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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8화 (8/159)

8. 유년기(7) - #스승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와 함께 수확물을 한 곳에 모았다. 우리가 먹을 양식인 만큼 하나하나 꼼꼼하게 세척한 다음 종류 별로 분류했다.

모든 작업이 끝난 뒤 산더미처럼 쌓인 작물을 보던 엄마가 멋쩍게 웃었다.

“너무 많은 것 같네.”

동감이다.

확실히 엄마의 말처럼, 우리 세 가족이 먹기에는 지나치게 많았다.

정정한다. 아빠는 사냥꾼이라서 밖에서 먹는 경우가 많다. 달리 말해서 이 많은 걸 엄마랑 나 둘이서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내가 나이에 비해서 많이 먹는 편이라고는 한들 이 많은 양을 먹기에는 부담되는 게 사실이었다.

아쉽네.

지구였더라면 냉장고처럼 음식물을 저장할 장소가 있는지라 별로 문제가 되질 않는다. 나만 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씩 대량으로 주문해서 쌓아뒀으니까.

인스턴트의 경우 보관기간이 년 단위라서 아예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반면에 이곳에는 식재료를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고기는 그늘에 말려서 육포로 만들어 두고, 향이나 맛을 내기 위한 작물은 바짝 말린 뒤 빻아서 그늘에 저장한다. 이렇듯 몇몇 식재료는 두고두고 먹는 게 가능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수분이 많은 작물들은 땅을 파서 묻어 놓거나 물에 담가놓는 게 고작이라서 썩어 문드러지는 일이 잦았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스승님 좀 갖다 드리는 게 좋겠네.”

“스승님이여?”

엄마한테 스승이 있었나?

내 반문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 스승님이라는 건······. 그래, 똑똑한 사람을 말하는 거란다.”

“똑똑한 사람!”

“응. 저번에 넬이 아야했을 때 기억나니?”

아야했을 때라면······한밤중에 넘어졌던 걸 말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화장실이 바깥에 있는지라 잠결에 나가던 중에 발을 헛디뎠다.

비몽사몽간에 허우적거리다가 옆에 있던 바구니를 쳤는데, 하필이면 그게 잡동사니를 담은 상자였다. 그렇게 볼썽사납게 나자빠진 것도 모자라, 잡동사니 더미에 깔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마따나.

느닷없는 소란에 식겁하면서 일어난 엄마는 개구리처럼 납작해진 날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달려왔다.

내 몸이 워낙 튼튼해서 아프긴커녕 작은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지만, 엄마는 못내 걱정됐는지 독특한 향을 풍기는 풀을 가져와 덕지덕지 발라줬다.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러운 일이란 말이지.

“그때, 넬이 아야했던 곳에 발라줬던 건 약이라는 거야. 전부 스승님이 가르쳐준 거란다.”

“아하!”

하기야.

엄마가 채집하는 건 평범한 작물이 아니었다. 주로 허브나 약초를 캤다.

거기다 시간이 날 때면 그 풀들을 모아서 이것저것 만들었다. 생김새나 그 독특한 냄새만 맡아도 약이라는 걸 알긴 했는데,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이 따로 있었구나.

그나저나 스승이라면 꽤 가까운 사이 아닌가. 거기다 같은 마을에 사는 만큼 교류가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마을에서 나랑 인사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안 그래도 요즘에는 통 찾아가질 않았는데······. 건강하게 계실지 걱정이긴 하네.”

엄마가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왠지 엄마의 스승이라고 하니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다. 더불어 엄마에게 다양한 지식을 전수해준 사람이라고 하니, 더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안 그래도 바깥에 나갈 생각이었는데, 이참에 엄마의 스승님을 뵙고 오는 것도 좋겠네.

나는 옛 생각에 잠긴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응? 왜 그러니?”

“엄마 스승님이여! 제가 가져다 드려두 대여?”

“어머, 넬이 직접 가져다주고 싶은 거니?”

“네!”

내가 씩씩하게 답하자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음······ 괜찮을까 모르겠네. 그래, 이참에 넬이 가서 인사하는 쪽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부탁해도 될까?”

“네!”

“그래, 잠깐만.”

엄마가 바구니에 작물을 담았다.

“아, 그리고 혹시 스승님이 뭐라고 해도 너무 무서워하지 마렴.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이야.”

엄마는 무엇이 그리 걱정이었는지, 스승님은 인상이 조금 나쁘다느니, 말투가 조금 거칠다느니, 알고 보면 외로운 사람이라느니, 마을에서 제일가는 괴짜라느니 등등.

투 머치 토커가 빙의라도 한 듯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정보들을 쉼 없이 뱉었다.

알고 보면 따듯한 사람 맞나?

엄마가 해준 얘기만 듣고 있노라면 과연 스승이라고 믿고 따라야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무지막지한 사람이란 말이지.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스승을 믿고 존경한다는 마음도 전해져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스승님의 집은 나가서 쭉 올라가면 돼. 알겠니?”

“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씩씩하게 답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갔다 오렴!”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 * *

부지런히 걸어 마을 가장 외곽에 도착했다.

“방향은 여기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어째선지 엄마가 일러준 장소는 숲이었다.

혹시나 싶어 오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에게 스승님의 집을 물어본 결과 방향은 틀림이 없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펴보던 중이었다.

“아!”

커다란 나무 사이로 자그마한 공간이 보였다. 주변에 자란 풀을 치웠다.

“맞네.”

확실히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은 있었다. 최근에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았는지 무성하게 자란 풀에 가려져 있었다.

조심조심 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찾았다.”

마침내 널따란 공터와 함께 오두막집이 보였다.

“으스스하긴 하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

“계세여?”

대답은 없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이렇다 할 인기척은 없었다.

“자리를 비우셨나.”

이걸 어쩐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직접 보고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부재중인 모양이다.

“음······.”

바구니를 옆에 두고 가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게 좋을지 고민할 무렵이었다.

끼이익!

바람에 밀린 문이 살며시 열렸다.

“윽!”

재빨리 코를 막았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끔찍한 냄새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마치 한여름 뙤약볕에 바짝 달궈진 음식물 쓰레기통에서나 맡음직한 악취에 헛구역질이 올라오려고 했다.

나아가 드문드문 섞여 있는 비릿한 냄새.

더 볼 것도 없이 피냄새였다.

“······.”

조심스레 문틈을 들여다봤다.

아직 대낮임에도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너저분한 테이블이었다.

그 위에는 당최 용도를 알 수 없는 도구들이 즐비했다. 바닥 또한 지저분한 게 최소 몇 년은 청소하지 않음을 방증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마수의 사체로 추정되는 고깃덩이와 뼈 같은 게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마치 공포 영화에 나오는 살인마가 나타날 법한 분위기였다.

괜스레 등공이 서늘해져 뒤쪽을 쳐다봤다. 당연하게도 내 이곳에는 나 혼자였다.

애써 불안을 지르밟았다.

“으음.”

그 외에 뭐가 있나 싶어 더 안쪽을 쳐다보던 중이었다.

대충 쌓아놓은 물건들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때마침 창문을 가린 커튼이 펄럭이며 집안을 비췄다.

“저거······.”

마침내 그것을 확인한 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사람 다리······ 같은데.”

정정한다. 같은 게 아니라 저건 사람 다리가 확실했다. 온갖 쓰레기에 가려져 상태를 확인할 순 없었다.

뜬금없는 전개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도 잠시였다.

“흐으······.”

무슨 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잔잔했다. 즉 바람이 불면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혹시 잘못 들었나, 싶은 한편 숨을 죽였다.

“흐으······.”

아!

자세히 들어 보니 희미하게나마 신음이 섞인 숨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길게 자란 수염이나 얼굴에 난 흉터 등등. 몇몇 눈에 띠는 특징을 보아하니, 엄마가 말한 스승인 듯했다.

연신 코를 찌르는 알싸한 냄새를 애써 무시하고는 쓰러진 노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노인의 상태는 처참했다. 꽤 오랫동안 방치되었는지 머리는 봉두난발이었고, 몸은 말 그대로 해골처럼 말라있었다. 숨결은 몹시도 거칠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저, 저기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내 긴박한 목소리를 들었음일까. 죽은 듯 누워있던 노인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으······.”

노인은 살아있었다.

“무, 무울······.”

쥐어짜내듯 뱉어진 말에 퍼뜩 몸을 일으켰다.

“물! 잠깐만 기다리세여!”

나는 들고 있던 바구니를 던지듯 내려놓고는 서둘러 집안을 살펴봤다.

“씁. 이건 못 마시겠는데.”

구석에 떠다 놓은 게 있었으나 꽤 오랫동안 고여있었는지, 바닥에는 침전물이 쌓여 있었고 냄새도 썩 좋지 않았다. 나는 비교적 깨끗한 나무 그릇을 챙겨 바깥으로 나갔다.

“이런.”

바깥도 마찬가지였다. 마실 물은커녕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아! 반디야, 반디!”

호롱!

내가 부르자 품속에서 반디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 찾을 수 있어?”

호롱!

반디가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긍정이었다.

“부탁해!”

내 다급함을 눈치챘는지, 반디가 곧바로 안내를 시작했다. 나는 빠른 속도로 전방을 향해 나아가는 반디를 따라 내달렸다.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고, 마침내 자그마한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이런 곳에 호수가 있을 줄이야.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재빨리 호수로 다가갔다. 물은 맑다 못해 투명해서 바닥이 비쳐 보인다. 언뜻 식수로 사용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보기에 깨끗하다고 무작정 마셨다가는 자칫 배탈이 날 우려가 있었다.

“분명히 이런 곳에서 자랄 텐데······.”

나는 재빨리 호수 주변을 훑어봤다.

“있다!”

지면과 호수가 닿아 있는 부근에 수생식물이 자라있었다. 곧게 뻗은 줄기를 뽑았다. 얇은 줄기와는 달리 큼지막한 뿌리가 딸려 나왔다.

단단한 뿌리의 껍질을 벗겨내 구멍을 뚫자, 깨끗하게 정수된 물이 쏟아졌다.

“좋아.”

혹여 모자랄까 몇 뿌리 더 챙긴 나는 빠르게 달려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읏차!”

조심스럽게 노인을 부축했다. 곯다 못해서 움푹 파인 뺨을 눌러 입을 벌리고, 기도를 확보했다.

“여기, 물이요!”

뿌리를 쥐어 짜 머금고 있던 물을 흘려보냈다.

꿀꺽꿀꺽, 노인의 앙상한 울대가 움직였다.

뿌리 3개째가 되었을 무렵에서야 갈증이 가셨는지 노인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

“휴우.”

일단 고비를 넘긴 나는 그대로 바닥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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