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69화 (269/293)

269화

-메아리의 능력 (5)

로드의 전투는 난폭했다.

이전의 차분한 검투 실력은 어디로 가고, 난폭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리치왕의 마법은 상상 이상이었다.

온갖 저주가 난무했고.

S급이라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의 마법이 쉼 없이 터졌다.

왜 이곳이 미해결 지역인지 납득이 갈 정도로 리치왕의 수준은 뛰어났다.

‘누구일까.’

하지만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리치왕의 마법이 눈에 익었다.

흑마법이기에 형태는 달라져도 마법이라는 건 결국 어느 정도의 법칙이 있었다.

매직 애로우와 다크 애로우의 형태가 색을 제외하곤 거의 비슷한 것처럼.

결국, 마력의 차이이지 마법의 차이는 아닌 셈이었으니까.

로드와 싸우는 리치의 움직임을, 정우는 가만히 주시했다.

“…….”

가벼운 마음으로 진입한 미해결 지역에서 의외의 고민을 떠안았다.

누구일까.

저 리치의 예전은…….

저 정도 리치는 최소한 대마법사는 되어야지만 가능한 수준이다.

생전의 능력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적어도 안나보다 뛰어난 자가 또 다른 영생을 꿈꿔야지만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 자가 있었나.

정우는 고심했다.

과거, 역사까지 뒤졌다.

여기서 회랑의 기록이 빛을 발했다.

대륙의 역사까지는 아니지만, 수천 년 전의 기록이 세세하게 담겨 있는 마녀의 기록을 차츰 더듬어 나갔다.

몇 가지 후보군이 떠오르고, 그들의 특징을 적은 기록과 대조한다.

안나는 뛰어난 대마법사였지만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열 손가락에는 들지 못한다.

하지만 기이했다.

어떤 기록을 뒤져도, 리치왕의 움직임과는 달랐다.

그런데도 마력의 패턴이 눈에 익었다.

흐름이, 판단이 낯익었다.

“…….”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정우는 이가 부서지도록 깨물었다.

리치왕의 생전 모습을 연상해 냈기에.

새하얀 두개골의 텅빈 눈동자에 맺힌 귀화와 시선이 마주쳤다.

귀화가 천천히 변하여 녹색의 눈동자를 만들어 낸다.

새하얀 뼈다귀 위에 살점이 씌워진다.

이윽고 완성되는 유약해 보이는 인상.

“……X발.”

정우는 기어이 욕설을 내뱉었다.

생각을 멈추자 다시 로드와 싸우고 있는 뼈다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지만, 정우는 방금의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패턴.

눈에 익은 마법의 형태.

“……지식의 신!”

정우는 신음처럼 읊조리며 지식의 신에 대한 분노를 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건.

“…내 손으로 인간을 죽이게 만들었던 거냐! 이 X발 새끼야!”

자신이었으니까.

* * *

후욱, 후욱!

정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미친 듯이 날뛰었다.

전투를 벌이던 둘이 당혹스러운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거리를 벌릴 정도로, 정우는 모든 걸 쓸어버렸다.

몬스터가 없어진 대지는 불모지로 남아 사용 가치가 없어질 정도로, 정우는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했다.

결국, 리치왕만이 남게 되었다.

마력은 무한에 가까웠지만, 화로 인해 참았던 숨이 전력 질주를 한 사람처럼 차올랐다.

정우는 쌕쌕거리며 리치왕을 노려보았다.

리치왕의 반쯤 부서진 지팡이가 로드보다는 정우를 경계했다.

로드는 갑작스러운 정우의 참전에 관람자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두 눈에 담긴 건 걱정이었다.

다니엘이든 정우든, 저토록 큰 격정을 드러낸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무엇이 정우를 자극했던 걸까.

로드는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형태의 마법이 부딪치고, 정우가 천천히 리치왕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문득 둘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이, 안 되잖아!’

몇 번이나 부정했지만, 비슷한 마법이 계속 격돌하기 시작하면서 로드의 얼굴도 경악으로 물들었다.

리치왕.

놈의 생전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윽고 정우의 손에 얇은 목뼈를 붙잡혀 덜렁대고 있는 리치왕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다니……엘?”

로드의 중얼거림에 정우의 볼이 꿈틀거렸다.

이를 앙다물었다.

“저, 정우야! 리치가 설마…….”

“……맞아요. 나.”

로드는 충격으로 피의 검조차 쥐고 있지 못했다.

전생이라지만 친우의 육체가 한낱 몬스터로 전락해 있다는 것은, 자신의 상황과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우는 리치의 마력을 짓누르며 그저 평범한 해골에 가깝게 만들어 버렸다.

죽어 버린 자신의 육체.

그걸 마주하는 광경이 주는 충격보다, 자신을 이렇게 사용한 지식의 신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던전.

이곳을 만든 건 지식의 신이었으니까.

콰득, 파스스스.

결국, 정우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리치왕의 목뼈를 부숴 버렸다.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리치왕의 마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라이프 배슬.

리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그것의 위치를, 정우는 어렵지 않게 파악해 냈다.

한순간에 그것이 묻힌 위치에 도달한 정우는, 염동으로 바닥을 들어냈다.

설정한 반경의 모든 것이 허공으로 떠 오른다.

그러자 지하 깊숙이 묻힌 그것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정우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일그러짐이었다.

조금 전의 일그러짐이 분노로 인한 것이었다면, 이번의 일그러짐은 슬픔으로 인한 것이었으니까.

작은 펜던트.

그것이 리치왕이 자신의 근원으로 삼은 라이프 배슬이었다.

딸깍.

정우는 펜던트를 손으로 가져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열었다.

안쪽의 그림은 이미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흐릿하게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정우의 눈엔 그 모습이 정확하게 보이는 듯했다.

“……안나.”

자신의 친우이자 자신을 항상 믿어줬던 여인.

그녀의 초상화가 담긴 펜던트는, 감정을 잃었던 자신이 감정을 되찾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사랑.

그런 단어로 자신은 감정을 되찾기 시작했으니까.

정우는 펜던트를 손에 쥐었다.

이것이 리치왕의 라이프 배슬이며, 이곳의 핵이다.

이걸 부숴야지만 미해결 지역이라는 던전 브레이크는 멈춘다.

하지만.

‘내가 이걸… 부술 수 있을까?’

안나에 대한 애정이 정우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펜던트 안에서 꿈틀거리는 마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타인에 의해 리치가 된 마법사는 상당한 마력을 잃어버린다는 점을 떠올리자면, 과거의 자신은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 스스로 리치의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왜지?’

의문이 뒤따른다.

자신은 패배했고, 그 결과 처참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리치가 될 기회는 없었고, 그런 기회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리치로 전락할 생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는 자신은 분명히 그랬다.

‘하지만 예전이야…. 내 감정이 온전히 돌아왔을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예전…. 기억이 없는 부분이 문제야.’

복잡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미해결 지역은 어둠의 영역과 비슷하다.

모든 게 똑같지는 않지만, 예상보다 많은 부분이 비슷했다.

그런 곳에 덩그러니 남은 옛 육체의 잔재라니.

정우는 다니엘이 지식의 신의 손에 있었음에 화가 치밀었다.

대부분의 기억을 되찾은 지금이지만, 유독 한 부분이 기억나지 않았다.

최후.

어둠의 영역을 벗어나기 전의 최후.

자신의 목숨이 끝나기 전의 최후.

그 최후만이 유독 기억나지 않았다.

그걸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식의 신을 보고 컴퓨터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방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권능.

아공간이든, 기록을 데이터화하는 권능을 만들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과학조차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면 마법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마법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궤를 달리했으니까.

놈은 지식을 바탕으로 방대한 영역을 구축했다.

시스템.

자신조차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영역.

그걸 온전히 파헤치는 건 과거에도 지금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가지.

정우는 스스로의 강점을 깨달았다.

손아귀에 쥔 펜던트로부터 느껴지는 발악을 억누른다.

봉인에 가깝도록, 존재감을 짓누른다.

마력만 남은 괴물이 된 자신이 연신 지옥에 빠진 영혼처럼 발버둥을 쳐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정우는 생각에 잠겼다.

마법의 신.

과분하다면 과분한 칭호를 받은 자신이었지만, 그 시작점은 하나였다.

마력의 사랑.

당대의 대마법사가 정우를 보고 몇 년 안에 자신의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 예상했고, 마력의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실제로 자신은 몇 년 안에 대마법사가 되었고,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단순히 마력의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엔, 당사자인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마력에 대한 이해도.

마력에 대한 지배력.

마력에 대한 제어력.

마력에 대한…….

마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수많은 조건들이 뭉뚱그려져서 마력의 사랑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정우는 그걸 활용할 생각이었다.

이해도와 제어력.

컴퓨터 안에 꼭꼭 숨겨 둔 정보를 보는 건, 그것의 주인밖에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그걸 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바로 해킹(Hacking)말이다.

지식의 신과 짧게 맞붙을 때, 정우는 놈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어둠의 마력, 그게 너만 있는 건 줄 아냐!”

왜 이제야 생각을 했을까.

마력의 이해도는 자신이 지식의 신보다 우위에 있었다.

세상의 모든 능력과 권능은 모두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놈이 자신의 지식으로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능력과 지식을 꽁꽁 싸맸다면.

“……나 역시 내 능력으로 네 능력과 지식을 찬탈해 주마.”

분노가 싹 사라졌다.

스스로가 리치가 되었다?

심지어 본래의 자신을 잊고 잃어버린 채 놈의 수족이 되었다?

그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겨 둔 펜던트.

그건 과거의 자신이 남긴 유산이었으니까.

어둠의 영역으로 이루어진 미해결 지역.

리치가 되면서까지 놈의 수족이 되어 그 영역에 크게 한 발을 걸치고 있는 과거의 자신.

그리고 그것의 근원이 담겨 있는 펜던트.

더불어 이런 작업을 누구보다 잘 다루는 자신까지.

해킹에 필요한 재원이 모두 모였다.

“……뭘 할 거지?”

로드의 물음에 정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해킹이요.”

“…해킹?”

“우연인지 기회인지 모든 게 모였으니까요. 지금 해야 해요.”

메아리가 무엇을 얻어 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스윽.

정우의 손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로를 만들어 낸다.

훤히 드러나는 반대편 광경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지스였다.

“넘어와. 일족 전부를 데리고.”

정우의 말에 다급히 움직인 이지스가 몇 분 지나지 않고 통로를 넘었다.

“……윽, 여긴…….”

이지스와 마녀 일족은 역한 냄새를 맡는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괴와 죽음의 흔적만이 가득한 이곳의 영향을 받기엔, 정우로부터 얻은 새로운 체계가 너무 훌륭했다.

몬스터이지만 몬스터의 영역을 벗어난, 로드와 같은 이들.

“날 지켜.”

정우의 말에 이지스의 표정이 굳었다.

“…왕을 위협할 정도의 적이 있소?”

“만약을 대비하자. 나는 이제 정신을 잃을 거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지스와 로드. 그리고 레베카를 비롯한 일족은 훌륭한 방어진이었다.

두엇의 리치왕이 다가오더라도 충분히 막아 낼 정도의 전력.

지구의 어떠한 길드보다도 더 뛰어난 전력으로 방어진을 친 후.

정우는 자신을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준비를 끝냈다.

화아아악!

던전이 클리어되면 모든 마력이 또 다른 게이트로 빠져나간다.

수영장의 물을 빼는 것처럼.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펜던트를 장악하기 시작하자 깨어진 것으로 판단했는지, 흔들리던 마력이 한곳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연결되어 있는 펜던트의 마력을 갈무리하며, 정우는 만들어진 통로를 넘는다.

급속도로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한 미해결 지역의 마력을 느끼며.

후욱!

정우의 의식이 게이트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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