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결착 (2)
어둠의 마력은 기존의 것을 부정했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특성이 하나 있었으니, 모두가 다루지 못했지만 본래부터 존재했던 어둠의 마력의 가장 강력하고 뛰어난 성질인….
혼합(混合)이 있었다.
모든 게 뒤섞여 혼돈(混沌)의 상태가 된 후에야 완성시킬 수 있는 혼합.
그걸 무의식중에 완성시킨 것은 다름이 아닌 정우의 전신, 다니엘이었다.
그렇기에 섞인 것이다.
메아리와 세계수.
그리고 다니엘이라는 사람의 능력이.
메아리의 심상과 정우의 심상이 서로 연결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결만 되어 있을 뿐, 두 심상은 서로 다른 차원처럼 나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곳의 본질을 알아차린 정우는 당연히 이곳에 존재해야 하는 한 존재를 떠올렸다.
계속해서 따라다녔던 문장.
‘모두는 하나.’
바로 세계수였다.
세계수와 대화를 나누던 메아리가 자신을 따라 지식의 신 앞에 섰다는 것은.
그리고 그런 지식의 신을 본인과 유서린이 상대할 동안 그것을 찾으라는 이야기는, 세계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게 틀림이 없었다.
즉, 그건 세계수가 본인의 능력을 통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정우 자신의 심상 안에도 또 다른 세계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처음부터.
‘검사부터 칭 샤오에 마왕. 그리고 성녀까지. 날 계속 감시해 왔어. 정확한 타이밍을 보기 위해서….’
세계수는 이 타이밍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오버레이를 사용하면서.
‘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거겠지. 정확한 타이밍.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그간의 행적을 보면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더러 존재했음을, 정우는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상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흘렀고, 예상과는 다르게 흘렀다.
모습을 드러내고.
사로잡히고….
본거지를 찾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지 않았다면, 칭 샤오는 서울에서 사로잡혔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연과 필연.
그것이 뒤섞여 지금에 다다랐고, 성과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내 부정만 얼른 찾으면….’
본인이 얻은 능력.
하지만 잊어버린 능력.
그걸 찾기 위해서도….
‘세계수를 찾아야 해. …어디에 있는 거냐!’
전력을 다하는 메아리와 유서린이었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결국 패배하는 건 둘일 터였다.
시작부터 모든 마력을 사용하여 허약했을 때의 언어체계만이 전부인 메아리의 상황을 보자면.
‘길어도 10분.’
그 이상을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정우는 다급히 세계수를 찾았다.
하지만 메아리의 심상이 그러했듯.
정우의 심상 역시 어두웠다.
그것도 심각하리만큼.
‘…육안으로는 아예 불가능해. 그렇다고 마력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기감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이 없었다.
서 있는 건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오감마저 뒤엉켜 혼란스럽게 했다.
조급함이 생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차분히 생각해. 보통의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어….’
정우는 스스로를 계속 진정시켰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상념들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평소라면 잘되었을 그것이, 이곳에서는 기가 막히도록 막혀 있었다.
그렇기에 세계수를 찾는 건 난항을 겪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도 이상해. 하지만 저 모습을 보면 대충 5분은 지났을 거다.’
지식의 신과 유서린의 대치는 더욱 첨예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 향방이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다시금 드는 조급함을, 정우는 이를 앙다물고 억눌렀다.
‘내 권능이다. 나와!’
기어이 으르렁거리는 얼굴로 협박까지 내뱉은 정우였지만 상황이 변하는 건 없었다.
‘생각해, 한정우.’
때문에 다시 원론으로 돌아갔다.
들어만 가면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세계수였다.
하지만 메아리의 그것보다.
지식의 신이 존재하는 저곳보다.
더욱 어둡고 무감각한 이곳에서 기존의 방법으로 세계수를 찾는 건 무리였다.
‘세계수의 능력부터….’
하나씩 되짚는다.
세계수가 어둠의 영역에서 할 수 있었던 모든 능력도 떠올렸다.
그러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뒤엉킨 능력 중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건 하나야.’
바로 메아리의 능력이었다.
꿈을 넘나드는 능력.
환상을 조종하는 능력.
이곳 역시 자신의 심상 속이라면.
‘조종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정우는 이곳을 정복해야 했다.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 * *
“막아!”
비명처럼 고함이 장내를 장악했다.
개미떼같이 몰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치고, 상황은 낙관적이었다.
재질이 무엇인지 성벽은 어지간한 물리력으로는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고.
실시간의 성장은 마치 게임의 레벨 업처럼 중독성과 함께 지치지 않는 육신을 선사해 주었으니까.
정신적으로 몰리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피곤해지기도 했지만.
성장함과 동시에 밀려드는 쾌감은 모두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더불어 연금술사를 필두로 비전투 플레이어들이 모여 만든 ‘성소’는, 무한한 전투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를 낫게 해주는 곳.
진정한 의미의 생명의 샘의 완성에 기세는 더욱 높아졌다.
F급들은 빠르게 E급을 넘어 D급에 다다랐고.
A급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S급도 성장을 거듭하더니 이젠 가장 최근에 S급이 된 사사키 후유조차 본인의 능력을 완전히 각성한 듯 마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뇌신과 대마법사는 두 가지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아주 어렵지 않게.
“…생각보다 S급의 벽을 넘는 사람이 없다.”
“그 벽이 이렇게 단단했었나?”
“모르겠군. 워낙 쉽게 넘어서….”
뇌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전격을 뿌렸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수많은 몬스터가 타들어갔지만 그 시체를 짓밟으며 또 다른 놈들이 등장했다.
정말로 끝도 없는 몬스터의 등장.
이 꿈은, 악몽(惡夢)이었다.
A급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S급에 도달하는 수는 전무했다.
얼마 전의 A급보다 지금의 A급이 강한 건 사실이었다.
마력의 양도.
경험치도.
모든 것들이 이곳에 오기 전의 단계를 압도했다.
하지만 문제는 벽이다.
깨달음이라 여겨지는 벽.
수많은 A급이 좌절하고 또 좌절해야만 했던 그 벽을 넘는 수는 없었다.
새로운 S급의 탄생이 전무하다는 것은….
“…심각하군.”
향상되는 전력에도 한계가 존재한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몬스터의 등급이 점점 높아져.”
“알아….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라면, 계속해서 성장하다 보면 벽도 그 힘을 못 이길 거란 거야.”
“…네 말대로 됐으면 좋겠군.”
뇌신이 혀를 찼다.
그에 반해 두 번째 문제는 조금 더 심각했다.
딱 봐도 인간이 아닌 외형.
얼마 전에 그랜드 캐니언에서 등장한 뱀파이어로 보이는 자가 플레이어와 함께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반쯤 부러진 탑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능력은 뇌신조차 감탄할 정도로 대단했지만, 딱 한 가지가 문제였다.
“지원을 보내야 돼.”
“…여력이 없어. 이미 뒤쪽으로 보낸 원거리 딜러만으로도 접근하는 몬스터의 수가 급증했을 정도야.”
“공중의 몬스터의 수도 늘었어. 이대로는 패배할 거야.”
“…대마법을 사용해도 소용이 없으니 문제야.”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퀘스트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렇기에 유서린을 지켜야 했다.
문제는 그 유서린이 지금 부서진 탑 옥상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이 소란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그제야 왜 ‘유서린을 지켜라’는 퀘스트가 내려왔는지 이해가 갔지만, 또 이해되지 않았다.
“유서린…. 그녀에게 무슨 특별한 점이 있기에 그러지?”
“특별하긴 하지. 듀얼 클래스에, S급의 벽도 우리보다 더 가볍게 넘었으니까.”
대마법사가 수백 개의 화염구를 띄우며 말했다.
대마법보다 초급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 현재 상황엔 도움이 되었다.
범위는 넓지만, 대마법을 펼치고 난 뒤에 찾아오는 공백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을 경험한 뒤에 내린 결론이었다.
유서린을 지키는 건 뱀파이어였다.
문제는 그의 상황이었다.
뱀파이어 로드의 기세는 날카로웠지만, 하늘을 날아 성벽을 넘어 도시에 들어오는 몬스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로드라 할지라도 모든 방위를 방어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그가 세운 피의 장벽을 뚫는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원거리 딜러들이 그런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지만, 부담이 될 정도로 수가 느는 것도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교대로 성소를 오가며 회복하는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뱀파이어 로드는 회복할 여력도 없이 전투를 지속하고 있었다.
대체 마력량이 얼마나 되는지, 대마법사조차 시들시들할 때가 있는 마당에도 강대한 존재감을 뿌리는 뱀파이어 로드의 능력이 대단하기는 했다.
하지만.
무한(無限)이라는 단어가 성립하지 않는 한, 언제고 한계에 다다를 것이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 증상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리폰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뱀파이어 로드가 잘만 막아내고 있는 몬스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피의 장막을 뚫고 들어간 놈이 하필이면 그리폰이었다.
힘이 떨어지고 있는 증거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에 뇌신은 신경이 쓰였다.
“몸을 빼기가 힘든데….”
뇌신이나 대마법사의 전력은 막강했다. A급 플레이어 수십보다 효율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저급 플레이어들을 성장시키고,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을 A급에 도달하게 만드는 상향평준화 작업에 가까웠다.
저등급 플레이어일수록 마력을 낭비하는 경향이 커서 휴식의 시간도 길어지니.
“아무래도 적응할 시간이 더 필요하긴 한데….”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보다 장기적인 전투에 익숙해질 시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았다.
겨우 톱니바퀴를 맞대었을 뿐, 유기적으로 흘러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여파를 제대로 맞고 있는 자가 바로 뱀파이어 로드였다.
그가 후방에서 탑을 견고하게 수호한 덕분에 생긴 톱니이기도 했다.
그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거다.
수와 질에서 점차 버거워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후우.”
그때 강세기가 심호흡을 했다.
저 먼 곳에 있었지만 대마법사가 S급, 그것도 상위에 있는 존재들과 텔레파시를 연결해 두었기에 들리는 음성이었다.
“…내가 동결(凍結)을 사용하지.”
“음. 뒤를 이어서 내가 바람의 결계를 사용하겠네.”
유지석의 음성이 뒤따랐다.
“바람의 결계라면 어느 정도는 여유를 찾겠지. 대신에 너무 무리할 수는 없으니….”
“각자 돌아가면서 비기를 사용하자?”
대마법사가 유지석의 말을 알아들었다.
상당한 마력을 잡아먹는 비기지만, 보통 근접 계열을 제외한 이들은 하나같이 지속성이 있는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동결의 지속성은 굉장히 짧았지만, 일정 반경의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었으니 그동안 총공격을 하여 몬스터를 쓸고 나면 시간을 버는 셈이었고.
바람의 결계는 아예 접근 자체를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용도로는 딱이었다.
“좋은 생각이군.”
뇌신이 동의함과 동시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명.
“그럴 필요가 없다.”
리가 반대했다.
“무슨 소리지?”
“…상황이 이 정도까지 흘렀으니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거센 존재감 하나가 저편에서 떠올랐다.
리의 근처였다.
“…S급?”
“S급이라고?”
“잠깐! 하나가 아니라 둘인데?”
대마법사가 깜짝 놀랐다.
더불어 경악했다.
하나의 마력은 리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고.
다른 하나는.
“어. 어? 이 마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