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연결 (3)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아파 온다.
마왕은 인상을 구겼다.
신성은 잃었고, 정령력 또한 소실했다.
부정을 받아들인 대가는 컸다.
예상보다 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니엘은 과거 부정한 영역에서 부정한 기운과 전투하여 승리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둠의 마력을 보상으로 얻었어….”
부정에 삼켜져 헐떡대면서도 모든 것을 보았다.
새로이 판을 짜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결말을 머리에 담았다.
아무르타트를 삼키고, 그것의 부정과 함께했다.
자살이라고 봐도 무방한 선택이었지만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또 다른 자신을 터전 삼아 각자의 방법으로 어둠을 몰아내려고 했던 여러 신의 흔적을 얻었으니까.
더불어.
“……연결되어 있으니까.”
어둠을 지운 존재와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세계수는 제 손을 보았다.
인간의 육체를 입은 자신.
이젠 세계수라고 부를 수 없이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에서 가장 많이 남은 건, 다니엘의 흔적이었다.
그의 마력, 그의 능력.
그랬다.
세계수. 아니, 마왕의 능력은 다니엘로부터 비롯되었다.
모든 건.
“그대의 능력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 * *
[ 확신하는군. 그렇다면야 더 이상 속일 필요도 없겠지. ]
찢어진 입의 게이트 속에서 눈알 하나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불꽃 같은 그것이.
익숙하지만 어색한 그것이.
“……아무르타트.”
[ 세계수를 집어삼킨 용이자, 나의 마지막 눈이다. 마법의 신이었던 자여. ]
포기가 빠른 걸까.
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단 한 번의 부정을 끝으로 지식의 신은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긍정하며 태도를 달리했다.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한 번 졌으니까.’
한 번 이겼으니까.
정우는 그 사실 속에서 아무르타트의 눈동자를 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싸웠지만 친우였던 자고, 자신을 위해 인간 세계로 넘어왔던 자였다.
최후의 최후까지 스스로만을 돌볼 줄 아는 용족치고는 엄청난 배려와 양보였던 행동이었다.
그만한 배려와 양보를 보인 자가.
“…네가 어둠을 불러들인 건가?”
이젠 자신을 향한 숨길 수 없는 적의로 눈알을 번들거려대고 있었다.
[ 그것은 태고부터 존재하던 것. 온갖 부정(否定)이 모여 탄생한 힘이자, 지워 버릴 수 없는 존재다. 나는 그것을 발견했을 뿐. 불러들인 건,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인간. 바로 너희들이다. ]
“……!”
정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태고에 존재했던 것.
인간이 만들어 낸 부정의 결정체.
그게 어둠의 마력이라면, 결국 인간을 비롯한 생명을 멸종시킨 건 인간이라는 소리였으니까.
‘…지구도 마찬가지니까.’
정우는 지구를 떠올렸다.
지구 역시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간이 곧 파괴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SF 쪽에서는 지구를 다시 회복시키려면 인간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자주 등장하기도 했을 정도로.
[ 네가 부정을 이긴 것 같나? ]
“…그건 무슨 소리지?”
[ 말 그대로. ]
“난 승리했지. 그래서 귀환하지 않았던가?”
[ 승리? ……키, 키킥. ]
[ 키키키키키킥, 푸하하하, 큭큭, 키키키키키킥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
오싹!
정우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전면을 가득 채우는 메시지 속의 웃음은 광기가 가득했다.
웃음.
아니, 광소(狂笑).
쩍 벌어진 입속에서의 눈동자 역시 그런 느낌으로 번들거렸다.
꽈득!
정우는 이를 갈며 턱에 힘을 주었다.
‘뭔가… 내가 모르는 게 있어.’
반응이 이상했다.
어둠의 영역은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세계수의 묘목을 통해 얻은 기억 속에서도, 어둠의 영역만큼은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그 대단한 신들조차 어둠의 영역에서 목숨을 내놓아야 했고, 자신 역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야만 했다.
[ 만 년. ]
예고 없이 광소를 멈춘 지식의 신이 단 한 단어를 내뱉었다.
정우의 손아귀에서 넘실대던 마력이 형체를 갖추고 있을 때였다.
스르르.
정우의 움직임을 따라 구체가 회전한다.
입인지, 눈인지 알 수 없는 벌어짐 때문에 알게 된 전면이 정우를 뒤따랐다.
만 년.
익숙한 개념이었다.
어둠의 영역에서 버틴 시간이었고, 수없이 전투를 벌인 시간이었다.
[ 지구의 무협 소설에 이런 개념이 있더군. 놀랐어. 내가 택했던 방법과 같은 개념이어서…. ]
‘무협 소설?’
“…무슨 개념이지?”
정우의 물음에 지식의 신이 답했다.
머리가 팍 터져 버리는 감정을 느끼도록.
[ 고독(蠱毒) ]
“이 벌어먹을 새끼가!”
정우의 전신에서 전격이 터졌다.
일순간 뇌신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제우스.
그가 가진 최후의 비기.
번개처럼 변한 정우가 달려들며 번개의 창을 휘두른다.
지식의 신의 말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승리는 고작해야 벌레들 사이에서 독을 농축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정우의 뇌를 후벼 팠다.
달려드는 정우를 향해 막대한 기파가 뿜어진다.
벌어진 입.
안쪽의 눈동자로부터 느껴지는 기파는 정우의 마력을 흩어 버렸다.
푸스스.
“어둠의 마력!”
정체는 확실했다.
부정(否定)의 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기존의 마력조차 없애 버리는 능력.
“그게 너만 쓸 수 있는 건 줄 아냐!”
정우가 검은색의 마력을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고는 찢어발긴다.
부욱, 소리와 함께 찢어지는 검은 마력은 커튼과 같았다.
어느새 모든 걸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부정을 부정하고.
또 다른 부정이 등장한다.
어느새 온통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세상 속에서, 정우는 천천히 한 발씩 나아갔다.
“이대로는 승기가 없을 텐데?”
[ 설마. 나는 모든 진리를 탐구하는 자. 그리고 널 찢어 버린 자. ]
“이젠 숨길 생각조차 없고….”
쿠웅, 구른 발을 중심으로 파장이 퍼졌다.
마력으로 부정한 기운을 짓누른다.
변주나 다름이 없는 그것에 한순간 가라앉은 어둠의 마력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대도서관.
지식의 신의 본체가 존재하는, 지식의 보고.
이곳은 원래부터 놈의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해야 할 건 많았다.
놈은 어둠의 영역에서 살아 돌아온 자신을 찢어 버린 자였다.
아무르타트의 손을 통해서든, 그것이 아니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점이 맞지 않아….’
기억과 기억에 괴리가 생겼다는 점이다.
아무르타트라는 존재가 움직였던 때.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친우들과 함께 최후까지 항전하려던 존재와.
자신이 어둠의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감염되듯 어둠에 삼켜져 세계수의 권능을 찬탈한 자.
그리고 지식의 신의 눈과 육신이 되어 자신을 찢어 버린 존재.
두 존재의 괴리는 엄청났다.
무엇이 진실인지 정우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널 찾아온 거다.”
[ 진위를 알기 위해서? ]
“그래. 진위를 알기 위해서.”
정우의 검은 머리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양손의 마력 역시 검게 물들었다.
하나, 둘.
몸속의 고리가 공명하며 마력을 빠르게 회전시킨다.
어둠의 마력과 더불어 마력이 하나가 되어 증폭을 이룬다.
거기에 더불어.
마녀의 비기, 공명까지 가세한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오래된 기억 속의 자신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염동(念動).
그리고 창.
“그러기 위해 널… 부수고 보겠어.”
[ 실로 오만한 발언이군. 할 수 있다면 해봐라. ]
마력이 폭사했다.
* * *
추적술(S)
“……하! 진짜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하시모토는 감탄을 터트렸다.
불과 반년 만에 S급 스킬이 생겼다.
마력 자체가 높아진 건 아님에도 스킬만 무지막지한 속도로 성장했다.
“가능하니 굴렸어. ……이젠 시간이 없다. 얼른 움직여.”
익숙한 얼굴이 재촉했다.
“알았어요.”
대답하는 순간.
더 익숙한 천장이 하시모토의 눈에 들어왔다.
당장 일어나 외투를 챙긴 하시모토가 집을 나섰다.
“추적술.”
있는 마력 없는 마력을 다 끌어 올려 스킬을 전개한다.
‘집중해.’
플레이어이기 전에 형사였다.
그렇기에 플레이어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구시대 유물처럼 형사로서의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누구는 자신을 손가락질했고, 누구는 혀를 차며 자신의 선택을 아쉬워했다.
플레이어로서의 재능이 충만하냐, 누군가가 그렇게 묻는다면 확신은 할 수 없지만, 나쁘지 않은 재능이었노라 자부할 수 있었다.
튜토리얼에서 가장 우수한 능력을 뽐냈던 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더…… 집중해!’
기회는 한 번이었다.
모든 눈이 쏠릴 그때.
그때를 위해 한 성장이었다.
형사면 어떻고 플레이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쁜 놈을 잡아넣으면 그만인 삶에 수단이 무슨 상관일까.
무엇을 찾는지 모른다.
이 끝에 무엇이 있는지 하시모토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찾아……!’
찾아야 했다.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부터 얻은 기회였다.
하시모토는 플레이어 자체를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플레이어가 등장한 이후, 플레이어를 모방한 범죄도 많이 등장했으니까.
신인류.
어쩌면 빌런들이 더 솔직하게 그런 단어에 집착하는 것일 뿐, 플레이어들은 은연중에 자신을 인간을 초월한 초월자라 여기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중요하지 않다.
자신 역시 이 능력을 사용하고자 개발했고, 이 능력을 통해 무언가를 찾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바로 그거야….’
찾는다.
그 하나만을 스스로에게 강요한 하시모토의 감각이 확장된다.
청탑의 대부분의 능력은 열쇠의 증폭에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증폭’에 집중했다.
열쇠를 사용한 이상.
남은 증폭의 능력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닿았다.
열쇠를 사용하고 남은, 청탑의 증폭에.
파앙!
빛이 터진다.
사고가 확장되고.
세계가 읽힌다.
지면의 생김새, 공기의 흐름, 사람의 흔적까지.
모든 것들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전지(全知).
문득 드는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형사로서의 경험과 마력의 능력이 합쳐져, 하시모토는 수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파악하기 시작했다.
일본을 넘어 한국.
한국을 넘어 중국.
중국을 넘어 유럽에 이르기까지.
‘……조금만 더…….’
갑작스러운 능력의 증폭에 머리가 아파 왔지만, 하시모토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아이를 구했다.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서 활약할 자신이 생겼다.
하시모토는 한정우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퍼져 나가던 능력이 움찔거렸다.
보이지 않지만 자신에게만 느껴지는 무언가에 닿았다.
아프리카 대륙의 어느 한 지점에서.
미간을 찌푸린 상태로, 하시모토는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노력했다.
모든 마력이, 모든 심력이 다 능력과 연결되었기에 오히려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입을 여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메아리 님!’
- 찾았다.
머릿속에 낭창하게 들리는 외마디 음성 덕분이었다.
화악!
좁아지는 감각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하시모토는 싱긋 웃으며 주저앉았다.
“연결…했어. 내 손으로. 미래를…….”
하시모토가 두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