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최후의 용 (6)
세상의 모든 것을 멸절하는 빛.
브레스는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뒤덮었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흔적도 없이 증발한다.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생물체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에 의해서.
“아아…….”
뇌신과 대마법사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플레이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들이었지만, 저 거대한 푸른빛을 막는 건 실패했으니까.
거부할 수 없는 죽음.
두 거인의 뇌리에 동시에 꽂힌 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나타난 한 인형이, 파멸의 빛과 같은 브레스를 향해 손을 들었다.
누가?
의문이 앞서기도 전에 든 경악이 채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푸른빛이 모두를 뒤덮었다.
‘왜 막아선 거야!’
‘왜 헛된 죽음을…….’
그 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둘은 당연히 찾아올 죽음의 순간을 기다렸다.
의외로 생각이 이어진다.
너무 찰나에 죽어 버려서 그런가, 싶었다.
세상은 여전히 푸른빛으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음?”
“어?”
하지만 이내 둘은 소름 끼치는 상황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막았어?”
막아 내고 있었다.
이 파멸의 빛을.
상하좌우를 다 뒤덮은 푸른빛은, 아까 나타난 누군가를 이기지 못하고 양방향으로 갈라지면서 생긴 흔적에 불과했다.
조금의 충격도 없는 지금의 상황이 이를 증명했다.
브레스는 막혔다.
누군가에 의해서.
둘의 시선이 푸른빛만 가득한 전면으로 향했다.
버티기만 한다면 언제고 이 브레스도 끝이 날 터.
둘은 이 기가 막힌 상황의 주인공이 드러나는 그 순간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옅어지는 빛.
그리고 드러나는 검은 점.
점차 크기를 키워 가는 그 점을 보던 둘이 눈을 부릅떴다.
* * *
‘……강하군.’
확실히 최고의 공격이라 불릴 만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무식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브레스는 위력이 뛰어난 만큼 준비에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 목표가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고자 수많은 능력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마력 방해, 공간의 일그러짐, 흡입력, 무력화 등.
그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야지만 브레스는 완성이 된다.
그래야 맞힐 수 있을 테니까.
당시의 정우에겐 그게 필요가 없었다.
드래곤의 마력 방해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정우의 감각을 뛰어넘지 못했으니까.
그것 하나만으로도 정우는 유유히 브레스를 피하며 아무르타트를 농락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뇌신과 대마법사.
최후를 맞이하게 될 그들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마력이 느껴지자마자 곧장 그 앞으로 뛰어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의외로 정우가 택한 마법은 대마법사의 그것과 동일했다.
단지.
‘막아라.’
언령으로 이루어졌을 뿐이고, 그 구조가 대마법사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단하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지대했다.
그녀의 마법은 유리처럼 깨어졌지만, 정우의 마법은 견고하게 버텨 냈으니까.
이윽고 브레스가 끝났다.
한껏 포효하던 아무르타트의 시선이, 정우를 꿰뚫었다.
달라진 외형.
달라진 마법 체계.
[ 오랜만이구나. ]
하지만 그는 정우를 알아보았다.
자신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예전과는 다른 확연한 존재감에 ‘그’가 덧씌워졌기 때문이었다.
마법의 신, 다니엘.
그의 모습이 보였다.
정우는 아무르타트의 평온한 어투에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을 보던 눈동자.
그리고 떠오른 기억.
‘날 질시하던 그 감정들….’
모든 게 본래의 그는 아니었겠지만, 결국엔 그의 손아귀에 자신은 사로잡힌 채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다.
지금은 적인 것이다.
“오랜만이다.”
묘한 감정으로 인사를 마친 정우는 자신을 경악하며 바라보는 두 S급의 기척을 느꼈다.
그러고는 손을 휘저었다.
S급이 저항할 새도 없이 둘은 청탑으로 날아갔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지스나 로드가 해줄 터.
‘우리도 군대를 조성해야 해.’
가능한 한 빨리 군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뇌신과 대마법사, 리와 유지석은 그런 군대를 운영할 아주 적합한 사람들이었다.
“아무르타트.”
[ 오래된 이름이군. 그 이름은 버린 지 오래다. ]
그 역시 자신과 거리를 두었다.
더불어 반갑지 않은 해후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웅웅!
아무르타트의 주변으로 검은 불꽃이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얼핏 정우의 매직 미사일과도 닮아 있었으나, 그 안에 담긴 위력은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하나하나가 다 A급 이상의 공격.
그것이.
꿈틀.
수백 개였다.
‘헬파이어.’
보통의 파이어볼이나 화염 마법이 아니었다.
지옥의 불이라 불리며 마력이 다하지 않는 이상은 소멸하지도 않는 그것이 이리저리 나뉘어 저런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즉, 한 개만 얻어맞아도 쉽지 않다는 소리였다.
곧장 마력을 전달시켜서 진짜 지옥의 불꽃으로 변화시킬 테니까.
선공을 취한 건 아무르타트였다.
수백 개의 불꽃이 살아 움직였다.
정우의 신형이 사라졌다.
‘…블링크가 아니다?’
예전에 보았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빠르기였다.
아무르타트는 정우의 신형을 보며 마법을 조절했다.
“매직 미사일.”
정우 역시 매직 미사일로 응수했다.
하나의 불꽃에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이 달려든다.
허공에서 폭죽이 터지듯 연신 불꽃이 폭발했다.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위 마법을 저급 마법을 이용하여 깨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흥!
아무르타트가 코웃음을 치며 땅을 박찼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속도.
마치 태산이 짓쳐 드는 것 같은 위용에 정우는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짓눌러라.”
아무르타트의 걸음이 순식간에 멈춘다.
드래곤의 강인한 육체로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의 중력이 자신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정우는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무르타트의 찢어진 눈이 커지며, 닫혀 있던 입이 쩍 벌어진다.
[ 다니엘! ]
이전보다는 못했지만, 즉시 완성된 브레스가 전면을 가득 채우며 쏘아졌다.
중력이 약간 약해진 틈을 타 아무르타트가 몸을 흔들었다.
채챙!
그래비티가 깨어졌다.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초토화된 상태로 자욱한 연기만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정우는 없었다.
아무르타트도 당연하다는 듯 마력을 퍼트린다.
두 존재의 마력이 서로 뒤엉켰다.
[ 내리쳐라! ]
“낙뢰.”
검은 번개가 사방을 뒤덮고, 그것을 찢어발기듯 푸른 번개가 내리친다.
두 종류의 번개가 서로를 파괴하며 지상으로 향했을 땐.
치직!
몇 남지 않은 번개만이 정전기마냥 파지직거렸을 뿐이었다.
호각(互角).
아무르타트는 예전이 떠올라 이를 드러냈다.
감히 드래곤인 자신과 맞서 싸운 인간.
감히 드래곤인 자신을 이긴 인간.
자신이 가져야 하는 존경과 두려움의 자리에 앉아 평온하게 웃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부글부글!
조금 전까지의 차분함이 거짓말이라는 듯,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곧장 공격에 반영되었다.
물의 화살이 생겨나 회전하며 쏘아지더니.
이내 아래에서도 물이 솟구친다.
‘…이건 아쿠아 로드?’
머맨을 상대할 때 경험한, 물의 일족 특유의 이동법.
지금은 이걸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
하지만 이윽고 정우는 표정을 굳혔다.
판단은 빨랐다.
쿵!
발을 구르며 마력을 퍼트린다.
쩌적!
가뜩이나 초토화되어 있던 대지가 이리저리 갈라지며 솟구치거나 꺼짐을 반복했다.
그 사이로 물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머맨.”
그것도 왕급이었다.
미해결 지역, 세이렌의 영토에서 유서린과 김하란을 죽을 고비까지 넘기게 만들었던 존재.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여섯이나.
[ 사로잡아라! ]
아무르타트의 명령에 머맨의 왕들이 달려들었다.
“…….”
정우는 인상을 구기며 각종 마법을 사용했다.
뇌전과 화염,
저주와 얼음까지.
여섯 중 둘을 무력화시킨 정우의 앞으로 커다란 삼지창이 쇄도했다.
후웅!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공격을 피하자마자 다른 공격이 이어진다.
‘……연계가 자유롭다.’
한 몸처럼 이어지는 합공에 정우도 주춤거렸다.
정우가 힐끗 시선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건 이놈들이 아니었다.
[ ••••••••…. ]
정체불명의 언어를 웅얼거리고 있는 거대한 동체.
아무르타트였으니까.
정우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용언은 언령과 비슷한 구석이 굉장히 많은 능력이었다.
일단 어지간한 대마법조차 캐스팅이 필요 없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그건 주문과 동시에 완성품을 내놓는 형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언령조차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마법은 그 설계도를 준비해야 했다.
재료를 준비하고 구상한 뒤, 토대를 쌓아 완성해야 했다.
문제는 그 일정 수준이라는 점이다.
대마법조차 기성품처럼 내놓는 용언이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
그건 절대 일반적인 대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뜻했으니까.
‘쳐 낸다.’
정우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오러가 맺힌 지팡이와 삼지창이 이리저리 얽혀 휘어진다.
그럼에도 부서지지는 않는 것이 정우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틈이다.’
남은 넷의 유기적인 공격에 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조금만 준비하면 전부 다 쓸어버릴 수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정체 모를 마법을 방해하는 것이지.
몸을 날린 정우가 허공에서 회전하며 커다란 크기의 머맨의 머리를 밟았다.
한 끗 차이로 머맨의 갈퀴 달린 손이 정우의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부웅.
하늘을 난 정우의 눈이 아무르타트에게로 고정되었다.
주변의 마력을 읽는다.
창처럼 틀어쥔 지팡이에 오러를 불어넣으며, 주변의 마력을 읽어 놈이 준비하는 마법을 감지한다.
‘……이건, 무슨 법칙이야!’
하지만 이내 정우는 기함했다.
자신조차 처음 보는 법칙의 마법이었으니까.
모든 게 뒤틀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감지한 그것들이 한순간에 정체를 바꾼다.
마치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는 듯, 다음 단계를 쉽게 열지 않았다.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난 정우조차도 일순간 이건 법칙이 아니라 파괴라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런 파괴의 형식에서도 마법은 착실하게 완성되어 간다는 점이었다.
‘판단해!’
뒤에서 달려오는 무서운 예기가 느껴졌다.
드래곤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하지 못하겠다는 듯, 놈들은 마력을 폭발시키며 접근했다.
그 속도가 엄청났다.
물론, 블링크를 사용하면 그만이겠지만, 정우의 본능이 외쳤다.
공간 이동만큼은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비록 자신에게 패배했다고는 하나 드래곤이었다.
마법의 종주라 불리며, 인간에게 마법을 가르친 선생이라고까지 불리는 존재.
이런 형식을 봤을 때, 놈은 분명히 자신의 마법에 대응할 준비를 끝낸 게 틀림이 없었다.
‘…날 반겼다. 기다렸다는 거야.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드래곤 역시 마법사다….’
수많은 마법이 결계처럼 형성되어 있는 레어는 마법사의 탑의 완성형이었다.
후웅!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아무르타트의 머리 위로 커다란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역시나 파괴된 형식.
하지만 그중에서 한 가지가 정우의 시선에 박혔다.
‘저건…….’
정우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소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