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유년기(6) - #채집계의 슈퍼루키
슬쩍 주변을 살폈다. 사냥꾼들은 주변을 탐색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세라. 내가 누누이 얘기했지? 함부로 결계 근처는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정말······. 르네도 있는데, 자꾸 그렇게 행동하면 되겠니?”
“죄송해요.”
도리아 아주머니 또한 세라 누나를 혼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덩달아 채집에 열중하던 모두의 이목도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나저나 결계는 또 뭐지?”
다소 뜬금없는 단어에 호기심 센서가 발동했지만, 아쉽게도 결계에 대한 건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에이, 뭐 시간이 지나면 어련히 알 게 되겠지.
호기심을 털어냈다. 모두의 이목이 한곳에 쏠린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허리를 굽혀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목표는 아프루를 지탱하고 있는 꼭지였다.
“흐읍.”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자세를 잡고, 힘껏 팔을 휘둘렀다.
후우웅!
손에서 빠져나간 돌멩이가 내 손을 떠났다. 매서운 기세로 쏘아져 나간 돌멩이가 나뭇잎과 가지들을 스치듯 지난다.
타악!
돌멩이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아프루의 꼭지를 타격했다. 충격에 꼭지가 흔들리더니 끝끝내 꽉 쥐고 있던 아프루를 놓아버렸다.
“웃차!”
가볍게 땅을 뛰어 올라 맥없이 추락하는 열매를 낚아챘다.
“이게 맞아버리네.”
설마하니 던진 나조차도 단번에 맞추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 증거로 내 손에는 또 다른 돌멩이가 들려있었다.
야구선수로 데뷔했으면 메이저리그는 따 놓은 당상이었겠는데?
누워서 떡 먹는 수준으로 아프루를 손에 넣은 나는 르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르네는 풀이 죽은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신 세라 누나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엄마가 엄한 꾸지람을 받는 게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글쎄올시다.
“세라는 하루라도 혼나지 않는 날이 없네요.”
“호호호. 그래도 밝은 친구라서 보기 좋잖아요? 사람들한테 피해를 준 적도 없고.”
“맞아요. 애는 착한 걸요?”
도리아 아주머니가 꾸짖는 장면을 훔쳐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자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야.
“안녕?”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르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르네가 큼지막한 눈을 꿈뻑였다.
“아!”
뒤늦게나마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는지, 허둥지둥 시선을 피했다.
“자, 이거 받아.”
“어······.”
르네가 내 손에 들린 아프루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괜찮으니까, 자.”
우물쭈물하는 르네의 손에 아프루를 쥐여 줬다.
“······고맙습니다.”
작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르네에게 웃어주고는 옆에 털썩 앉았다.
별안간 경치를 감상하던 중이었다.
“으으.”
바로 옆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힐끗 옆을 쳐다본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르네는 내가 준 아프루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입술을 앙 다문 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끙끙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무슨 일인고 하니, 르네는 아프루를 반으로 쪼개고 싶은 모양이다.
르네의 귀여움과는 별개로 아푸르는 꽤나 단단하다.
다 큰 성인이라도 맨손으로 쪼개기가 어려워서 칼부터 찾을 정도니 말 다했지. 아직 근력도 붙지 않은 4살짜리 꼬마아이가 붙잡고 늘어져봐야 애꿎은 손만 아프리라.
어디까지나 평범한 아이에 한해서였지만 말이야.
나는 아프루를 쥔 채 안절부절못하는 르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리 줘 볼래? 내가 해 줄게.”
르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프루를 내밀었다. 르네에게서 받은 아프루를 양손으로 잡고 힘을 주자 힘을 주자 쩍, 소리가 나며 반으로 쪼개졌다.
“자.”
“······이거.”
아프루를 받아든 르네가 한쪽을 내밀었다.
“나 주는 거야?”
르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잘 먹을 게. 아,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
내가 묻자 르네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 침울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호기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프루를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옛날에 자그마한 마을에 소녀가 살고 있었대.”
가볍게 운을 뗀 나는 미리 준비했던 이야기를 풀었다.
“너무 착하고 예뻤던 소녀는 마을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았대. 그러던 어느 날, 엄마를 도와서 심부름을 하던 소녀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어. 아름다운 소녀여, 그대에게 이 아프루를 선물하고 싶구려! 그 사람은 소녀에게 빨갛고 탐스럽게 익은 아프루를 준 거야.”
초롱초롱 빛나는 르네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아빠미소가 지어진다.
“소녀는 너무 기뻐서 아프루를 받았고, 그 자리에서 한 입 깨물어 먹었어. 근데 갑자기······.”
긴장감을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니나 다를까. 르네는 숨마저 죽인 채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소녀가 길게 하품을 하더니 자리에서 쓰러졌어.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로브를 벗었어. 이제 보니 평소에 소녀를 질투하던 사람이었던 거야.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는 소녀가 너무 미워서 잠에 빠트린 거지!”
“아!”
“소녀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고, 소녀를 잠에 빠트린 사람이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어.”
“······나빠.”
르네의 혼잣말에 무심코 웃었다. 그 얌전한 르네의 입에서 나쁘다는 말이 나올 줄이야. 그만큼 내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비가 몹시도 퍼붓던 날이었어. 한 남자가 마을에 도착했어. 그는 오랫동안 여행을 하다가 지쳤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쉬고 싶었어. 근데, 남자가 마을에 도착했을 땐 모두가 잠든 시간이던 거야.”
본래 이 이야기는 백설공주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소녀는 공주였고, 아프루를 준 사람은 계모다.
여행자 또한 본래는 왕자로 등장하는 게 본래 이야기였다.
근데, 이걸 그대로 이야기해주기에는 내용이 너무 복잡하거니와, 백설공주의 마스코트라고도 볼 수 있는 일곱 난장이는 도저히 대체 할 방법이 없더라. 그래서 르네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끔 싹 다 뜯어 고쳐버렸다.
“어쩔 수 없이 마을 구석으로 향한 남자는 그곳에서 아주 자그마한 동굴을 발견했어. 아, 여기라면 비를 피할 순 있겠구나! 남자는 조심조심 동굴 안으로 들어갔어. 앗, 근데 그곳에는 한 소녀가 누워있었던 거야.”
“소녀······.”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에 접어들었다는 걸 알았던 걸까. 르네의 뺨은 붉게 물들고 고개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맞아! 아프루를 먹고 잠든 소녀였어. 남자는 소녀를 내려다 봤어.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 소녀가 이런 동굴의 구석에 잠들어 있는 것인가! 첫눈에 반한 남자는 몇 번이고 소녀를 불렀지만, 도저히 일어나지 않더래. 여행자는 가야 할 길도 잊어버리고는 몇날 며칠 소녀의 곁에 머물렀고, 계속해서 깨우려고 했어. 근데, 소용이 없었어.”
“우웅······.”
르네가 내 말을 곱씹었다.
내 수준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마을 정기회의에 참석해도 하등 문제가 없었지만, 그건 내가 환생자니까 그런 거지.
한창 말을 배우고 있을 시기인 르네에게는 아직 생소한 단어들도 많을 터.
되도록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이를 한꺼번에 소화시키기에는 적잖이 버거운 게 사실이고, 지극히 정상이었다.
중간중간 르네가 이해할 수 있게끔 여유를 주면서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남자는 신께 기도를 올렸어. 부디, 이 소녀를 구해달라고. 그리고 잠시 후, 소녀는 눈을 떴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대.”
길다면 긴 이야기가 끝을 맺었다.
“호오, 이것 봐라? 넬이 또 우리 르네를 홀리고 있었구나?”
돌연 내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라 누나였다. 방금 전 혼쭐이 났음에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역시 세라 누나의 철면피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 언제 오셨어여?”
“방금 왔지. 음? 르네, 그 아프루는 어디서 난 거니?”
“오뺘가······.읏!”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는지 르네가 혀를 깨물었다.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걸로 봐선 많이 아팠나 본데.
“르네도 참, 아이넬 오빠랑 있는 게 그렇게 부끄러웠어? 아, 해봐 엄마가 봐 줄게.”
어째서일까. 딱히 재미있는 장면도 아닌데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슬쩍 고개를 들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눈부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내 몸을 감싸는 화려한 햇살의 따사로움, 향을 머금은 선선한 바람.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
모든 소리와 환경이 한데 모여 이루는 하모니에 귀를 기울였다. 심란할 때면 곧잘 들었던 ASMR처럼 영문 모를 안도감이 내 마음을 간질였다.
좋다.
언제까지고 이런 평화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 *
해가 중천에 뜰 무렵에서야 모든 채집이 끝났다.
숲에 진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도를 마친 뒤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 아까 부탁했던 카무챠 5알.”
“아! 고마워 , 여기 네가 부탁했던 로렐라 잎!”
저마다 챙겨온 바구니를 내려놓고는 오늘 하루의 수확물을 나누거나 교환하는 장이 마련됐다.
그중에서도 단연 북적거리는 곳이 있었다. 바로 내 앞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캔 수확물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쩐지 조금 많이 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바구니를 가득 채운 사람은 소수였고, 그중에서도 내 수확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심지어 반디가 점찍어 위치 준 위치 중 태반을 빼고 캔 결과가 이 정도였다.
“세상에나, 이걸 다 혼자 캤니?”
“얘, 이것 좀 봐! 너 이렇게 큰 카무챠 본 적 있어?”
“이게 더 큰데? 어쩜 이렇게 야무진 것만 골라서 캤다니?”
“아일라는 좋겠네, 우리 애는 맨날 사고만 치는데······.”
“내 말이! 얌전하다 싶으면, 사고를 치고 있더라니까?”
졸지에 채집계의 슈퍼루키 겸 엄마 친구 아들의 포지션을 따낸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쓰담쓰담 폭격을 받아야만 했다.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긴 한데, 이러다가는 내 머리카락이 남아나질 않겠다.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칭찬 릴레이를 멈춰달라는 마음을 담아 엄마를 쳐다봤다. 정작 엄마는 그저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지켜보고 있을 뿐, 말릴 생각은 일절 없는 듯했다.
거기다 옆에 세라 누나는 이쪽을 힐끗거리며 르네에게 무어라 속삭이고 있었는데, 르네는 틈틈이 날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딱 봐도 이상한 걸 알려주고 있는 것 같은데.
부디 세라 누나한테 엉뚱한 걸 배우지 말고, 순수한 모습 그대로 남아줬으면 좋겠단 말이지.
“자, 다들 어서 교환하도록 해!”
내게 구명줄은 던져준 것은 도리아 아주머니였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자 모두가 앞다퉈 내게 교환을 신청했다.
어우, 누가 보면 폭탄 세일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자자, 다들 진정해요!”
드디어 방관자를 벗어난 엄마의 주도 하에 교환을 끝낼 수 있었다.
“끄응. 어째 양이 배로 늘어난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분명히 교환을 한 것 같은데, 어째선지 집으로 돌아갈 땐 보다 많은 수확물을 짊어지고 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