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결착 (3)
음산한 마력.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차분한 느낌이 뒤섞여 있는 마력.
“…하데스?”
당장에 떠오르는 이름을 내뱉고선, 대마법사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유지석! 하데스를 죽였다고 하지 않았나?”
“죽였네!”
“확실히?”
“확실하게….”
“그럼 저건 뭐야!”
네크로맨서는 하데스를 제외하곤 저 정도의 능력을 지닌 사람이 없었다.
드드드.
넓게 퍼진 마력으로부터, 쓰러진 몬스터들이 부활한다.
순백의 뼈가 가득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에 모두는 긴장했다.
“걱정 마라. 내 딸이니까.”
하지만 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딸이라면. 박사?”
“맞다.”
“네 딸이 S급이라고? 그것도 네크로맨서?”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이 텔레파시를 들을 수 있는 놈들은 다 알지 않나? ‘오버레이’를.”
“…오버레이? 그게 A급을 S급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이야?”
“마력만 충분하면 가능하더군.”
“…말도 안 돼!”
경악이 이어졌다.
언데드들이 몬스터와 부딪쳐 간다. 생전의 능력보다 약간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 수가 만만치 않았다.
적잖은 전력.
확실히 전황에 여유가 생겼다.
“‘씨앗’을 하나 받았거든.”
“씨앗?”
“쯧.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니 이게 골치가 아프군.”
리가 혀를 차며 움직였다.
쿠웅!
묵직한 마력과 함께 그림자들이 퍼져 나간다.
그리고 송곳처럼 솟구친다.
쩌정!
수백의 몬스터들이 일거에 쓸려나갔다.
“내 아들과 딸이 부족한 전황을 채울 거다. 나는….”
리가 한 방향을 보았다.
조금 늦게 다른 S급들도 고개를 홱 돌렸다.
“저놈을 상대하지. 아무래도 우리가 나가야 할 모양이야.”
저 많은 몬스터들 사이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존재감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S급 몬스터.
보스라 불리는 놈들이 던전 브레이크의 여파에 따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숨긴 게 있으면 다 털어놓아야 할 거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를 타고 넘은 리의 검은 단검이, 보스의 뒷목을 찔렀다.
캬아-!
거대한 뱀이 고개를 쳐들며 입을 쩍 벌려 고통과 함께 분노를 터트렸다.
전황이 또다시 변하고 있었다.
* * *
‘…저쪽도 위험해.’
주인의 부재는 뼈아팠다.
원래부터 주인에게 여유를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상황은 버거웠다.
지식의 신은 강했고.
본인은 발이 묶였다.
환상의 실체화.
허상과 같은 지식의 신의 몸체를 가격할 수 있게 바꾸는 것만으로도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지할 여력이 부족했다.
…주인의 ‘꿈’을.
하지만 가장 위험한 건 이쪽이 아니었다.
자신과 안나의 본체가 있는 곳.
모든 플레이어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 장소도 위험했다.
꿈을 통해 만든 G급 던전.
그곳이야말로 자신들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들이 버티며 벌어들이는 마력이 자신의 원천이었고, 그들이 공략해 나가는 지금이 반격의 유일한 기회였다.
‘성소 다음에는….’
메아리는 정신이 없었다.
인풋 되는 마력의 양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다시 재투자해야 했다.
플레이어를 성장시키고.
버틸 기반이 되도록.
그건 ‘유토피아’라 불린 최후의 도시가 마지막까지 버티던 방법과 굉장히 유사했다.
성소 다음에 만들어지는 건, 마법진이다.
정확하게는 ‘마력회복진’.
‘…내게 들어오는 마력은 줄겠지만, 없어서는 안 될 거야.’
S급 몬스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상, 머맨의 왕과 비슷한 수준의 적들도 등장할 것이었다.
‘그때까지 제발 S급의 수가 늘었으면 좋겠는데….’
S급 둘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능력을 자랑하던 놈과 비슷한 수준의 등장은, 절망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세계수가 다른 안배를 벌여놨어.’
리의 딸이 하데스의 능력을 개화시킨 건 그녀조차 경탄할 일이었다.
언데드.
비록 하데스만큼 강하진 않지만, 세계수의 씨앗을 매개체로 삼은 그녀의 전력은 상당했다.
‘그런가 하면 넌 오지 않았어.’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저곳에.
‘성녀’가 없음을.
‘내 초대를 어떻게 거부한 건지는 모르지만, 부디 늦지 않기를 바라.’
메아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선을 옮겼다.
유서린의 능력은 출중했다.
버서커와 성기사의 조합.
그 모순적인 조합은 오히려 안나의 기억을 되찾자 빛을 발했다.
대마법사로서의 안나는 파괴적인 능력보다 연구자로서의 능력이 강했다.
특히나 그녀가 강점을 보였던 건, 조합이었다.
서로 다른 능력의 중간지점을 찾아 새로운 마법을 탄생시키거나.
단점이 명확한 마법에 아주 기초적인 마법을 섞어 단점을 희석시키는 것이 그녀의 주된 재능이었다.
그래서일까.
마법을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오히려 유서린이기만 할 때보다 월등히 나아졌다.
강하다.
그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검과 신성력을 사용하는 건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셔야 해요…. 주인님.’
그녀는 지금 버티기만 할 뿐.
결국 패배하고 말 테니까.
그렇기에 정우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꿈의 던전과 유서린을 신경 쓰느라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세계수의 안배를 알게 된 순간 찾아온 여유가 그녀에게 한 가지 큰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지식의 신이 빼앗은 권한이 무엇인지….’
메아리는 소리치고 싶었다.
자신의 주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놈이 시스템에서 빼앗은 건, 시스템의 체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놈이 빼앗은 권한은.
‘…주인의 능력.’
자신이 찢어서 플레이어의 기반으로 삼은 바로 그것들이었다.
수많은 능력.
점차 익숙해지는 전투 능력까지.
그럼에도 닿지 않는 육체와 강제적으로 닿게 만들어 싸우고 있는 이 현실에서 그녀가 깨닫게 된 건 하나였다.
지식의 신이 가진 진정한 부정(否定) 말이다.
그의 부정은.
놀랍게도 ‘지식의 부정’이었다.
육체를 잃은 것 따위가 아니라.
‘아마도 맞을 거야.’
정우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은 ‘스킬’이 되었다.
놈은 그 스킬이라는 범주의 권한을 빼앗았고.
그 지식은 ‘부정’이 되어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놈은, 본인이 가진 지식의 공격에는 면역이라는 특성을 지니게 된 셈이었다.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게 무슨 부정인가, 하는 질문에 메아리는 이렇게 답할 수 있었다.
놈의 지식은 한계에 달했다고.
놈은 따지고 보면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완성체에 불과했다.
그 스킬엔 어떠한 충격도 입지 않는 몸을 지녔지만, 웃기게도 놈이 그토록 갈망하는 그 이상의 ‘지식’을 얻을 기회를.
‘박탈당한 거야!’
놈은 잃은 셈이었다.
스킬이라는 범주.
그건 정확하게 주인을 갈기갈기 찢을 때 만들어진 한계와 동일했으니까.
지식을 갈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자.
하지만 더 이상 지식을 얻지 못하는 자.
‘그렇기에 네가… 그 너머를 탐한 거구나!’
메아리는 지식의 신의 비틀린 갈망을 이해해 버렸다.
원래부터 생겼던 관심을 넘어, 이 부정한 기운에 대한 모든 지식을 쌓아야만 자신의 한계를 없앨 수 있다는 갈망까지 뒤엉켜 스스로를 타락시켰다.
오로지 지식만을 탐구하던 자가, 자신만을 위한 자로서 변한 것.
놈은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풉.’
메아리는 괜히 웃음이 터졌다.
자신의 지식만이 미미르의 샘처럼 구는 놈이, 지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우스꽝스러웠다.
‘주인님! 이제 주인님만 오시면 돼요.’
이길 방법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지식의 신을 이길 수 있을 것이었다.
주인의 세계는 자신이 다가갈 수도 없었고.
그 심상은 온통 어둠으로만 이루어져 무엇 하나 엿볼 수가 없었다.
자신의 판단에 남은 여력은 3분.
저쪽에서 더 많은 마력을 보내주지 않는 한 그게 최대치일 것이었다.
‘여유는 없겠지.’
그 안에 모든 게 끝나야 했다.
주인이 돌아오는 것도.
자신들이 지식의 신의 앞에서 벗어나는 것도.
메아리가 조급함을 억누른 채로.
자신의 주인이 적어도 새로운 능력을 가지고 오기를 바랐다.
전에 없던 능력.
그것만이 지식의 신을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까득. 아직- 멀었어?”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거칠게 닦으며 유서린이 물었다.
전력을 다하는 버서커는 이지가 날아간다.
본능으로 적을 분쇄하며 섬멸하는 것이 버서커의 참된 능력이었다.
민첩이나 근력.
공격력 등이 급증하는 버서커의 오의는, 적을 섬멸해야지만 해제되는 일종의 제한적 버프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적을 죽이기 전까지는 거의 몬스터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본인의 무기를 휘두르거나 때론 팔과 다리를 비롯한 여러 신체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기본이 매우 중요한 직업군이었다.
본능이란 건 켜켜이 쌓인 기본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대화가 불가능해야 했다.
날아간 이지로 인해서 적을 섬멸하는 것 외엔 어떠한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야 옳았다.
그런 그녀가 이성을 되찾았다.
그건 능력이 해제되었다는 소리고, 그만큼 부담이 가해진다는 의미였다.
“치유가 안 먹혀!”
유서린은 버서커 외에도 성기사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호와 치유.
섬멸보다는 방어에 치중된 능력인 성기사의 치유력은, 이 변화된 검은 환경에선 통하지가 않았다.
실체화가 가능한 메아리의 능력으로도.
‘젠장! 그나마 다행인 건 저 육체의 크기가 줄었다는 건가….’
크기가 줄은 만큼 중량에서 오는 압박감이 가벼워지긴 했다.
반면에 움직임은 더욱 노련해져서 이젠 어지간한 S급 수십과 싸우는 느낌이었다.
유서린은 무엇이 좋은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졌다.
‘판단은 무슨…. 어차피 이대로 가면 패배할 건데….’
점점 손발이 버거워져만 갔다.
버서커의 능력을 발휘하며 공격력이 강화된 건 좋은데, 반대급부가 너무 상당했다.
예상보다 상대의 공격력이 너무 뛰어났다.
‘다니엘…. 한, 정우.’
같은 사람, 다른 인물인 그를 떠올리며 유서린이 검을 휘둘렀다.
피로감에 정신이 멍해지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온몸을 욱신거리게 만들었지만.
‘버텨야 해. 그 사람을 위해서…!’
단 한 명을 떠올린 그녀는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버티고 또 버텼다.
메아리는 점점 초조해졌다.
‘30초….’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모든 게 끝이었다.
자신들이 도주하면 그길로 지식의 신 역시 G급 던전에 난입하게 될 터였다.
그럼 모든 플레이어는 전멸 당한다.
‘안 돼!’
메아리가 새파란 낯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식의 신과 주인.
두 절대자의 대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심상에서 본 게 사실이라면….
플레이어란 ‘군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제발…. 주인님!’
10초.
유서린이 얻어맞고 뒤로 나뒹굴다가 겨우 몸을 일으키며 휘청거렸다.
5초.
‘안 돼!’
유서린의 왼팔이 짓이기며 뜯겨나갔다.
1초.
달려든 유서린이 전격을 맞고 움찔거리는 사이.
손끝이 칼날처럼 변해 버린 팔이 허공을 점하며 유서린을 베어간다.
쩌엉!
막았다.
그 여파로 실드가 깨어지고 피가 솟구쳤지만,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유서린의 다리는 굳게 바닥을 디디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공격에 유서린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서걱!
사선으로 베어지는 몸.
울컥, 솟구치는 피.
쿨럭!
메아리는 유서린의 죽음과 함께 피를 토하며 허리를 꺾었다.
[ 푸흐- 이게 너희의 결말…. ]
크기를 줄이며 입을 열던 지식의 신이 돌연 침묵했다.
자신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 이, 이게, 어떻…게! ]
그의 음성이 경악으로 크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