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칭 샤오의 정체 (6)
어둑해진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무자비하게 자신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초능력자는 이것 역시 사이코키네시스의 일종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저 손을 휘저으며 발악하는 게 전부였다.
S급이 된 이후 이 정도로 무력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무력감에 휩싸였다.
상대의 능력이.
자신과 같은 능력이.
‘…나, 보다 뛰어나다고…? 그런데 왜 조금 전까진……!’
자신을 웃돈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정우의 수준은 자신보다 아래일 거라고 여겼었기에 더더욱.
하지만 막상 끝내자는 말과 함께 전개하는 정우의 힘은 비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천 명의 플레이어와 전투를 벌인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자신만이 아니다.
무려 자신과 비등한 수준의 대주술사와 아수라가 연신 저항함에도 상대의 능력은 소멸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헌터.
사냥꾼이라는 의미가 어울리게도 상대는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희끗.
일렁이는 공기 너머로 보이는 헌터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사력을 다하며 일그러졌을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달리 상대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서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듯 세밀하게 마력을 조종하며 집중하고 있었다.
‘……이, 길, 수… 없었던… 사람이군.’
그제야 보스의 말이 떠올랐다.
플레이어들을 전부 죽일 때까지 건드리지 말라는 말.
초능력자는 그 말이 상대의 힘을 빼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 보니 알겠다.
‘…젠장! 우리를… 상대로 적응기라니….’
보스는 자신들을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헌터가 자신의 능력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준 것이었다.
자신을 따르는 플레이어를 바치며.
울컥!
배 속이 뜨거워졌다.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피가 들끓는 느낌이 들었다.
시야가 뿌예지며 끄륵, 목구멍에서 연신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이명이 가득한 청각은 이미 소름 끼치는 외부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지 오래였다.
한 시간?
아니면 두 시간?
초능력자는 자신이 이 빌어먹을 상황을 그만큼 견딘 것 같다고 느꼈지만 실제로는 알고 있었다.
고작해야 일 분도 채 흐르지 않았음을.
반대로 말하면, S급 세 명을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해야 그것뿐이라는 것이었다.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았던 인물.
그럼에도 자신들을 보낸 보스.
‘……어쩌면… 모든 게, 거짓일… 수, 도….’
털썩.
초능력자는 기어이 두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뿌드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렸으나 그녀는 물론, 나머지 둘 역시 그런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압력을 이기지 못한 귀가 먹어 버렸기에.
갈비뼈가 부서지고 전신이 으깨지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하물며 그 대상이 S급의 초능력자라는 사실엔 모두가 다 기함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니들 붐의 제어권 강탈의 여파로 제일 먼저 충격을 받은 초능력자가 쓰러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수라가 무릎을 꿇었다.
꿇은 무릎의 근육과 피부가 끝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새하얀 뼈를 돌출시키며 붉게 물들어갔다.
울컥 치솟는 핏물이 빠르게 바닥을 적셨다.
흔들.
아수라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체를 흔들거리며 털썩 쓰러졌다.
우드드득!
머리뼈가 함몰되기 시작한다.
주술사는 보지는 못했지만, 생명이 둘이나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좌절했다.
‘이것이… 우리의 용도인가?’
그러고는 직감했다.
초능력자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용도에 대해서.
보스는 자신들에게 승기가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붙였으며, 패배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계획이라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대체 S급 세 명을 바칠 정도로.
A급 이하 플레이어를 천 명을 바칠 정도로….
‘저자가… 그토록 중요하단 말이오, 보스?’
두꺼운 지팡이가 산산이 조각나며 그 파편이 전신을 찔렀다.
그럼에도 이전의 통증이 너무도 거세어 주술사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이전의 통증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에만 집중할 뿐.
그나마 자연적인 능력을 다루는 주술사였기에 아수라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이게 내 최후라니… 어이가 없구나.’
더 이상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꺾인 목이 부러지면서 최후를 맞이했다.
촤아아악!
파도가 친 것처럼 마력이 한 차례 바닥을 때리고선 멀어진다.
아니, 모든 마력이 전부 정우에게 다시 흡수되기 시작했다.
권능의 힘으로 내뿜었던 마력들.
그것의 회수까지 온전하게 진행한 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파괴된 건물과 수많은 시체의 흔적을 보면서.
한 명의 죽음도 아까운 상황이었다.
자신의 마력 수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빌런들.
그렇기에 정우는 망설임 없이 모두를 죽였다.
끝이 머지않았음을 본인도 느꼈기 때문에.
하지만 막상 만들어 놓은 참사를 보니 반감이 절로 들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 사용한 건 중력 강화였다.
그래비티.
언령은 마법을 보다 강화시켜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같은 마법이라도 언령의 마법이 강한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언령까지 이루어질 정도면 보다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이니까.
가용 가능한 마력에도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시체의 흔적은 여전했다.
하지만 시체는 없었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건 시멘트 가루에 뒤섞인 하얀 가루들뿐.
살점과 뼈까지 모조리 압축해 버린 정우의 마력에 모든 건 산산이 부서졌다.
남은 건 부서진 건물과 진득하니 눌어붙은 핏자국뿐.
그럼에도 정우는 자신이 죽인 시체의 흔적이 보이는 듯했다.
마음이 가볍다면 거짓말이었다.
어쨌든 죽음 자체가 주는 무게는 존재했기에.
휘휘.
정우는 고개를 털었다.
죄책감을 가지기엔 적은 너무 추악했고, 자신들의 목표와 목적을 위해.
그리고 본능과 쾌락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이들을 학살한 살인자들이었다.
이건 전쟁이었다.
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념적인 문제였다.
살인자 집단을 처벌하는 건 모두에게 지탄받을 일이 아니라 찬사를 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무거운 건 사실이었다.
예전부터 가볍지만은 않았다.
성장에 목이 말라 자신이 직접 놈들을 찾아다니며 헌터라는 이명을 받게 되었음에도.
그렇기에.
“……칭 샤오.”
정우는 미리 파악해 둔 위치로 빠르게 걸었다.
천 명의 플레이어와 세 명의 S급.
보상은 너무도 확실했다.
‘마력의 수치가 벌써 백 오십을 향해 가고 있어.’
146.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시스템적인 수치만 봐도 상당했지만, 정우는 자신을 알았다.
수치와는 달리 엄청난 효과와 효율을 지닌 자신의 마력을.
그 달콤함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란 걸, 정우는 잊지 않았다.
죽을 놈들이었음에도.
죽일 놈들이었음에도.
그렇기에 정우가 느끼는 건, 환멸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상대에 대한 환멸이 아니었다.
바로 상황에 대한 환멸이었다.
몬스터가 등장하고 던전이란 것이 나타나며, 플레이어가 생겨나고 죽음이 익숙해진 이런 상황.
저벅.
그렇기에 정우는 걸었다.
목표한 곳으로.
저곳에.
지식의 신과는 또 다른 답을 알려 줄 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했기에.
칭 샤오.
정우가 그를 떠올리며 게이트 앞에 섰다.
웅웅!
당장이라도 들어오라는 듯 게이트가 신호를 보냈다.
준비는 끝났다.
조금 전까지 전투를 벌였음에도 지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더 정제된 느낌이었다.
기억과 육체의 괴리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적어도 앞선 전투는 자신을 지치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더 단단해졌어.’
자신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스윽.
그런 생각을 하며, 정우는 게이트를 넘었다.
* * *
“소란이… 멎은 거 같죠?”
바람의 결계는 단절의 결계와 매우 흡사했지만 조금은 다른 점이 있었다.
이는 정우도 몰랐던 부분으로, 막상 이 결계를 전개한 유지석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바로 소음은 바람의 결계를 뚫고 모두에게 들렸다는 점이다.
때문에 내부의 상황을 유추하는 것엔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안도감을 주었다는 건 아니었다.
끊임없는 소란.
비명과 고함.
꽤나 넓은 반경에 친 결계를 뚫고 들릴 정도로, 적들의 비명은 컸다.
그조차 반이나 죽인 뒤에야 터진 것이란 걸 안다면 얼마나 놀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기에 모두는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적이 결계 안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음. 그런 것 같구나.”
“……빌런들일까요?”
유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빌런일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
그렇기에 고민이 생겼다.
“대체 어떻게 빌런들이 저 안으로 들어간 걸까요? 저 정도 소란이라면 수가 많을 텐데… 왜 일반인들은 다 아무 피해 없이 내보낸 거고….”
빌런의 평소 행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일반인에 대한 학살이 없었다는 게 가장 컸다.
적어도 파악된 바로는 거의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외부로 아무 문제 없이 빠져나왔으니까.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무대를 만든 것 같구나.”
“무대요?”
“어쩌면…….”
유지석이 표정을 굳혔다.
빌런을 이 정도로 조종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네 명의 왕.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한 명의 절대자.
같은 왕급으로 묶이곤 해서 현재에 이르러선 평가절하당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유지석은 잘 알고 있었다.
네 명의 왕과 한 명의 왕은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것을.
따지고 보면 그것에 적합했다.
우스꽝스러운 표현이지만.
사천왕과 왕.
네 명의 왕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한정우에게 셋이.
딸에게 하나가.
그럼 저만한 군세를 일으킬 수 있는 이는 한 명뿐이었다.
“결계를 해제해야겠구나.”
“……!”
당초 계획과는 다른 유지석의 말에 유서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요?”
“지금 당장 진행해도 늦을 수도 있다.”
“…갑자기 뭐가 그렇게 급해진 거죠?”
유서린의 질문에 유지석이 침음과 함께 대답했다.
“빌런을 저 정도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이젠 한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대답에 유서린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고는 살의 띤 눈동자로 결계 안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이 생각한 사람을 입에 담았다.
짓이기듯.
“……마왕.”
* * *
“어서 오십시오.”
게이트 안은 정우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이었다.
흐트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 흔들림에 맞춰 휘날리는 꽃잎과 나뭇잎까지.
졸졸 흐르는 시냇물의 청량한 소리는 결코 게이트 안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맑고 고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처럼 유려한 자세로 인사를 하는 칭 샤오가 있었다.
하지만 정우의 시선은 칭 샤오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이 공간.
이 풍경.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이 풍경을 떠올리던 그의 눈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커진다.
우연일까.
바람의 결계 안에 존재하는 게이트 안의 풍경과.
단절의 결계 안에 존재하는 그곳의 풍경이 이토록 흡사하다는 것이.
단절의 결계와 바람의 결계.
상황마저 비슷하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놈의 뒤편으로 시선을 돌린 정우의 눈에 들어온 건.
아직은 작은.
하지만 다른 곳보다는 훨씬 커진 나무였다.
“세계수입니다.”
칭 샤오가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