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6화 (6/159)

6. 유년기(5) - #반디의 재발견?

놀란 것은 엄마만이 아니었다. 근처에서 열심히 채집하던 미슐레 아주머니가 냉큼 다가오더니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머, 어머! 세상에, 이거 트러프 아냐? 대체 이걸 어디서 캤니?”

“트러프?”

“그게 여기서 나왔다고?”

“트러프는 피기만 찾을 수 있다던데, 용케 찾았네.”

미슐레 아주머니의 외침이 워낙 컸던 탓에 주변 사람들의 이목까지 집중됐다.

트러프. 풀이하자면 향을 머금은 보석이라는 의미였다.

생김새는 까맣고 못생긴 게 보석은커녕 말라비틀어진 말똥처럼 생겼는데,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름이었다.

“어쩜, 1년에 하나 볼까 말까 한 건데······. 넬은 숲의 축복을 받았구나.”

“네?”

미슐레 아주머니의 말에 깜짝 놀랐다.

내가 알기로 미슐레 아주머니는 경력만 무려 20년에 달한다.

말 그대로 숲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으며 식물에 관해서는 만물박사라 일컫는다. 베테랑 채집인 미슐레 아주머니조차 1년에 하나 볼까 말까라니.

하기야. 내가 이걸 캐는데 족히 60cm는 파고 들어갔다. 제아무리 숙련자라도 풀로 뒤덮인 지면만 보고 위치를 알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리라.

역시 뭐든 겉모습만으로 평가를 내리면 안 된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나는 칭찬해달라는 듯 눈앞을 기웃거리는 반디에게 감사의 눈짓을 보냈다.

그저 장난기 많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반디가 효자였네.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

“근데 트러프면 향이 엄청 강해서 다루기가 힘들다던데. 아, 독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럴 걸? 남편이 그랬는데 트러프 근처에는 항상 죽은 마수들이 있다더라구. 조심해서 만져야 할 텐데.”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어봤을 때 평범한 식재료는 아니었다.

거기다 강한 독성까지 있다니 함부로 먹었다간 대번에 골로 가리라.

반면에 미슐레 아주머니는 독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트러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이토록 트러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했다. 특기이자 취미가 요리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지 불철주야 연구하는 건 물론. 수시로 우리 집에 찾아와 직접 만든 요리를 나눠주곤 했다.

덕분에 다양한 음식들을 씹고 뜯고 맛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뿐만 아니다.

엄마가 요리할 때 넣는 소스나 각종 양념의 대다수도 미슐레 아주머니의 손을 거쳤다. 이래선 우리집 밥상을 책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정작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그래.

제아무리 값어치가 높은 물건이라고 한들, 그걸 활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나 쓸모가 있는 법.

당장 나만 하더라도 말라비틀어진 말똥쯤으로 치부했으니 말 다했지.

하물며 트러프는 어쭙잖은 실력으로 다룰 수 없는 재료임이 확실했다.

아무렴.

그 맛있다는 복어를 다룰 때도 걸맞은 지식과 스킬이 필요하거니와, 멋들어진 스포츠카로 드라이브를 떠나고 싶다면 면허증부터 따는 게 우선이니까.

괜히 희귀한 향신료라는 말에 홀려서 냉큼 주워 먹었다가는 다른 의미의 향냄새를 맡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 엄마.”

“응? 아, 응. 왜 그러니?”

“이거, 미슐레 아주머니 줘두 대여?”

“아휴! 나는 괜찮아. 그건 넬이 힘들게 딴 거잖아. 그러니까······.”

내 말에 당황한 쪽은 미슐레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트러프를 받는 게 미안했던지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엄마가 호호 웃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넬은 미슐레 아주머니한테 주고 싶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을 사람들은 가족이니까 서로 나누고 돕는 게 당연하다구, 엄마가 그랬어요.”

따지고 보면 나한테 직접 이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엄마나 아빠도 마을 사람들과 이것저것 나누기를 좋아했으며, 미안해하는 상대에게 곧잘 이런 말을 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시골 특유의 인심이라고 해야 할까.

부족하면 채워주고, 넘치면 덜어준다.

물질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마음과 정을 앞세운 관계.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원했던 관계였고, 바라 마지않던 환경이었다.

엄마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나를 품에 안았다.

“우리 아들, 착하기도 하지.”

행여나 손에 묻은 흙이 묻을까, 엄마는 조심스레 내 등을 토닥였다.

“그래도 이건 넬이 직접 캔 거잖아. 그러니까, 넬이 직접 결정하렴.”

오케이.

나는 미슐레 아주머니께 트러프를 내밀었다.

“여기여!”

“저, 정말 괜찮은데······.”

얼떨결에 트러프를 받은 미슐레 아주머니가 어쩔 줄 몰라했다.

근데, 이렇게까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도 그럴게······.

호롱!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마따나. 내게 칭찬을 받아 신이 난 반디가 또 다른 트러프를 찾아냈다며 신호를 주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으며, 당장 미슐레 아주머니의 발밑. 그러니까, 살포시 허리만 숙여도 닿을 거리에도 트러프가 있다고 알렸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도리어 내가 민망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미슐레 아주머니야 지천에 트러프가 깔려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만.

그건 그렇고 남은 트러프는 텀을 두고 캐는 게 나을 것 같네.

사람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트러프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재료다.

채집 경력은 고사하고 오늘 처음 숲에 온 내가 왕창 땄다가는 여러모로 이상할 터.

설령 저걸 다 캔다고 한들 제대로 된 손질 방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처치 곤란한 잡동사니······라고 하기엔 고급이구나. 그래, 장식으로 두기에는 못생긴 디퓨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뭐, 당장 안 캔다고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닐 테니 필요하다 싶을 때 가지러 오면 되리라.

“호호. 미슐레 언니도 참. 넬이 괜찮다고 하니까 받아두세요. 정, 신경 쓰이면 나중에 넬이 좋아하는 거 만들어주시면 되죠.”

옆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엄마가 말했다. 냉큼 엄마의 말을 받아 씩씩하게 외쳤다.

“저는 꿀절임이 좋아요!”

저번에 미슐레 아주머니가 간식이라고 줬는데, 달달하니 진짜 맛있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겠니?”

내게 묻는 미슐레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그럼 넬이 좋아하는 꿀절임 많이 만들어야겠네.”

“헤헤, 고맙습니다!”

그 후로도 나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야파나 칼릭처럼 향을 내거나 비교적 맛이 강한 채소들도 소량씩 캤다.

처음이 어려웠지, 점점 노하우가 쌓이면서 보다 빠르고 쉽게 작물을 캘 수 있었다.

하다 보니 재미도 붙었다.

“나이스! 왕건이 발견!”

이제는 아예 엄마가 가져온 바구니 하나를 통째로 들고 다니며 채집에 열을 올렸다.

그러고 보면 과거에 직장상사를 따라 주말농장에 간 적이 있이 생각나네.

근데, 당시에는 작물을 캐는 시간보다 짐을 옮기는 시간이 더 길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지.

그마저도 비료 뿌리랴, 상사와 그 가족들에게 불려다니며 심부름하랴.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끝났다.

심지어 심부름값이랍시고 받은 자루를 짊어진 채 지하철에 올랐는데, 내 몸에 짙게 배인 비료냄새 때문에 다들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짐은 무겁지,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지.

어찌나 서러운지 집으로 가는 내내 코끝이 시큰시큰거리더라.

뭐든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불려가고 나니 주말농장의 주만 들어도 뒷목이 뻣뻣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여간, 이렇게 재미있는 걸 자기들끼리만 하고 말이야.”

이제는 한때의 추억이 되어버린 날을 회상하면서도 내 손은 자연스럽게 땅을 파고 있었다.

“오예.”

이번에도 왕건이었다.

나는 옆에 수북하게 쌓인 작물들을 바구니에 담으려다가 멈칫했다.

“어······너무 많이 캤나.”

분명히 가져올 땐 텅 비어있었는데, 이제는 가득 차다 못해 넘치고 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우리 3인 가족이 2주는 먹고도 남겠는데?

어느새 근처에 온 엄마도 바구니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새 이걸 다 캔 거니?”

“네!”

“정말, 미슐레 언니의 말대로 넬은 숲의 축복을 받은 아이 같네.”

“헤헤.”

“덕분에 엄마가 편해졌네. 조금 더 있으면 집으로 갈 거니까, 그동안 넬은 조금 쉬고 있으렴. 아, 배고프지 않니? 저기 바구니에 먹을 것도 있으니까 그것도 좀 먹고.”

“네!”

나는 엄마에게 바구니를 넘겨주고 미리 펼쳐둔 돗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선선한 그늘에 앉아있으니 꼭 피크닉에 온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엄마 손에 상처가 많네.”

무심코 엄마의 손을 봤는데,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겨나 있었다. 맨손으로 채집하는 탓에 돌이나 나무에 긁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호미 같은 게 있으면 편할 것 같긴 한데.”

그 외에도 채집에 도움이 될 만한 도구들이 떠올랐다.

“음.”

안 그래도 요즘 들어서 DIY에 부쩍 관심이 생기는 차였지.

그래,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다.

이참에 엄마나 아빠한테 도움이 될 만한 걸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필요한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네.”

내 나름 궁리를 하던 중이었다.

“으응······.”

어디선가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

살짝 떨어진 곳이었다. 르네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꼭 쥔 채 나무 위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르네의 시선을 따라가던 중 눈에 띠는 게 있었다.

“아하.”

이제 보니 나무에 달린 열매를 쳐다보고 있었다.

빨갛고 탐스러운 게 눈으로만 봤음에도 침샘이 먼저 반응했다.

“참, 이상하단 말이지.”

이제껏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눈에 띠는 점이 있었다. 다들 일정한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정확히는 나무에 새겨진 표식과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르네가 보고 있는 열매는 그다지 높은 곳에 달려 있지 않았다. 세라 누나라면 기다란 막대기로 딸 수 있을 정도.

“음······.”

그럼에도 세라 누나는 선뜻 열매를 따려고 들지 않았다. 이는 세라 누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나만 하더라도 이곳에 오는 동안 절대로 표식 근처로 가면 안 된다는 말을 수십 차례 들었고.

혹시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나, 싶었으나 그건 또 아니었다.

바람이 불라치면 나뭇잎들이 넘어오는 게 뻔히 보였고,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으니까.

르네의 시선이 못내 안타까웠던 걸까.

세라 누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몰래 따면 괜찮으려나?”

오호라. 몰래 따는 게 가능하단 말이지. 그말인 즉 자의로 넘어가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물론 넘어간 후에 닥칠 후폭풍을 견딜 수 있다면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세라 누나의 갈등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라! 쓸데없는 곳에 눈독 들이지 말고 얼른 이쪽으로 오지 못해!”

연신 주변을 살피던 도리아 아주머니가 호되게 꾸짖었다.

“아, 알았어요! 르네, 가자.”

이에 세라 누나가 찔끔하더니 부랴부랴 일행에 합류했다.

나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앗, 야파다!”

괜스레 채집을 하는 척 혼잣말을 뱉으며 슬금슬금 이동했다.

내가 향한 곳은 방금 전 르네가 서 있던 곳이었다.

“어디 보자.”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저 구역을 넘어가면 안 되는 건 알겠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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