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9화 (9/159)

9. 유년기(8) - #특이한 꼬마와 괴짜 할아버지

노인——데커드가 눈을 떴다.

정신은 몽롱하고 눈앞이 흐릿했다. 멀거니 천장을 응시하던 데커드가 몸을 일으켰다.

“끄으으······.”

온몸이 찌뿌둥하다. 거기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후후, 쓸데없이 명줄만 질기군.”

데커드가 자조 섞인 혼잣말을 지껄였다.

보아하니 자신은 죽지 않은 모양이다.

한숨을 푹 내쉰 데커드가 고개를 들었다.

“허어?”

그의 시선이 빠르게 방을 훑었다.

어째선지 집이 깨끗했다.

각종 실험을 하면서 더러웠던 바닥은 반질반질했고, 마구잡이로 던져 놨던 물건들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게다가 굳게 닫힌 문은 활짝 열려서 집에 배어있던 냄새도 많이 옅여져 있었다.

“음······.”

난데없는 사태에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 청소는 고사하고 자기 몸도 잘 씻지 않는 인물이 바로 데커드다. 하물며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버린 후로는 아예 방에 틀어박혀 허송세월만 보냈다.

자신의 건강이나 안위 따윈 안중에도 없이, 그저 폐인과도 같은 생활을 이어간 지 십수 년.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쭉 외톨이로 살아가는 게 당연했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이런 데커드의 의문도 잠시였다.

벌컥!

돌연 문이 열리더니 자그마한 인영이 들어왔다.

“어, 깨셨어여?”

인영의 정체는 다름 아닌 소년이었다.

“뭐, 뭐냐?”

당황한 데커드가 중얼거렸다. 이곳은 자신의 집이다. 근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꼬마가 마음대로 쳐들어오니 당혹스러웠다.

이런 데커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이 배꼽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여!”

“너는······뭐냐?”

“저여? 아이넬이요!”

“아이······넬?”

“네!”

데커드의 눈썹이 휘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데커드가 자신을 아이넬이라 밝힌 소년을 찬찬히 살펴봤다.

많이 쳐줘도 7살쯤 되었을까.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았음에도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소년이었다.

잿빛 머키카락은 곱게 묶었고, 그보다 옅은 눈동자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언뜻 보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같았지만, 호수처럼 깊고 맑은 눈동자에는 현기가 담겨있었다.

“아,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죄송함니다.”

아이넬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방에 있던 물건은 저기에 정리해놨거든여? 어······잃어버린 건 없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여!”

데커드는 아직도 사태파악이 되지 않아 눈만 꿈뻑였다. 오죽했으면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별안간 정적이 흘렀다.

“아!”

아이넬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배고프죠!”

“뭐?”

“잠시만 기다리세여!”

데커드가 무어라 대꾸하기 전이었다. 말을 마친 아이넬이 후다닥 뛰어 나가더니 금세 쟁반 하나를 들고왔다. 그 위에는 따끈따근한 스튜가 담겨있었다.

그 냄새가 어찌나 향긋했는지 데커드의 위장이 먼저 반응했다.

‘꿈은 아닌 건가.’

극심한 허기 덕분에 지금 이 상황이 현실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넬이 테이블을 질질 끌고왔다. 엄청난 힘이었다.

“어서 드세여!”

“피, 필요 없······.”

데커드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젓다가 아이넬이 든 쟁반을 쳤다.

아차 싶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데커드의 손과 부딪힌 쟁반이 크게 흔들리더니 가득 담겨 있던 스튜가 출렁거리며 반 이상이 쏟아졌다.

도리어 당황한 쪽은 데커드였다.

“그, 그러게 필요 없다고······.”

데커드가 민망한 속내를 감추려는 듯, 짜증스레 말했다.

일반적인 아이라면 이쯤에서 지레 겁을 먹어 엄마를 찾거나, 우는 게 정상이다. 그나마 강단이 있는 아이라고 한들 풀이 죽은 채 슬쩍 물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데커드의 강한 어조에도 아이넬은 태연했다. 아니,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듯 바닥에 묻은 스튜를 닦아냈다.

“에이, 아까워라.”

자신의 태도에 겁을 먹었다는 느낌은 일절 없었다.

“그러니까······.”

스튜를 닦는 아이넬을 보던 데커드가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

“잠깐만요.”

이번에도 아이넬은 데커드의 말을 콧방귀로도 듣지 않더니 냉큼 밖으로 나갔다.

“끙차!”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아예 솥을 통째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아이넬이 여보란 듯 테이블에 솥을 올렸다.

마치 쳐볼 수 있으면 쳐보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자, 식기 전에 빨리 드세여!”

아이넬이 억지로 수저를 쥐여 줬다. 마수 중에서도 가장 온순하다고 일컫는 카냐바조차 한 수 접어줄 정도의 친화력이었다.

데커드가 아이넬에게 잡힌 손을 빼려고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손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너는 누구냐?”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한 데커드가 물었다.

이에 아이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 다 먹기 전까지는 말 안 해 줄 건데여?”

“허어.”

질문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당찬 포부였다. 데커드가 벙찐 얼굴로 아이넬을 쳐다봤다.

“왁! 하고 소리치면 “으앙!” 하고 울 것 같은 순둥순둥한 인상과는 달리 강단이 있었다. 더불어 먹지 않으면 먹을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완고함이 느껴졌다.

‘허참.’

본래 데커드는 남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사건이 있은 후로는 아예 만물에 관심이 식었고, 살아가는 목적조차 잃어버렸다.

한마디로 죽지 않았기에 살아있다.

이것이 데커드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었다.

‘대체 이 아이는 뭐지?’

그런 데커드조차 아이넬의 존재에 극심한 의문이 생겼다. 그래봐야 아이넬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겠다는 결연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데커드가 자의로 수저를 쥐었다.

완벽한 패배였다.

데커드가 스튜를 내려다봤다.

“이건 뭐냐?”

데커드는 당연히 스튜인 줄 알았다. 근데, 막상 그릇에 담긴 걸 보니 평범한 스튜는 아니었다.

애당초 이걸 스튜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문이었다. 그도 그럴게, 색깔은 희여멀건 했으며, 스튜라면 으레 들어가는 건더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체피라 불리는 열매의 향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이는 데커드가 썩 좋아하지 않는 향신료였다.

데커드가 그릇을 쳐다보고 있자 아이넬이 한 마디 던졌다.

“미음이에여.”

“미음?”

“네.”

이름 또한 몹시도 생소했다.

데커드가 한 숟갈 떴다.

“······.”

역시나 체피 특유의 알싸하면서도 매운 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러나 정작 미음이라 불린 음식에서는 아무런 맛이 나질 않았다. 향이 느껴지는 걸로 봐선 미각이나 후각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맛 없져?”

아이넬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무런 맛도 나질 않는구나. 향도 썩 좋진 않아.”

평소라면 쳐다도 보지 않는 향신료가 잔뜩 들어갔다. 거기다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다. 맛이라도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툭 터놓고 말해서 그냥 잡초 잎을 띄운 물이 훨씬 더 맛있으리라.

이런 데커드의 속내를 몰랐던 아이넬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상하네.”

“뭐가 이상하다는 말이냐?”

“다 드시기 전에는 안 알려줄건데여?”

“버릇없는 녀석이로군.”

“헤헤. 편식하는 건 좋지 않다고 했어여. 할아버지도 꾹 참고 드세여.”

“하, 할아버지?”

데커드가 눈에 띠게 당황했다. 데커드의 나이 어언 120세. 이마저도 추정일 뿐, 실질적으로는 더 오래 살았을 그다.

‘살다 살다 할아버지라는 말을 들어 보는군.’

이제껏 살면서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호칭이었다.

“왜여?”

아이넬이 묻자 데커드가 팩 고개를 돌렸다.

“시끄럽다.”

데커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건 네가 직접 만든 게냐?”

“네! 아, 그리고 저기······. 미음을 만들 때 넣은 향신료요. 집에 있는 걸 썼거든여? 허락도 없이 써서 죄송합니다.”

“허참. 다 먹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죠!”

데커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으나, 꾹 눌러 참았다.

솔직해서 착하다고 칭찬을 해야 할지, 그게 아니라면 낯짝이 두껍다고 핀잔을 줘야 해야 할지. 강산이 바뀌고도 12번은 더 바뀔 만큼 살아온 데커드조차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그럼 그거 다 드시면 부르세요!”

“어딜 가는 거지?”

“마당이요. 저도 나름 바쁜 사람이거든요.”

“허······.”

닭 쫓는 개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데커드는 후다닥 밖으로 나가는 아이넬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특이한 녀석이로군.’

* * *

이래봬도 나는 정보화시대를 살았다. 어지간한 정보는 클릭 한 번에 손에 넣을 수 있는, 이른바 정보의 바다를 뛰놀던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내 지루함을 달래주던 유튜브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을 발동시켜 온갖 잡다구리한 영상들을 재생시키곤 했다.

대표적으로는 야생에서 불 피우기부터 시작해 맨손으로 집 짓기, 맨몸으로 사막에서 생존하기 등등.

볼 땐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데, 막상 실생활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TMI는 물론, 각 분야의 장인들을 찍은 다큐멘터리가 대다수였다.

“설마하니 그게 여기서 쓰일 줄은 몰랐지.”

영양가라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소위 죽은 지식들이라고 치부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갓 잡은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뛰며,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창작 욕구를 마구 자극해댔다.

진짜 인생사 새옹지마라니까.

“에휴······ 그러면 뭐 하나.”

자고로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고 했다. 머릿속에는 진짜 온갖 지식들이 난무하는데, 정작 이걸 써먹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도구의 부재가 가장 컸다.

“그러니까, 도구 하나를 만들려면 그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도구부터 만들 도구를······뭐라냐.”

철물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집 앞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도구. 그것도 욕심이라면 그냥 맥가이버 칼 하나만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뭐, 처음부터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도 재미니까.”

나아가 고작 도구 몇 개 없다고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지. 하물며 내가 만드는 건 엄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소형 농기구였으니, 막 거창한 것도 아니었고.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마따나, 무작정 호미 만들기에 착수한 지 10여 분.

“에라이.”

나는 가볍게 구부리는 것만으로 똑, 부러지는 나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튼튼한 나무로 하자니, 구멍이 안 뚫리고. 그렇다고 덜 단단한 재료를 쓰자니, 내구도가 너무 약하단 말이지.”

하물며 지금 만드는 건 호미의 대가리를 끼울 손잡이에 불과했을 뿐, 본격적인 제작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한창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이었다.

“뭘 그리 열심히 하는 게냐?”

귓가를 파고든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어? 할아버지 나오셨어요?”

아직 몸이 회복되지도 않았을 텐데, 벌써부터 돌아다녀도 되나?

“크흠. 내가 언제부터 네 할아버지가 됐지?”

“그럼 뭐라고 부를까여?”

내 질문에 할아버지가 멈칫 하더니, 혀를 찼다.

“내 이름은 데커드다.”

“데커드 할아버지?”

“끙······마음대로 해라. 아무튼, 지금 뭐 하는 게냐고 물었다만.”

데커드 할아버지의 시선 바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미처 호미가 되지 못한 채 버려진 잔해들이 늘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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