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메아리의 능력 (6)
인터넷을 보고 정보의 바다라 표현한다.
영상, 사진, 글자를 비롯한 수많은 것들이.
0과 1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명령어 하나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이곳 역시 그런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정우는 알아차렸다.
놈이 이런 형태를 띤 건, 지극히 최근의 일이라고.
‘지구의 지식을 습득하여 이런 형태를 만든 거야. 그래서 곧장 컴퓨터가 떠올랐던 거고….’
지식에 대한 욕망이 기도 차지 않을 지경이었다.
게이트 안의 광경은 기묘했다.
모든 게 부서진 것 같기도 했으며 모든 것이 연결된 것 같기도 했으니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놓칠 것 같은 흐름에 정신을 집중했다.
‘……뭔가 분리가 됐어.’
정우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느낌이 변했다.
자신의 감각이 통로를 따라 넘어간 걸 하나의 랜선이라고 본다면, 지금은 두 개의 랜선이 하나로 합쳐진 느낌이었다.
서로 다른 형태의 감각이 공존하는 느낌.
그 순간을, 정우는 분리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윽고 분리가 아닌 합류라는 걸 알아차렸다.
빠르게 반응하여, 그 합류된 패턴에 녹아들었다.
그런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서로 다른 형태의 감각이 얽히는 느낌.
‘…던전이군.’
하나하나의 느낌은 던전이 클리어될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즉, 이곳은 수많은 던전이 클리어되어 합쳐지는 길목이라는 소리였다.
‘제대로 가고 있어.’
정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신만 남았지만, 애당초 마력에 대한 컨트롤은 지식의 신의 법칙을 뛰어 넘어설 정도로 대단한 정우였다.
대략의 감각만 남아 있었지만, 자신의 형상을 그려내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이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면, 세계수의 이동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던전의 생성과 소멸.
즉, 던전이 생성될 때의 게이트와 소멸될 때의 게이트를 하나의 이동 통로로 삼는 거였다.
자신의 통로와는 또 다른 형태의 통로.
관심이 갔다.
‘세계수가 이걸 어떻게 이용하게 됐는지가 관건인데……. 지식의 신의 능력이 세계수의 능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게 가장 타당하겠군.’
세계수. 마왕의 이동 방법을 떠올리던 정우는 어렵지 않게 이들의 공통점을 기억해 냈다.
‘어둠의 마력.’
아무르타트에게 먹힌 세계수와 어둠의 마력을 손에 쥐고 있는 지식의 신.
‘영역의 확장과 후퇴. …그게 게이트의 정체였어.’
정우의 눈가가 흔들렸다.
이제야 게이트의 법칙이 이해가 되었다.
더불어 게이트 너머에 있는 게 무엇인지도.
‘……시간의 축. 그게 이계를 무한하게 반복시키는 원흉이었어.’
시간의 축을 비트는 것이다.
불과 오 년이란 시간이 어둠의 영역에선 만 년이란 시간이 되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건 그보다 더했다.
‘역행. ……어둠의 영역의 시간만 역행하는 거야. 회귀하는 것처럼.’
때문에 무수히 많은 던전이 생성되었고.
동일한 몬스터와 장소가 곳곳에서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놀라운 건, 역행 가운데에서도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역행을 하고 시간을 늘린다.
그 변화된 시간으로 인해 같은 존재가 다른 능력을 지니게 되거나 경험을 지니게 된다.
때문에 반복이라는 개념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놀랍도록 정교한 수였다.
이것만으로도 정우는 지식의 신이 가진 지식의 분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입맛이 썼다.
리치가 된 자신의 육체.
제대로 된 기억이 없는 그가 택한 라이프 배슬의 근원.
그것을 따라 이동한 성과는 솔직히 이것만으로도 대단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우는 이쯤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내친김이다.
이왕지사 모든 걸 다 털어 버릴 생각이었다.
가능하다면 시스템의 설정과 찬탈까지도.
다른 플레이어가 클리어하는 던전의 수는 매우 많았다.
합쳐지고 변화하며 또다시 합쳐진다.
‘하지만… 큰 틀은 항상 둘이다.’
하지만 지상과 수면처럼, 일정한 경계를 두고 두 종류의 개념이 공존하고 있었다.
‘날 막아 낸다.’
자신이 존재하는 곳은 수면 아래.
어둡고 칙칙한, 아스라이 떠오르는 어둠의 영역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저 위는 아니었다.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렇기에 파악을 해보려고 했으나, 예전 어둠의 영역에서 벗어나고자 발악했음에도 영역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것처럼.
‘위에선 날 막아 내고 여긴 날 붙잡는다. 정확히는 내가 이곳의 마력에 편승하고 있으니까… 마력을 붙잡고 있다는 소리겠지.’
정우는 수면 아래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마력을 따라 정신을 이동시켰다.
흐릿했던 경계가 또렷해진다.
그 정도로 많은 던전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것은 기회였다.
무수한 반복.
그것을 겪으며 정우는 이곳에 적응했으니까.
마력의 컨트롤과 감응력, 제어력과 장악력까지 뛰어난 정우는 어렵지 않게 이곳에 녹아들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하지만.
우연찮게도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검은 공간.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묘하고도 익숙한, 흐릿한 감각 때문에.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정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 *
아무르타트에게 집어삼켜진 세계수는 어둠에 감염되었다.
결국엔 묘목처럼 어둠의 영역에서 위태롭게 자신을 지탱하다가, 뭇 신들의 작은 터전으로 만족한 채 소멸해가는 게 수순이었다.
세계수 역시 그런 수순을 밟고 있었다.
흐릿해진 몸체.
드러나지 않는 존재감.
‘…설마 이곳이 아무르타트의 몸속인가?’
문득 정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금방 그건 불가능한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거대한 눈, 그건 분명히 아무르타트의 실체였으니까.
이곳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어둠의 공간이었다.
게이트라는 게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지만, 이곳의 게이트와는 양상이 달랐다.
육체가 넘어가는 그곳과.
정신이 아닌 마력만이 넘어가야 하는 이곳은 전혀 다른 체계였다.
그 마력을 붙잡은 채로 정신이 붙어 있는 건 순전히 정우의 역량이었으니까.
때문에 정우는 자신했다.
이곳을 볼 수 있는 자는, 지금처럼 펜던트를 모체로 이용한 자신이나.
이곳의 영역을 이용하는 자들뿐이라고.
지식의 신.
그리고 세계수.
‘어둠의 영역. 그 안의 세계수라…….’
비슷한 상황을 정우는 몇 번이나 봐왔다.
검의 신, 정신의 신 등을 만났을 때.
묘목에 기대어 최후의 비기를 남기며 숨을 거둔 그들에게서, 정우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이 있는지… 파악해야겠어.’
때문에 정우가 세계수로 움직인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흐름에 저항하기 시작하자 막대한 반발력이 자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정우 역시 어둠의 마력의 흐름을 기억하며 조금씩 마력의 물살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차 세계수와 가까워진다.
세계수의 형태는 그림과 같았다.
선을 그려 놓고 안을 채우지 않은 형태.
흰 종이에 그린 선만이 나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을 뿐, 그 안은 어떠한 색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흰 종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형태.
즉, 선이 끊어지는 순간, 이 그림은 그 의미를 잃는다.
결국, 겨우 목숨만 붙어 있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온 세상을 뒤덮던 푸름은 아예 사라져 있었으니까.
정우는 세계수의 근처에 다다랐다.
흐려진 세계수는 안중에도 없었다.
정우가 찾는 것은, 단 하나.
이곳에 남은 신의 흔적이었다.
더불어 본체에서 얻어질 ‘기억’까지.
정우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세계수의 주변을 훑었다.
‘……그런데.’
찾고 또 찾았다.
‘왜… 없지?’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신의 흔적은 없었다.
부정을 이길 또 다른 부정의 방법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황했고.
그렇기에 찰나의 순간이나마 제어력을 잃었다.
꽉 붙잡고 있던 마력의 흐름에 대한 제어력을.
“……!”
그건 우연이었다.
하지만 필연이기도 했다.
제어력을 놓치는 그 짧은 순간.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에 느껴진 또 다른 흐름을, 잡아냈다.
색이라고는 존재하지도 않고, 물질로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수의 텅 빈 기둥에서.
아주 흐릿하지만 보다 검고.
아주 미약하지만 보다 짙은.
굉장히 모순적인 그것이, 세계수의 기둥 안에서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저건…….’
한번 눈에 들어오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찾아 헤매던 신의 흔적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걸 끝낼 단서를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견한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선택을 해야 했다.
이대로라면 해킹은 실패한다.
지식의 신의 본진을 치는 것과 세계수 안에 담긴 것을 확인하는 것.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식의 신을 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놈을 치지 않았으니, 다시 한번 해킹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이곳을 과연 다음에도 확인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세계수가 온전히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어둠의 영역은 감각마저 부정하는 장소였고, 자신 역시 어둠의 마력을 다루지 않았다면 그런 부정을 이기지 못했을 테니까.
수면 아래에서 위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건 감각이 온전치 않다는 소리였기에, 이 기회는 지금 놓치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분산되는 감각을 하나로 집중한다.
세계수 안의 그것으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형태.
‘봉인’의 형태로.
* * *
메아리는 다급히 움직였다.
자신이 알아낸 것을 제 주인에게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대화를 요청해도 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인의 정신은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메아리는 다급해졌다.
제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그것을 해소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의외로 주인과의 거리는 멀었다.
이탈리아.
그곳에 존재하는 미해결 지역이 주인의 목표였음을, 그녀는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누가 있는 거지? 대체!’
그렇기에 그녀는 경악과 조급함이라는 감정으로 이동에 박차를 가했다.
자신의 주인은 지구의 어떤 플레이어보다 뛰어났다.
뇌신이나 대마법사는 말할 것도 없고, 최강자로 불린 마왕조차 정우에겐 한 수 아래였다.
마왕이 세계수로서의 능력을 온전히 다룰 수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현재로서는 자신의 주인을 위협할 만한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하나.
‘탐구자…!’
진리를 탐구한다는 목적으로 왕의 자리를 찬탈한, 진정한 ‘적’이 아니라면.
지신의 신.
그 삐뚤어진 욕망의 결정체만이 주인의 손발을 자를 수 있을 터였다.
다시 한번…….
으득!
그녀는 땅을 박차고 비행하며 이를 갈았다.
자신의 목숨이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주인의 상황을 온전하게 돌리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주인님……!’
흔들리는 주인의 정신 역시 그녀의 불안감을 고취시키는 이유였다.
한순간에 공간을 넘어 유럽에 도착했음에도 주인과의 거리는 멀었다.
단번에 주인의 곁으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의 생각은 복잡했다.
마왕과의 대화로 얻게 된 정보.
그리고 자신을 관조해서 얻게 된 정보까지.
그것들을 하나로 아우를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주인과의 감각이 이상해지지만 않았다면 한 이틀 정도는 더 생각에 잠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 시간이나 움직인 끝에, 그녀는 겨우 레체에 다다랐다.
‘…마력이 달라. 공략은 성공했다는 소리인데……!’
전혀 달라진 마력과 소란까지 확인하면서 그녀는 다급히 내달렸다.
주인의 기척이 느껴지는 그곳으로.
“……후우!”
저 멀리 드러난 광경을 본 그녀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지스를 위시한 마녀 일족과 뱀파이어 로드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부를 경계하고 있었고, 그 어떠한 존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정확한 건 파악해 봐야 알겠지만, 자신의 주인은 멀쩡했다.
흔들리는 정신과는 다르게.
그런 안도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메아리를 보자, 마녀 일족마저도 눈동자가 흔들렸다.
모두가 바라는 이상형.
그게 바로 메아리의 형체였으니까.
“……주인님은 어떤 상황인 거죠?”
메아리의 물음에 로드가 답했다.
아니, 답을 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을 잃은 듯 집중하던 자의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었으니까.
“모든 걸 알게 된 상황….”
옆으로 움직이며 길을 만든 마녀들 사이로, 주인이 보였다.
슬픈 눈빛을 한, 인상을 구긴 주인이.
메아리는 그 모습을 보며 달려오는 내내 생각하던 고민을 내려놓으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