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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3화 (3/159)

3. 유년기(2) - #적응

환생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내 나름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 크고 작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끙차!”

먼저 내 몸을 컨트롤하는 게 보다 수월해졌다.

몸을 뒤집거나 자력으로 앉는 건 기본이요. 아슬아슬하게나마 걷는 것까지도 가능했다. 첫걸음마 시기가 1년 전후라는 점을 감안하자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나야 원래부터 성인이었거니와, 하루라도 빨리 돌아다니고 싶다는 열망이 이뤄낸 쾌거였다.

그렇다고 마냥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홀로 걸음마 연습하는 걸 엄마가 본 적이 있는데, 들고 있던 바구니를 든 채 털썩 주저앉았다.

하기야.

이제 6개월 된 아이가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그 누구라도 놀라 자빠지겠지.

아마 지구였더라면 마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되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으리라.

그렇게 인생 2회차라 꼬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텔레비전에 출연.

유명세를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되고, 승승장구.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 썸 좀 타다가 결혼에 골인 후 화목한 가정을 꾸림.

해피엔딩.

“꺼억.”

아, 웹소설 한 편 다 봤네.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긴 할 텐데,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는 어찌할 줄을 모르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더라. 가뜩이나 몸도 약해 보이는데, 놀라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째.

아차 싶었던 나는 그대로 자빠지는 시늉을 했다.

근데, 무게 중심을 염두에 두지 못한 나머지 들입다 이마를 찧었다.

어찌나 아프던지!

눈물이 핑 돌고 입에서는 악 소리가 절로 나더라.

불행 중 다행으로 피부가 찢어지진 않았지만, 한동안 뽈록 튀어나온 혹을 달고 살아야만 했다.

이런 내 연기 아닌 연기가 잘 먹혀든 덕분에 어물쩍 넘어갈 수 있었다.

뭐, 뽈뽈뽈 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집 안을 돌아다닐 수 있어서 불편한 점도 없었고.

애당초 집구조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단층이었으며 대략적으로 구획을 나눠놨을 뿐. 현대처럼 방이라는 개념은 없는 듯했다.

혼자 살기에는 조금 넓은 원룸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웠다.

독특한 점은 부엌이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말이 부엌이지. 실상은 돌을 쌓아서 만든 화로가 전부였다.

단출하기는 살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실로 쓰이는 장소에는 큼지막한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었고, 밑동을 자른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 외에는 옷을 걸 수 있는 행거와 잡동사니를 모아둔 상자가 쌓여있었다.

가구의 대다수는 목재였고, 식기나 몇몇 도구들은 짐승의 뼈로 만들어져 있었다.

전문가가 만든 건 아니었는지 만듦새는 조잡했다. 그마저도 군데군데 고치고 덧댄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었다.

공부를 등한시한 탓에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얼추 중세와 고대 사이쯤이 아닐까 싶었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했다.

지구에서도 부유층과 빈곤층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비춰지는 것처럼, 이 마을이 가난하리라는 가능성도 부정할 순 없었으니까.

두 번째 성과는 언어였다.

“우와, 얘가 넬이에요? 너무 귀엽다.”

10대 후반쯤 되는 여자가 신기하다는 듯 날 쳐다봤다.

“안녕? 나는 세라야. 세라. 세라 누나라고 해볼래? 세, 라, 누, 나!”

누나라.

이제 막 6개월 된 아이한테 뭘 바라는 걸까.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자 후덕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핀잔을 줬다.

이름이 미슐레였던가. 엄마의 부탁을 받아 이유식 쑤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너도 참. 아직 엄마랑 아빠도 못 할 텐데, 잘도 누나라고 부르겠다.”

미슐레 아주머니의 말에 백번 동의하는 바이지만······그건 일반적인 아이에 한해서지. 까짓 누나라고 부르는 건 일도 아니다.

아니, 발음이 조금 어눌할지언정 일상적인 대화까지 나눌 자신도 있었다.

모르는 단어도 꽤 많았지만, 그 정도는 눈치로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라 이해하는데 별 문제는 되진 않았고.

고작 6개월에 언어 하나를 배운다라.

이따금씩은 내가 이렇게 똑똑했나 싶을 정도로 습득력이 빠르단 말이지.

단어를 흡수하는 걸 넘어 이해력과 기억력도 대폭 상승했다.

재미 삼아서 몇 가지 테스트를 해봤는데, 전생. 그러니까 내가 과거에 겪었던 일이나 상황. 심지어 우연찮게 본 영상이나 책의 구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더라.

뇌에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장착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특정 주제에 집중할라치면 무슨 마인드맵처럼 그와 관련된 기억들이 스르륵 떠오른다.

단순히 기분 탓으로 치부하기에는 소름이 돋을 만치 머리가 비상해진 감각이다.

“그런가? 헤헤. 그나저나, 진짜 귀엽게 생겼네요. 아, 그나저나 넬의 몸은 괜찮아요?”

세라 누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듣자 하니 내가 태어났을 때 숨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한 번 맞을 생일빵을 두 대나 맞아버렸지.

지금의 나야 지나칠 정도로 건강했지만, 어디 부모 마음이 나랑 같으랴. 엄마는 근심을 떨칠 수 없었는지 수시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하물며 날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몸이 성치 않은데도 밤잠을 설쳐가며 옆에 붙어 있곤 했다.

게다가 나는 조용한 편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 홀로 사색에 잠기거나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자고로 아기는 울어야 아기라고 했던가.

너무 얌전하게 있으니 이게 또 걱정을 끼치는 요인이 되더라.

뒤늦게나마 이를 눈치챈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울어젖히거나, 괜히 칭얼거리는 등. 내 나름 아기에 걸맞은 액션을 취했고, 적게나마 걱정이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응. 지금은 건강해.”

“다행이에요 정말.”

“걱정해줘서 고마워. 아, 그러고 보니 요즘은 어때? 소식은 있고?”

“네? 그, 노력은 하고 있는데······아직은 소식이 없네요. 아참 내 정신 좀 봐! 방금 이유식 얘기하고 있었죠! 제가 도울 일은 없어요?”

세라 누나는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자 얼굴을 붉히더니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미슐레 아주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하던 설명을 마저 이어갔다.

“세라도 참. 아무튼, 하던 얘기 마저 할 게. 아이들이 먹기에 카무챠나 콘포가 좋을 거야. 그리고 칼릭이나 후츠 같은 향신료는 독이 될 수 있으니까, 넣지 않는 게 좋고.”

“카무챠랑 콘포······강한 향신료는 금물.”

엄마는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이라도 된 듯 미슐레 아주머니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아, 이유식 만들기에는 치키의 알이 제격인데, 넬슨 씨는 언제쯤 오셔?”

“남편이요? 어젯밤에 나갔으니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언급되기가 무섭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왔어!”

“아, 넬슨 씨 왔나 봐요. 넬, 아빠 보러 나갈까?”

“우!(갑시다!)”

엄마가 날 안아 들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후아!”

문을 나서자 조금은 갑갑했던 숨이 탁 트인다.

누구는 공기를 더러 맛있다고들 표현하는데, 이곳이 딱 그랬다.

진하게 우려낸 허브티를 입 안 가득 머금은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을은 구릉지대에 있었다. 주변에는 크고 작은 산으로 빽빽했고, 조금 더 먼 곳에는 광활한 산맥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물 대신 초목으로 덮여있다 뿐이지, 백두산 천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지형이었다.

내 머리가 좋아진 것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내가 농담 삼아 건넸던 요청이 그대로 이뤄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서 와요!”

들숨과 날숨에 취해있던 나는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마당에는 갈색빛이 도는 머리칼을 대충 묶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현생의 아빠인 넬슨이었다.

아빠는 하루의 반절은 바깥에 나가 있었거니와, 심하면 며칠을 돌아오지 않았다.

대관절. 떡두꺼비 같은 아들과 여우 같은 엄마를 두고 어딜 그리 쏘다니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아빠는 사냥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오늘도 열심히 숲을 돌아다닌 탓인지 아빠의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하루 종일 씻지 않은 얼굴에는 시커먼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몇 겹의 가죽을 덧대어 만든 갑옷 또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아일······.”

냉큼 엄마에게 다가가던 아빠가 멈칫했다. 뒤쪽에서 흐뭇하게 웃는 미슐레 아주머니와 세라 누나를 발견한 것이다.

아빠가 헛기침을 하더니 그대로 팔을 뻗어 기지개 켜는 시늉을 했다.

“어, 음. 미슐레 씨 오셨군요. 세라도 오랜만이네.”

“넬 이유식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아, 그랬어? 매번 신세를 지네요. 고맙습니다.”

“호호, 뭘요.”

“에이, 계속하셔도 되는데.”

“아, 이럴 게 아니라!”

아빠가 등에 짊어진 자루를 내려놓더니 밤새 잡아 온 사냥감을 꺼냈다. 아빠의 의도가 통했는지, 미슐레 아주머니가 눈을 빛냈다.

“어머, 라빗트네요?”

라빗트는 긴 귀와 복슬복슬한 털이 특징인 짐승이었다.

보드라운 털로 덮인 가죽은 옷의 재료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육질은 부드러운 게 특징이라나.

나야 아직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더라.

“예, 운 좋게 몇 마리 잡았습니다. 괜찮으시면 한 마리 가져가세요.”

“어머, 고마워라.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얼렁뚱땅 시선을 돌린 아빠가 이번에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핫! 아들, 잘 있었어?”

후욱, 밀려드는 알싸한 냄새에 저도 모르게 코를 부여잡았다. 아빠가 사냥을 할 때면 늘 품고 다니는 향주머니가 원인이었다.

보통 향주머니라고 하면 꽃이나 허브 등을 넣기 마련이지만, 아빠가 들고 다니는 건 달랐다. 아무래도 사냥감의 이목을 속이거나 반대로 유인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사용하는 게 냄새였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아빠가 들고 다니는 향주머니에는 짐승의 변 내지 썩은 고기 같은 게 들어있었다. 하물며 예민한 사냥감을 노리는 날에는 악취로 찌든 오물을 덕지덕지 칠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 다 했지.

“아차!”

내 반응에 아빠가 허겁지겁 물러났다.

“이럴 게 아니라, 배고프죠? 얼른 씻고 와요.”

“응? 아, 그래야지. 씻는 김에 손질도 하고 올 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아빠가 자루를 들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족.

내게 있어서 가족이란 참으로 가슴 시리게 만드는 단어였다.

전생의 나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다.

그때 내 나이 열 살이었다.

졸지에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의 그 참담한 심정은 아직까지도 가시로 남아 내 심장을 찌르곤 했다.

눈을 뜨면 학교를 가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반겨주는 이 하나 없다.

텅 빈 집안. 창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우웅,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고. 홀로 밥을 챙겨 먹고 잠이 들면, 다시 아침이 된다.

날짜가 바뀌고 계절은 변해가는데, 나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훗날 시골에 계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날 거둬 뒷바라지를 해주셨고, 이런 날 가엾게 여긴 친인척들은 날 챙겨줬다.

무척이나 감사한 사람들이었다.

정작 나는, 내 속은 텅 비어 있는 감각이었다.

머리가 크고 나서는 빛바랜 기억으로 치부라고 넘어갈 수 있지만,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트라우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유난히도 빛나 보이곤 했다. 나는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빛이기에 비로소 원하고 또 외면했다.

“우리 아가, 오늘을 아빠랑 같이 잘 수 있겠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엄마의 깊고 맑은 눈동자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무엇보다.

그 속에 내 모습이 비쳐 보인다.

“헤헤.”

그래.

내게는 가족이 있다.

나는 결심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

보람차게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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