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73화 (273/293)

273화

-메아리의 능력 (9)

“……준비는 끝나셨나요?”

촉촉이 젖어 있는 눈빛이 정우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녀나 자신이나, 각오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정우가 카이롤레움과의 오래된 약속을 행하는 사이.

“…선수를 빼앗겼군.”

지구는 난리가 나기 시작했으니까.

이전의 던전의 변화는 아무것도 아닌 듯이 여겨질 정도로, 던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F급 던전에서 오우거가 등장하기도 하고.

A급 던전에서 슬라임 따위가 나오기도 했다.

체계의 변화.

컨트롤 타워의 오류.

그 짧은 사이에 플레이어들은 격변의 시대에 준하는 혼란을 맞이해야 했다.

전멸, 사상자 발생, 사망.

플레이어란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이들이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진실로 죽음의 사신이 곁으로 다가와 낫으로 난도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각국의 협회는 난리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발생 빈도가 늘어난 던전 브레이크는, 기존의 법칙을 무시한 채 터지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생긴 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예상치 못했던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방어진을 파괴하며 곳곳에서 미해결 지역의 징후를 만들어대고 있었다.

마녀들과 청탑으로 이동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중국에서 카이롤레움을 품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략 여섯 시간 정도.

그 여섯 시간이 가져온 변화는 수십 년의 변화에 못지않았다.

격변의 때에나 등장했던 아포칼립스나 종말이라는 단어가 기사 곳곳에서 등장할 정도로,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안 되겠다. 이지스.”

“말씀하시오.”

“공간 이동 스크롤을 만들어 놨어. 아래층에서 받아가.”

“음…. 던전 브레이크를 중심으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오?”

“그래.”

“알겠소. 하지만 우리의 감지 능력은 왕께 미치지 못할…….”

딱.

정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화악!

짧은 반짝임과 함께 누군가가 나타났다.

“……어, 어어? 여, 여기는…….”

“하시모토.”

“어! 당신은…….”

“대화는 나중에. 던전 브레이크 중에서 플레이어들이 공략하지 못하고 있는 장소를 찾아.”

정우의 심각한 표정에 하시모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하시모토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정우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장소가 바뀐다.

마법진이 그려진 다른 층이었다.

“중간에 앉아.”

하시모토가 주춤거리며 정우의 말에 따랐다.

“인간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몬스터의 흔적을 쫓아. 그리고 알려 주기만 하면 돼.”

“…음. 레이더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하시모토가 눈을 감고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정우는 그것을 느끼며 이지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좌표를 찾는 건 제가 하겠소. 왕께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정도의 역량은 있으니….”

“부탁하지.”

정우는 이지스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다시 공간을 넘었다.

두 눈을 감고 있던 메아리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눈을 떴다.

“주인님…….”

“더 급해졌다. 지금 당장 내 정신을 확인해야 해.”

“위험할 수도 있어요.”

“메아리.”

“……네.”

“확인해야 해. 네가 내 죽음에 관여했다는 건, 그게 당시에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거다. 어쩌면 나도 동의했을 수도 있어.”

“……알았어요.”

메아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잡아 주세요.”

정우는 마법진 중앙에 앉았다.

최상층.

증폭을 위해 만들어 놓은 여러 마법진 중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마법진에 앉은 채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정신을 건드리는 건 굉장히 무서운 일이었다.

메아리가 꿈에 관여하는 능력이 있다곤 하더라도, 정우가 메아리는 아니었으니까.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시작할게요.”

메아리가 두 눈을 감았다.

천천히 마력을 끌어 올렸으며, 그 마력으로 정우를 감싸기 시작했다.

푸른 안개가.

보랏빛 안개를 비롯한 형형색색의 안개가 천천히 정우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윽고 완성된 검은 안개가 정우의 콧속을 파고든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떤 정우가 털썩, 마법진 위에 쓰러진다.

웅웅!

안개가 스며드는 건 정우에게만이 아니었다.

마법진.

그것이 안개와 함께 반응했다.

공명과 증폭.

그것이 메아리의 능력을 보다 강화시켰다.

그게 정우를 이끌었다.

꿈.

그 너머의 세계로.

* * *

“이거 봐. 다니엘. 꽃이 이렇게나 예쁘게 폈어.”

“너…… 내 마음은 아는 거니?”

“위험해! …어머, 다, 다니엘? 지금은 위험한 상황인데…….”

‘……안나.’

안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큐버스인 메아리의 능력 탓인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자신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상대였다.

이성.

바로 안나의 모습이었다.

정우는 마음이 아팠다.

과거의 인연이라 치부하기엔, 정우는 안나를 사랑했었으니까.

꿈속에서나마 행복해 보이는 그녀를 보며, 정우는 지식의 신에 대한 적의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왜 진작 메아리의 능력을 내게 사용할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정우는 지금에 와서야 그게 아쉽게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안나의 모습이 사라지고, 평화롭던 이계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나의 도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작은 세계 속에서도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지켜야 한다, 정우는 그 모습에서 다시 한번 책임감을 느꼈다.

꿈이 변한다.

무너지는 도시.

포효하는 아무르타트.

음흉하게 웃고 있는 지식의 신까지.

풍덩!

눈인지 입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 지식의 신을 노려보던 정우는 마치 물속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세계가 변했다.

무(無).

검은색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

정우는 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인상을 구긴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주에 덩그러니 떨어진 것처럼, 부유하는 몸을 움직여 천천히 이동했다.

메아리의 그것과는 달리, 자신의 정신엔 아무 빛도 없었다.

오히려 더 검고 검었다.

마력이 흐르는 길도.

마력이 뭉쳐진 장소도.

그 어떠한 것도 없이 검게 물들어만 있었다.

정우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이미 메아리의 정신 속에서 한 번 경험해 보았기 때문인지, 정신체의 모습은 보다 쉽게 만들어졌다.

이전보다 선명해진 손아귀를 꾸욱 쥐었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아.’

어둠의 마력이든, 본래의 마력이든.

어떠한 것이든 이 검은 공간에선 느껴지지가 않았다.

자신의 꿈에 이런 것이 있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정우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신했다.

어둠의 영역을 봉인한 봉인 마법진.

그게 메아리에게만 남아 있지는 않을 거란 사실 말이었다.

‘아마 메아리에게 봉인을 한 건 맞을 거야. 다만, 그게 이젠 내게 영향을 미쳤을 확률이 높다.’

이미 맺은 영혼의 계약에, 세계수의 특성이 스며들었으니.

‘내 힘이 증가하면 메아리의 힘이 증가한다는 게 아니었어. 우리는 그렇게 이해했지만, 반대로 메아리를 성장시키는 게 지식의 신으로서는 원했던 방향일 거야.’

메아리의 성장.

시스템이 자신에게 원한 건 그것 하나였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성장.

그것도 몬스터인지 악마인지 알 수 없었던, 초기의 시절부터.

‘메아리의 성장을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내 성장이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영혼의 계약을 맺은 거다.’

지식의 신이라면 메아리의 어둠의 영역 속에 세계수가 있음을 알았을 테니까.

영혼의 계약을 통해 세계수가 영향을 미칠 것이고, 순서에 상관없이 서로의 성장이 각자를 변화시킬 것임을 알았기에.

더불어.

‘……아버지를 구하려고 하던 당시의 나였기에, 오히려 메아리의 성장에 목을 매었었어.’

놈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더불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성장하지 않는 마력 때문에 더 메아리의 성장으로 주어지는 마력이 간절했었던 시기였다.

그 관계가 역전되었던 건, 다름 아닌 빌런 때문이었다.

‘……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세계수가, 자신의 상황을 먼저 인지하고 타개책으로 빌런을 움직인 게 아닐까 하는.

이리들을 사냥한 뒤 얻은 마력은 정우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빌런의 사냥이라는, 헌터로서의 방향.

덕분에 급성장을 했고, 이윽고 던전의 마력까지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지식의 신의 예상을 벗어나게 된 계기가 빌런이었다는 것을, 정우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세계수…….’

때문에 세계수란 단어가 묘하게 다가왔다.

그는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까.

지금의 자신처럼, 단 한 번의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걸까.

정우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중요한 건 세계수가 아니었으니까.

그가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것은 본인만의 가정일 뿐, 확실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납득이 가는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중요한 건.

‘이곳을 파헤치는 거야.’

자신의 정신.

그 안에 숨어 있을, 어둠의 영역과 봉인을 확인하는 게 가장 먼저였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이 정우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왜 마력의 사용이 불가능하지?’

이곳은 자신의 꿈속.

그것도 심상 속의 심상이었다.

메아리의 심상 속에서도 마력을 느끼고 움직였던 것을 떠올리자면 지금의 상황은 굉장히 기이한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움직이는 것도 어려운 이 상황에서 정우가 믿을 건, 메아리의 능력뿐이었다.

‘그녀의 능력을 가져와야 해.’

어렴풋이 깨닫는 정도로는 불가능했다.

적어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세계수의 능력이었다.

‘모두는 하나.’

세계수의 말을 떠올린다.

단순히 후계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어둠의 영역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묘목을 통해 여러 신을 보호했고.

그들의 심득이 사라지지 않고 전해지도록 보호했다.

묘목이 먹힐 때마다 본래의 영역을 지키지 못했던 이유는 세계수가 힘을 잃어서가 아니었다.

묘목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둠의 영역에 완전히 먹히지 않도록.

그 천적과 같은 힘을 사용해서, 현상을 유지하는 데 주력을 다했던 것이다.

즉, 첫 번째 묘목이 어둠의 마력에 먹히기 전부터 세계수는 모종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왜 내게 모든 걸 털어놓지 않았는지는 답답하지만….’

자신과 대화를 나눌 땐 이미 그 계획을 진행 중이라는 소리였고.

세계수는 이곳에서의 계획조차 당시의 연장선으로 이어 나가고 있는 게 틀림이 없었다.

‘…잠깐.’

정우가 멈칫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손에 잡히는 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마력을 거부하는 장소.

그건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다.

아직도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놈에게 패배했을 때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자신의 패배가 이 장소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꿈속.

“……!”

정우는 눈을 부릅떴다.

메아리의 새로운 능력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메아리는 꿈에 관여하는 능력을 본래부터 지니고 있었고, 그 능력을 통해 마력을 흡수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녀는 서큐버스라 불리며, 척결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하며 진화한 그녀는 꿈을 현실에 그려내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성장이 바빠 제대로 사용한 적은 없지만, 그녀의 모든 능력은 ‘정신적’인 것을 기반으로 구현된 실물이었다.

정신의 구현화.

정의하자면 메아리가 얻은 어둠의 능력 중 하나는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의 마력을 찢어 버린 메아리.

영혼의 계약.

세계수의 관여.

모든 건 하나.

모든 것이 얽히고 얽혀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 냈다.

‘…왜 내가 받은 메아리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지?’

다시 생각해야 했다.

자신이 받은 메아리의 능력도 중요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준 능력…….’

본인에게 영향을 받은 메아리의 능력이었다.

‘플레이어의 능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지식의 신의 지식이 아니었다.

막상 자신의 힘을 찢은 건, 메아리였으니까.

시스템.

이것의 주인은…… 오히려 메아리였다.

그녀가 지구에선 판타지로만 여겨지는 그것들을.

그 환상을 구현화하여 플레이어에게 적용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지식의 신을 무찌를 파티가 필요했던 것이다.

G급 던전.

유일하게 체계와 의도가 다른, 그곳을 통해서.

‘…네가 제작자였어.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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