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66화 (266/293)

266화

-메아리의 능력 (2)

공간의 균열은 쿠키의 부서짐이나 다름이 없었다.

너무도 쉽게.

너무도 가볍게.

모든 것이 깨어지며 완전을 불완전으로 바꾸어 간다.

구체에 불과한 육신을 지니고 있는 지식의 신이었지만.

‘강하다.’

정우는 승기를 잡지 못했다.

모든 걸 내뱉었음에도.

“…그 능력들은….”

시스템을 탄생시켰다는 게 어떠한 의미인지 절감이 되었다.

구체로부터 터지는 수많은 능력들은 세상의 모든 플레이어의 능력을 모아 놓은 집합체였다.

상반된 능력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툭하면 등장하는 어둠의 마력은 마법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물론, 그건 정우도 마찬가지였지만.

[ 플레이어의 능력. 내가 준 거니, 내가 사용하는 건 무리도 아니지 않나? ]

히죽 웃는 모양새와 눈가를 좁히는 모양새가 동시에 진행되니 여간 그로테스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쪽의 눈알이 연신 번들거렸다.

친우의 눈.

하지만 이젠 적이 된 자의 눈.

숨기지 못하는 살의가 넘실거리며 수많은 능력과 함께 자신을 죽이기 위해 짓쳐 들었다.

그게 정우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과는 달리.

어둠의 마력을 머금은 수많은 마법들은 연신 지식의 신의 능력과 격돌하며 대도서관을 부수어댔다.

수많은 유명한 능력이 지식의 신으로부터 튀어나왔다.

정우 역시 다양한 능력으로 맞섰으나.

[ 키킥. 내가 네가 가지지 못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나? ]

능력의 방대함은 지식의 신의 압승이었다.

모든 플레이어의 능력.

그것을 지식에 녹여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힘은 정우조차 감탄할 정도로 빼어났다.

하지만.

‘그뿐이다.’

수없이 변하는 패턴 속에서도 하나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력의 흐름, 패턴을 보는 건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지식의 신이 시스템을 통해 자신을 엿보았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강력한 힘을 얻기 전의 자신은 너무도 초라했고, 강력한 힘을 얻은 지금 역시 사용한 능력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경계하고 있어. 내 마력 컨트롤을. 당연한 일이겠지만….’

하지만 지식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인 만큼 수많은 지식으로서 자신이 경계해야 하는 정우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수많은 마법?

마법을 다루는 마력?

아니었다.

지식의 신이 경계하는 건 자신의 흐름이 읽히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무수한 능력을 사용하며 정우의 파악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기회는 한 번. 다음 기회를 잡는 건… 굉장히 어려울 거야.’

하지만 정우의 눈엔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조금씩… 조절한다.’

바로 정우가 지식의 신의 패턴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능력에는 상반되는 능력이 존재한다.

카운터, 혹은 천적.

지식의 신의 능력은 방대했고, 그의 컴퓨터 같은 연산 실력은 시기적절하게 상반되는 능력을 꺼내 놓았다.

정우의 마법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식의 신의 판단력 역시 궤를 달리할 정도였다.

정우가 하는 건 그 판단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상대의 반응을 미리 짐작하고, 그에 맞는 능력을 쏟아낸다.

위협적으로.

모든 걸 파괴할 듯이.

지식의 신은 자신의 능력에 반응하여 움직이고, 자신은 그 반응을 이끌어 낸다.

전투는 치열했지만.

실상 치열한 건 전투가 아니라 머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른 것도 아닌, 지식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절대자인데.

하지만 수 싸움.

적어도 마법에 관련하여 진행되는 두뇌 싸움은 정우도 자신이 있는 종류였다.

하나씩 움직인다.

불꽃을 사용하여 냉기를 유도하고, 어둠의 마력을 사용하여 어둠의 마력을 유도한다.

상반되면서도 동일한 능력이 맞붙을 때.

‘어둠의 마력이 곧 자신이라고 했던 말을 후회하도록 해주마!’

그때가 정우가 노리는 한 수였다.

콰징!

기어이 균열로 가득한 공간이 부서진다.

그 여파는 의외로 거셌다.

휘청거리는 정우와는 달리 구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차이가 만들어 내는 작은 틈에 정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패턴을…….’

[ 감히 나와 두뇌 싸움을 벌이려고 들다니. 너무 오만하구나. ]

“……!”

지식의 신이 조소를 머금은 메시지를 보냈다.

[ 네가 어떻게 갈기갈기 찢겨 나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모양인데…. 기억보단 경험을 하게 해주지. ]

그 말과 함께 패턴이 바뀐다.

아니, 패턴이란 게 없어진다.

여태껏 장단을 맞춰 줬다는 듯, 일변한 기세는 정우로서도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이게…….”

더군다나 치욕스러운 점은 놈의 능력의 대부분이 마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대마법과 기초 마법이 연달아 등장했다.

마르지 않는 마력이란 건 정우만이 가진 무기가 아니라는 듯이.

더군다나.

‘마법에 어둠의 마력을 녹여 냈어!’

어둠의 마력이 깃든 마법은 상성을 무시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정우 역시 어느 정도는 가능한 경지였지만, 저렇게 자유자재로 어둠의 마력을 마법에 사용하는 건 무리였다.

그렇기에 노선을 튼다.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승기가 한순간에 뒷걸음질 쳐서 도망쳤다.

당혹과 낭패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었지만, 정우는 그 고개를 짓밟으며 냉정하게 움직였다.

[ 꺾이지 않는 투지라…. 그때도 그랬지. ]

이따금씩 던지는 지식의 신의 말을 무시한다.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동일하다는 말 역시 무시한다.

네 결말은 예전과 똑같을 것이라는 조소를 무시한다.

[ 이번엔 이길 거라 생각하나? ]

그렇게 등장한 말에.

정우의 기세가 일변했다.

[ 직업 : 마스터 ]

* * *

“나…라고?”

메아리의 눈이 흔들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는다며 소리를 질러야 했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복잡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잠깐의 침묵 뒤에 메아리가 물었다.

마왕은 잠시 눈을 감았다.

과거를 떠올린다.

많은 것들이 변해 버린 과거.

고향은 사라졌고, 이따금씩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상대는 모조리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그 유지는 한정우에게 이어졌지만, 그 역시 패배한 건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세계에서 그는 영웅이었고 왕이었다.

유일한 영웅, 유일한 왕.

그럼에도 패배하여 자신의 자리를 찬탈당한 자.

새로운 세상의 포문은 지식의 신이 열었다.

지식의 신의 계획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은 수많은 것을 내어 주어야 했다.

육체를 잃었고.

기억을 잃었다.

격변이 시작되고서야 조금씩 기억을 되찾았고, 자신의 경우엔 눈을 피하고자 손에 피를 묻혀야 했다.

생명의 고귀함을 아는 세계수가 스스로 타락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걸 모조리 말할 수 없다.

지금이야 잠잠한 눈이 언제 활동할지 모르니까.

플레이어가 된 이상, 모든 눈은 플레이어를 따라다닌다.

자신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저 ‘오버레이’로 억누르고 비틀 뿐.

“한정우의 퀘스트를 기억하나?”

“…퀘스트라면?”

“당신을 성장시키는 퀘스트.”

“그거라면 G급 던전에서…….”

말끝을 흐리던 메아리의 눈이 가늘어진다.

침묵이 길어진다.

생각이 복잡하다는 증거였다.

왜 튜토리얼에 자신이 있었을까.

왜 퀘스트는 자신을 성장시키라며 단서를 던져 주었을까.

왜 자신이 굳이 다니엘의 현신인 한정우의 튜토리얼에 존재했던 걸까.

게다가 자신을 구할지에 대한 여부를 그의 선택에 맡겨 두었던 걸까.

복잡한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세계수의 말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이용한 건, 지식의 신이 아니다.”

“당신이다. 슬픔과 기쁨을 주관하며 사고와 환상을 어루만지는 자여.”

다니엘을 죽이고 그 능력을 빼앗아간 건 지식의 신이었다.

하지만 활용을 한 건 자신이었다.

더불어 자신을 부르는 호칭까지.

메아리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마왕의 차분한 눈동자와 시선이 부딪쳤다.

“G급 던전을… 내가 만든 건가?”

자신의 친우이자 주인인 한정우는 언제고 말한 적이 있었다.

G급 던전만이 다른 것 같다고.

F급 이상의 던전은 그저 침입자일 뿐인데, G급만이 전혀 다른 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그 안에서 신음하던 자신.

그런 자신을 구해 준 옛 친구.

지식의 신이 모든 걸 조장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새로운 인연이 신경이 쓰였다.

마왕이 묘한 표정으로 메아리를 보았다.

“맞다.”

그러고는 긍정했다.

G급 던전을 만든 건 메아리였다.

“갈기갈기 찢겨 나간 친우의 능력을 모았지. 정신과 환상의 힘으로. 그걸 새로운 장소에 배합하여 넣은 건, 그대의 능력이었다.”

메아리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었다.

무슨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도무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찢겨 나간 날개.

부러진 뿔.

겨우 목숨만 붙어 있었던 자신의 상태가 G급 던전을 완성시킨 여파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당한 게 아니라.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대가 G급 던전을 완성시켰고, 부유물 같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는 게 내가 아는 전부이니까.”

“내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까지는 모른다고?”

“모르지. 다만…….”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대략적인 건 알겠지. 모든 것의 원상 복구.”

“…그렇겠지.”

마왕이 피식 웃었다.

마왕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피를 흘린 자신이었다.

원상 복구?

가능하더라도 그 자리에 자신은 없었다.

그렇기에 따로 세계수를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식의 신의 손이 닿지 않도록 도망까지 치면서….

“한정우가 진리를 탐구하는 자와 붙고 있을 때가 유일한 기회라……. 패배하는 순간 모든 게 끝이겠군.”

마왕이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메아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패배하리라 보나?”

“그럼? 예전에도 패배했었던 일이다. 너무 빨라….”

모든 걸 잃어버린 채 찢어지던 순간이 떠오른다.

어떻게 패배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패배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이 났다.

“이기기 위해서 무얼 해야 하지?”

“이기기 위해서…….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생명마저 불사를 정도로, 나는 또 다른 나를 키워 낼 생각이었다.”

“그게 주인께 도움이 되나?”

“부정한 기운을 밀어내기엔 나의 기운만 한 것이 없었으니까.”

“지식의 신이 어둠의 마력을 손에 쥐고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푸흐. 그건 그대의 주인이 지금 경험하고 있겠지.”

바람 빠진 웃음을 멈춘 마왕이 말했다.

“어둠의 마력에 당했다. 그것만큼은 분명하구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둠의 영역을 공략한 주인 역시 어둠의 마력을 다뤘어. 부정(否定)의 종류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어둠의 마력이라니.

그곳을 공략했다는 소리는 그걸 점령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둠의 공간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어둠의 마력부터 점령해야 했고, 점령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모든 걸 아우를 줄 알아야 했다.

즉, 손에 넣어야만 어둠의 공간은 점령이 가능했다.

자신의 주인은 분명히 그곳을 봉인하고 점령했다.

모든 걸 손에 쥔 대가로 감정을 잃었지만, 세계를 위협하던 어둠의 영역을 없앤 건 확실…….

자, 잠깐.

메아리는 머리를 둔기로 맞은 느낌이었다.

‘어둠의 마력을 다뤘어…. 근데 왜 봉인했지? 봉인이란 건 본인이 가진 힘의 한계치를 넘어섰을 때 택하는 차선책이잖아. 어둠의 마력을 모조리 다룬 게 맞나? 그랬다면 소멸을 시켰을 텐데……. 왜 봉인이지? 그리고…….’

한정우. 아니, 다니엘은 분명히 친우들에 대한 기억을 대가로 힘을 얻었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던 순간이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그렇게 해서라도 승리하겠다는 간절함이 느껴졌었기에.

모든 걸 끝내고 귀환했을 때, 기억은 돌아와야 했다.

그렇다면 친우들과의 감정 역시 예전을 회복했어야 옳았다.

왜 감정을 잃었지?

왜 봉인이지.

어디에…… 봉인한 걸까.

메아리의 눈이 불안감으로 크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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