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80화 (280/293)

280화

-최후의 용 (7)

소환진.

정령이든 사물이든, 악마든.

어떤 존재든 간에 해당 존재를 불러내는 마법진을 뜻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정우는 자신의 뒤통수를 노리는 심지창을 염동으로 멈춘 뒤에 다시 뒤로 날려 보냈다.

다급한 마음에 창을 던진 머맨의 왕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방어했지만, 창에 실린 힘은 놈의 팔을 꿰뚫고 가슴에 상처까지 만들어 냈다.

캬아-!

다른 놈들이 이를 드러내며 포효했다.

대화까지 가능했던 놈이 이젠 그냥 몬스터가 된 것처럼 이지보단 본능으로 움직였다.

지금은 그게 더 귀찮았다.

“꺼져!”

일갈한 정우의 마력이 요동쳤다.

그 기세는 드래곤의 명령만을 수행하고자 하는 놈들의 본능마저도 움찔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뿐.

이지적으로 완벽하게 지배받는 놈들은 다시 정우에게 달려들었다.

정우는 놈들이 움찔거리는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소환진인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마법진마저 이리저리 뭉개져 있는 탓에, 실패를 의심할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확실한 건.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거지!’

그렇게 정우가 아무르타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전신의 모든 마력을 오러로 탈바꿈시킨다.

고리가 공명하며 뜨거운 열감을 만들어 냈다.

후웅!

한층 더 짙어지고 밝아진 빛이 지팡이 끝에 맺혔다.

세계수의 가지.

그것은 마력을 단 한 올도 흘리지 않고 받아들여 오러로 구현해 냈다.

정우는 몸을 숙이며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콰득!

오러의 끝이 마법진의 일부를 부쉈다.

‘조금 더…!’

하지만 마법진이 수복되는 힘이 더 강했다.

정우는 회전하며 창을 휘둘렀다.

아무르타트를 직접 노리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언제 펼친 건지 실드 몇 겹을 부수고 비늘을 으깬 후, 살점에 상처를 낸 게 전부니까.

하지만 드래곤의 육체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다.

트롤에 가까운 초재생이 상처를 빠르게 수복시켰다.

부웅!

정우는 몸을 회전해 뒤쪽으로 오러를 날렸다.

다가오던 머맨들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기겁을 하며 창을 들었지만.

놈들은 아쉽게도 드래곤이 아니었다.

파앗!

창이 부서지고 가슴과 허리가 쩌억 벌어지더니 이내 분리된다.

솟구치는 피엔 관심을 끊은 정우가 허탈한 표정으로 오러를 지웠다.

‘……역산해 볼 걸 그랬나?’

뒤늦게 아쉬움이 밀려들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저것 역시 부정(否定)이었으니까.

정상적이지 않은 마법진.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해, 아무르타트조차 무려 30초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했어야 했다.

자신이 상처받는 것조차 무시한 채로.

화아아-!

이윽고 빛이 뿌려진다.

허공에 만들어진, 뭉개진 형태의 마법진치고는 말도 안 될 정도의 밝고 환한 빛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빛을 보던 정우의 시선은 아무르타트에게로 향했다.

휘청.

그 방대한 마력을 지닌 드래곤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던 마법인지, 놈이 한 차례 휘청거렸다.

놈의 번들거리던 눈동자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질투를 멈추고 예의 차분하고 서늘한 느낌으로 빛나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다급해서 잊고 있던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세계수는 타락했지만 지금도 자신만의 정신이 유지되고 있었다.

본체는 사라졌지만 후일을 기약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지식의 신을 몰아내고 세계를 원래대로 돌리려는 갈망도 강했다.

그런 세계수가.

‘……아무르타트에게 흡수되었다?’

어둠의 영역에서 공략을 진행하며 어둠의 마력에 대해 알게 된 정우는 단정할 수 있었다.

어둠의 마력은 형태가 전혀 다를 뿐, 마력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많은 것들이 다르긴 하지만.

일단 가장 비슷한 면이 바로.

‘총량…. 아무르타트의 총량은 절대 세계수를 뛰어넘지 못해.’

품을 수 있는 어둠의 마력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드래곤이 제아무리 무한한 마력의 소유자라고는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정말로 무한했다면 예전에 패배했던 것은 자신일 테니까.

말도 안 되는 응용력과 회복력이 이를 무한에 가깝게 보이게 할 뿐.

드래곤의 마력은 드래곤 하트라는 곳에서 생성되는, 한계가 정해진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계수는 아니다.

전 세계를 뒤덮을 정도의 방대한 마력.

게다가 정령을 생성시키고 운영할 정도의 여유로움.

드래곤의 마력조차 세계수의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가까웠으니.

‘흡수가 아니라…… 정화였다면?’

모두는 하나.

계속해서 등장하는 세계수의 법칙은 이미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음을 증명했다.

여러 신이 최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대비하게 했으며, 어둠의 영역 안에서도 삼켜졌다는 게 무색하리만큼 특유의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힘의 차이에 억눌렸을 뿐, 세계수는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둠의 영역이 아닌 곳으로 이동만 했다면?

크르-!

순간의 머뭇거림을 놓치지 않은 아무르타트가 재차 공격을 가해 왔다.

휘청거리면서도 그 거대한 육체로 밀어붙이는 공격은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대로 유지해 줘.’

그런 느낌이 드는 공격이었다.

착각일 가능성이 높지만…….

처음 놈을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사막 고블린 던전의 지하.

그곳에서 정우는 놈의 눈알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떠오르는 기억마다 놈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의아했다.

자신이, 아무르타트에게 패배했다는 것에.

‘저것 때문일까?’

정우는 소환진을 보았다.

아무르타트는 정우의 적의를 집중시켰다.

솔직히 지식의 신을 의심한 건 운에 가까웠다.

왜 의심했을까.

오로지라는 단어가 그렇게 걸렸던 걸까?

다시 생각해 보면 의외로 말문이 막힌다.

정우는 그런 생각이 이어지자 침음을 흘렸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세계수와 아무르타트가… 메아리를 움직였던 게 아닐까?’

조금은 희망적인 생각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정우는 아무르타트의 공격을 피하면서, 소환진을 눈에 담았다.

찬란한 빛.

그것을 뚫고 쏟아지는 검은 안개.

‘……어둠의 마력.’

어둠이 도래했다.

* * *

“……마지막 기억?”

“네 주인의, 기억. 이 사태의 시작. 또 다른 불행의 연속.”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메아리가 뾰족하게 소리쳤다.

세계수는 그런 메아리를 무거운 눈빛으로 보았다.

“내가 기다린 건, 청탑의 완성이야.”

“…….”

“내게서 벗어난 몇 안 되는 정령을 불러내고, 그와 한 오래된 약속이 필요했어.”

“……약속?”

메아리는 자꾸만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처지가 비관스러웠다.

주인은 지금 최후의 용과 맞서 싸우고 있는데, 자신은 대화나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때때로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가 하면 이 내용은, 자신의 주인마저도 눈에 불을 켜고 귀를 기울일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메아리는 정우를 따라 이동하지 못했다.

이걸 듣기 위해서.

“최후의 불씨.”

“……불씨?”

“카이롤레움은, 유일한 불사조니까.”

“……불사조? 그냥 정령이 아니라?”

동양의 용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정령이 불사조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렇기에 세계수의 말이 이해가 된다.

정령은 본래 형태가 없다.

원하는 게 형태이고, 자주 취하는 게 모양일 뿐이니까.

불사조 역시 정령이지만, 정령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생명이 된 존재였다.

그렇기에 스스로는 소멸하지 않는다.

시간과 마력만 주어지면 언제고 부활하는 게 바로 불사조였다.

하지만 단 한 번.

“…목숨을 약속한 거야?”

“맞아. 목숨.”

“…맙소사!”

영원에 가까운 생명이지만, 그 부활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부여하는 순간 불사조는 영면에 든다.

목숨이 끊어져도.

목이 베이거나 심장이 파괴되어도.

불사조의 영원을 매개체로 단 한 번은 완전히 부활할 수 있었다.

그게 필요했다.

과거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때문에 메아리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와 아무르타트의 일도 들었고.

자신이 과거에 행한 일도 들었다.

하지만 뭔가가 시원히 해결되지 않고 꼬여 있는 느낌이었다.

“그걸 가지고 있는 게 탐구하는 자다.”

“지식의 신….”

세계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청탑의 천장으로 가려진 너머를 보는 듯 눈빛이 모호해졌다.

“……지식이라는 건 묘하지 않아?”

잠깐의 침묵을 깨고 세계수가 물었다.

“…뭐가 묘하지?”

“분명히 지식은 지혜로 이어지는 기반이 돼. 하지만 지혜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편협한 자기애에 빠지게도 만들지.”

메아리는 알아차렸다.

켜켜이 쌓아 방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식을 쌓은 지식의 신의 지식이, 지혜에 닿지 못한 자기애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세계수는 지식의 신이 그릇된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애당초… 여기까지 와서 그런 판단을 하는 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남보다 많이 안다는 건 우월주의로 빠지기 쉬우니까.”

서큐버스가 가장 마력을 흡수하기 쉬운 상대가 누구일까.

자기혐오에 빠진 자.

평범한 자.

굳건한 자.

해이한 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가장 쉬운 상대는 바로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이었다.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꿈속에서 그 부분만 살짝 치켜세워 주면 타락하기 십상이었으니까.

자신이 지식을 타인의 지식보다 우선시하는 순간, 고집이 생기고 아집이 생긴다.

그게 정답일 경우에는 상관이 없지만, 정답이 아닐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렇기에 세계수는 지식의 신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자…….’

지혜가 없기에 지식만 쌓고, 진리를 알지 못하기에 더 지식을 갈구하는….

메아리는 잠시 생각했다.

“네 계획을 말해.”

이제 메아리는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주인은 옛 친구와 싸우기 위해 이동했고, 지식의 신은 여전히 주인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그녀는 세계수의 말에 동의했다.

무조건적으로 그녀를 믿진 못하겠지만….

‘경계해. 배신을 하면 이번엔 내가 막는 거야.’

그렇게 다짐하며 메아리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수.

아니, 성녀의 모습을 한 그녀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한 명의 기억을 되살려 줬으면 해.”

“기억을 되살려?”

“심층에 가라앉은 기억을 불러내. …그녀는 던전 안의 기억을 읽지 못했거든.”

던전 안의 기억?

“이중 던전?”

“부활로는 불안하니까. 꼭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줘야지.”

성녀는 그렇게 말하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가능할 것이다.

펜던트만으로도 지식의 신의 영역을 침범할 정도로 강렬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라면.

‘마지막 기억’을 놓지 못하는 탐구하는 자라면.

“……오랜 기다림이었네.”

성녀는 고개를 돌렸다.

저 먼 곳.

지구 반대편에서 느껴지는….

자신과는 다르지만 같은 계획을 가지고 있는 자를 향해서.

“용이여….”

* * *

촤아악!

도끼를 휘두른 유서린이 눈가를 좁혔다.

“……갑자기 왜 던전 브레이크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쿵!

내리찍는 도끼를 주변으로 마력이 들끓는다.

달려오던 몬스터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약간 붉어진 눈동자의 유서린의 신형이 사라진다.

파아아앗!

이윽고 그어지는 두꺼운 선이 개수를 늘려가며 허공을 난도질했다.

촤아아악!

그와 동시에 몬스터들의 살점과 피가 난무한다.

그 중심에 선 유서린이 종말을 연상시키는 한국의 모습에 욕설을 내뱉었다.

“……!”

스윽, 착!

움직이려던 유서린의 눈이 매서워지며 도끼가 허공을 긋다가 멈춘다.

갑자기 느껴진 존재감 때문이었다.

“……누구냐!”

싸늘한 그녀의 말에 메아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보며 흔들리는 눈동자를 향해, 메아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깨우러 왔어.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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