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76화 (276/293)

276화

-최후의 용 (3)

“하시모토!”

정우는 곧장 하시모토를 찾았다.

휘청거리는 몸으로 다가온 정우의 모습을 본 하시모토가 경악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정우의 상태가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운동으로 다져진 보기 좋은 몸은 사라지고, 해골에 거죽만 붙여 놓은 형태가 되어 버렸다.

메아리가 아니었다면 누군지 알아보는 것조차 무리였을 정도로 사람이 급변했다.

“이, 이게…… 괘, 괜찮습니까?”

“성녀를 찾아.”

정우는 하시모토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말했다.

“성녀… 말입니까?”

“그래. 신성력이니 느끼는 게 다를 거다. 필요하면 힐러를 붙여 주지. 힐러와 유사한 기운을 가진 이들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이를 찾으면 돼.”

목소리마저 갈라졌다.

정우의 상태에 하시모토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붙여 주십시오.”

정우는 곧장 유지석 협회장에게 연락했다.

“힐러가 필요합니다.”

- ……지금 우리도 힐러가 부족해!

얼마나 다급한지 평소와 다른 어투였다.

콰앙, 쾅!

비타를 넘어서 굉음과 고성이 오갔다.

흔들리는 영상 속에 얼핏 보이는 건.

“그리폰….”

A급 몬스터 그리폰이었다.

던전 브레이크였다.

- 자네도 도움을….

“후우. 힐러를 보내 주십시오. 아니, 힐러를 곁에 두십시오. 잠시만 사용하고 다시 보내겠습니다.”

- 자네는……. 후우. 잠시만 기다리게.

후욱, 화면이 바뀌더니 이내 유지석 협회장이 하늘을 날아 한 힐러를 낚아챘다.

“감사합니다.”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정우는 곧장 손가락을 튕겼다.

더불어 비타의 통신을 종료했다.

“…어, 어어? 어! 어?”

말문이 막힌 듯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힐러를 향해 정우가 소리쳤다.

“힐을 해!”

피골이 상접한 정우의 모습에 기겁한 그녀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플레이어 헌터다. 치유가 필요해.”

“저, 정말 헌터이신가요.”

“협회장님과 대화하는 걸 봤잖아.”

“어, 얼굴은 안 보여서… 그리고 너무 급하게 움직여서…….”

“당장 하라고!”

정우의 으름장에 힐러가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나 말고 저 사람에게.”

정우의 손짓에 힐러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시모토에게 다가갔다.

“스, 스킬을 쓰면….”

“써!”

정우의 말에 힐러가 딸꾹질을 하며 힐을 사용했다.

D급 정도의 플레이어로 보이는 그녀의 힐은 영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확실히 파악이 끝났는지 됐다고 말하며 힐러를 물렸다.

정우는 손짓으로 그녀를 이동시켜 버렸다.

다시 전장에 합류한 것이다.

‘힐…… 힐이라.’

치유 능력.

정우도 비슷한 게 있긴 했지만, 그것만큼은 전혀 달랐다.

성녀를 찾기엔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플레이어 세계에서 힐은 굉장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원래부터 치유력이 없었던 정우였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아니더라도 치유력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자를, 정우는 알고 있었다.

바로 세계수였다.

세계수의 힘이, 메아리에게도 이어진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상황을 다시 수복시키고 싶다는 갈망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어.’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다.

스스로가 자각만 한다면, 정신적인 치유는 물론.

‘그곳에서의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겠지.’

전투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집중하는 하시모토를 본 정우가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생체력을 소모한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심상 속에서 느꼈던 통증이 고스란히 몸에 남아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죽을 듯이 아파 온다.

힐러를 부르고 보낸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정우는 초조한 눈빛으로 하시모토를 보았다.

성녀를 찾았을까.

S급의 스킬을 가진 그녀만이 자신을 회복시킬 수가 있었다.

A급 힐러를 부르면 조금은 여유가 생기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성녀도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필요한 건 자신의 회복이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유일했으니까.

“……차, 찾았습니다.”

하시모토의 말에 정우가 휘청거리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시모토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의 기감이 느껴진다.

굉장히 멀리까지 퍼져 있는 기감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감각이 느껴졌다.

힐러의 힐과 비슷한 기운이었다.

‘……조금, 이상한데?’

하지만 문득 정우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거, 저번에 느꼈던 거랑 비슷한데요?”

두 번째 작업이라 약간의 여유가 생긴 하시모토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번에 느꼈던 것.

바로 세계수를 찾을 때를 의미했다.

게이트를 넘어 숨어 버린 그를 찾을 때의 감각과 지금의 감각이 비슷하다는 소리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성녀가 던전 안에 있다.’

지금 성녀는 던전을 공략 중이라는 소리였다.

그제야 자신이 느낀 기이한 감각을 이해한 정우가 순간적으로 허탈한 듯 헛웃음을 흘렸다.

무려 오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능력을 본인이 손에 쥐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로드가 된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그토록 갈망하던 능력.

바로 던전의 통로를 여는 능력 말이다.

단순히 같은 세계의 지점을 연결하던 통로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순간, 정우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던전과 지구.

던전과 던전.

그것들을 연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정우는 들끓는 속을 가라앉히며 손을 휘저었다.

이윽고 벌어지는 통로 너머로.

짐작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벌어지는 통로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인, 바로 S급 플레이어 성녀였다.

성녀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태연하게 통로를 넘었다.

눈앞에서 생성된 외부와 연결된 게이트를 보면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청탑에 발을 들인 성녀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우는 그런 성녀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인사도 없었고.

대화도 없었다.

성녀를 찾았다는 생각에 밝아지던 표정이 오히려 애매하게 변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찡그린 것도 아니며,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오묘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내뱉는 말은, 굉장히 허탈한 투였다.

“……너였군.”

정우의 말에 성녀가 싱그럽게 웃었다.

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팬이 많은 여자답게 아름다운 미소였다.

“또 만났군요. 한정우 씨.”

“네가 어떻게 지식의 신의 눈을 벗어났는지 알겠군. 대체 몇 개의 오버레이를 가지고 있는 거지?”

성녀가 상반된 존재의 등장에도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미소를 보며 정우가 상대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마왕.”

* * *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회복의 순간은 빨랐다.

S급 플레이어.

성녀는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그녀의 치유력은 보통의 힐러와는 궤가 달랐다.

소모되었던 체력이 회복되고.

트롤의 회복력을 연상시킬 정도로 변화가 도드라졌다.

불과 십 분 만에 평소의 상태를 되찾은 정우는 천천히 호흡을 하며 마력을 회복했다.

성녀는 가만히 앉아서 정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자신을 찾았다는 건, 방법을 찾았다는 소리였다.

자신이 본 ‘미래’ 중에 가장 적합한 미래를 선택했다는 의미.

성녀는 미소를 지었다.

“……후우.”

긴 숨을 내뱉은 정우가 성녀를 보았다.

웃는 낯은 검사 때와 비슷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달랐다.

오히려 예전을 떠오르게 하는 미소였다.

나무 인간일 때의 세계수를.

“왜 메아리에게 모든 걸 말하지 않았지?”

정우의 말에 성녀.

아니, 세계수는 메아리를 힐끗 보았다.

메아리는 세계수가 나타난 순간부터 경계의 눈빛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능력을 사용할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오히려 정우는 태연했다.

당사자인 세계수는 말할 것도 없고.

“끝을 예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옥구슬이 굴러가는 음성의 소유자가 마왕과 동일 인물이었다는 게 알려지면, 몇 달은 이 일로 세상이 떠들썩하지 않을까.

정우는 괜히 상상하며 피식 웃어 버렸다.

“끝을 예상한다라……. 지식의 신 때문인가?”

“놈의 진리에 대한 탐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모든 건 탐욕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무슨 탐욕?”

세계수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붉고 작은 입술은 망설임 없이 열린다.

“통로 너머의 세계.”

“……어둠의 마력이 흘러나오던 곳을 말하는 거군.”

“맞아.”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탐욕이라…….”

마법사인 정우도 호기심이 많았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심도 많았다.

의문은 해결해야 했고, 가설은 증명해야 했다.

그렇게 발전된 마법 체계는 대륙의 많은 것을 뒤바꿨다.

외부의 흐름을 고스란히 사용하는 마법 능력만 제외하곤.

서클 법칙만이 남았을 뿐, 마법의 체계 대부분은 다니엘의 것으로 바뀌었다.

향후 몇천 년간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될 정도의 영향력을 떨친 이가 바로 청탑주, 다니엘이었으니까.

당시의 정우도 많은 것에 관심이 있었다.

지켜야 할 게 없었다면 진즉에 어둠의 영역에 들어갔을 정도로.

하지만 지식의 신의 갈망은 기이할 정도였다.

검의 신과 정신의 신을 비롯한 여러 신이 어둠의 영역에서 부정을 이길 또 다른 부정을 깨달은 것과 달리.

지식의 신은 그 부정한 기운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모두는 어둠의 영역을 없애고 싶었지만, 오직 지식의 신만이 어둠의 영역의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두가 죽어 가는 와중에도.

그만이 자신의 호기심을 맹목적인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그게 아니야.”

세계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협조하지 않았을 거야.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지.”

어둠의 마력의 시초는 정령이 닿지 못하는 장소에서부터였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장소. 그렇게 여겼었지.”

그렇기에 지식의 신의 접근을 오히려 반겼다.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지역을, 지식의 신은 어렵지 않게 관리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과연 처음에는 예상대로 움직여지는 듯했다.

대가로 정령을 눈처럼 사용하게 허락했음에도, 경계하지 않았다.

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자신과 동격이었고, 자신과 동격의 존재들은 하나같이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으니까.

어둠의 영역이 커질 때에도.

인간을 삼키고 동식물을 집어삼키며 오염시킬 때에도.

세계수는 지식의 신을 조력자로만 여겼다.

그 믿음이 무너진 건, 대부분의 묘목이 집어삼켜진 이후였다.

“협조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호승심이 강한, 검을 구도하는 자에게.”

신이라 불리는 자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경계의 태세만 취할 뿐, 무거운 엉덩이를 들지 않고 있었다.

그들을 움직인 건 세계수였다.

그 어떤 신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며, 지혜와 자애가 가득한 세계수였기에.

그들은 기꺼이 어둠의 영역으로 발을 들였다.

묘목이라는 최후의 도피처를 하나씩 던져 주면서.

그렇게 파악한 결과.

“어둠의 영역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다.”

세계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리.

그것을 탐하던 자가 세계의 진리를 갈망했고, 자신의 권속이었던 마녀들을 움직여 ‘통로’에 적응시켰으며 그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한 것이다.

“놈이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다른 세계와 비교하기 위해 연 통로를 통해 흘러 들어온 힘이었다.”

비교군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통로는 놀랍게도 대륙을 집어삼킬 만한 존재의 세계와 연결이 되었고, 지식의 신은 충격을 받았다.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에.

신이라 불리는 이들을 압도할 만큼의 기운을 가진 자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탐욕에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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