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청탑 (5)
시간이 흐른다.
그리 길지 않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후아!”
유아영은 마른세수를 했다.
화장이 번질 테지만 개의치 않았다.
화장조차 무시할 만큼 지쳤기 때문이었다.
‘마스크 쓰고 퇴근하면 되겠지!’
마른세수를 한 유아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끝났어!”
청탑이 완성되었다.
남은 건 각 층과 건물 외벽에 그려진 마법진뿐이지만, 그건 한정우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자신의 역할은 끝이 났다.
이 시간을 기다리며 다른 업무도 끝마쳤으니.
“……휴식이다!”
그녀에게 남은 건 휴식뿐이었다.
분명히.
‘오 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런 과거가 짧게 존재했었다.
“저, 유서린 부협회장님이 무슨 일로…….”
유아영의 소속은 더 이상 협회가 아니다.
청탑의 소속이었다.
그럼에도 유아영은 옛 상사를 만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유서린 자체가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기도 했고.
“한정우 씨를 만나러 왔어요.”
“…대표님이라면 일본에 계시는….”
“아뇨. 입국했을 거예요.”
“에?”
“변화가 있었거든요.”
“…변화요?”
유아영의 질문에 유서린은 오늘 아침을 떠올렸다.
[ 변화가 시작됩니다. ‘적합률’을 상승시키십시오. ]
[ 적합률에 따라 새로운 능력을 얻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
[ 적응하십시오. ]
“…모든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뜬 메시지에요. 얼마 전처럼.”
“그런 일이… 있었군요.”
플레이어가 아닌 유서린은 그런 사안을 모르고 있었다.
청탑의 완성에만 매진했기 때문에 보고를 받지 못한 것도 컸다.
일명 전체 메시지는 이전까진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게 격변이라는 단어 뒤로 계속하여 변화를 촉구하며 등장하고 있었다.
유서린은 그게 정우와 관련이 있음을 직감했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세이렌 영토를 공략한 뒤 떠오른 메시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소수의 인원들은 전부 다 정우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하지만 공간 이동으로 세계 전역을 오가는 그의 종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한국이 아니라면.
“청탑이 완성되었죠?”
“…네. 오늘 오전에….”
“기가 막힌 타이밍이군요.”
유서린의 말에 유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청탑의 완성은 정우가 기다렸던 것이었으니까.
“완성이라고 하지만 마법진을 가동해야 하니 대표님께서 직접 오시긴 해야 할 거예요.”
“여기에 온 이유도 그거 때문이에요.”
청탑이야말로 정우를 만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소였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그런 판단은 채 세 시간이 지나지 않아 보답을 받게 되었다.
“……여긴 무슨 일이죠?”
공간 이동으로 나타난 정우가 물었다.
유서린은 나타난 정우를 보며 입을 열지 못했다.
‘분위기가… 또 변했어.’
땀에 젖어 있는 정우의 분위기가 변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이는데?’
신경이 쓰였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정우는 인천에서 마왕과 조우했다.
천 명이 넘는 플레이어를 격살했고, 그 중엔 영웅이라 불리는 S급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초능력자와 대주술사, 아수라까지.
이 사실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충격을 선사했다.
그들이 빌런과 한편이었다는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 충격을 넘어서는 충격과 경악이 있었으니.
바로 한정우란 존재였다.
C급 이상의 빌런들을 천 명이나 상대하고서는 S급 세 명을 격살한 존재.
말도 안 되는 업적을 달성하여 암암리에 뇌신 이상의 존재로 불리며, 마왕의 실질적인 대적자급이라고 칭해진 존재.
‘……아우라가 생겼어.’
강자만이 지니는 분위기가 생겼다.
유서린은 마른침을 삼켰다.
“…메시지가 떴어요.”
정우는 유서린에게서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군요.”
정우의 표정이 굳었다.
“…이번에도 한정우 씨는 메시지를 받지 못한 건가요?”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서린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우만이 계속해서 법칙을 벗어나고 있었으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정우만이 예외였다.
그 사실이 못내 신경이 쓰였다.
“…적합률이라.”
정우는 그 단어가 신경이 쓰였다.
예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에 대한 적합률일까.
‘……한 가지밖에 없지.’
정우는 천장을 보았다.
이건 프로그래밍이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어쨌든 설계와 계획, 그에 따른 진행과 결과가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G급 던전과 각성자.
즉, 플레이어였다.
한순간에 마력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모범 답안’과 같은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건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각성과 능력의 사용까지.
‘눈….’
그걸 설계한 자가 ‘적합률’이라는 걸 들먹일 만한 건 하나밖에 없었다.
‘무엇 때문일까?’
남은 건 이유였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그게 이해가 안 됐다.
지식의 신이 모든 정보를 모았다고는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정말로 지식의 신은 전지(全知)의 신이라고 불려야 했으니까.
그게 아니기에 그는 지식의 신인 것이다.
시점이 두 번이나 달랐다.
그게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왜 적합률이 필요한 걸까.
지식의 신은 여러 눈을 두고 정보를 모았다.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는 눈이라는 건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다.
다만.
‘이계에서만 필요한 것이었어. 그건….’
지구에선 눈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이 시스템에 속해 있는 모든 플레이어가 눈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적합률이라는 건 뜬금없이 등장했다.
0%가 아닌 것에서부터 이미 많은 플레이어들이 진행 중이라는 게 증명이 되었다.
더군다나 적합률에 따라 능력이 약간씩 향상되었으니, 플레이어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날 배제하는 이유는 뭐지?’
이 시스템은 묘했다.
예외가 없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오점도 없음이 입증이 되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메시지를 맹신한다.
메시지에서 나오는 말을 진리로 믿는다.
하지만 정우만이 예외였다.
던전 내에서 성장할 때도.
마력도.
기억도.
그리고 적합률조차.
‘난 예외인 경우가 많았다. 왜 날 배제하는 거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얻은 기억으로 상황을 유추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실질적으로 기억을 얻는 데 필요했던 시간이 하루에 불과했기 때문에 생각만 육 일이 걸린 셈이었다.
그만큼 이번의 기억은 정우에겐 매우 중요했다.
바로 최후까지의 기억이었으니까.
그토록 아쉽게만 느껴졌던….
“그것과 관련해서 가봐야 할 곳이 있어요.”
“…가봐야 할 곳이요?”
“네. 미국이에요. 백악관.”
“백악관?”
여러 상념이 사라질 만큼 놀랐다.
* * *
플레이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는 여러 변화를 맞이했다.
인간을 초월한 인간.
그들의 등장으로 인류는 침입자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게 되었지만.
권력자들은 플레이어의 힘을 탐내며 손을 뻗었다.
막대한 보상.
보장된 성공.
그런 단어에 넘어간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가진 힘의 가치를 알아차린 후 서로의 힘을 모은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게 길드가 탄생했고.
협회가 탄생했다.
협회는 국가에서 전력을 다해 플레이어를 끌어들이며 탄생했지만, 길드는 아니다.
길드는 플레이어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기관이었으니까.
그리고 길드의 힘은 대게 협회보다도 우세한 게 사실이었다.
만약 플레이어들에게 가족이나 친구라는 틀이 없었다면, 세계의 모든 체계가 개편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빌런의 사상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플레이어는 그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어지간한 위치의 플레이어는 국가기관의 공무원을 겁내지 않는다.
경찰이든 군인이든.
하물며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조차.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미국만큼은 여전히 백악관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 나라였으며, 플레이어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정부 기관이었다.
그렇기에 대통령이 가진 위신은 오히려 플레이어 시대에 이르러 더 공고해졌다.
일본의 총리가 막대한 권력을 지녔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대통령이라.”
정우가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미국 대통령이 가진 권력은 어마어마했다.
그 뇌신조차 대통령의 지원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니까.
판단력이랄까.
배팅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미국 대통령은 그게 매우 훌륭했다.
때문에 플레이어를 등에 업고 막대한 권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나?”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무소불위까지는 아니라는 게 유서린의 평이었다.
오히려 뇌신과 대마법사가 굳건히 나라를 위해 헌신한 덕에 생긴 권력이랄까.
하지만 확실히 미국 대통령은 유능했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날 왜 보자는 거지?”
유서린에게 물어봤지만 영 시원찮은 답변만 돌아왔다.
정확히는 자신도 모른다는 의미로.
유서린도 모르는 내용으로 미국 백악관이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 협조를 요청했다면.
“큰 건이지.”
큰 건이었다.
심각하리만큼.
그렇기에 신경이 쓰인다.
더불어 조급함을 느낀다.
유서린은 메시지와 관련이 있음을 예상했지만,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단순한 이유만으로 미국 대통령이 자신과의 대담을 요청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거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만큼의 문제가 발생한 게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왜 자신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정우는 피식 웃어 버렸다.
“가보면 알겠지.”
생각을 정리하느라 회랑에도 진입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억이 주는 충격은 강력했으니까.
그리고 생각을 정했다.
육 일이나 걸렸지만, 충분한 시간이었다.
눈가를 좁힌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좌표는 받았다.
천천히 해당 좌표를 읽는다.
느껴지는 감각으로는 공간 이동을 막기 위한 여러 장치가 되어 있었지만.
‘시험인가?’
별 상관이 없었다.
이 정도 제약은 어렵지도 않았으니까.
공간을 넘는다.
한국에서 미국.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지구의 정반대 편까지 한 번에 이동한다.
그리고 드러나는 건.
순백의 건물.
그리고 정원을 에워싸고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툭툭.
정우는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환대치고는 경계가 심하군요.”
정우의 태연한 음성에 플레이어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미리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짝!
그런 위압감을 뚫고.
누군가가 박수와 함께 등장했다.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강하군….’
짧은 평.
하지만 당연한 평이었다.
정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대를 알아보았다.
왜 모를까.
현재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인데.
“알렌 보머….”
“드디어 만나는군. 미스터 헌터.”
큼지막한 손이 악수를 청해 왔다.
알렌 보머는 정우의 손을 마주 잡으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대통령이 아니었군요. 절 부른 이가.”
“아니. 맞아. 대통령. 내가 먼저 마중을 나온 거야. 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 말에 정우는 슬그머니 손을 뺐다.
알렌 보머는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