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53화 (253/293)

253화

-칭 샤오의 정체 (8)

“…그게 무슨.”

“이번엔 제 차례예요.”

마왕이 단호하게 정우의 말을 잘랐다.

정우는 마왕의 답변을 곱씹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의외로 초반이라는 것이었다.

퀸 마야.

메아리가 된 그녀를 구함으로써 정우는 마왕의 눈에 들었다.

어떻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뿔.

이중 던전의 보상으로 얻은 마족의 뿔이 퀸 마야의 것이었기에, 뿔이 반응했을지도 몰랐다.

마왕이 퀸 마야에 대해서 알게 된 게 뿔 때문인지 아니면 그 이전의 기억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퀸 마야의 존재를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퀸은 ‘어느 정도’의 힘을 손에 넣었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마왕의 첫 질문은 퀸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조금은 묘했다.

“어느 정도라는 기준이 뭐지?”

정우는 자신도 질문을 한 입장에서 조금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실제로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답변만이 정보를 얻는 방법은 아니다.

때론 질문도 답변 못지않은 정보를 얻게 해주었다.

지금처럼.

‘마왕은 퀸의 힘에 관심이 많다. 마족이 뭐지? 왜 메아리의 뿔에 마족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지? 힘의 회복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권능과 신성. 그것을 얻었나요?”

“권능과… 신성?”

권능이라는 단어는 정우도 이해했다.

하지만 신성이라는 단어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퀸 마야 역시 어둠의 마력을 받아들여 부정(否定)의 힘을 손에 넣었다.

기억은 딱 거기까지.

마왕이 말하는 신성이 무엇인지 정우는 알지 못했다.

메아리가 신성을 지녔다?

“……아직이군요.”

정우의 표정에서 답을 얻은 모양인지 마왕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툭, 툭.

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결정을 한 듯 쯧, 혀를 찼다.

“뿔에 대한 적응은 끝났겠죠. 그게 아니라면…… 실수하는 건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왜 메아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고?”

“그게 두 번째 질문인가요?”

“…….”

“훗. 기도나 하세요. 퀸이 하나의 뿔을 온전히 머금었기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왕의 손에 들렸던 뿔이 사라졌다.

물질의 공간 이동.

아공간은 아니었다.

어디로 보냈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쉬웠다.

“…무슨 짓이지?”

메아리.

정황상 그녀에게 보냈을 테니까.

그렇기에 의문이 든다.

저 뿔은 메아리의 힘의 원천이었다.

한 개의 뿔을 손에 넣은 것만으로도 메아리는 이전과 다른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른 뿔을 넘겨주는 건 결코 마왕의 입장에선 득이 될 게 없었다.

그럼에도 마왕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뿔을 넘겼다.

그 태도도 문제였지만 막상 정우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건 뿔을 이동시키기 이전에 보였던 마왕의 표정이었다.

쯧, 혀를 찼던 행동.

그 이전에 행했던 고민.

그리고 ‘뿔을 온전히 머금었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 메아리의 성장(7)이 완료되었습니다. ]

잊고 있던.

아주 뜬금없는 메시지가 돌연 정우의 눈앞에 떠올랐다.

메아리의 성장(7)

최후의 서큐버스 종족 ‘메아리’는…… 치직, 치지직…… 완성시키자.

등급 : SSS

보상 : ???

“……?”

정우는 몇 번이나 갱신되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퀘스트의 완료를 확인했다.

하지만 상태가 매우 이상했다.

치지직?

마치 전파가 안 좋은 곳에서 수신을 한 것처럼 문자의 중간은 끊겨 있었다.

때문에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법칙은 여전한 것 같군요. 퀘스트라도 완료가 된 모양이죠?”

마왕이 씨익 웃었다.

허공을 주시하는 정우의 모습에서 그는 많은 걸 파악한 듯했다.

자신의 선물이 온전히 메아리에게 전달되었음을.

그리고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성장의 기회로 삼았음을 확인한 듯했다.

하지만 그조차 메시지의 이상 현상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하기야 이것의 주체는 마왕이 아니었다.

지식의 신.

그가 만든 시스템이 주체였으니, 상황을 짐작하는 것이 마왕이 할 수 있는 전부였을 것이다.

“메아리의 성장이 네게 무슨 도움이 되는 거지?”

“흐음. 그건 두 번째 질문으로 받아들여야겠군요.”

마왕은 제멋대로 정우의 질문에 답했다.

“변수예요.”

하지만 정우로서도 나쁠 건 없었다.

의외로 마왕은 자신이 아닌 메아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우도 이쯤이면 굉장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메아리가?”

“네.”

“네 계획의 변수라는 뜻인가. 아니면….”

마왕은 고개를 저었다.

대답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빌어먹을 제약!

다만 이 말만은 답으로 돌아왔다.

“더 원대한…….”

‘원대하다고?’

정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왕이 무엇을 원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돌연 자신과 영혼의 계약을 맺은 메아리를 성장시키질 않나, 자신을 죽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음에도 방치하질 않나.

‘이젠 성장까지 시키질 않나… 무슨 속셈이지?’

“그곳은 최후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곳이었죠.”

마왕은 뜬금없는 서두로 화제를 돌렸다.

“그곳?”

“최후의 서큐버스. 최후의 드워프. 최후의 하이엘프. 최후의 용.”

“……!”

“최후의 도시, 최후의 왕국.”

“넌 누구지?”

“…최후의 세계. …저 역시 최후란 단어가 어울리는 존재였죠.”

그렇기에 마왕은 묻는다.

“당신의 최후를 기억하나요?”

두 번째 질문.

정우는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양다리가 잘리고 양팔이 묶인 채 두 눈이 뽑혀 결박당했던 때를.

지독하리만큼 처참한 광경이었으나 이상하리만큼 무감각한 장면.

자신의 과거라는 게 확실해진 이상 분노가 치밀고 화가 정신을 장악해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막상 그 장면만큼은 화가 나질 않았다.

자신의 자리를 찬탈한 자에 대한 분노는 있지만, 막상 자신의 최후에 대한 분노는 극히 적었다.

“그게 최후라…….”

마왕은 묘한 말투로 정우의 답을 곱씹었다.

“넌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알고 있죠.”

“뭐지? 그게 내 최후가 아니었나?”

“제가 말해 줄 거라 생각하나요?”

“…….”

마왕은 잠시 하늘을 보았다.

정우도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건 보이는 모양이군요.”

마왕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곳은 게이트 안.

즉, 던전이었다.

천장이랄 게 따로 없는 공간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정도 공간의 제약은 존재하는 장소였다.

던전이 품은 마력.

그 자체가 만들어 내는 영역이 천장이 되고 지하가 되며 사방의 땅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천장의 일부분에 보이는 하나의 균열은 이곳에 들어서면서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던전의 클로징.

모든 것이 산산이 조각나며 하나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던 던전의 클리어 순간을 떠올렸다.

그 징조가 보였다.

놀랍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아니다.’

그 순간, 정우는 깨달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세 가지 질의문답.

서로 간의 대화.

그게 퀘스트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문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마왕도… 세계수도 있는데?’

조건만 맞으면 클리어가 되는 던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정우는 묘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단 퀘스트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신이 이상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왜지?’

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하나를 깨닫자 다른 하나의 고민이 뒤따랐다.

하지만 답답함은 억누르고 고민에 집중한다.

이 고민과 추론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낼 귀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던전이었다.

하물며 ‘마녀의 마을’에서조차 정우는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받았다.

수신이 양호하다는 소리.

수신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상 그보다 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자신의 소유가 된 마녀의 마을조차 그러할진대.

인천 대학교에 발생한 게이트를 넘은 공간에선 수신이 이상했다.

전파의 방해.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기엔…….

‘잠깐. 전파의 방해?’

순간적으로 정우의 시선이 세계수에 꽂혔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마왕이 말했다.

“세 번째 질문을 받죠.”

그러며 위를 가리켰다.

균열이 조금 더 커져 있었다.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이 질문을 던지고 마왕의 질문에 답하면 이 던전이 사라지는 건지.

그렇게 되면 마왕과 세계수는 어떻게 되는 건지 의문이 떠올랐다.

‘…겪어 보지 않으면 답할 수 없지.’

그렇기에 정우는 빠르게 고민을 하고선.

입을 열었다.

“……세계수는 온전한가?”

그 질문에 마왕이 씨익 웃었다.

온전하다.

그 뜻을 모를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정우의 질문은 타당했고,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여러 선택지 중에서는 꽤나 훌륭한 선택지라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대답할 수 있다.

“온전하다…는 의미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을 드리자면…….”

마왕이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검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친다.

정우 역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쨍!

맑은 소음과 함께 하늘의 균열이 마치 유리가 깨어지듯 조각났을 뿐.

휘잉-!

마력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왜? 아직 완료되지 않은 거 아니었나?’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정우는 마왕과 세계수에 시선을 두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든 마력이 빠져나가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둘은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 듯 태연했다.

마력의 소용돌이는 거셌다.

그런 장소에서.

마왕이 물었다.

“빠른 시일 내에 답을 내려 줬으면 좋겠군요.”

아주.

“…내가.”

담담하게.

“누구인지….”

“네가 누구냐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정우가 소리쳤다.

하지만 마왕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던전에 난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력처럼, 세계수와 그만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뿐이었다.

스슷!

흐려지는 모습을 보며 정우는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파스스!

그러고는 던전이 깨어진다.

몇 번이나 겪었던 장면이지만 정우는 왠지 오늘만큼은 이 장면이 오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환한 빛이 사라진 뒤 나타난 장소는.

“……한정우 씨!”

자신이 만든 폐허였다.

유서린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들과 부서진 대지.

폭발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는 장소를 보는 그녀의 표정엔 걱정이 가득했다.

정우는 문득 그 표정이 누군가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던 한 명을.

마왕의 마지막 말에 정신이 팔려 있는 와중에도 정우는 유서린과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고 난 뒤에 그녀는 짧은 탄성과 함께 아차 한 듯 정우를 다시 불렀다.

“제임스 밀러에게 연락이 왔어요. 한정우 씨와는 연락이 안 된다고 저에게 왔더라고요.”

“…제임스요?”

정우가 관심을 보였다.

유서린이 묘한 표정으로 제임스의 말을 전했다.

“오버레이에 대해서 알게 된 게 있다고 했어요.”

“……!”

정우가 움찔했다.

재촉의 눈빛에 유서린이 말했다.

“일본에서 등장한 ‘나무’와 오버레이의 파장이… 매우 비슷하대요.”

‘세계수와 오버레이가?’

잠깐 고민하던 정우가 마왕이 오버레이를 벗을 때를 떠올렸다.

‘내가 누구인가요?’

마왕의 마지막 질문이 떠올랐다.

오버레이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 세계수로 가려진 것 때문이었다면?

아니.

‘세계수와 같은 파장 때문이었다면?’

정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여러 공간을 연결하는 힘.

그로 인해 빌런들을 소리소문없이 이동시켜 놓았던 상황.

‘다르지만 하나…….’

세계수의 말을 떠올린 정우가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세계수.”

“네?”

마왕의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정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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