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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54화 (254/293)

254화

-청탑 (1)

“우린 다르지만 하나란다. 하나가 힘을 잃으면 다른 존재가 모두의 힘을 받아 또 다른 내가 되는 것이란다.”

휴식을 빌미로 자리를 이탈한 정우가 생각에 잠겼다.

세계수의 말을 떠올렸다.

다르지만 하나.

세계수는 묘목을 두고 그런 말을 했었다.

하나가 힘을 잃으면 다른 존재가 모두의 힘을 받아 또 다른 내가 되는 것.

그게 세계수가 생명을 이어 나가는 조건이었으며, 나무라는 태생의 한계를 넘어서서 존속할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식의 신의 기억에서 세계수는 마지막 남은 뿌리까지 어둠에 잠식당해 버렸다.

아무르타트.

자신의 친우이자 마지막 남은 용족에 의해서.

세계수의 묘목은 전부 어둠의 영역에 있었고, 본체라 할 수 있는 성목마저 어둠에 잠식당한 상황.

‘그런데 뜬금없이 인간이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이미 다른 존재가 되었다.

세계수는 그만한 지성과 권능을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지구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육신을 덧입지 못한다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였구나.”

오버레이의 패턴과 세계수의 패턴이 같은 이유.

정우는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세계수의 능력.

오버레이라는 초유의 물건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

‘다르지만 하나.’

바로 세계수의 말이 힌트였고 정답이었다.

오버레이는 타인의 재능을 덧씌우는 것이다.

재능은 물론, 외형까지 고스란히 빼앗아 올 수 있다.

대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것일까.

정답은 세계수에 있었다.

세계수의 ‘하나’라는 개념을 조금.

‘아니, 꽤 많이 변형한 거야.’

오버레이란 세계수의 능력을 덧입는 거였다.

그렇기에 덧씌워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이다.

정우는 마왕을 떠올렸다.

타투와 비슷한 무언가가 오버레이의 위치에 새겨져 있었던 것과는 달리, 칭 샤오의 얼굴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얼굴 거죽을 벗겼고.

마치 가면을 벗는 것처럼 가볍게 오버레이를 해제했다.

반발력도 없었다.

숨 쉬듯 자연스러웠을 뿐이다.

당시엔 오버레이의 제작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이상한 거야. …확실히.’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분명히 비정상적인 장면이었다.

타인의 능력과 외모를 덧씌웠는데.

‘그걸 벗는 반작용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하지만 한 가지.

마왕이 세계수의 분신 혹은 묘목과 같은 존재라면 이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세계수는 이미 형태는 다르지만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

나무 인간.

그런 의지가 가능하다면.

‘스킬이라면 설명이 돼.’

자신조차 아직도 겪지 못한 수많은 스킬이 플레이어들에게 있다는 것을 짐작하면.

‘빙의 혹은 영혼을 조작하는 힘? 그런 종류라면… 가능하겠지.’

스킬의 힘이라면 어렵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더불어 세계수의 힘을 일부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마왕의 그 강대함도 설명이 돼.”

빠른 성장.

천재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

그렇기에 처음으로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마왕이라는 이명을 손에 넣은 자.

그자에 대한 반발심으로 알렌 보머를 뇌신이라 칭하긴 했지만.

막상 뇌신은 자신이 마왕을 뛰어넘지 못했음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다녔으니.

“마왕과의 격차를 인정하고 있었던 거야……. 세계수라…….”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정해졌다.

마왕의 질문에 대한 답 말이다.

세계수.

전혀 뜬금없는 답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게 오히려 의문보다 많았다.

‘협회장도 그렇게 말했고….’

마왕을 만나고 온 뒤로 정우는 협회장과 대화를 나눠야 했다.

그 역시 마왕을 만나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졌고, 정우로서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그와 대화를 나눴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나눈 대화에서도 정우는 얻을 게 많았다.

마왕의 존재.

그의 능력.

바람의 결계 안쪽의 소란으로 마왕이라는 존재를 떠올리기까지.

유지석의 이야기는 간결했지만 결코 짧진 않았다.

그래서 더 정우는 확신했다.

마왕이 세계수의 분신이라고.

왜 이런 번거로운 일을 진행한 건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리고 왜 도망을 친 건지도.

‘……머리가 아프군.’

* * *

“청탑의 완성은 얼마나 된 거죠?”

“탑주님께서 준비해 주신 건 전부 다 적용이 끝났습니다.”

“‘인챈트’는 완판입니다.”

“지금도 계속 물밀 듯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전화는 물론 메일이나 비타까지. …솔직히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유아영은 보고를 들으며 입맛을 다셨다.

협회의 대리에서 갑자기 파견 비서를 맡게 되더니, 이젠 CEO 대리까지 맡고 있었다.

격세지감이랄까.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거지?’

아니, 꿈만 꾸는 것 같았다.

한정우라는 사람의 비서였는데.

‘이게 호접몽인가?’

그렇게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녀는 빠르게 지시를 내리고 지시를 받았다.

이 모든 건 제임스 밀러 때문이었다.

제임스 밀러는 연금술사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JM 그룹의 총수로도 활약했다.

연구에 매진하면서도 서류 하나 빠트리지 않았고, 그룹의 전반적인 사항에 관여하는 천재였다.

‘…내 우상이 이렇게 떠나가는구나.’

하지만 모든 천재들이 그러하듯 그는 재수가 없었다.

자신의 업무는 JM 그룹에서 오랫동안 몸담은 임원이 맡기로 했지만, 정우의 청탑만큼은 자신의 소관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그는 인챈트에 매진하면서도 자신의 업무적인 스킬을 유아영에게 가르쳤고.

왜 이걸 모르지? 하는 말투와 내용으로 유아영을 대했다.

으득!

그때를 생각만 해도 절로 이가 갈렸다.

“……아, 그냥 진행하세요.”

유아영이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휘저었다.

잠시 멈췄던 보고가 이어진다.

한정우의 재산은 상당했다.

이미 자신이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라 업무에 반영하는 건 어렵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걸 기업이라는 영역에 적용하는 건 꽤나 어려웠다.

그렇기에 유아영은 짧은 시간 내에 제임스 밀러로부터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아야 했다.

운전만 배워도 싸우는 게 남녀 사이였다.

비록 남녀 사이의 애틋한 무언가가 있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원망의 대상이 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우상에서 원망의 대상으로.

그녀의 뇌리에서 제임스 밀러의 위치는 변해 버렸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소리는 어느 정도 맞았다.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청탑.

기이한 이름의 기업의 대리인의 자리에서 그녀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은….”

“지원! 귀에 못이 박힙니다.”

“좋습니다.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고 각자 움직이죠.”

그녀의 끝인사로 회의가 끝났다.

유아영은 태블릿을 조작하며 회의 내용을 검토했다.

청탑의 완성이 목전이었다.

플레이어들이 대거 공사에 참여하게 되었음에도 청탑의 건설엔 시간이 걸렸다.

“인챈트를 건물에 한다고 했으니까. 조금의 실수도 있으면 안 돼.”

그녀는 몇 번이고 진행 사항을 검토하며 확인했다.

“좋아.”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러나왔다.

공사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탑은 완성을 목전에 두었고, 각 층에 새겨지는 마법진은 정우의 지시대로 진행 중이었다.

한 가지만 빼면.

“아니… 두 가지인가.”

유아영은 기지개를 켰다.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인 그녀는 체력이 그리 좋지 못했다.

힐러들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 자신의 체력이 첫 번째 문제였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보상만큼은 확실했기에 통장에 쌓이는 돈을 보면 힘이 생기곤 했다.

“……아니지. 이거 지금 가진 돈도 평생 쓰지 못할 거 같은데…… 내가 돈 보고 버틸 수준은 아니지 않나?”

다른 문제는 첫 번째 문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했다.

실제로는 이게 가장 문제였으니까.

“…이거 가동할 수는 있나?”

청탑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다.

사십 미터.

하지만 층마다 새겨진 마법진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마정석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S급 마정석이라도 수십 개가 필요하지 않을까.

“……설마 이거도 내가 구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못해! 그럼 그만둬야지!”

S급 마정석이 누구 개 이름인가.

유아영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알음알음 마정석을 알아보곤 있었는데, 당연하지만 매물은 없었다.

A급 마정석조차 빌런에게 탈취당하고 전 세계적으로 뉴스가 방영이 됐는데, S급이야.

“적응이 안 되는 건 아닌데, 적응이 안 돼.”

“풉. 그건 무슨 소리야?”

“……히익?”

유아영이 기지개를 켜던 자세로 뒤로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꽈당, 소리와 함께 통증이 느껴져야 했지만, 예상했던 아픔은 없었다.

반쯤 쓰러지던 의자는 허공에 고정이 된 듯 가만히 서 있었으니까.

유아영이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제임스!”

“오우.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노크도 못 들었기에 그저 가만히 들어왔을 뿐이야.”

“그게 매너가 없는 거라고요!”

유아영이 소리를 질렀다.

씩씩대던 유아영이 눈을 흘기며 물었다.

“바쁜 척은 다 하더니 여긴 무슨 일인가요?”

“왜. 오면 안 되는 거였어?”

“진작 안 왔다고 핀잔을 하는 거잖아요!”

“오우. 유가 날 보고 싶어 할 줄은 몰랐네. 그렇게 내 방문을 기다렸던 건가?”

제임스의 너스레에 유아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고는 의자를 박차며 달려들었다.

“죽어!”

“푸하!”

제임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흠흠. 사랑싸움인지 모르겠지만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게 어떻겠나.”

“……!”

노년의 음성에 유아영의 눈이 커졌다.

화들짝 놀라며 옷깃을 잡았던 손을 떼며 당황해했다.

닥터 브라운이 짓궂은 미소를 보냈다.

“협회 측에서 연락이 온 게 있던가?”

닥터 브라운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손 부채질을 하던 유아영이 헛기침과 함께 말했다.

“그… 탑주님 때문에 그러죠?”

“맞네.”

“정우에게 연락은 없었어?”

그 와중에도 유아영은 제임스 밀러를 살짝 흘기며 말했다.

“연락이 있었겠어요? 이거 설립한다고 이런저런 정보를 전달해 주고 라인까지 다 짜놓고선 한 번도 온 적이 없는걸요.”

마탑의 설립.

정우는 그것을 계획한 이후 놀랍게도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았다.

본인의 계산과 계획대로 처리가 되고 있는 건지 파악할 만도 한데 말이다.

“행적을 보면 바쁠 만도 한데…. 정우가 나와는 성향이 달랐던가?”

“자네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유아영이 닥터 브라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편은 없네.”

제임스 밀러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나저나 왜 온 거예요?”

“오면 안 돼?”

“되죠. 하지만 연락을 주고 왔었잖아요. 심지어 일본에서 온 거 아니에요?”

“맞아. 흐음. 뭐, 우리도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본론부터 들어가지.”

제임스 밀러가 장난기를 지우고는 진중한 표정으로 유아영을 보았다.

‘두근?’

제 심장 소리에 반문하며 기겁하는 유아영에게 제임스 밀러가 한 가지를 내밀었다.

“이걸 정우에게 전달해 줘.”

“…이게 뭐죠?”

아크릴 케이스 같은 작은 케이스에 담긴 건, 작은 나무 조각이었다.

“이것도.”

그리고 꺼낸 다른 케이스 역시 비슷한 나무 조각이 들어 있었다.

“유서린 양에게 미리 전달하긴 했는데, 거기는 거기 나름대로 엄청 바쁘더라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마왕이 등장한 장소였으니까.

게이트니 던전이니.

정우도 딱히 밝히기 어려운 것을 제외하고선 대부분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빌런 천 명과 마왕.

그리고 세 명의 S급에 대한 후처리를 하기에도 바빴다.

“그래서 자네가 이걸 한정우에게 전해 주길 바라네. 우리는 연구실에서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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