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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84화 (284/293)

284화

-꿈으로의 초대 (3)

집념은 성공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패망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굳이 자신을 속이겠노라 다짐했으면, 본인의 욕망을 잠시 내려놓을 줄 알아야 했다.

‘오로지’.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단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본인의 목적과 목표.

그리고 갈구하는 삶의 방향을, 놈은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것은 집념이 원인이었고, 집념을 드러낸 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식의 갈구.

진리의 탐구.

그 때문에 정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태껏 있어 온 모든 상황을 되짚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지식의 신의 변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메아리를 성장시키는 건, 봉인을 푸는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놈은 메아리의 성장을, 자신을 위한 퀘스트처럼 만들었다.

그건 놈의 역량이 G급 던전에도 미치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놈의 꿈은 간단했다.

봉인 너머의 세계.

어둠의 마력이라는 부정한 기운이 흘러나온, 다른 차원.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놈이 가진 갈망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정우가 할 일은 하나였다.

다시 한번 꿈을 좌절시키든가.

‘꿈도 꾸지 못하게 모든 걸 부숴 버리든가!’

봉인이 아니라 소멸로.

스스로가 타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걸 지워 버리기로.

정우는 놈의 집념이 이토록 고마울 수가 없었다.

시스템의 주변에서 넘실거리는 놈의 마력에 발을 담근다.

움찔거리며 경계하던 어둠의 마력이 게걸스럽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던전에서 마력이 성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 시스템의 원형은 마력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저 마력으로 G급 던전이 구성되고. 사람들은 그 마력을 통해 플레이어로 각성한다.

그리고 원래의 체계대로 보상을 받는 것이다.

F급 이상의 던전을 공략하는 것으로.

원래라면 그래야 했다.

F급부터 S급에 이르기까지.

모든 던전은 플레이어의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는 장소였다.

격변의 시대.

몬스터가 지구에 모습을 드러내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며, 플레이어가 등장했고,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던 시대.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어야 하는 그 시대는 지식의 신의 욕망으로 인하여 발생되었다.

시스템의 파괴.

그리고 그 조각의 강탈.

G급 던전이라 불리는 그것이 ‘시작’이라면, F급부터의 던전은 ‘과정’이었다.

하나로 연결되어.

플레이어를 성장시키는 커리큘럼이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모든 던전에는 마력이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식의 신이 그것을 강탈함으로써 모든 것이 비틀리고 으깨졌다.

성장의 도구로만 쓰여야 하는 것이 공격의 도구로 변질되었고, 공략에 쓰인 후 소멸했어야 하는 몬스터들이 다시 재생되어 지구를 침공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네가 문제였다. 지식.’

수많은 사상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해자.

지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가족의 죽음에 절규하는 일의 원흉은.

“…바로 너였다.”

지식의 신이었다.

정우의 싸늘하고도 날카로운 음성이 어둠을 가른다.

어둠의 마력을 녹여 던전에 뿌리고. 다시 회수하는 과정을 겪으며 지구를 오염시켰다.

오염된 마력을 흡수한 놈들은 ‘빌런’이 되었고.

세계수가 놈들을 모으지 않았다면, 어둠의 마력이 녹아든 마력으로 성장한 플레이어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을지, 소름이 끼쳤다.

진정한 격변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모든 게 이루어지기도 전에 부모님이 죽고, 자신도 죽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세계수의 판단이 옳긴 했군.’

정우는 지식의 신을 노려보았다.

자신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 눈알 같기도 하고 입 같기도 한 그것이.

[ 네가 감히…! ]

적의를 불태우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놈의 감정에 따라 넘실거리는 어둠은, 완전히 놈의 의사를 따르는 듯했다.

다시 마주한 상황.

정우는 지팡이마저 아공간에 넣었다.

지금 필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둠을 제어하는 능력.

[ 마법사인 주제에! 이 강대한 능력의 원인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단 말이냐! ]

“원인?”

[ 새로운 진실을 갈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법사의 본질임을, 무지가 네 눈을 가렸구나. ]

“이제 와서 고상한 척하지 마. 이 새끼야. 결국 원인은 너였으면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정우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 진리의 탐구는 마법사의 본질이다! ]

“마법사? 네가?”

정우가 화를 억누르고 조소를 흘렸다.

“그 조악한 마법을 사용하는 네가 과연 마법사라고? 쌓은 지식을 사용하는 것에 불과한 네가 마법사라고? 이젠 알 거 아니야? 네게 가장 적합한 개념이 뭔지.”

정우의 주변으로 어둠이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어둠의 마력을 다루는 건 놈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그 따위 능력으로 본질을 강요하지 마라.”

정우의 말에 지식의 신의 기세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마법사가 쌓는 지식은 너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저 쌓기만 하는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 우습군. ]

“정말 우스운 건 너다. 고작해야 입력받은 걸 출력하는 수준에 불과한 네가, 어떻게 신위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우는 혀를 찼다.

그러고는 지식의 신이 말을 잇기도 전에 싸늘하게 선언했다.

“네게 가장 적합한 건, 네가 지구에서 택한 방법이 아니었던가. 고작해야 컴퓨터에 불과한…. 대도서관의 사서(司書)야.”

* * *

드드드드!

적응이 되기도 전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건물이 무너지고, 거대한 연못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어어? 이게 뭐지?”

뒤쪽에서 휴식을 취하던 플레이어들이 반응했다.

상대적으로 전투 능력이 떨어지던 비전투계 플레이어들이 조심스럽게 연못에 다가갔다.

연못의 형태는 띄고 있었지만.

거대한 목욕탕에 가까웠다.

“비어 있어.”

“목욕이라도 하라는 거야?”

건물이 무너지고 대신 무언가가 등장한 사태도 특이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워낙 독특해서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의 장소에서 뜨거운 반응이 튀어나왔다.

“몬스터! 몬스터를 안쪽으로 들여보내!”

“트롤, 오우거 잡아서 시체를 안으로 보내!”

“슬라임이 대량으로 필요해!”

“젠장! 늪거미가 여기까지 다다를 수 있어?”

“늪거미, 이미 F급들이 처리하고 있어!”

“오! 야! 재료를 모아!”

바로 연금술사나 대장장이들이었다.

“무슨 일이야?”

누군가가 물었다.

“연금술사 퀘스트 떴어! 대장장이도! 저 장소를 ‘성소’로 만들라는 퀘스트야!”

“무슨 퀘스트가 실시간으로….”

“적응해! 상황이 변했어.”

“…여기가 어딘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갑자기 몰려들던 몬스터와 갑자기 생겨나던 던전을 봐.”

“급속도로 어두워지던 하늘은 또 어떻고….”

“X발. 말은 안 했는데…. 격변이 떠오르더라고.”

“이곳에서 승리하면…. 격변도 승리할 수 있는 걸까?”

“맞아. 내 생각에도 그래. 어쩌면 이곳은…. 최후의 도시가 아닐까?”

“이계의?”

“어! 양식 좀 봐. 로마에라도 온 줄 알았다니까?”

“이계의 최후의 도시라…. 저 빌어먹을 새끼들을 쓸어버리고 이곳을 사수하면, 우리 고향도 사수할 수 있는 건가?”

제임스 밀러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소리쳤다.

“지금 그게 중요해? 일단 죽지 않고 버텨야 할 거 아니야!”

“…아, 맞아. X발. 플레이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장소를 얼른 만들어야 해.”

“재료부터 빨리 수급해! 그렇다고 F급들 건드리지 마. 지금 중요한 건, 동반 성장이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움직여! 이 정도 보상이면 우리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어!”

“내가 지휘할 거다. 불만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연금술을 잘하고 따져.”

“…으으. 겨뤄보고 싶긴 하지만, 성소를 만들면서 겨뤄도 충분하겠지.”

연금술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플레이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G급 던전에 입장한 플레이어들처럼.

서로 협조하는 길이 최상임을 인지했다.

각자의 원한을 내려놓고, 협력하기 시작한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은 눈이 부셨다.

“…공중이다!”

“막아!”

“안쪽으로 못 들어가게 막아!”

하늘을 날아 다가오는 몬스터를 보고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원거리 딜러들이 방향을 조절하여 비행 몬스터들을 공격했지만.

“실패했어!”

“안쪽을 보호해! X발.”

“가서 비전투 계열 보호하고….”

“…어? 저 새끼들 어디로 가는 거야?”

플레이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쪽을 공격할 것 같던 비행 몬스터들이 성소의 제작에 열중이던 플레이어들을 무시한 채 더 안쪽으로 향했다.

“……!”

“설마, 안쪽에 핵이라도 있는 거야?”

“X 같은 소리 하지 마! 저 새끼들도 우리를 공략한다고?”

“젠장! 지금은 우리가 방어진이잖아! 핵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X됐다!”

상황을 인지한 플레이어들이 기겁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리를 지켜! S급들이 움직인다!”

“다들 외곽을 지켜! 지키라고!”

기동력이 좋은 S급들이 곧장 후위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붉은 선이 허공을 가른다.

날카로운 일격에 비행 몬스터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버둥거리는 몬스터 사이로 두 눈이 붉어진 유서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징벌이다!”

재도약하려던 유서린이 멈칫했다.

자신의 붉은 기운보다도 더 붉은, 피와 같은 폭풍이 몬스터들을 휩쓸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오래 버티긴 힘들겠군.”

인상을 구기며 로드가 등장했다.

“…내가 돕지. 최대한 마력을 사용해야겠어. 저쪽의 감각이 날 굉장히 괴롭히거든.”

“당신은…. 뱀파이어 로드?”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도 플레이어니까.”

“당신이 플레이어라고?”

“…정우의 아빠라고 해두지.”

“……!”

경악하는 유서린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은 로드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폰 무리를 향해 달려들며, 피로 된 검을 생성시켰다.

유서린은 예상 밖의 지원에 놀라워하다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청탑의 옥상.

찰나의 순간 무방비 상태인 메아리를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서린이 메아리의 곁에 접근해서 로드의 공격을 피한 놈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였다.

메아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에.

‘세계수가 빌런들을 모아놓고, 주인이 빌런을 쓸어버리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어.’

대부분의 빌런이 죽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저들 사이에도 빌런이 존재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수는 지극히 소수였고, 빌런이라고 대외적으로 드러난 이들은 이미 초반에 죽임을 당했기에.

‘몸을 사리고 있을 거야.’

속내는 어떻든 간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찾으려면 못 찾을 것도 없지만.

메아리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괜찮아?”

성소의 생성.

유서린 역시 퀘스트를 받았다.

버서커로서의 토벌에 대한 퀘스트와, 성기사로서의 성소 생성에 관련된 퀘스트를.

연금술사들이 재료를 모으고, 힐러들이 힘을 합하여 ‘성소(聖所)’를 만드는 퀘스트.

그것들을 보며 유서린은 메아리의 수고를 짐작했다.

스윽.

메아리는 코피를 닦았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괜찮, 아.”

그러고서야 유서린의 걱정 어린 질문에 대답한다.

준비는 끝났다.

“모든 던전 브레이크와 던전을 이곳으로 연결했어.”

“…모든?”

유서린이 침음을 삼켰다.

“그래서 모든 플레이어가 필요했구나.”

“이곳은 버티기만 하면 돼. 끊임없이 이어질 몬스터들에게서…. 스스로를 지키기만 하면 돼.”

메아리는 숨을 고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거리는 그녀를 유서린이 부축했다.

“…가자.”

메아리가 고개를 돌리며,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어둠의 영역 너머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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