 삼키는 식물일 텐데. 흐음, 점액은 끈적해서 한 번 붙으면 떨어지지를 않는다지 아마. 허어, 저러다 눈에라도 들어갔다가는 평생 맹인으로 살겠지. 쯧,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야.”
이어지는 데커드 할아버지의 설명에 속으로나마 웃었다.
아니, 저럴 거면 그냥 대놓고 설명해주시지.
그건 그렇고. 로툰드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끈끈이주걱이라는 식물이 떠올랐다. 다른 말로는 파리지옥이라고들 부르지.
더불어 로툰드의 점액이 접착제로 사용된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당시 먹지도 못할 사체를 왜 들고 왔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로툰드의 점액을 채취하려고 그랬던 거구나.
이렇게 또 좋은 정보를 하나 얻어 갑니다.
어디 보자. 보아하니 데커드 할아버지는 계속 훈수를 둘 예정인 것 같은데, 이참에 사용법도 캐볼까.
나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이건 어떻게 쓰는 거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했던가.
나 또한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뱉으면서 로툰드의 점액이 담긴 통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흥, 로툰드의 점액은 불에 닿으면 굳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뭐, 어디의 누군가는 그것도 모르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야.”
금세 데커드 할아버지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아하.
그럼 이걸 바른 다음에 열을 가하면 되는 거구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가 던져 준 가방을 뒤졌다. 숲에 사는 마수란 마수는 모조리 잡았는지. 뭔 놈의 뼈가 꺼내도 꺼내도 끊임없이 나왔다.
재미있는 건 하나같이 호미를 만들기에 적합한 생김새라는 것이다.
나는 마수의 아랫턱으로 추정되는 뼈를 꺼냈다. 양발로 밟아 뼈를 고정시키고 톱질을 시작했다.
쓱싹쓱싹, 그 끝이 칼처럼 예리한 톱은 마수의 뼈도 거침없이 잘라냈다.
고작 톱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편해질 줄이야!
훌쩍.
마치 영장류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듯한 격한 감동에 콧물이 다 나오려고 했다.
이래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한다니까.
“흥흥흥.”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지런히 톱질을 한 결과 얼추 호미의 모양새가 잡혔다. 드문드문 날카롭게 튀어 나온 부분은 숫돌을 이용해 다듬었다.
“이거지!”
마침내 매끈한 호미의 머리를 완성한 나는 만세를 불렀다.
“아, 아직 기뻐하긴 이른가.”
아직 결합이라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 남이었었다.
“여기는 헤챠드의 가시보다는 로툰드의 점액이 낫겠지.”
미음을 쑬 때 피워놓은 장작을 가져왔다.
데커드 할아버지의 시선을 등에 업은 채 로툰드의 점액을 발랐다. 따로 가공을 했는지 로툰드의 점액은 부드럽게 발렸다.
“좋아.”
호미 머리와 손잡이를 체결하고 열을 가했다. 반투명했던 점액이 하얗게 변하더니 금세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완성이다!”
마침내 메이드 바이 아이넬 호미 마크 원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