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꿈으로의 초대 (1)
[ 근력이 향상됩니다. ]
[ 체력이 향상됩니다. ]
[ 스킬 ‘폴리모프’를 습득하였습니다. ]
[ 권능 ‘드래곤의 지고한 체력’을 습득하였습니다. ]
[ 마력이 몰려듭니다. ]
[ 주의하십시오. 강대한 마력의 파동이 당신을 휩씁니다. ]
가장 대표적인 메시지만 이 정도였다.
성장의 순간에 떠오르는 메시지는 몇 년간 쌓인 문자가 떠오르는 것처럼, 상당한 개수를 자랑했다.
이 순간, 다 읽지도 못할 만큼.
친우였던 이의 목숨을 담보로 얻은 성장.
그건 정우의 온몸에 극심한 통증을 만들어냈다.
비단 육체적인 통증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통증을 유발했으며.
그중 심장 어림을 옥죄는 고통은 정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다.
눈물을 흘리는 정우의 표정을 본 지식의 신은 흠칫 놀랐다.
그 차가운 표정에서 느껴지는 분노는 지식의 신조차 뒤로 물러서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무어라 소리치는 지식의 신을 내버려둔 채로.
정우는 심장의 통증을 무시한 채 원래의 목적에 집중했다.
끼릭.
시간의 축이 움직인다.
어둠의 마력을 조금 빗겨내고 있는 이곳이었지만, 아무르타트가 쓰러짐으로서 그 영향력이 줄었기 때문에.
‘한계까지 가동시켜!’
정우는 지식의 신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갈망했다.
갈구했다.
시간의 축이 비틀렸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정우는 곧장 어둠의 마력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무지막지한 내용의 보상을 기준으로.
‘이 흐름을 파악한다!’
정우는 여전히 몰려들고 있는 마력의 근간을 파고들었다.
어둠의 마력 안에 있었기에 자신에게 닿지 못하고 있는, 그 마력을.
‘파고든다!’
정우의 기감이 어둠의 마력을 뚫고 외부로 뻗어나가 기어이 그 마력과 조우했다.
부정하는 힘.
그것에 밀려 다가오지 못하던 마력이 게걸스럽게 들러붙었고.
놀랍게도 이 사태는, 정우의 예상과 정확하게 일치해 버렸다.
‘…접속한다! 시스템에!’
펜던트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순도 높은 해킹.
그것이.
곧장 단계를 넘어.
화아아악!
빛과 함께 ‘어딘가’에 접속했다.
* * *
메아리는 곧장 유서린을 데리고 이동했다.
뉴욕이 아니었다.
바로 청탑이었다.
“준비는?”
“…끝났소. 하지만….”
“부탁이야. 이지스.”
메아리가 이지스의 말을 끊으며 간곡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대도서관’에 접속할 길은, 이것뿐이야.”
“…후우.”
이지스가 참람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대도서관.
자신들의 비전인 회랑 너머에 존재하는 공간.
존재한다고만 알고 있던 그 공간을 실제로 밝힌 건 정우였다.
그곳에서 지식의 신을 만났고, 지식의 신의 말에서 수상한 단어 하나를 포착하여 여기까지 이르렀으니까.
그렇기에 자신들도 알 수 있었다.
지식의 신의 터전인 대도서관에 이를 방법이 자신들의 비전인 회랑에 있다는 것을.
문제는.
“기록이야 다시 쌓으면 돼. 아니, 내가 같이 가면 그 모든 기록을 ‘환상’에 담을 수 있어.”
이 방법을 선택하는 순간, 회랑의 모든 기록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아니, 회랑 자체가 무너진다.
수백, 수천 년간의 기록이 모조리 사라져야지만 그곳에 닿을 수 있었다.
대도서관.
“…시간이 없어. 선택해. 지금을 놓치면 지식의 신은 다시 자신만의 터전에 숨을 거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이야.”
메아리의 재촉에 이지스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지식의 신이라는 자신들의 신의 섭리대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은 그를 섬길 의무가 없었다.
이미 한 번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아라크네.
그 기이한 괴물에 집어삼켜졌을 때부터, 이미 자신들은 버린 존재가 되었다.
수많은 눈 중에 하나일 뿐이었던 자신들이었지만, 기록에 대한 집념만큼은 마법과 비견될 정도였다.
버림받은 눈이지만, 그게 본인들의 특성이 되어 버린 상황.
그렇기에 회랑은 자신들의 비기 중의 비기인 것이고,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공간인 것이었다.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다.
다만 소실되어 버릴 기록이 아쉬울 뿐.
다만 메아리의 말마따나 환상으로나마 그것들이 담긴다면, 언제고 다시 필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지스의 희망이 되었다.
“…진행하시게.”
“좋아. 그럼 예정대로 이곳을 증폭시켜.”
청탑의 역할은 증폭이었다.
그리고 그 개념의 매개체가 된 건 다름 아닌 마녀 일족이었다.
공명으로 인한 증폭.
마녀 일족이야말로 이 청탑을 가장 잘 어루만질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질끈 눈을 감았던 이지스가 신호했다.
고민은 하고 있었으나 미리 퍼져 있던 마녀 일족들이 이지스의 신호에 맞춰 마력을 전개했다.
웅웅!
메아리는 탑 전체가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정우가 사용한 것도 엄청났지만, 공명을 다루는 마녀들의 증폭은 보다 확실했고 대단했다.
“…한 명 한 명이 마정석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어. 서로 파장을 일치시켜 마력을 증폭시켜. 이거라면 2클래스 마력으로도 4클래스의 위력을 낼 수 있어! 이게 바로 대륙을 진동시킨 마녀들의 비기!”
기억을 되찾은 유서린이 청탑의 흐름을 읽고 경탄했다.
실로 대단한 능력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력이 읽히고 이론적인 부분이 머릿속에 각인이 되면서도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으니까.
본인의 마법은.
때문에 느껴지는 답답함을 이기고, 유서린은 메아리의 행동에 집중했다.
공명하기 시작한 청탑은, 애당초 정우의 목적에 맞게 마력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 기세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대했다.
하지만 필요한 건.
“…마력이 아닐 텐데.”
메아리는 준비된 마법진 중앙에 앉았다.
어둠의 마력은 퍼졌다.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봉인은 반절이나 열려 버렸다.
그 기세는 가히 강대해서, 수면 위 메아리의 영역에조차 영향을 미칠 정도였고.
메아리는 어둠의 마력의 확장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다급했다.
어둠의 마력은 기이한 존재였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통념과는 다른 기이한 법칙이 존재했다.
즉, 그 법칙만 이용한다면 어둠의 마력을 손에 쥘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지식의 신이 어느 정도 활용했으며. 자신도 어느 정도 활용한 그것의 본질을 관통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전장을 옮겨야 해.’
곳곳에 퍼져 있는 플레이어들을 한 곳으로 모을 필요가 있었다.
육체적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
결국 가능한 건 하나밖에 없었다.
‘모두를 꿈으로 초대한다!’
꿈속에서 모든 걸 진행하는 것이다.
메아리는 정신을 집중했다.
서큐버스인 그녀조차 이 정도로 방대한 꿈을 조종해 본 적은 없었다.
‘대상은… 마력을 느끼는 모두!’
대상을 설정한다.
자신이 만든 시스템을 이용한 모두를 대상으로 잡고, 그들의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조금 더 세밀하게!’
수많은 이들의 정신을 다루는 작업이었다.
결코 쉬울 리가 없는 작업.
메아리의 눈가가 연신 꿈틀거렸다.
‘내가 만든 시스템이야!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아도, 활용해야 해….’
G급 던전을 만들 때의 느낌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시스템이라는 걸 조성할 때의 느낌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느낌이 중요했다.
메아리는 스스로조차 꿈에 접속시켰다.
자신의 꿈.
자신의 심상.
그 안에서 이 시스템의 운영을 습득하고자 했다.
메아리는 몰랐지만 그녀는 운이 굉장히 좋았다.
청탑을 선택한 것.
그리고 그 청탑을 더욱 증폭시킬 요량으로 마녀들을 선택한 것.
마녀들은 정신으로 이루어진 세계, 회랑에 자유자재로 접속할 수 있었다는 점.
더군다나 아라크네에게 사로잡혀 있을 당시, 공명을 넘어 ‘동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얻어냈다는 점까지.
우연에 우연이 겹쳐 필연처럼 모인 그것들은.
기어이 메아리의 정신을 한 단계 위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 ‘꿈’에 접속합니다. ]
“…꿈?”
가장 가까이 있던 유서린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떠오른 메시지와 함께.
우당탕!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등장했다.
“…유서린?”
“이게 무슨 일이지?”
뇌신과 대마법사였다.
정우에 의해 이동당한 그들은, 들끓는 마력을 안정시키자마자 위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마력에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다급히 이동했을 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꿈에 접속한다는, 기이한 메시지가.
그와 더불어.
풀썩!
S급조차 이기지 못한 수마가 몰려들었다.
인간들이 쓰러진다.
하나둘.
청탑을 기준으로 사방에 퍼져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이 하나같이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그 기이한 현상에 반응하기도 전에 모든 플레이어는 정신을 잃었고.
일반인들만이 이런 사태에 우왕좌왕하며 종말을 운운하며 절망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전장이 바뀌었다.
메아리는 눈을 떴다.
* * *
[ G급 던전 ‘꿈’에 입장하였습니다. ]
[ 모든 적을 섬멸하십시오. ]
[ 보스 ‘?’를 처리하십시오. ]
[ ‘메아리’를 보호하십시오. ]
[ 플레이어 ‘유서린’을 보호하십시오. ]
섬멸전, 보스전, 호위전, 퀘스트까지.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변한 상황에 당황했다.
“…여긴 어디야!”
“나는 분명히 불도마뱀 던전을 공략 중이었는데….”
“헉! 제, 제시! 제시, 어디에 있어?”
“G급 던전? 거긴 튜토리얼이잖아!”
“헉! 다, 당신은….”
“이 빌어먹을 새끼가 여기에 있었어? 이 새끼, 빌런이야! 죽여!”
“뇌, 뇌신이다!”
“대마법사도 있어!”
“여긴 대체 뭐야!”
“메아리는 누구야?”
“유서린? 그 징벌의 처녀 말이야?”
“…플레이어를 보호하라고? 왜?”
“야, 여기…. 밖에 봐봐.”
“도시? 도시다!”
“말도 안 돼! 이게 던전이라고?”
“G급 던전이라고? 이게?”
“세상에…. 미국, 프랑스, 영국 할 거 없이 모든 플레이어가 다 있어!”
“유지석이다! 바람술사야!”
“강세기도 있어.”
“…헐! 진짜 모든 플레이어가 다 여기에 있는 거야?”
소란이 이어진다.
끝도 없는 소란은 서로를 향했다가 이내 밖으로 향한다.
뒤편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도 외곽의 소란을 따라 각자의 능력으로 몸을 띄우거나 이동하여 밖을 보고는 경악한다.
“…여긴 어디야?”
그리고 다시 같은 질문을 내뱉는다.
메시지에서 알리던 것과는 달리, 이곳은 결코 G급 던전이라 칭하기엔 과했다.
수만 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전부 수용하고도 남을 만한 거대한 도시.
도시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성벽까지.
“각 나라별로 모여서 각자 방위를 정해! 성벽부터 점령해!”
누군가가 지시를 하듯 소리를 질렀다.
“…누구야?”
“검은 머리에 가면? 헉! 리, 리다!”
“맙소사. 진짜 리야?”
고함친 리의 주변으로 북한 플레이어들이 몰려들었다.
서로 소리치지 않았지만 몰려드는 그들의 기세는 질릴 정도로 예리했다.
마치 지금을 준비했다는 듯.
어지간한 플레이어의 말이라면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플레이어들이 무시했겠지만, 리는 아니다.
한 나라의 수장이자 플레이어의 정점 중 한 명.
그 위치가 주는 위압감은 실로 거대했다.
각국을 대표하는 플레이어들이 움직였다.
그렇게 소속별로 그룹이 생겼다.
그들의 움직임을 가만히 보고 있던 리가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이 멎은 순간 입을 열었다.
매우 시기적절하고, 날카로운 시점이었다.
“이곳은 던전이며….”
플레이어들도 확인했다.
자신들이, 게이트를 통하지 않고 던전에 들어왔음을.
“곧 ‘이계’이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이곳이 바로 너희의 힘의 원천이었던 곳이며….”
리가 하는 말이 가진 무게를.
“너희가 수복해야 할.”
리가 하는 말이 가진 의미를.
“최후의 영토이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리가 방향을 돌렸다.
자신이 기억하는 한, 가장 치열했으며 난잡했던 장소였다.
북문.
어둠의 마력이 가장 먼저 휩쓸었던 그곳을 보며, 리는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