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2화 (2/159)

2. 유년기 - #여긴 어디?

결과적으로 나는 환생했다. 어째서인지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게 노인의 실수인지 의도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렴 어떤가.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을 땐 환호성이 터져 나오더라.

내 탄생 과정을 함께하던 사람들이 쑥덕거렸지만,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근데, 이런 격한 감동도 잠시였다. 한편으로는 불안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갑자기 노인이 나타나서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이제라도 기억을 지우겠네, 허허허.” 하면서 뉴럴라이저를 들이밀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는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바람에 문이 덜컹거리거나, 바닥이 삐걱이는 소음에도 뒷목이 뻣뻣해지더라.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 아님에도 매일 쫓기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고들 하는 거겠지.

“에효오.(좌불안석도 하루 이틀이지.)”

당장 내 기억을 지우겠다고 나선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저항하랴.

어줍짢게 따지고 들다가 지옥이나 가지 않으면 다행이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도리어 마음이 편해지더라. 이제는 그냥 될 대로 되라지, 라는 마인드로 바뀌었다.

하여간 나란 놈도 양반은 못 된다니까.

“후아암.”

체감상 한 달쯤 흐른 것 같다. 그동안 내가 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먹는다.

잔다.

싼다.

이게 전부다.

신생아의 몸이라는 게 원래부터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당최 컨트롤이 되질 않는다.

연약한 목으로는 머리를 지탱하는 것도 벅찼고, 짧고 오동통한 다리는 오징어처럼 꾸물거리는 고작이었다.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내면 몸을 뒤집는 것까진 할 수 있긴 한데······행여나 힘을 잘못 줬다가는 결코 열려서는 안 될 문이 열리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우그.(답답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마따나. 나는 매일을 숨 가쁘게 살아왔다.

속전속결. 번갯불에 콩 볶아 먹기가 특기인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근성은 내 영혼에 뿌리를 내린 지 오래.

시차에도 적응이 필요하듯. 수십 년에 걸쳐 자리 잡은 생활리듬이 단기간에 바뀔 리는 만무했다.

마음은 저만치 가서 날고 있는데, 정작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좀이 쑤시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휴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가 뭘 하든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언젠가는 두 다리로 뛰어다니는 날이 올 터.

그때까지는 유유자적 신생아 라이프를 즐기면 될 터.

애써 좋게 생각해보지만 역시나 심심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지루함을 달래고자 매직아이를 하며 놀던 중이었다.

“어.”

흐릿한 시야 너머로 녹색 빛이 반짝였다.

부랴부랴 눈을 깜빡여 빗나간 초점을 바로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천장 모서리에서 자그마한 발광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 왔구나!

저 발광체는 최근 들어 날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딧불이가 들어왔겠거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아니었다. 꼭 민들레 꽃씨처럼 생긴 게······벌레가 맞는지조차도 의문이었다.

거기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니 말 그대로 미확인 비행 물체였다.

유유자적 천장을 선회하던 발광체가 하강했다.

목표는 다름 아닌 나였다.

“워이!”

겁도 없이 다가오는 발광체에게 손을 휘저었다. 짤막한 팔이 허공을 때렸다. 녀석이 뿜어내는 빛이 한층 강해지더니 살짝 물러났다.

어지간한 벌레였더라면 이쯤에서 꽁무니를 빼는 게 정상이거늘. 녀석은 생선좌판을 앞에 둔 고양이처럼 계속해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쭈!”

아직 힘도 뭣도 없는 아기라는 걸 알기라도 하는 걸까.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던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쥐똥만 한 주제에 날 무시한다 이거지.

나는 크게 숨을 들미아셨다. 안 그래도 포동포동한 배가 남산처럼 뽈록해졌다.

장전 완료.

“푸우우우!”

볼이 미어터져라 머금었던 바람을 힘차게 뿜어냈다. 바람과 뒤섞인 침이 후두두두, 발광체를 향해 쏘아졌다.

녀석이 잽싸게 몸을 내뺐지만 사정거리를 벗어나기엔 한발 늦었다. 결국 녀석은 내 침에 범벅이 된 채 비틀거리며 훌쩍 천장으로 피신했다.

부리나케 도망가는 저 꼴 좀 보라지. 그러게 누가 까불래?

“후후후.”

나는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빠져가나는 패잔병에게 비웃음을 날려줬다.

“······.”

내가 너무 심했나?

딱히 위험해 보이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에이, 다시 오겠지.

다시금 찾아온 지루함에 몸을 베베 꼬고 있자니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넬, ## 일어났니?”

2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온순한 인상의 여성이 날 내려다봤다. 그녀가 현생의 엄마인 아일라였다. 내 추측이 맞다면 아빠의 이름은 넬슨이었다.

내 이름은 아이넬이었는데, 딱 봐도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우우!”

나는 양팔을 버둥거렸다.

산책 가자고 조르는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혼자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엄마의 도움을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과격한 시그널에 엄마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 싶구나? 이리 오렴.”

역시 바디랭귀지는 만국 공통이라니까.

조금 어색한 자세로 안긴 나는 엄마를 올려다 봤다.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엄마의 머리카락은 은색이었다. 눈동자 또한 머리카락보다 살짝 옅은 은색은 띠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은색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도심 한복판을 돌아다니면 특이한 색으로 염색한 사람들을 곧잘 볼 수 있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고.

그게 내 착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홀로 뒹굴거리다가 본 내 머리카락의 색도 비슷한 색감이었던 것이다.

즉 엄마의 머리카락은 본래부터 은색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외모에서도 드러나는 특징도 특징이지만, 언어 또한 생소하긴 마찬가지였다.

당연하게도 한국어는 아니다. 영어도 아니다. 중국어도, 러시아어도 아니다.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언어였다.

어쩌면······.

어쩌면 이곳은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닌, 전혀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렴.

나는 이미 비현실적인 일을 겪었다. 이제와 상식이냐 비상식이냐를 따질 입장은 아니었다.

“우웅.(다른 세계라.)”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막 호들갑을 떨 정도로 놀랍진 않았다. 도리어 걱정보다는 설레임이 더 컸다.

그도 그럴게 취미는 웹소설 읽기였거니와, 늘 판타지를 동경했으니까. 어른이 돼서도 차마 남에게는 말 못 할 낯뜨거운 망상을 즐기곤 했다.

근데, 그게 현실이 되어버릴 줄이야.

“후후후.”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넬?”

내가 사악한 악당처럼 웃자 엄마가 당황했으나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주체할 순 없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우리 넬, ### 좋아요?”

“웅?”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엄마가 내 볼에 입을 맞췄다.

“## 이렇게 예쁠까?”

“우······.”

괜스레 부끄러워진 나는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비록 몸은 아기지만, 내 정신은 어엿한 성인인지라 찐한 애정표현을 받을 때면 낯이 뜨거워지곤 했다.

싫은 건 아니다. 그저 이런 경험이 드물었던 내게는 여러모로 낯설게 다가왔다.

토닥토닥.

엄마가 내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대로 엄마의 어깨에 턱을 기댔다. 은은한 꽃향기에 술렁이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 ## ## ##.”

잔잔하게 들려오는 자장가는 화룡점정이었다.

항복.

수마를 이기지 못한 나는 백기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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