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92화 (292/293)

292화

-결착 (8)

* * *

“내가 간다.”

그렇게 말한 리의 전신이 사라진다.

한순간에 적의 뒤편에서 나타난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 …이, 날파리 같은 놈들이! ]

구체 주변으로 막대한 기파가 터지듯 퍼졌다.

그것에 휘말린 이들이 휘청거리며 뒷걸음질 치거나 나뒹굴었다.

막은 사람들은 피를 주룩 흘리면서도 이를 앙다물고 자세를 잡았다.

“플레임 버스터.”

“…번개 폭풍!”

“허리케인!”

“토네이도!”

뒤에서 준비하고 있던 온갖 계열의 마법이 작렬한다.

화염과 번개, 바람으로 이루어진 폭풍은 지식의 신의 기파를 뚫고 그 육체를 가득 달궜다.

“속성 제외, 모든 공격을 퍼부어!”

그 외침에 원거리 딜러들이 공격을 가했다.

S급의 공격은 하늘까지 치솟을 정도로 크고 높게 생긴 폭풍을 뚫고 지식의 신에게 닿았다.

어둠의 마력을 이끌어내려던 지식의 신이었지만.

[ 왜 힘이…! ]

점차 옅어지는 능력에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급히 마력을 이용하여 여러 스킬을 전개했지만.

이곳에 모인 모두는 전투라면 이골이 난 S급들이었고.

그들을 이끄는 이들은 이계에서부터 전투와 전쟁에 익숙했던 정우의 친우들이었기에.

지식의 신의 공격과 방어를 천천히 무력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식의 신이라고 무력한 것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능력을 사용하고, 방어를 하면서도 한 가지 스킬을 완성시켰으니.

[ 일어나라! ]

바로 시체 소환이었다.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최강의 패.

[ 아무르타트여! ]

드드득!

검은 지면을 밀어내며 등장하는 거대한 동체에, 모두는 긴장했다.

“지금 공격해!”

벼락같은 외침에 다급히 능력을 사용했지만.

그 강대했던 친우들조차 모두 모여도 상대하지 못했던 존재가 바로 아무르타트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많은 공격에 적중당했음에도 본 드래곤으로 부활하는 아무르타트는 비틀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피해가 없어 보였다.

짧은 양팔로 지면을 밀어내며 앙상한 날개를 뻗어내는 드래곤의 모습과는 별개로.

여유를 찾은 지식의 신은 모든 스킬을 연이어 사용하며 모두를 압박했다.

“…후우.”

긴 숨을 내쉰 유서린의 눈이 번쩍였다.

“생츄어리 필드(Sanctuary Field)!”

대마법사인 그녀는 성기사의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아니, 소멸에 가깝게 사용했다.

성기사로서는 사용할 수 없는 권능을, 대마법사로서의 지식으로 풀어냈다.

지면을 갉아먹던 어둠이 밀려나고.

쏴아-

성스러운 기운이 일행을 가득 감쌌다.

상처가 치유되고 소모된 마력이 회복되는, 신의 이적과 같은 힘.

유서린의 마법이 끝나자마자 곧장 풍기는 건, 성스러움을 부정하는 어둠이었다.

어둠의 마력과는 다른.

마법적인 어둠.

흑마법.

“디멘션 소드(Dimension sword).”

지옥의 문을 통해 여러 망자를 불러내는 흑마법의 궁극적인 능력이 펼쳐졌다.

차원을 가르는 검은 아니지만.

적어도 생명에 한해서는 차원을 가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공격.

사라진 마왕의 신형이 아무르타트의 앞에서 나타났다.

콰득!

최후의 용이자 최강의 생물인 본 드래곤의 뼈는 디멘션 소드를 견뎌내는 듯했지만.

크롸-아!

아무르타트는 비명을 내질렀다.

소환이 풀리고 있었다.

역소환이 아니었다.

소멸이었다.

완성되지 않은 소환진을 가르고, 소환진을 넘어오지 못한 육체와 넘어온 육체를 단절시켜 버리는 일격엔 아무르타트도 버티지 못했다.

생츄어리 필드에 의해 회복된 플레이어들이 다시금 지식의 신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르타트는 무방비의 상태로 디멘션 소드를 감당해야 했고.

결국 소멸 당했다.

파스스 부서지는 뼈의 잔해가 먼지처럼 흩어지자 지식의 신이 움찔거렸다.

최강의 패.

그것이 너무도 허무하게 무력화되었기 때문이었다.

[ 내가…. ]

지식의 신은 자신의 모든 지식을 쏟아부었음에도 승기를 잡지 못하자 충격을 받았다.

고작해야 인간.

그것도 수백 년이 아닌, 수십 년에 불과한 세월을 살고.

그것도 10년 이하의 시간 동안에만 마력이란 것을 접한 버러지들을 압도할 만한 지식이 없다는 게 그를 충격으로 이끌었다.

[ 이런… 수모를…. ]

지식의 신.

하지만 쌓아두기만 한 지식을 꺼내는 건, 다른 문제였다.

진리를 탐구하고, 이계의 그 막강한 힘을 손에 넣으려던 자치고는 너무나 무력한 상황이었다.

“되감는 시간 도중에 널 죽이면 어떻게 될까?”

유서린의 뒤편에서 메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구체를 손에 담은 채로.

어둠의 마력.

부정의 힘이, 생츄어리 필드를 가로지른다.

[ 감히 너희 따위가…! ]

플레이어들이 부정의 힘에 녹아 사라졌지만.

그건 지식의 신도 마찬가지였다.

강대한 마력.

무한에 가까운 스킬.

그 모든 것들이 한낱 먼지처럼 흩어졌다.

경악하는 지식의 신을, 검은 구체가 휩쓸었다.

“…끝났어.”

유서린이 눈가를 구기며 말했다.

체력이나 마력이나, 엄청나게 소모되어 탈력감이 몸을 휩쓸었다.

그런 와중에도 기이한 감각이 몸을 자극하고 있었다.

시간의 괴리감.

흐른 시간이 되돌아가는 이 기이한 감각은, 그녀를 비롯한 몇몇의 플레이어만이 느낀 특별한 감각이었다.

“메아리?”

유서린이 고개를 돌려 메아리를 찾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파괴되어 버린 구체가 치지직거리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전원이 꼽힌 컴퓨터처럼 뚝하니 꺼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이들이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끝, 내야지.”

마왕이 정우를 떠올리고선 마지막 말을 내뱉었고.

이윽고 모든 것들이 검게 물들어 어둠으로 화했다.

* * *

폭주한 힘은 모든 걸 삼켰다.

생의 기운은 사라지고 남은 건 죽음의 기운뿐.

자신의 것이었지만 타인의 것이 된 힘은, 본래의 주인조차 부정했다.

파스스!

부서지는 땅을 수복시키는 건 정우의 몫이었다.

몸속의 고리가 요동을 치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강림한 세계수로 붙잡은 대지에, 정우는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약간의 영역.

세계 전역을 놓고 보면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의 영역이었지만, 정우에겐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었다.

자신만의 영역이 완성이 되자마자 그가 행한 건 하나였다.

츠스스.

통로.

차원을 넘어 통로를 연결한다.

그곳은 다름이 아닌 지구였다.

지구의 시간은 되돌리고.

이곳의 시간은 유지하고.

뇌가 터져 나갈 정도의 집중력으로 완성해 나가는 마법을, 왕은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상당한 존재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부정의 능력은 모든 것을 아우르고 파괴하며 군림할 정도의 막강한 능력이었고.

본래의 주인이 또 다른 부정의 능력을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세상을 뒤덮은 능력을 상대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대전의 용좌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제약이 가장 커다랬다.

부정의 마력은 자신의 능력 또한 무력화시켜 버렸으니까.

그렇기에 왕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그러지는 표정 너머로 정우는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구축하기 시작했다.

뿌리를 내린 세계수가 천천히 자라난다.

대기의 마력을 밀어내고.

자신의 마력을 채우기 시작한다.

지구의 마력을 받아서.

지식의 신의 결정은 세계수가 유도한 것이었다.

막대한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던전의 마력이 지구에 유입되었으니까.

묘목에 불과한 세계수를 성장시킬 요량이었지만, 세계수의 계획은 정우에게 와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성장했다.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세계수가 모습을 드러냈고.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세계수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권능을 잃은 마왕 대신에 새로운 세계수가 탄생하려는 그 순간.

정우는 통로를 통해 자신의 세계수와 그것들을 연결해 버렸다.

모두는 하나.

그 특성을 이용하여.

그렇게 지구의 모든 마력을 세계수라는 조건을 통해 끌어들인다.

정우의 영역은 세계수를 중심으로 점차 퍼져 나갔고.

중심지라 불리는 대전을 가만히 두고 밖으로 영역을 넓혔다.

밀려나간 어둠의 영역을 가둘 곳은 한 군데였다.

자신이 뚫어 놓은.

자신 때문에 망해 버린 세계.

반쯤 풀린 봉인을 통해 그곳으로 계속해서 마력을 밀어 넣었다.

총량이란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모든 마력을 밀어 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정우는 부정하는 마력과 부정의 기운을 적절하게 사용해 가며 정화와 흡수를 반복해 나갔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시간의 감각이 흐려진 그 상황에서.

지구로부터 전달되는 모든 마력이 끊겼다.

지구의 모든 마력이 사라진 것이었다.

‘…모든 통로를 닫는다.’

정우는 망설임 없이 통로를 닫았다.

지구의 마력이 사라졌다는 것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였다.

지구의 시간이 되돌아갔다는 것.

격변 이전의 시간으로.

던전이 등장하고 플레이어가 등장하던 이전의 시간.

그리고 이것은 자신을 향해 소리치던 메아리의 주장대로 지식의 신이 소멸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통로는 닫혔지만.

한 가지 남은 세계수를 통해 메아리의 정신이 흘러들어 왔다.

정신의 신.

그럼 이명을 지녔던 것처럼 그녀의 이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말 한 마디.

존재감 하나 느껴지는 것이 없었지만, 정우는 그녀의 등장을 느꼈다.

더불어.

마지막 남은 세계수와 연결되는 것까지도.

지구와의 연결은 끊어졌고.

메아리의 세계수를 통해 저쪽 세계의 어둠의 마력과는 연결이 되었다.

그것은 정우가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흡수.

본인의 것이었던 그것들이 세계수를 통해 밀려들었다.

파스스, 세계수의 잎사귀와 가지가 부서진다.

막대한 어둠이 밀려들지만, 정우는 차분히 그것으로 또 다른 마력의 고리를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반발력을 이기며 본래의 고리인, 마나와 연결한다.

어둠의 마력.

그것과.

메아리가 주인의 결정에 비명을 내질렀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다.

그녀의 비명은 주인에게 닿지 않았고, 그녀의 정신은 막대한 마력에 밀려 어둠의 영역에 들어섰었을 때처럼 가라앉았다.

정우의 수면 아래로.

주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허우적대던 그녀가 수면 아래에 남은 정신을 읽고 경악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손을 휘저어봤지만, 막대한 힘에 눌린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윽고 그녀 자체가 아래로 가라앉아 사라진다.

그녀가 사라지자 정우는 시간의 축을 비틀었다.

자신의 영역에만.

세계수가 온전해질 때까지.

자신이 모든 어둠을 집어삼킬 때까지.

언제 종결될지 모를 그 작업에 착수했다.

자신의 힘을 찬탈하여 왕의 자리에 앉았지만 무기력한 옛 수하를 내버려 둔 채.

[ 그만하고 넘어와라…! ]

놈이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무기력한 이 상황을 없애고, 전투라도 하기 위하여.

자신은 분명히 전대 왕에게 승리하여 영광을 차지했지만, 그 영광은 짧았고.

그 결말은 종말과도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최후는 더욱 비참했다.

모든 힘을 수복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

[ 제발! 나와 싸우자! ]

옛 수하의 절규를 무시한 채, 정우는 서서히.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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