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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68화 (268/293)

268화

-메아리의 능력 (4)

끝나 버린 전투 때문에 메아리는 세계수의 영역에서 나와야만 했다.

세계수가 위험해지는 것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주인의 생각도 아니었으니까.

세계수는 다시 자취를 감췄고.

자신은 기절한 하시모토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바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조언가 혹은 보조 역할에서 갑자기 많은 게 바뀐 느낌이었다.

어둠의 마력을…….

‘내 안에 봉인했다?’

메아리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둠의 마력과 자신은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신의 신의 능력을 계승한 건, 어둠의 마력에 대항하기 위한 힘을 계승한 셈이었으니까.

관계가 있다면 그 정도.

메아리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사안이 훅 다가왔다.

메아리가 정우에게 가지도 못하고 생각에 잠긴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한순간의 승리.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승리를 쟁취한 주인의 마음에 고민거리를 한 움큼 더 안겨 주는 건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메아리는.

기억을 되찾은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힘을 되찾을 때나 기억을 되찾을 때의 어설픈 관조가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보겠다는 집념이 가득 담겨 있는 점검이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한 그녀의 상황과는 달리.

[ 퀘스트 ]

갑자기 등장한 메시지와 함께 세상은 다시 한번 난리가 났다.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빼놓지 않고 등장한 퀘스트 때문에.

그리고 그 퀘스트는.

[ 마왕을 찾아라 ]

다분히 의도적이었으며, 작위적이었다.

“……하!”

정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와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이렇게 행동한다? 시스템의 체계가 드러나도 상관이 없다는 소리군.”

늦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놈에게 있어선 더없이 빠른 반응이기도 했다.

전투가 끝나고 후퇴를 한 뒤, 스스로가 자랑하는 눈을 통하여 모든 걸 살펴봤을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발견했을 터였다.

S급에 이르는 스킬의 사용을.

무려 청탑의 증폭 기능이 가미된 추적술이 여태껏 수면 아래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던 한 장소를 발견했음을.

그리고 하시모토가 어떻게 S급의 스킬을 지니게 되었는지 찾아봤을 게 뻔했다.

세계수와 메아리의 조우.

이미 한 번 등장한 추적 방법이었다.

이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S급의 추적술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이름의 탐지 능력이 플레이어에겐 있었다.

그것들을 종합하다 보면 새로운 방법이 등장할 테고, 그 방법으로 마왕을 찾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늦어.”

하지만 정우는 조소를 머금었다.

자신이 그것을 모르고 일을 진행한 게 아니었으니까.

아직 메아리가 오지 않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여전히 느껴졌다.

오히려 더욱 차분하게 변하고 있는 존재감까지.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런 장점이 있었다.

메아리가 자신에게 오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란 것이 정우의 판단이었다.

급한 건 그게 아니다.

플레이어들이 머리를 모으다 보면 몇 가지 주효한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시간이면.

“나도 완성해.”

자신 역시 완성을 목전에 두거나 완성한 후일 것이다.

청탑의 수호자.

카이롤레움을 활용할 방법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카이롤레움은 사신기에 등장하는 청룡처럼 무지막지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잔당에 불과한 빌런들 모두를 찾고 쓸어버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젠 북한의 플레이어들에게 많은 것을 맡겨 두고 중국의 한 지역에 똬리를 틀고 자리했지만, 어렵지 않게 카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가 있었다.

카이는 이를테면 최후의 정령이었다.

세계수로부터 탄생하였으나 세계수의 권속에서 벗어난 최초의 정령이자, 이 세계에 남은 최후의 정령.

그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정우는 카이를 제대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보상이 화끈하군.”

정확한 걸 몰랐다면 자신조차 혹했을 보상이었다.

단번에 S급의 문을 두드릴 정도의 보상이었으니까.

세계는 다시 혼돈의 도가니에 접어들었다.

정우는 퀘스트창을 닫았다.

일정을 점검한다.

마녀 일족과 아버지는 청탑에 자리를 잡았다.

마녀 일족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연구진과 함께 불과 하루 만에 몇 가지 안건을 만들어 냈다.

마녀 일족의 능력은 힘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식이었다.

본인도 모르는 지식의 신의 권속.

덕분에 만들어진 수집의 욕구는 당연히 정보에 국한되어 있었다.

물질이 아니라.

이계와 지구는 다르다.

새로운 체계, 법칙까지.

지구인들이 모르는 법칙이 존재했고, 자신들이 모르는 법칙이 존재했다.

그것들을 서로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청탑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애당초 이들을 활용할 생각이었던 정우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문제는 아버지였다.

“로드는 빛에 영향을 안 받지 않나요?”

“…받지. 미약해서 그렇지만.”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아버지는 가만히 서 있었다.

창문조차 닫아 버린 공간이었지만 아버지와 정우는 아무런 제약 없이 대화를 나눴다.

“오늘부터 움직일 겁니다.”

“…퀸은 기다리지 않고?”

“어차피 저와 연결되어 있어요. 곧 넘어올 거예요.”

세계수와 대화를 나눈 메아리의 속사정이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기다릴 수 없었다.

미해결 지역에서 남은 세계수 묘목도 찾아야 했고.

“그게 왠지 제 발목을 잡을 거 같아서요.”

“…그럼 처리해야지.”

아버지가 정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피를 없애기 전까지는… 그냥 로드로 대하자.”

우스꽝스러운 관계였다.

친구, 아버지, 뱀파이어 로드.

관계가 변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가짐을 달리하자는 소리였다.

적절한 아군.

몬스터이기에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관계.

가능하리라 여기지 않음에도 아버지는 부탁했다.

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이동합니다.”

정우의 말과 함께 세상이 바뀌었다.

“이곳부터 처리하죠.”

“여긴 어디지?”

“이탈리아의 레체. 라임도 좋게 리치의 영토에요.”

* * *

꿈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메아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자신에게 사용하는 기분이 들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환상과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그건 표면에 불과했다.

조금 더 깊이 내려간다.

의식의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세상이 변했다.

환상과 같은 세상이 드문드문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변했다.

환호와 웃음이 사라지고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건.

“…….”

지독하리만큼 고요한 공허.

메아리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 수면 위로 헤엄을 칠 뻔했다.

가까스로 의지를 가다듬어 다시 수면 아래를 유영한다.

메아리는 사방을 눈에 담았다.

공허 사이에서 희끗한 무언가가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을 집중해서 희끗한 무언가를 살폈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것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자 드러나는 건.

“……?”

빛바랜 한 그루의 나무였다.

이게 왜?

그런 의문이 들기도 전에 그녀는 나무 쪽으로 움직였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육체가 정신을 따라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곧장 그 감각에 적응했다.

애당초 꿈은 그녀에게 있어서 고향과도 같은 장소였고, 이곳은 꿈과 비슷한 형태였으니까.

‘그보다는 더 깊고 무겁지만…….’

심층.

그곳을 탐색하는 건 그녀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타인의 꿈에 관여하여 환상을 보여 주는 건, 무의식의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시간의 흐름도 이상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찰나에 불과한지 그녀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그녀는 나무 앞에 도착했다.

묘목치고는 커다랗고 성목치고는 굉장히 작은 나무.

‘세계수….’

그것이 놀랍게도 자신의 능력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이것 때문에 자신의 성장이 필요했던 건가.

여러 표현이 있었지만, 갈가리 찢긴 다니엘의 능력을 이용한 건 자신이라는 세계수의 말이 걸렸다.

예전이라면 세계수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계수는 이미 자신이 아닌 자의 능력을 사용하는 법을 보여 주었다.

오버레이.

빛바랜 나무의 조각을 이리저리 떼어 버리면 그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잠깐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메아리의 눈이 부릅떠졌다.

왜 세계수의 조각이 전혀 다른 능력을 사용하게 해주는 걸까?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도 모르게 빛바랜 나무를 다시 보았다.

이게 자신의 능력에 있었다.

어둠을 봉인한 위치가 자신이고, 그런 자신에게 나무가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였다.

어처구니도 없고 당혹스럽기까지 하지만.

하지만 단서는 이미 주어졌다.

이 이상은 믿음 차이일 뿐이다.

아무르타트에게 먹혀 버린 세계수.

어둠의 마력에 감염되어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린 그.

유일한 성목이었던 그것이, 저게 아닐까.

메아리는 침음을 삼켰다.

오버레이가 세계수의 조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찢긴 주인의 능력을 사용했다는 건…… 설마!’

경악으로 집중력이 흩어지자 곧장 그녀의 위치가 바뀌었다.

심층이 아닌, 표층으로.

마치 잠수가 끝난 사람이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숨을 헐떡이는 것처럼, 그녀는 한참이나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전의 검은 공간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화려하고 밝은 공간을 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 * *

“불길한 것들이 또다시 이곳을 침입하였구나!”

리치의 외침과 함께 시작된 공세에 정우와 로드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내고.

레이스나 벤시를 비롯한 정신계 몬스터가 활개 쳤다.

정우는 한 발 뒤로 빠졌다.

이 자리는 온전히 로드를 위한 자리였다.

뱀파이어 로드의 강점은 피 자체를 무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력으로 자극하여 상대의 피를 조절하고, 그 피로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었다.

피에 대한 지배력.

뱀파이어 로드는 그걸 가지고 있었다.

튜토리얼에서 승리한 아버지가 가진 직업이 바로 뱀파이어 로드였기에, 휘하의 뱀파이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새로운 로드를 섬기기 시작했다.

피의 지배력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로드는 그런 지배력을 적에게도 행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피에 각인된 두려움으로 움직임이 둔해졌을 터.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리치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지배력을 가진 놈의 명령만을 수행하는, 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무생물들이 적이었으니까.

지식의 신이 로드를 어떻게 쓰려고 계획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우는 그런 로드를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몬스터이자 플레이어인 분이었으니까.

세계가 변했다.

던전을 클리어해야지만 적용되던 성장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곧장 반영되었다.

등급에 따라 성장의 폭은 굉장히 더뎌졌지만, 미해결 지역이다.

몇 명의 S급이 모여도 실패하는 오점으로만 얼룩졌던 장소였다.

세이렌의 영토처럼, 누적된 마력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A급 몬스터인 듀라한이 등장하고.

S급 몬스터인 데스 나이트와 검을 맞대고.

또 다른 S급인 리치가 마법을 폭격할 때도, 정우는 돕지 않았다.

리치를 거느리는 리치.

리치왕이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을 존재는 이미 S급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머맨이나 세이렌보다 월등하게 강한 리치의 모습을 보며 정우는 팔짱을 꼈고, 로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리치왕의 주변으로 빼곡한 A급 이상의 몬스터를 보자 문득 인천에서의 일이 생각난 정우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메아리. 언제 알려 줄 거지? 네가 얻은 정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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