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청탑 (6)
‘내 손아귀에서 이렇게 가볍게 빠져나간다고?’
뇌신의 얼굴에 은근한 감탄이 깃든다.
전격을 자유자재로 다루기에 붙여진 이명, 뇌신.
제우스, 토르, 라이덴, 주피터.
자신을 향한 수많은 이명 중에서 그가 택한 건, 의외로 한자였다.
뇌신.
그 이명에 걸맞게 알렌 보머는 전격으로 강화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 가장 도드라지는 것이 감각과 신체 능력의 강화였다.
플레이어들이 따로 사용해야 하는 강화 스킬보다 더한 효과를 지닌 스킬이 패시브처럼 붙어 있는 셈이었다.
때문에 알렌 보머는 자신의 반응조차 무시한 채 손을 뺀 한정우가 색다르게 보였다.
“안으로 들지.”
여러 감정이 깃든 미소를 지은 알렌 보머의 안내를 따라 백악관 안으로 들어갔다.
“반갑소.”
미국 대통령과의 악수는 소소한 해프닝에 불과했다.
뇌신이 가진 위압감이 대통령이라는 직함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대통령 역시 그것을 느낀 것인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업무를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커피? 아니면 티?”
“이야기부터 하죠.”
“여유가 없기는…….”
알렌 보머는 허탈한 미소와 함께.
졸졸졸.
“술?”
“술이라고 하기엔 도수가 너무 낮지. 플레이어가 된 뒤로는 취하지도 않더라고. 그게 유일하게 아쉽지.”
양주를 따라 마셨다.
백악관에서 대낮에 양주라.
알렌 보머라는 사람의 성격이 조금은 보이는 듯했다.
“질에게 들었어. 뭐, 그 전엔 지석에게 들었지만.”
“저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기다렸던’ 사람.”
정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조금은 다른 표현이었지만 알렌 보머는 내용이 비슷하니 별 상관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질적으로 나쁜 말도 아니었고.
‘이중 던전 때문인가?’
질 고메즈, 알렌 보머, 유지석.
셋 모두 이중 던전을 거친 사람들이었다.
이전의 자신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사람들.
그렇기에 정우의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알렌 보머는 잔에 담긴 술을 한입에 털어 넣고는 빈 잔을 빙글 손아귀에서 굴렸다.
“피에로에 대해서 아나?”
본론이었다.
“오기 전에 유서린 플레이어가 설명해 준 게 전붑니다.”
“음… 그럼 아주 간략하게만 알고 있는 건데…….”
알렌 보머는 혀를 짧게 차고는 곧장 설명에 들어갔다.
알렌 보머는 빌런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피에로라는 존재에 심각할 정도로 적개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성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과는 피에로를 쫓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직간접적으로 놓친 횟수는 셀 수도 없었다.
그만큼 피에로는 도주에 능했다.
하지만 알렌 보머는 집요했고.
“얼마 전에야 성과를 보았지.”
피에로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알렌 보머의 표정엔 후련함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답답함.
그리고 혼란스러움이 생각을 이기고 얼굴 표면에 드러나 있었다.
“잡은 겁니까?”
“그걸… 잡았다고 해야 하나…….”
묘한 말투였다.
알렌 보머는 다시 술을 한 잔 기울였다.
“이번에 마왕을 봤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확실히 겹치는데.”
“음?”
“아니. 생각 좀 하느라고.”
정우는 알렌 보머의 혼잣말이 신경이 쓰였다.
겹친다?
무엇이?
“놈은…… 여전했어?”
“여전이라면? 저는 마왕의 그 전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아아, 그랬지. 미안.”
솔직히 말하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자신일 테지만, 이곳에서의 마왕은 정우에게도 생소한 인물이었다.
그 나무 인간이 아닌 세계수라니.
도무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분신이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분신 같지도 않아. 오히려 본체에 가깝다면 모를까.’
“그거 때문에 부른 겁니까?”
“…응? 아니. 그럴 리가.”
알렌 보머가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술은 아직 반이나 남아 있었다.
“질의 추천 때문이었어.”
“대마법사 말인가요?”
“그래.”
“무슨 일 때문입니까?”
알렌 보머가 입술을 핥은 후 영상을 하나 보여 주었다.
“…이 사람이 피에로인가요?”
상처 입은 모습으로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영상의 주체였다.
“그래.”
정우는 영상을 주시했다.
“……음.”
이윽고 옅은 신음이 흐른다.
영상 속 장면은 그로테스크했다.
고문의 현장.
그리고 이어지는.
“……초재생.”
초재생의 장면.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처럼 피에로의 상처는 끊임없이 회복되었다.
영상 너머로 피가 난무한다.
그럼에도 비명은 없다.
팔이 잘려도 재생이 되고.
눈알이 뽑혀도 재생이 된다.
“……음식은요?”
“먹이지 않았어. 아무것도.”
뜬금없는 정우의 질문을, 알렌 보머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고 답했다.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초재생은 재생력을 극대화시킨 능력이었다.
그 능력을 지닌 대표적인 몬스터가 바로 트롤이었다.
심장이 부서져도 시간만 주어지면 재생하는 괴물.
하지만 그 트롤조차.
초재생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불태운다.
어지간한 플레이어가 트롤을 상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많은 상처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상처가 나는 즉시 재생에 들어가는 트롤의 성질을 이용하여, 막대한 체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초재생은 대단하긴 하나 제약이 존재했다.
자신의 체력.
그걸 대가로 미리 당겨쓰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피에로의 초재생은 특별하다.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에너지원의 공급이 끊겼다는 소리다.
거대한 트롤조차 저 정도의 상처라면 점차 쪼그라드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벌써 십 분이 넘는 시간 동안, 피에로는 여러 신체를 재생시켰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조금 더 지쳐 보이는 게 전부였으니까.
이건 초재생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윗줄의 능력.
“……‘역행(逆行)’.”
“역행?”
‘이걸 어떻게…….’
자신의 능력이었다.
이번에 되찾은 기억 속의 자신의.
* * *
오래전의 일이다.
신전과 사제의 능력을 연구하던 다니엘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신은 전지전능한가?”
그 의문의 시작은 본인의 성장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신성력이라 부르는 능력이.
바로 마력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면서부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밀한 감각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 높은 감각이 신성력의 정체를 짐작하게 해주었으니까.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병을 고치는 능력.
그건 가히 신의 능력이라 부를 만했고, 신성력이라 칭할 만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알았다.
그 또한 마력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자신이 있었다.
신성력이라는 이름의 마력을, 낱낱이 뜯어 파헤칠 자신이.
다니엘이 서큐버스의 성을 찾은 건 그즈음이었다.
신성력에 관심이 가니 자연스럽게 반대되는 개념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으니까.
기운에 있어서 천적이란 의미는 ‘대척점’과 같은 의미였으니까.
그곳에서 마야를 만났다.
퀸이 되기 전의 마야를.
그리고 그녀를 거둬들였다.
거뒀다는 표현보다는 함께했다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긴 했지만, 마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다니엘의 채근에 친구처럼 굴긴 했지만, 마야는 하인의 위치에서 다니엘을 섬겼으니까.
마야를 통해 얻은 개념의 확인을 위해, 다니엘은 당시 금지로 유명했던 뱀파이어의 성을 찾았다.
처음에는 기운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음에는 뱀파이어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분노로.
피를 매개체로 저주와 능력을 사용하는 뱀파이어의 존재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신성력의 대척점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놈들이 신성력에 약한 건 사실이었지만.
오히려.
마야의 능력이 더 신성력에 반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다니엘은 마야를 성장시키기로 결정했다.
최후의 서큐버스.
퀸, 마야.
그녀는 철저히 다니엘의 손에서 탄생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성장은 다니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반대의 개념을 파악하고.
사제를 불러 신성력을 파악한다.
하나씩 뜯어보며 대조하는 정우의 연구는 빠르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을 때.
“……완성이다.”
다니엘은 신성력을 손아귀에 쥘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성물(聖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게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다니엘은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여러 업무 처리와 토벌 따위의 일을 바삐 행하긴 했지만.
틈이 날 때마다 연구를 진행했다.
다니엘은 신성력을 다룰 수 있었다.
마력을 변환시키는 것이었으니,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근원.
정령력이 세계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것처럼.
신성력이라는 게 무엇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었다.
다니엘의 연구는 바로 그것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났다.
다니엘로서는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십 년이었다.
천재성이 빛바랜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하는 시간을 견딘 오랜 노고와 집념의 시간.
다니엘은 보답을 받았다.
“……시간. 신성력의 근간은 시간이었어.”
어떻게 이런 결과물이 탄생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어떻게 신성력이라는 마력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건 어렵지가 않았다.
‘감정의 누적.’
그게 바로 신성력의 정체였으니까.
생물은 감정을 지닌다.
마력은 감정에 반응한다.
긍정적인 감정 역시 마력이 반응하여 대기 중으로 퍼진다.
그것의 집합체가 바로 신전에서 말하는 ‘신’의 정체였다.
누적된 시간.
그에 따라 누적된 감정.
즉, 신성력이라는 건 그 시간을 빌려 사용하는 것이었다.
다치지 않았던 때로의 역행.
아프지 않았던 때로의 역행.
역행.
그게 바로 신성력의 진정한 능력이었다.
다니엘은 그 능력을 개화시켰다.
신성력의 근원에 접근한 셈이었으니까 개화는 당연했다.
그 덕분에.
“시간의 축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괜찮겠어.”
시간의 축을 다루기 시작했다.
혼자만이 다른 시간을 사는 능력.
타인의 일 분이 자신의 일 초가 되는 능력.
“궁극에 달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니, 거의 확정적으로 불가능할 거다.”
마야의 질문에 대답하며 다니엘은 신성력을 조금 더 갈고 닦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의 축은.
다니엘이 대외적으로는 알리지 않은, 혼자만의 무기가 되었다.
약간의 차이이지만 시간을 비트는 것으로 오는 이점은 무지막지했으니까.
신성력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여러 강점이 있었다.
하나는 회복력이었다.
저열한 신체 능력은 여전했지만, 회복력은 나쁘지 않았다.
그 회복력을 믿고 친우들이 달려들었다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포기한 건, 즐거운 추억이었다.
다른 하나는 감정이었다.
온갖 긍정적인 감정의 집합체인 신성력의 근원을 손에 넣었으니, 다니엘은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주로 하게 되었다.
그건 친우들과 더 가까워지며,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긍정적인 감정은 곧 마력으로 발산되었으니까.
여러 왕국이 무너지면서도 자신의 영지를 최후의 도시로 여기며 몰려드는 사람들 역시.
“내 마력에 영향을 받은 거야.”
다니엘이 가진 마력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
의문이 든다.
이걸 피에로가 어떻게 지니고 있는 건지.
악의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지만, 빌런 그 자체인 피에로에게서.
‘…익숙한, 감각…. 이건…….’
왜 세계수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지.
“마왕과 얼굴이 똑같아. 능력은 다르지만….”
왜 마왕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건지.
정우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