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청탑 (1)
달그락.
유아영은 두 명의 과학자가 전해 준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조심스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나무 조각을 감싼 케이스는 아크릴이 아니었고.
제임스 밀러가 특별히 제작한 물건으로 강화 유리의 몇 배나 되는 강도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힘으로 부수는 건 때려죽여도 무리였다.
그렇기에 만지작거리는 손길엔 조심성은 없었다.
“이게 그 나무인가?”
제임스 밀러와 닥터 브라운은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의 세이렌 영토를 공략한 뒤 등장한 나무를 파악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는 두 과학자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일 것이다.
불과 이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결과물을 들고 온 게.
“근데 이걸 한정우 씨가 본다고 알 수 있을까?”
“…뭔데요?”
“……흐억! 까, 깜짝이야!”
혼잣말을 하던 유아영이 기겁을 했다.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아까처럼 엎어지는 참사는 면한 유아영이 놀란 심장을 쓸며 소리를 질렀다.
“놀랐잖아요!”
“…음.”
유아영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던 두 개의 케이스가 허공을 둥둥 떠서 이동하는 장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야? 왜 사과가 없지?’
상대에게서 사과의 말이 나오지 않자 유아영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과를 받지 않아서 기분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항상 예의를 차리던 사람이 돌연 다르게 행동하니 신경이 쓰이는 수준이었다.
‘피로해 보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반갑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태도며.
여유가 없어 보이는 모습까지.
유아영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정우는 유아영이 들고 있던 물건을 확인했다.
“……이걸 누가 전해 준 거죠?”
“아, 제임스와 닥터 브라운이에요.”
정우가 잠시 유아영을 보고는 다시 케이스로 시선을 돌렸다.
“하나는 세계수 껍질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수 껍질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물체였다.
유서린이 전한 말과 ‘권능’이 잔여물처럼 흐릿하게 남아 있는 내용물을 조합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세계수의 껍질로 오버레이를 만든 건가.”
오버레이?
유아영은 놀랐다.
자연스럽게 세부 정보까지 접하게 된 그녀였기에 오버레이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밀러가 언급하기도 했고.
오버레이를 접한 뒤로 제임스 밀러는 오버레이에 대한 연구를 주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결국, 미뤄 두었던 던전 공략에 매진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오버레이는 오버 스펙, 그 자체였다.
그런 오버레이가 저런 나무 조각에 적용되어 있다니.
유아영은 정우의 혼잣말을 들으며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혼자만의 상념에 빠졌던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군요.”
“…인사가 참 빠르시네요.”
“정신이 없었거든요. 청탑의 공사도 마무리 단계인 거 같던데요.”
“맞아요. 탑을 만든다고 하신 이후로 진행한 여러 사업은 궤도에 올랐어요. 청탑의 사업은 마치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아서 돈 걱정은 할 필요도 없고요.”
게다가 JM 그룹이 통째로 넘어오면서 청탑은 투자가 필요 없는 회사가 되어 버렸다.
‘회사라고 보기엔 개인 사업장에 가깝지만….’
“제임스가 작정을 한 거 같아요. 미국하고도 이야기가 된 모양인지 지원이 거침이 없어요.”
그녀가 기가 질릴 정도로 많은 돈이 오갔다.
액수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의 그 어떤 기업보다도 많은 돈이 오가는 곳이 청탑이었다.
실제로 마력분해장치 이후 여러 물건은 양산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게 유통될 경우 벌어들일 수입은 상상을 초월할 거라는 게 제임스의 판단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청탑의 건설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네.”
“근데… 마법진을 가동시킬 마정석은 턱없이 부족해요.”
유아영의 말에 정우가 피식 웃었다.
비서로 만난 사이였다.
눈치도 빠르고 일 처리도 훌륭해서 계속 함께해 왔지만, 솔직히 그녀가 청탑의 대리인이 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우는 그녀를 택했고.
그녀는 여러 면에서 자리에 대한 증명을 확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저렇게 말했다는 건.
“최대한 마정석의 매입을 진행해 봤나 보군요.”
“……맞아요. 그래서 모은 게 A급 마정석 두 개가 전부라는 게 처참하지만요.”
따로 도움을 주었다는 기록은 없으니 그녀의 독자적인 진행이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옛말은 틀린 게 없었다.
정우는 내심 만족해했다.
청탑의 완성은 중요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질 물건은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전력을 급상승시켜 줄 물건들이었으니까.
스킬에 의존하지 않은 연금술.
그리고 제련과 인챈트까지.
그랬다.
정우는 청탑을 통해서 플레이어에게 마력의 본질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어둠의 영역이 이 일에 관여되어 있다면… 본질을 배우는 건 필요한 작업일 테니까.’
시스템은 분명히 놀라운 것이었다.
일반인을 각성시켰고.
강제적으로 마력을 부여했으며.
자신도 모르는 본인의 재능을 개화시켜 발전의 토대를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정우는 한 가지가 무척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지식의 신이라면.
‘……이보다 좋은 방법이 더 존재할 텐데.’
이보다 더 훌륭한 방법을 사용했을 거라는 점이었다.
G급 던전을 비롯한 던전과 각성.
마력을 다루며 그것을 스킬이라는 범주 내에서 풀어 가는 개념은 매우 신박하고 훌륭했지만.
그 어떤 것보다 한계가 명확했으니까.
그 증거로 마력을 다루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A급에 이르기 전까진 본인의 마력을 제대로 움직이거나 사용하는 게 불가능했다.
어지간한 천재가 아닌 이상에야 공식처럼 정해져 있는 내용이었다.
정우는 그걸 문제로 보았다.
이계에선 마력을 느끼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마력을 직접 경험하고 다루기 시작하며 경지를 높혀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스킬의 방대함은 인정하나.
그렇기에 창의성이 없다.
발전하지 못하는 토대.
애당초 시작부터가 틀렸다는 게 정우의 판단이었다.
자신이라면.
‘차라리 마력을 느끼고 활용하게 만드는 G급 던전을, 탑이나 지하 던전처럼 만들었을 거야.’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해야지만 통과할 수 있는 형태로.
그렇게 되면.
‘튜토리얼을 졸업하는 순간,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이계 못지않은 우수한 전력이 될 수 있지.’
이계와 다를 바가 없는 형태의 재능이 만개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우는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정해진 룰.
정해진 법칙.
정해진 공식.
따지고 보면 플레이어의 세계는, 지식의 신이 입력해 놓은 컴퓨터의 명령어를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지식의 신을 마주한 뒤로, 그런 생각이 더욱 공고해졌다.
그렇기에 정우의 시선에 묘한 기색이 감돌기 시작한다.
혹자는 불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혹자는 의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감정이.
* * *
“제가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말한 정우는 유아영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에 집무실을 벗어났다.
우연찮게도 세 명의 유 씨가 다들 바쁜 상황이었다.
제임스와 닥터 브라운을 찾아볼까 고민했던 정우였지만, 괜히 제임스와 닥터 브라운의 생각을 고착화시키는 것만 같아 방문을 자제했다.
정우가 딱 원하는 게 바로 닥터 브라운의 형태였다.
마력의 재능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또 다른 재능으로 마력을 이해하기 위한 행동.
그 결과물로 닥터 브라운은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 관련 전문 박사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던가.
정우가 좋아하는 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또 다른 재능을 개화하는 사람들.
물론, 제임스 밀러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을 보다 갈고닦는 것도 좋아했지만, 그러려면 그처럼 거의 자신의 재능에 빠져들어야 했다.
여러모로 까다로운 조건들.
하지만 정우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든.
노력과 세월로 장인의 경지에 다다르든.
그런 이들이 존재했기에 자신은 도시를 유지할 수 있었고, 끝내 최후의 도시에서 마지막을 준비할 수가 있었다는 것을.
그렇기에 지구의 플레이어는 아쉬운 존재들이었다.
각성과 동시에 자신의 역할과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기 때문에.
사람의 재능은 한 가지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유서린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그녀가 듀얼 클래스를 얻은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두 개의 재능이 거의 비슷한 거지. 수치화를 시키면 우열을 가르기 어려울 정도로.’
성기사의 재능과 버서커의 재능.
두 재능이 거의 비등했기에 그녀는 최초의 듀얼 클래스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재능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그녀의 판단력은 경영학에 적합했고, 그녀의 작전수행능력은 지휘관에 어울렸다.
그뿐이랴.
단순히 그렇게 나누기만 해도 네 개의 재능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재능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면서도 시간과 노력을 통해 장인 소리를 듣게 된다.
장인이 된 사람은 분명히 타인으로부터 재능이란 단어를 듣게 되고.
장인은 자신이 남들보다 더디던 첫 시작을 떠올리며 재능보단 노력이라는 단어를 더 높게 평가할 것이다.
그렇기에 재능보단 노력이 우선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적어도 정우는 그 말이 자신의 생각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시스템은 묘하다.
사람의 재능을 일률적으로 구분하는 듯해서.
그렇기에 닥터 브라운처럼 자신의 재능을 뒤로한 채 올곧게 걷는 일이 지극히 드물게 만드는 듯하여.
‘……너무 꼬아서 생각한 걸까?’
정우는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고는 잠시 후에 아공간에서 열쇠를 꺼냈다.
열쇠를 만지작거리는 정우의 표정이 묘했다.
많은 일들이 짧은 시간 내에 생기면서 미뤄 뒀던 일도 더러 존재하게 되었다.
선후를 따져서 칭 샤오를 먼저 찾았을 뿐.
실질적으로 정우가 가고 싶었던 장소는 다른 곳이었다.
마녀의 마을.
뱀파이어 로드가 된 친우이자 아버지.
이 막장과도 같은 빌어먹을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 게 가장 컸다.
G-00.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제이처럼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건지.
던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온전히 자신의 아버지로만 존재했던 건지.
하지만 그렇기에 더 걱정이 되었다.
충격을 받을까 봐.
실망을 할까 봐.
아버지와 아들.
이미 비틀리기 시작한 관계가 아예 일그러져 버릴까 봐.
‘……아버지.’
꾸욱.
열쇠를 쥔 정우의 손이 잘게 떨렸다.
가족은 정우에게 큰 의미였다.
어머니와 동생.
유아영을 통해 둘의 안전을 먼저 확보한 것도.
여러 사건으로 바쁜 와중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거두지 않고 지키고 있다는 것에.
의도적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멀리하는 것까지.
모두가 가족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홀로 던전에 갇힌 날부터.
정우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던전 입장권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플레이어가 되면, 아버지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렇기에 던전 입장권의 사용 기한이 촉박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정우의 속은 썩어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버틴 건 일반인이 G급 던전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기 때문이었다.
가능성.
그거 하나만 보고서 무려 오 년의 시간을 바칠 정도로 정우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개념은 매우 중요했다.
‘…아마도 내 전생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아버지를 다시 만나야 한다고 판단하면서도 망설여졌다.
로이라는 전생의 이름과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뱀파이어 로드라는 별개의 존재로 각성을 했기에.
이 사태에 깊게 발을 들이고 있기에!
“……X발.”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아버지를 만나야만 하는 상황을 떠올리며.
정우는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끼리릭.
정우의 손은 열쇠를 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