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연결 (2)
치직!
연결이 흐려진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으로 침입을 감행했다.
작은 단서.
하지만 변하지 않을 결론.
“오버레이. ‘세계수’가 계속해서 알리고 싶었던 내용.”
[ ……그건 말이 안 됩니다. ]
“이제 와서? 너도 알 텐데? 덧씌운다는 말이 어떤 건지.”
오버레이란 단어는 세계수로부터 등장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이 능력을 파악했을 당시, 제임스는 채운다는 느낌이 강한 Filling을 사용했다.
그 이유는 찝찝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세계수를 만난 직후, 정우는 어렵지 않게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적합률과 세계수. 그리고.
“네가 한 말에서.”
[ 무엇이 이상했단 소리입니까? ]
“오로지.”
[ ……? ]
“네가 관심이 있는 건 오로지 지식일 뿐이다. 새로운 것. 네 호기심을 충족시킬 무언가.”
처음에는 호의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몰랐다.
지구라는 세계는 지식의 신조차 처음 보는 세계였을 것이고, 많은 지식을 얻으며 호기심을 충족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플레이어라는 게 문제였다.
이 플레이어라는 시스템은 지식의 손에서 탄생했고, 지식의 신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모든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여러 군상이 모인 만큼 다양한 정보가 밀집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정보의 홍수에 만족감을 드러냈을지 몰라도, 플레이어란 체계의 발전은 결국 이계와 같은 형상이 되어 버렸다.
힘이 곧 능력이며, 권력이고, 세계인 세상.
체계가 조금 달라졌다고는 하나 몬스터라는 놈들과 전투를 벌여야 하는 입장에서 이계와 달라질 건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놈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졌다.
바로.
“…덧씌우는 것으로.”
어둠을 가져오는 것으로.
“플레이어를 죽이면 오르는 마력. 원래라면 지닐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지구의 인간들.”
결론은 하나였다.
“…네가 심어 둔 마력의 근원이. ‘나’였나? 지식?”
정우의 마력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쩌억!
클리어된 던전의 세계에 금이 생겨나듯 대도서관의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정우의 막대한 마력은 난폭했다.
[ 말도 안 됩니다. ]
“말이 안 되는 게 더 이상하지. 왜 플레이어를 죽이는데 내 마력이 오르지? 우리 고향에서도 그건 존재하지 않았던 법칙이야.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지.”
얼마 전에 얻은 기억.
어둠 안에서의 기억 중에서 정우는 아니, 다니엘은 거대한 무언가를 ‘흡수’해야만 했었다.
한 지역에서 정우는 어둠의 마력을 잃어버렸다.
‘빛의 신’.
그와 같은 이름이 어울리는 신이 어둠을 계속해서 밀어 놨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다른 신의 것보다 조금 더 넓을 뿐이었지만, 위치는 매우 중요했다.
때문에 정우는 다음을 위하여.
그리고 어둠을 밀어내는 힘을 얻기 위하여 빛의 신의 능력을 흡수했다.
원래라면 빛의 신을 계승하는 것에서 그쳐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우의 능력은 빛의 신의 능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했다.
활용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어둠의 마력조차 다뤘던 그였으니까.
마력을 다루는 능력으로, 빛의 신이 가진 힘과 어둠의 마력을 조합하는 데 성공한 정우의 능력은 더 이상 어둠의 영역에 짓눌리지 않았다.
그렇게 얻은 능력으로 어둠을 밀어내거나 흡수하는 능력을 얻었다.
“네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지. 빛의 신의 능력을.”
왜 세계수의 묘목에 과거의 기억이 담겨 있을까.
그건 간단했다.
세계수의 묘목이 어둠의 영역 안에서도 최소한의 힘을 가지고 모든 걸 목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수는 묘목의 기억을 봉인하듯 감춰 놓았다.
어쩌면, 어둠의 영역이 세계수를 삼키기도 전부터 세계수는 따로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지식의 신의 눈을 피할 방법을 모색하며.
왜 세계수의 묘목마다 여러 신이 존재할까.
왜 신의 유해엔 세계수의 잎사귀가 남아 있을까.
왜 그것들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전해졌으며,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지금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이 지구를 만든 시스템이 ‘나’였나?”
마력의 근원.
이 체계의 능력.
정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어둠의 영역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웠던 수많은 능력이.
플레이어의 능력의 모태가 된 건 아닌지.
“나의 마력. 나의 능력. 그걸 분배한 건… 너의 법칙.”
넘실거리는 마력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균열만큼은 더욱 커지고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네 모든 기억을 종합하여 만든 게 이거지.”
정우는 자신의 상태창을 보았다.
“플레이어 시스템.”
그때까지도 지식의 신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지 않아?”
정우가 천천히 걸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가운데의 구체를 중심으로 걷기엔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눈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 알기 어려운 구체는 정우를 따라 회전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떠 있을 뿐이었다.
정우는 예리한 감각을 유지하며 말했다.
“오로지 지식에만 관심이 있다고 한 놈이, ‘세계수’를 쫓고 있다는 게….”
‘눈을 피한다’고 했던 세계수의 말이 떠오른다.
세계수는 절대 선(善)이다.
그런 것치고 빌런의 입장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만큼은 부정하기가 어렵다.
대치해 본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란 게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식의 신은 혼돈(混沌)이다.
그의 목표는 세상의 안녕이 아니다.
지식의 탐구.
오로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만한 모든 것들이.
“네가 바란 모든 것이었어. 이 사태에서 네가 원하는 게 뭐지?”
지식의 신이 바라는 것들이었다.
스스로가 부정하지 못할 정도로.
오히려 그 부분은 정우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이 기묘한 사태를 주도한 것이 지식의 신임을.
그리고 그는.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거냐!”
자신의 계획과는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지식의 신!”
정우의 부름에 균열이 커지며.
[ 흥미로운 결과군요.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한 건지…. 재미있어. 역시……. ]
[ 하지만. ]
[ 완전하지 않은 힘으로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한정우? ]
구체가 벌어졌다.
텅 빈 그것의 형태는 묘하게도 입을 닮았으며.
“……게이트.”
또 다른 게이트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 * *
고개를 든 마왕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너무 일러.”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사안에 마왕은 조급해졌다.
한정우의 실력이 예상을 웃도는 건 확인을 했다.
하지만 이 사태를 끝내기 위해선 이 정도로는 모자랐다.
마왕은 뒤편을 보았다.
자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작은 나무.
마지막을 위해 스스로를 더럽혀 가며 만든 최후의 보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차라리… 대화를 나눴다면…….”
아쉬움이 밀려들었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 버렸다.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자신이 세계수임을.
이 사태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님을.
그러나 이렇게 빨리 움직이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 기억을 얻은 거지?”
기억.
그것이 관건이었다.
세계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르타트.
유일하게 남은 용족을 이용한, 찬탈의 시기를.
- 그대는…….
자신의 물음에 고개를 드는 용족의 눈가엔 붉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날…… 죽여라. ]
억눌린 음성.
겨우 내뱉는 말까지.
세계수는 용족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러 이 자리를 찾았음을 알았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까지도.
- ……부정한 기운이…….
전신을 가득 채운 부정한 기운은 회복이라는 단어 자체를 앗아 갔다.
되돌릴 수 없다.
세계수는 물론, 아무르타트까지 그 사실을 알았다.
때문에 아무르타트는 최후를 직감하고 세계수를 찾았다.
다니엘이 사라진 세상에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세계수가 유일했으니까.
세계수는 침음을 삼켰다.
오만의 종족이라 불리며 어둠의 영역조차 무시했기에 멸족의 위기를 맞은 용족의 간청은 엄청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아무르타트는 최후의 용이었으니까.
스스로 멸족을 자처한다는 게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얼마나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건지 세계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을 죽여 달라는 아무르타트의 말에.
[ 시간이…… 없다. ]
어둠의 마력은 드래곤 하트조차 집어삼킬 정도로 대단했다.
용의 심장.
무한한 마력의 보고이자 마법의 종주라 불려야 하는 반신 일족.
그 일족의 최후의 생존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결정을 내렸다.
아무르타트는 조급했다.
아찔할 정도의 감각이 전신을 장악한다.
이따금씩 드는 충동은 마약에 찌든 인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문제는 그것이 ‘죽음’과 ‘파괴’라는 점이었다.
모든 걸 없애고 없애, 결국 멸절시키기 위한 충동.
그 충동을 이기고 이 자리까지 나온 것 자체가 아무르타트에겐 엄청난 노력이었으며 성과였다.
세계수는 환한 기운으로 아무르타트를 감쌌다.
하지만.
- 심장을 파고들었구나. 부정의 기운이….
심장을 파고든 어둠의 마력을 없앨 수는 없었다.
드래곤의 생명은 마력으로부터 온다.
심장은 곧 마력이었고, 어둠의 마력을 없애기 위해선 드래곤 하트의 모든 마력을 없앨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 내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니… 그냥 죽여라. ]
아무르타트는 죽음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았기에.
그나마 용이었기에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다.
감염은 너무도 빨랐다.
한 방울의 독이 전신을 갉아먹듯, 조금의 틈이 죽음을 앞당겼다.
-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이냐.
[ 자존심이다. …우정이기도 하고. ]
- 그럼 혹시 그 선택을 조금 유예할 수는 없겠느냐. 최후의 용족이여.
[ 유예? 그게 가능한가. 지금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파괴의 욕구뿐이다. 그대조차 실패하지 않았나. 내 심장을 집어삼킨 독의 제거에……. ]
그 말과 함께 거대한 동체가 휘청거렸다.
울컥, 흐르는 붉은 눈물은 고통의 대가였으며 그것을 견디고 있는 강인한 정신의 증거였다.
세계수는 그 의지를 눈여겨보았다.
- 나는 호기심이 강한 자의 선택이 그릇되었음을 짐작하고 있구나.
아무르타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여력이 없었다.
세계수는 아무르타트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 그와 잡은 손아귀가 썩어 가고 있는 것을, 조급함이 가린 눈으로는 보질 못하였구나.
부정한 기운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애당초 자신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었기에, 세계수는 망설임 없이 부정한 기운과 대치했다.
작은 기운.
하지만 끊임이 없는 그것과의 기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힘의 크기만 놓고 보면 진즉 부정한 기운을 없앴어야 했지만, 이상하리만큼 부정한 기운은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세계의 유지를 신경 써야 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때문에 지지부진한 나날이 이어졌다.
분명히 그랬어야 했다.
- 하지만 균형이 깨어졌다.
[ 유일한 나무여…. 제발……. ]
아무르타트가 바닥에 엎드려 헐떡거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나무 인간의 형태가 변화한다.
지면에서부터 솟구치는 나무뿌리가 거대한 동체의 드래곤을 감싸기 시작했다.
썩어 버리는 뿌리마다 도려내기 시작하며, 세계수는 부정한 기운을 뿌리에 담기 시작했다.
[ ……뭘, 하는, 거야…! ]
아무르타트의 경악을 무시한 채로, 세계수는 그 큰 가지를 파르르 떨었다.
- 부탁하마. 마력의 사랑을 받는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