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74화 (274/293)

274화

-최후의 용 (1)

마력이란 모든 장소에 흐르는 힘이다.

생명이든 아니든, 모든 물체는 마력을 머금게 되어 있으며.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조차 ‘기’라는 형태로 잔상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의학적으로는 당장 사망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한의학으로 생존하거나 완치되는 경우가 있는 것도, 다 사람의 기운을 다스렸기 때문이었다.

기운이란 건 마력의 지극한 일부였다.

기조차도 그런 능력이 있는데, 마력은 그보다 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게 발현이 된 건.

격변의 시대.

바로 G급 던전에서였다.

유수의 많은 학자들이 던전에 대해 연구했고, 마력이란 힘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한 가지 가설을 내놓았다.

마력이란 건, 사람이 원래부터 품고 있었던 어떤 걸 드러냈을 뿐이라고.

이를테면 실체는 본 적이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영혼처럼.

영혼의 힘.

증명하지 못한 가설이었기에 한낱 가설로 남은 그것을, 정우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파고들었던 플레이어 공부를 통해.

‘어쩌면 그게 맞는 가설이 아니었을까?’

메아리는 자신의 힘을 나누어 사용했다.

사용처는 아마도 G급 던전.

새로이 각성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전해 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었다.

그녀가 G급 던전이라는 시스템을 제작한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복수.’

혹은 지식의 신이라는 존재를 몰아내기 위한 반란.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녀는 G급 던전을 만들었고, 플레이어를 양성할 계획을 세웠다.

문제라면 그녀의 계획은 시작부터 일그러졌다는 것이다.

‘그녀의 계획대로였다면 플레이어는 격변의 시대와는 다른 형태로 탄생했을 거야.’

부랴부랴 진압을 위한 능력 각성이 아닌, 차근차근히 성장하면서 목표를 가진 형태이지 않았을까.

탑을 오르는 형태처럼, 층별로 시련을 준다든가.

인간은 모조리 같지가 않다.

선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악한 사람도 있다.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차라리 모든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사이코패스나 살인마라면 단죄가 쉽겠지만.

그룹의 회장은 같은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반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최고형을 선고받는 게 법이었으니까.

법으로는 선인과 악인을 나누지 못한다.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악인과 선인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바로 어둠의 마력, 그것의 유무였다.

세계수는 어둠의 마력을 자신처럼 구분할 능력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악인들이 모일 장소를 만들었고, 그 형태를 만들었으며, 그것을 유지한 채로 세력을 만들고 방치해 두었다.

그것만으로도 악인들은 빌런 협회라는 장소에 속하여 무리를 지었고, 그 결과 악인과 선인의 구분은 어렵지 않아졌다.

어둠의 마력이 왜 그들에게 있는지,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마력이 찢겨 나갈 때 같이 찢어진 게 바로 어둠의 마력이었을 테니까.

재능을 감별한다.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는 G급 던전이, 과연 그 사람이 가진 인성을 판단하지 못할까.

‘꿈’과 ‘환상’이라는 아주 훌륭한 변별법이 있는 메아리가?

그렇기에 나뉜 것이다.

어쩌면 메아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플레이어가 가진 힘의 원천이, 나라는 사실을….’

제작은 메아리가.

분류는 세계수가.

‘……재미없군.’

자신을 두고 벌어진 일에 본인만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불쾌한 것이었다.

‘…내가 찾을 건 메아리가 남긴 흔적이야.’

이곳이 자신의 심상에 남아 있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마력이 영혼이라면, 플레이어를 죽이며 흡수한 그것은 본래의 영혼을 수복하는 단계와 비슷할 것이다.

모든 플레이어를 죽이지 않는 이상 마력을 원래대로 복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정우의 마력은 다니엘일 때의 그것과 비교해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래된 체계인 고리를 사용했음에도.

여전히 빌런보다 많이 남은 플레이어들의 마력을 회수하지 못했음에도.

정우의 마력은 전성기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정우는 그 사실이 신경 쓰였다.

어쩌면 영혼이란 게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자신이 다니엘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음.’

여전히 무(無)에 가까운 이 공간에, 메아리와 같은 그것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정우는 천천히 심상에 집중했다.

자신에게서 넘어간 능력을 메아리가 어떻게 녹여 냈을지 생각했다.

메아리는 그걸 활용해서 G급 던전이라는 체계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넘어온 메아리의 능력도 활용할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이 체계를 만든 게 의외로 메아리라면, 이 체계를 이용할 방법도 자신에게 있어야 정상이었으니까.

본인의 지식으로 편승한 지식의 신과는 다르게, 자신은 일부 권한을 쥔 적법한 관리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걸 찾아야 했다.

‘메아리의 능력과 내 능력 중 일치하는 부분부터 분류하자.’

메아리가 감응력이나 컨트롤을 집중적으로 접목시킨 것처럼.

자신 역시 메아리에게서 익숙한 형태의 능력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금의 소음도 없고 조금의 빛도 없는 이곳은, 지금 당장으로서는 생각의 정리에 엄청난 장점이 있는 장소였다.

정우는 스스로를 더 관조했다.

메아리가 남긴 것을 찾기 위해, 이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모든 것을 집중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스로를 잊어가기 시작했다.

* * *

치지직.

[ ……권한이 막혔다? ]

후퇴한 지식의 신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곧장 사태 파악에 나섰다.

[ 세계수……! 세계수! ]

권한의 제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지만 이건 세계수의 짓이었다.

지식의 신은 이를 갈며 연신 세계수를 곱씹었다.

[ 그것은 나의 것이다. ]

오롯한 지식을 얻기 위해.

단 하나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육체마저 버렸다.

시스템.

부정의 영역 너머의 세계로 자신을 인도할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다.

자의를 가져 쓸모가 없어진 마녀를 던져 주고, 퀸을 성장시킬 방법을 찾기를 바랐다.

[ 다니엘! ]

그의 포효에 주변을 흔들렸다.

검은 공간.

어둠으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공간이 감정을 타고 요동쳤다.

폐허가 된 성.

폐가가 되어 버린 마을의 집.

곳곳에 남은 파괴의 흔적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인기척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장소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생명이라고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는 상관이 없었다.

이곳은 버려진 도시.

최후의 생존자들이 모조리 멸살되어 버린 곳.

[ 나의 권능을 탐하지 말라. 네가 만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 건 나였다. 비루한 서큐버스여! ]

반쯤 부서진 탑이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는 그곳의 중심에서 붉은 안광을 흘리고 있는 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흰 피부.

파충류의 그것을 닮은, 세로로 난 노란 눈동자.

“부수겠소. 주인이여.”

아무르타트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고는 곧장 눈을 감은 채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이동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최후의 눈.

자신이 손에 쥔 가장 강력한 패.

그가 얻은 부정이야말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지식의 신은 아무르타트의 말에 웃었다.

시스템의 전반적인 권한은 막혔지만, 자신만의 권한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 너희의 선택이 악수(惡手)였음을, 땅을 치고 후회하며 자각해라. ]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권한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 때였다.

자신의 지식으로 법칙을 매만진다.

십 년 넘게 정해진 법칙을, 자신의 손으로 무너트린다.

F급 던전에서 A급 몬스터가 나오고.

A급 던전에서 F급 몬스터와 S급 몬스터가 등장한다.

어둠의 마력을 움직여 던전 브레이크를 촉구하고.

인간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뇌리에 담는다.

[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주마. ]

막힌 권한은 플레이어를 통한 눈을 멀게 만들었다.

속속들이 관찰했던 눈이 멀었지만, 벌어질 혼란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예상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통해.

[ 움직여라. ]

상대의 움직임을 짐작했다.

[ 커다랗기만 한, 버려진 나무야. ]

세계수를.

[ 환상 속에 살고 있는, 잊힌 자들의 여왕아. 너의 마지막은 내가 취할 것이다. ]

메아리를.

[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부나방아. ]

정우를.

그는 조소하며 예측했다.

사고가 확장된다.

온갖 지식이 얽히며 상대의 판단을 그려 낸다.

모든 것을 뒤섞은 채로, 게이트를 한국에 집중한다.

청탑.

완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곳을 노리면 놈 역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뇌신과 대마법사.

놈들 주변에 S급 게이트를 몇 개나 던져 주면 발목이 잡힐 것이다.

유지석이나 리는 청탑을 노리는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놈을 돕기 위해 나설 것이다.

놈들의 발을 묶어 두는 것으로 자신 역시 시간을 벌어야 했다.

일시적인 권한 제한이 끝나기를.

세계수를 쫓을 방법은, 한정우가 알려 주었다.

하시모토.

그 인간이 사용했던 방법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세계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게이트를 열어, 수많은 몬스터들을 집어넣으면 충분할 터.

지식의 신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 혼란 속에서 자멸해라. ]

쉬지도 않고 권한을 사용한 지식의 신은 조금 지쳤다.

이토록 지친 건 다니엘을 죽일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지쳤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식으로 남은, 전투의 장면이.

[ 네가 지키려던 장소에서, 널 기다린다. ]

아무르타트를 손에 넣고, 기어이 이곳을 무너트렸을 때.

지식의 신은 모든 걸 손에 넣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봉인된 어둠의 영역.

그 통로의 열쇠를 곧 손에 쥘 수 있을 줄 알았다.

손을 자르고, 두 눈을 뽑아 멀게 만들고.

마력을 느끼지 못하도록 오물과 같은 부정을 뒤집어쓰게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진리를 탐구하는 건 고작해야 지키는 것보다 중요했다.

새로운 진리.

그것이 세상을 발전시킬 것이고,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 낼 테니까.

퀸의 난입이 마지막 순간을 어그러트렸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쁜 게 아니었다.

진리를 갈구하는 갈망을 다스리는 건 익숙했으니까.

오히려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법칙과 삶은 지식의 신의 흥미를 끌었다.

무려 십 년이란 세월을 가만히 두고 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지구의 지식을 수집하느라고.

잃어버린 본체 때문에 넘어가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플레이어를 통해서 얻는 지식은 한계가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을 만족에 가깝게 얻어 내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렇기에 여유를 주고야 말았다.

끝내 얻어 낼 진리를 참는 건 익숙하지만, 당장에 탐닉할 수 있는 진리를 무시하는 건 굉장히 버거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여러 지식 중에서도 과학은 지식의 신에게 새로운 지평이 되었다.

컴퓨터.

IT 등.

그런 개념을 시스템에 적용시켰고, 기어이 문서로만 존재했던 대도서관을 자신의 틀 안에 넣는 데 성공했다.

효율은 극대화되었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이득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제는 세계수의 계획 따위는 두렵지도 않았다.

오히려 위협적인 건.

[ 마법의 신. ]

다니엘이었다.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권한을 침범해 ‘대도서관’을 찾은 침입자.

지금도 무슨 짓을 벌이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자.

[ …어떻게 날 적으로 규정한 거지? ]

지식의 신은 정우의 선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태껏 쌓은 정보를 기반으로 추론해도, 정우가 자신을 적대시할 만한 건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 괜찮다. ‘오러’를 사용하는 것도 알았으니, 대비하면 돼. 네 모든 정보는 기록되어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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