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최후의 용 (5)
마력을 모은다.
끌어당기는 성질이 너무 강해 흩어진다.
스킬을 사용한다.
호흡에 디스펠이 가미된 모양인지, 연신 스킬이 해제된다.
공간이 일그러진다.
블링크도 불가능했다.
남은 건 육체적인 능력뿐.
하지만 몸을 끌어당기는 호흡은, 마력이 흩어지는 플레이어의 모든 것을 장악해 버렸다.
너무도 오랜만에 느끼는 무력감에 대마법사는 지팡이를 툭, 떨구고 손을 늘어트렸다.
허탈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뇌신이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면 저 들숨에 딸려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버티는 게 어려웠다.
울컥.
놈의 목울대가 꿈틀거린다.
그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마력의 양은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 정도였다.
브레스.
드래곤이 가진 최고의 무기이자, 파멸의 숨결이라고까지 불리는, 대마법을 뛰어넘는 공격.
뇌신과 대마법사는 허탈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이건 견딜 수 없다.
아니, 피하는 것조차 무리다.
그런 판단이 둘의 생존 의사를 산산이 조각내 버렸다.
오히려 최강자였기에.
상대와 자신의 격차를 절감해 버렸다.
이게 몬스터라고?
이게 던전 브레이크로 등장한 괴물이라고?
뇌신은 굉장히 허탈했다.
자신을 필두로,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다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게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전멸.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의 행성이 아닌, 몬스터의 행성이 될 테니까.
쩌억!
목울대를 가득 채웠던 마력이 이내 벌어진 입가에 맺힌다.
모든 건 순식간에 벌어졌지만, 최후를 직감한 사고가 확장되면서 시간의 체감이 느리게 변해 버렸다.
뇌신은 그것조차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느림 속에서.
‘왜 또 뭔가가 깨달아지는 건지…….’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벽 하나를 부수고 있다는 게 굉장히 화가 났다.
더 아쉬워졌으니까.
죽음이라는 것에….
대형 트럭을 일자로 세워 놓은 것보다 더 커다란, 입안에 맺히는 푸른빛은 지옥의 그것과 같았다.
뾰족한 이빨 사이의 불길이 이윽고.
크롸라-!
놈의 입에서 뿜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로지 푸른빛만이 남았다.
압도적인 마력의 위용.
얼핏 자신이 그토록 담고 싶었던 뇌전이 그곳에 담겨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대마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순간.
[ 직업 : 마도사 ]
그녀 역시 엄청난 깨달음을 얻고, S급의 경지를 벗어났으니까.
문제는.
‘…그래도 불가능해.’
여전히 저것을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대로…….’
“막는다!”
“죽을 것 같으냐!”
두 S급은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한 발 내디딘 깨달음을 통해 마력을 운용했다.
찰나의 순간.
뇌신의 몸은 번개로 가득 찼고.
대마법사의 앞엔 투명한 방패가 형성되었다.
“뇌룡의 호흡!”
“앱솔루트 베리어 (Apsolute Barrier).”
순식간에 완성된, 대마법 이상의 마법들.
절체절명의 순간에 완성한, 초월적인 능력.
그들의 재능은 진짜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아니었다.
파지지직, 푸슷!
세상을 뒤덮을 것처럼 쏘아지던 번개가 푸른빛에 닿자마자 소멸한다.
모든 걸 막을 것 같던 방패가 푸른빛에 닿자마자 깨어진다.
약간의 유예.
그것이 경지를 넘은 두 S급이 번 유일한 소득이었다.
극심한 절망감에 휩싸인 둘이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젠장.””
푸른빛이 둘을 뒤덮었다.
* * *
“넌 안 돼.”
“……!”
자신의 말에 곧장 공간 이동을 전개한 정우를 따라 이동하려던 메아리가 세계수의 말에 멈칫했다.
“급해.”
“이쪽이 더 급해.”
세계수는 아예 메아리의 팔목을 낚아챘다.
아름다운 두 여성의 모습은 그림과 같았지만, 분위기는 남극의 그것처럼 차가웠다.
“아무르타트라며!”
메아리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녀는 똑똑히 기억했다.
자신의 주인을 겁박하던 용의 모습을.
감정을 되찾고 친우에 대한 기억을 되찾은 왕은, 울부짖는 용을 공격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물러났다.
“그게 아니야.”
메아리의 말에 세계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르타트는 어둠에 잠식당했어. 하지만… 그가 노리던 건, 다니엘이 아니었어.”
마지막 기억.
아직 풀지 못한 그것을 온전히 기억하는 건 오로지 세계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메아리가 노려보듯 응시했다.
세계수는 고개를 들어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최후의 용이 결계를 깨고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자신은 그를 품었다.
하지만 한정우가 얻은 기억상에서 아무르타트는 특유의 오만함과 경계를 내려두고 그의 친우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둠에 잠식당한 아무르타트.
그렇지 않은 아무르타트.
두 종류의 기억이 혼재되어 있었다.
“…주인님이?”
메아리의 얼굴이 굳었다.
기억이 다르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자신이 얻은 기억도.
그리고 지식의 신이 밝힌 기억도.
모든 게 다 아무르타트와 세계수의 감염을 먼저 운운했다.
하지만 왜 한정우의 기억만 다른 것일까.
왜 그걸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한정우의 기억이 잘못되었어.”
“…왜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능력을 사용했으니까.”
“……능력?”
“너도 모르고 본인도 모르고 있는 능력.”
“그게 뭐지?”
메아리의 말에 세계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정답을 말했다.
“시간의 축.”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만든다.
정우는 단지 시간의 축을 그렇게만 여기고 있었다.
지식의 신은 어둠을 사용하고, 그것의 능력을 활용할 줄 안다.
시간을 되감아 죽어 버린 몬스터를 부활시킨 후 다시 공격을 일삼는다.
사라져 버린 대지를 고스란히 과거로 돌린 뒤, 배경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가 생긴 것이었다.
던전이라는, 장소가.
“…되감는 시간의 차이 때문에 경계가 생긴 거라고?”
“정확하게 이해했어. 맞아. 지식의 신이 사용하는 던전의 법칙은, 원래는 다니엘의 능력이었어.”
왜 성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가 했더니, 저 모습을 할 때는 대화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메아리는 모호하지 않은 설명에 감사해하며 재촉했다.
감사와 달리 속은 타들어 갔지만.
“‘흐름’의 부정. 타인의 것이 아닌 본인이 얻은 부정의 능력은 바로 그것이었어.”
시간 회귀.
그게 정우가 얻은 어둠의 능력이었다는 소리였다.
“왜 만 년인지 알아?”
“…….”
다니엘이 어둠의 영역에서 보낸 시간은 만 년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처음에 시간은 상당히 빨랐고, 무엇 하나를 얻기까지 천 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 버린 시간이 칠천 년이 넘었는데, 남은 신의 힘을 얻고 막상 어둠의 통로를 봉인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의 반도 채 되지 않았다.
공략 속도가 빨라진 걸까.
그럴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설마.”
세계수의 말을 듣고 생각한 메아리가 경악을 내뱉었다.
“계속 시간을… 돌린 거야?”
세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공략이 빨라진 이유는 간단했다.
실패할 때마다 시간을 돌렸으니까.
시간의 축을 돌리고, 또 돌리며 남은 공략의 시간을 급속도로 단축시켰으니까.
그렇기에 아득하게 여겨진 세월을 앞당길 수 있었던 것이다.
본인이… 아득함을 감내하면서.
“처음에는 나도 몰랐어. 하지만 어둠에 녹아들면서 알게 되었지. 내가 넘긴 묘목의 수 중 하나는 그의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그가 가지게 된 힘.
그리고 그가 가지게 된 각오까지.
“…말도 안 돼. 내가 몰랐는데 어떻게 네가 주인님에 대한 일을 알 수가 있지?”
메아리는 그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다.
그의 영혼과 계약을 맺은 건 자신이었으니까.
자신은 그의 정신을 집처럼 삼아 기거했고, 모습을 감출 때마다 그의 감각을 공유했으니까.
“네가 말했잖아. 영혼의 계약이 깨어졌다고. 그걸 연결한 건 지식의 신이야. 네가 아니라. 그럼 그전까진….”
“……계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그랬지.”
메아리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적어도 삼천 년.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를 그 시간을 합치면 대체 얼마의 시간이 흘렀던 걸까.
친우들을 잊어버렸기에 잃었다고 생각한 감정은 실제론 시간에 마모된 것이었다.
자살을 택해도 수없이 택했을 것 같은 반복을 어떻게 견딘 걸까.
무슨 생각으로, 대체 어떻게!
메아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근데, 어떻게 기억이 다른 거지?”
울먹이면서도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상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삶이 이어졌다고 해도, 그건 다 어둠의 영역 안에서의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메아리의 눈이 커진다.
설마, 설마, 설마…….
“그는 내 예상보다 뛰어나더군.”
세계수는 침음을 흘렸다.
그때만 떠올리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
멸망의 시작점이 되는 아무르타트의 피신이었지만, 지식의 신의 계획을 모조리 무너트리는 건 무리였다.
더불어 결국 실패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아마 계속 생각하고 있을 거야. 모두는 하나. 내가 언급했던 우리의 특성을….”
세계수는 허탈한 미소와 함께 한정우를 떠올렸다.
아무르타트를 막으러 간 그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그는 단 한 번.
한계의 한계까지 시간을 되돌렸다.
그 결과, 무려 어둠의 영역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아무르타트의 대피에도 성공했다.
문제는 그 여파로 인해 어둠에 삼켜졌다는 것이다.
한계까지 쥐어짜진 두뇌와 마력 때문에 정신이 나간 그는, 다시 시간을 돌렸다.
정확하게는.
돌렸던 시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어둠의 영역 안에서의 부정을 이용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의 기억을 수면 아래에 가라앉힌 채로, 꾸준히.
세계수만이 그것을 기억했다.
그가 시간을 돌릴 때 축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본체.
아직 아무르타트에 의해 감염되기 전의, 묘목을 던져 주었음에도 여력이 있을 때의 자신 말이다.
세계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천 년의 도전.
헤아릴 수 없는 횟수의 반복.
그 기억이 넘어오는 순간,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아온 세계수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으니까.
그만큼 다니엘이 남겨 준 기억의 감각은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되었을 때.
세계수는 결심을 했다.
아니, 이미 자신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되돌려졌음에도.
어둠에 남은 묘목의 기억을 긁어모아 움직였다.
“시간은 반복되었지만, 그의 수고를 이대로 무너트리기엔… 용납이 되지 않았어.”
처음으로 세계수는 자연적인 것을 거부했다.
그 여파로 힘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강대한 신성을 지니고 있던 그는 ‘부정’의 능력을 얻었다.
바로 스스로를 거부하는 능력.
오버레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네가 가진 힘은 정확하게는 환상을 부정하는 힘이야. 꿈속에서 살아야 하는 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힘.”
세계수는 정확하게 말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걸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유일한 영웅의 힘을 찢고.
그 힘을 모조리 ‘하나’로 흡수한 뒤에.
하나씩 껍질을 벗겨 내 인간에게 ‘덧씌우고’.
그 위에 환상을 덧씌웠다.
그렇게 환상은 실체가 되고, 존재할 리 없던 마력은 실물이 되었다.
그게 바로 G급 던전이 탄생한 배경이었다.
메아리의 심상에 존재하는 어둠의 영역.
그 안에 담긴 세계수.
벗겨 낸 껍질은 환상을 실체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부정까지 이용하여 한계를 쥐어짜 만든 법칙까지 적용되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너무도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그걸 강탈한 건 지식의 신이었다.
“지금밖에 없어…. 권한을 잠시 빼앗아 놓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네 주인의 마지막 봉인은 절대 풀리지 않을 거야.”
세계수는 알고 있었다.
지식의 신이 어떻게 시스템의 권한을 일부나마 가질 수 있는 건지.
“마지막 기억. 그걸 가지고 있는 건, 탐구하는 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