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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65화 (265/293)

265화

-메아리의 능력 (1)

- 찾았다!

“……!”

갑자기 들리는 음성에 마왕은 깜짝 놀랐다.

공간이 찢어진다.

자신만의 아지트가 새로운 힘에 의해 조각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게이트의 또 다른 형태였다.

아직 덜 자란 세계수와 도망치는 생활.

그 생활이 익숙한 그조차도 반응이 늦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든 눈이 사라졌으니까.

한정우가, 지식의 신을 공격했으니까.

이곳을 찾을 존재는 없으리라 예상했었다.

그렇기에 방심했다.

“……그댈 잊었구나.”

하지만 자신의 처소를 침범한 존재를 보는 순간, 마왕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단언컨대 단 한순간도 퀸을 잊은 적이 없었다.

지금을 제외한다면.

“…언제 추적에 능해진 건지.”

“추적에 능한 게 아니야. 그런 사람을 사용한 거지.”

허공을 찢으며 등장한 메아리가 눈을 반개했다.

“…오랜만이네, 세계수? 예전과는 다르게 아주 작아졌지만.”

메아리의 눈이 뒤편으로 향했다.

마왕과 세계수의 관계를 모르는 그녀로서는 당연한 시선이었다.

“선물, 잘 받았어.”

메아리의 말에 마왕의 눈가가 좁혀졌다.

“모습이 바뀌었군.”

“모습만 바뀌었을까. 저 안에서 얻은 능력도 거머쥐고 있다고.”

메아리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본래의 능력을 거의 다 찾은 메아리의 외형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졌다.

남자라면 아니, 여자라 할지라도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서큐버스.

그녀의 본래의 종족에 어울리는 외형으로, 모든 사람의 이상형이 되었다.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수많은 얼굴.

수많은 성격.

그녀를 보는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대로 그녀를 볼 테고, 취향에 딱 맞는 외형과 성격. 그리고 능력으로 상대를 대할 것이었다.

혼자서 세계를 장악할 힘.

과거의 서큐버스 퀸 마야에게는 그런 게 있었다.

그 이전에 다니엘의 품에 둥지를 틀었지만….

“정신의 신….”

“그런 이름을, 우리 주인님께서 붙여 주셨던 거 같은데…. 네가 알고 있네?”

본래의 메아리는 성격이 자유분방했다.

다니엘이 정을 준 사람에게만 친근하며, 그 외의 존재에게는 먹잇감을 보는 포식자처럼 굴었다.

다니엘의 무한한 마력이 아니었다면 형성되기 어려운 관계였겠지만.

“이제 좀 털어놓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털어놔? 뭘?”

마왕의 물음에 메아리가 답했다.

“진실.”

“…….”

메아리는 잠깐이나마 일렁이는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주인님의 기억을, 나는 공유해. 새로운 기억을 얻을 때마다 나 역시 완성되어 가는 기억이 있어.”

대부분의 기억을 떠올린 건 정우만이 아니었다.

기억이 곧 힘이 되는 건 지식의 신만이 아니었다.

메아리.

서큐버스 퀸 마야.

그녀 역시 기억을 되찾으면 되찾을수록 막대한 힘을 얻었다.

두 번째 뿔을 얻으며, 그녀는 전성기에 준하는 능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아니, 전성기보다 더 나은 힘이란 표현이 옳았다.

정신의 신이라 불렸던 자의 능력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서큐버스는 본래 정신체였다.

정령과 비슷한 형태로 육체가 없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메아리는 종의 한계를 넘었고, 육체를 현현(顯現)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신체라는 개념을 더욱 확장시켜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

“감정(感情).”

정신의 신의 힘의 일부.

퀸 마야가 친구의 기억 소실을 보면서 얻은 능력.

“네 감정을 건드리기 전에, 모든 걸 말해 줬으면 해.”

메아리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가여워 보였다.

마왕은 육체의 감정이 넘실거리는 게 느껴졌다.

건드리지 않는다?

아니, 이미 그녀 자체가 감정의 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고약하군.”

마왕이 쓴웃음을 지었다.

감정이란 건 묘하다.

적 앞에서도 무장 해제가 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조차 생사대적처럼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한순간의 측은지심은 전 재산을 가져다 바칠 정도로 대단해질 수도 있고, 한순간의 용기는 제 인생을 시궁창에 처박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길로 뛰어들게 만든다.

인간인 이상 가지고 있는 감정.

그것을 건드리는 힘.

마왕은 이미 영향을 받고 있었다.

“너도 다니엘을 알고 있는 거지?”

메아리는 세계수와 친분이 많지 않다.

정우와 함께 본 것이 전부였으며, 따로 친분을 쌓기에 세계수는 너무도 거대했다.

하지만 이 세계.

새로운 육체를 입고, 그 육체에 정신이 깃드는 이 세계에서는 아니다.

이중 던전을 겪은 사람은 적어도 다니엘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중에서도 마왕은 도드라지는 사람이었다.

“세계수. 모르고 있었나?”

“……!”

그 말에 메아리의 눈이 커진다.

커다란 눈이 부릅떠지는 모습은 절로 보호 본능을 일으킬 정도였다.

육체가, 본능이 저도 모르게 반응한다.

“나무 인간이 아니라… 반대라고?”

반의반쯤 자란 세계수가 본체가 아니라 인간의 육체가 본체라는 소리에 메아리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나지막한 한숨은 덤이었다.

“…이러면 계산이 틀어지는데.”

“계산?”

마왕이 물었다.

“네 힘을 이용할 계산.”

“……한정우에게 듣지 못했나?”

“못 들었어. …왜 말을 안 해주셨지?”

메아리가 생각에 잠겼다.

마왕은 그런 메아리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한순간 도주를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제힘을 되찾은 퀸이 자신의 앞에 있었다.

마왕이 가장 견제하는 퀸의 능력은 다른 게 아니었다.

환상.

거짓이 실제가 되는 능력.

그에 반해 자신의 능력은 마왕의 그것에 세계수의 능력이 약간 가미된 게 전부였다.

더군다나.

‘…더 도망칠 곳도 없다.’

이대로 도주하다간 오히려 눈에 노출되고 만다.

결국, 마왕은 어깨를 늘어트렸다.

“한정우가 지식의 신을 공격하러 간 건가?”

“청탑의 목적이 바로 그거였다던데?”

“…그런 것치고 날 찾은 것도 청탑을 이용한 거 같더군.”

“아아. 키우느라 고생 좀 했지. 각성하는 순간에도 능력을 유지하느라… 정말 힘들었어.”

하시모토의 재능은 분명했다.

언제고 이 영역에 도달할 만한 수준이었으니까.

우연치고는 너무도 적절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문제는 능력이 아니었다.

시간이었지.

때문에 메아리가 전담으로 하시모토의 능력 개화에 뛰어들었고.

[ 시간의 축(SS) ]

정우의 능력으로 시간의 축을 비틀었다.

생각으로 마력을 조절하는 것은 정우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덕분에 하시모토는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 모든 시간을 훈련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다.

지식의 신조차 찾지 못한 세계수의 본거지에 침입하는 것.

“분신의 패턴이 아니었으면 못 찾을 뻔했는데… 어차피 입장권 아니었어?”

정우는 피에로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왔다.

모두가 하나.

그 결론을 통해 세계수의 위치를 파악했다.

“…벌써 찾아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정우가 지식의 신의 시선을 끌고, 메아리가 세계수를 찾는다.

이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하시모토를 이용했다.

두근.

마왕은 문득 지금이 기회라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협조였다.”

침음과 함께 마왕이 입을 열었다.

“저것을 확인하고 싶다.”

[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니더냐. ]

“위험이 가로막기엔 저것의 존재가 너무도 흥미롭지 않나.”

어느 날 찾아온, 진리를 탐구하는 자가 말했다.

부정(否定).

그런 기운을 앞에 두고도 그는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한 호기심으로 무장된 상태였다.

“제대로 파악을 하면 없애는 게 더 쉽지 않겠나.”

그 말에 넘어갔다.

부정한 기운을 없애기 위해서, 대륙을 지키기 위해서.

놈의 눈이 되어 주었다.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법인 정령을, 놈과 함께 공유했다.

정령이 보는 것이 곧 자신과 놈의 시선이 되었고, 놈은 매우 흡족해했다.

부정한 기운을 탐색하는 건 어려웠다.

자신은 움직일 육체가 없었고, 정령은 접근하지 못했으니까.

새로운 뿌리를 내려 묘목을 만들었고, 그 힘을 전방위로 퍼트려 부정한 기운을 한곳에 가둬 두었다.

어쩌다 부정한 기운이 결박을 부순 건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제 와서 기억이 나질 않는 건지, 예전에도 기억이 없었던 건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부정의 기운은 온갖 부정을 머금고 폭발했고, 그 여파로 생겨난 대지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으니까.

부랴부랴 힘을 쏟아 경계를 형성했지만, 부정한 기운이 만드는 영역을 막아 내는 건 어려웠다.

어느 정도 저지선이 생겼을 때.

진리를 탐구하는 자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그 기묘한 움직임을 알아내기엔, 너무도 오랜 시간 같은 시선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땐.

자신과 동격의 하나의 목숨이 부정을 지우기 위해 그것의 영역에 뛰어들었고.

목숨을 잃었을 때였다.

다급히 힘을 풀어 묘목을 넘겼다.

하나의 묘목이 사라졌지만, 그것의 영역에서 버티고 있던 자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 깨달음을 전달할 수 있었기에.

그때부터였다.

감염이 시작된 것은.

아무르타트를 거리낌 없이 감쌀 수 있었던 것도, 이미 시작된 감염을 막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최후의 용족의 정신력에 기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묘목을 넘길 때마다 힘이 소실되었다.

묘목 하나에 하나의 존재가 함께했다.

언제고 이 모든 사태를 끝내 줄 이의 등장만을 바라며.

어쩌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한 존재를 떠올리며, 세계수는 난생처음으로 조급함을 느꼈다.

다니엘의 방문은 지식의 신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와 계획한 건, 오롯이 자신과 다니엘만의 것이었다.

문제는 자신이었다.

진리를 탐구하는 자의 지식은 뛰어났다.

한 가지를 보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없었다.

정령의 눈 역시 마찬가지.

놈은 세계수의 사각지대를 정확하게 파악해 냈다.

세상에 가득한 정령이었지만 정령조차 가지 못하는 지역도 있었으며, 매 순간마다 확인하지 못하는 장소도 있었다.

그런 사각지대에서.

놈은 멸망을 담보로 진리의 탐구에 나섰다.

그때, 놈 역시 육체를 잃었다.

하지만 ‘권능’을 거머쥐었다.

놈은 자신이 얻은 권능으로 새로운 지식의 습득을 꾀했다.

각각의 신이 부정 속에서도 각자만의 부정을 습득한 것처럼.

놈이 깨달은 권능은 꽤나 대단한 것이었다.

완성된 모든 계획에 진리를 더했다.

놈은 의외로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터전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낼 정도였다.

그렇게 완성된 세계는 완벽했다.

적어도 부정조차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자신만이 사라지면 완성되는 세계였다.

그렇기에 몰랐다.

신속하게 넘어간 세상에, 의외로 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아무르타트의 감염은 부정한 기운의 독자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진리를 탐구하는 자.

“지식의 신의 행동이었다.”

“…그걸 몰랐다고?”

“모를 수밖에 없었지. 모든 걸 걸어야만 성공할 확률이 높았던 이동이었으니까.”

세계수는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토양을 완성했다.

글로리.

영광의 미래를 꿈꾸며 붙인 이름.

막상 다니엘이 생각했던 이름과는 달랐지만, 적어도 세계수는 그 세계를 그렇게 불렀다.

지식의 신은 새로운 눈을 완성했다.

그것은 정령도, 마력도 아니었다.

어둠.

어둠의 마력 자체가 지식의 신의 눈이 되었다.

때문에 차원 너머의 다니엘의 상황을 인지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데 왜 그걸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지? 같은 편이라고….”

“퀘스트!”

마왕이 메아리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퀘스트?”

“글로리는 작은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놈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해줄 다른 세상을 찾았지. 연결은… 그렇게 생겨났다. 이미 한 번 본 거였으니까.”

지구와 글로리.

이계를 연결한 건 지식의 신이었다.

“놈이 만든 퀘스트는… 내 목숨줄을 쥐고 있어.”

그리고 이 플레이어 시스템 역시.

“더 기억이 나질 않는가, 퀸이여?”

“……무엇을?”

“이 시스템. 플레이어라 부르는 이들의 등장.”

마왕의 눈빛이 묘했다.

메아리가 눈가를 좁히며 생각에 잠겼을 때.

마왕이 말했다.

“놈은 마력의 사랑을 받는 자를 신화처럼 갈기갈기 찢어 이곳의 토대로 삼았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이용한 건, 지식의 신이 아니다.”

마왕의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느낀 메아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설마.”

“당신이다. 슬픔과 기쁨을 주관하며 사고와 환상을 어루만지는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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