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칭 샤오의 정체 (5)
‘확실히…….’
땅을 박차고 위로 뛰어오르자 곧장 나무뿌리가 자신을 쫓아 솟구쳤다.
쿠릉!
갑자기 생겨난 먹구름으로부터 우박이 떨어졌다.
위와 아래.
동시에 진행된 공격과는 별개로.
콰득!
움직일 때마다 점점 더 매끈한 구체로 변하고 있는 철골들은 핀볼이라도 된 것마냥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며 자신을 노려댔다.
‘…골치가 아프네.’
미간을 찌푸린 정우가 실드를 전개했다.
“…치잇. 단단해!”
초능력자가 혀를 찼다.
고작해야 허공에서 조금 뒤로 밀어 날리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자신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타앗!
지상에서 솟아난 뿌리를 밟으며 내달린 아수라가 하늘로 날았다.
“월광(月光).”
더불어 쏘아지는 건 달의 빛무리.
수많은 초승달이 허공을 수놓으며 정우를 압박했다.
‘…이건 받아 내기보다는….’
입술을 살짝 씹은 정우가 허공을 딛고는 방향을 틀며 손을 뻗어 철구 하나의 제어권을 빼앗아 왔다.
서걱!
철구가 이리저리 깎여 다각형이 될 때까지.
아수라의 검격은 끊이질 않았다.
‘공간이동은….’
정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딱 제한선.
주술사는 그 선을 정확하게 지키고 있었다.
주술은 비단 자연의 흐름을 바꾸는 것에만 치중한 게 아니었다.
버프와 디버프.
그것에도 관여하며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주술이었다.
공간 이동은 필연적으로 마력의 흐름을 읽어야 가능했다.
마법에서 좌표라는 건, 지구에 위치를 점처럼 찍어 놓은 과학과는 달리 유동적이었다.
마력의 흐름에 따라 좌표는 변한다.
때문에 고정적인 좌표를 만들어 내는 마법진이 필요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서 안정적인 공간이동이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지구의 마법사들이 유독 공간이동을 어려워하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모든 걸 스킬로 시작했기 때문에.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아무리 뛰어나도, 학문으로 접근해서 숙원으로 다가가야 하는 이계의 마법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나하나 모든 걸 이해해야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이계의 마법사의 경우엔 공간이동을 어렵지 않게 사용했지만, 지구의 마법사는 근거리 이동이 거의 전부였다.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한 사람이 천 킬로미터를 이동한 것에 불과했으니, 정우의 공간이동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블링크를 사용하기 어려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이 정도 제약이면 블링크는 물론, 공간과 관련된 모든 마법에 지장이 생겨야만 했다.
그게 정확하게 S급, 그걸 조금 뛰어넘는 수준이었으니까.
자신에 대해서 알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만만해하며 공간에 제약을 가하는 주술사를 보니, 적당히 어울려 줄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딱 그 경계.
자신을 파악하기 위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는 주술사를 농락하듯.
‘…말은 그렇지만, 단순히 피해서 원거리에서 공격을 가하면 좋을 걸 골치 아프게 싸우게 됐어.’
자신은 마치 아티팩트를 가진 창술사와 같았다.
아수라의 근거리.
초능력자의 원거리.
주술사의 지원까지.
셋의 시너지는 단시일 내에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미리 준비했다? 누굴 상대하기 위해서?’
특히나 이들 세 명은 각자의 영역이 달라 활동이 겹치는 것도 없었다.
철저히 비밀리에 준비를 했다는 소리였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악의(惡意)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기는 했지만 칭 샤오는 엄연히 빌런 소속이었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
지금에 와선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빌런 협회와 한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악의(惡意) 역시 마찬가지다.
어둠의 마력을 품어야지만 반응하는 악의는 빌런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였다.
그게 통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이 세 명.
그리고 칭 샤오.
적어도 이렇게 네 명에게서는 악의에 대한 경고가 뜨지 않았다.
실제로 어둠의 마력에 대한 느낌은 전무했다.
또 어떤 이들이 숨어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비티.”
정우의 중얼거림에 아수라가 지면으로 떨어졌다.
아니, 짓눌렸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상대를 짓누른 것처럼 아수라의 전신을 아래로 깔아뭉갰다.
“……이이익!”
그래비티는 마력으로 중력을 강화시키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중력처럼 마력으로 짓누르는 것이었다.
때문에.
“…가, 감히…!”
시뻘게진 표정과 눈동자로 자신을 노려보는 초능력자의 사이코키네시스와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그것 역시 마력으로 조종하는 것이었으니까.
자유자재로 철구를 조정하고 있던 초능력자는 자신의 무기들이 일순간 아래로 낙하하자 자신감에 상처를 입어 버렸다.
때문에 조금 무리를 해서 철구를 유지했고.
‘……그럼에도 반이라고?’
반 조금 넘기는 수를 허공에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뿐이랴.
당장에 정우를 노리며 다시 공격의 포문을 열었으니 나쁠 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둘의 판단일 뿐.
초능력자의 표정은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반발력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드드드.
상처 입은 자신감이 그녀의 주변을 들끓게 만들었다.
주술사는 그런 초능력자를 보고선 속으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폭주의 증세였으니까.
정신적인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일까.
그녀는 감정에 민감했다.
분노는 그녀의 힘을 증폭시키고.
슬픔이나 행복은 그녀의 힘을 약화시켰다.
염동을 비롯한 여러 초능력은 마법과는 또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정신력의 소모.
S급에 이르러 초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녀였지만, 때때로 정신력의 고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걸 한 번씩 겪을 때마다 그녀는 자제력을 잃어 갔다.
약간의 흥분으로도 능력이 거세진다.
정신력과 마력의 소모는 빨라질 수밖에 없었으며.
‘피해라.’
자연스럽게 공격은 광범위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술사의 전언에 혀를 찬 아수라가 저항을 멈추었다.
정우의 그래비티로 바닥까지 내려간 그는 곧장 땅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의아함은 잠시.
정우는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니들 붐(Needle Boom).”
조용한 음성과 함께.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파편의 잔해가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초능력자의 주변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수라는 물론, 주술사에게조차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쐐액, 소리가 주변을 장악했다.
확실히 놀라운 컨트롤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정우도 마찬가지였다.
니들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얇고 작은 조각들이 비산하고 있었다.
‘제어권을 뺏는다.’
염동(念動).
궁극적으로 염동조차 마력으로 인한 능력이었다.
어둠의 영역에서 정우는 살아남기 위해 어둠의 마력을 다루는 것에 열중했고.
그중 가장 커다란 성과가 바로 염동이었다.
염동은 정우가 어둠의 영역에서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가장 뛰어난 능력이었다.
적어도 떠오른 기억에서 자신은 항상 염동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죽였으니까.
‘일단은 주변부터….’
우습게도 마력의 제어는 정우의 특기였다.
F급의 처참한 수준일 때도, 생성한 마법의 마력을 변환하여 다른 마법으로 전환할 정도의 컨트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물며 다니엘의 기억을 떠올린 지금은 당시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력의 사랑을 받는 자, 마력을 지배하는 자.
지금 필요한 건, 사랑보다는 지배였다.
‘지배한다.’
정우의 집중에 주변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당연히 초능력자였다.
“감히…!”
그녀는 정우의 판단에 이를 갈았다.
뾰족한 고성과 함께 니들 붐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주술사 역시 정우의 결정을 알아차렸다.
“…이런. 어쩌면….”
그는 다급히 니들 붐의 영향권 밖에 방어를 치기 시작했다.
대지를 움직이고 나무뿌리를 결박하여 커다란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벽의 높이가 건물 삼 층에 달했을 무렵.
“…쿨럭.”
초능력자가 경악한 표정으로 피를 토했다.
이건 간접적인 마력 대결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자랑하는 능력에서 밀려 버렸다.
그 대가는 처참했다.
니들 붐은 초능력자가 가진 비기 중의 하나.
그걸 고스란히 상대에게 빼앗겨 버린 셈이었다.
더군다나 그에 따른 반발력으로 몸속의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으니.
“…아수라!”
주술사의 비명과 같은 고함을 신호 삼아 니들 붐이 방향을 바꾸었다.
니들 붐의 형태는 고요했다.
회전하며 파괴력을 높이던 초능력자의 것과는 달리, 정우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그것들은 허공에서 우뚝 멈춰서 각자의 칼날을 정우에게서 상대에게로 고치고 있었으니까.
스스스.
주술사는 그 고요한 변화에 소름이 끼쳤다.
오싹!
회전의 시간은 짧았다.
의지를 담은 그것들이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융단 폭격을 가하는 것처럼, 수없이 많은 잔해들이 무기가 되어 지면을 강타했다.
“…크윽!”
벽 역시 마찬가지.
주술사는 벽에 가해지는 충격에 이를 갈며 신경을 집중했다.
아수라 역시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벽을 넘어오는 것들은 그의 차지였으니까.
커다란 돌무더기를 연이어 베는 그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콰쾅, 콰콰콰쾅!
운석과도 같은 그것들의 낙하가 잠잠해진 것은.
“…….”
학교가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변해 버린 이후였다.
곳곳에 생겨난 크레이터는 파괴의 흔적이었다.
화르륵!
충격으로 인해 폭발이라도 일어난 건지 불길이 치솟았다.
가히 지옥의 한 현장.
허공에 떠서 오연히 서 있는 정우의 모습은 지상에 강림한 악마와 같았다.
휘청!
주술사는 막대한 마력을 짧은 시간에 사용한 여파로 비틀거렸다.
욱신!
아수라 역시 니들 붐을 쳐 낸 여파로 손아귀에 상당한 통증을 느꼈다.
초능력자는.
“……이게, 니들 붐이라고?”
자신의 것임에도 자신의 손을 떠난 공격을 보곤 아연실색해 버렸다.
니들 붐은 분명히 자신의 비기 중 하나였다.
공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회전을 가미해 파괴력을 증대시킨 공격.
범위가 넓기 때문에 피할 구석은 없었고, 맞상대하기엔 그 수가 많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무협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만든 스킬.
만천화우(滿天花雨).
끝내 흉내 내는 것에 끝났던 니들 붐의 형태는 자신이 그려 낸 궁극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이제, 끝내자.”
정우의 말은 사형 선고와 같았다.
아직 여력이 상당히 남은 셋을 상대로 하기엔 오만하기까지 한 말이었다.
버럭 소리를 치려던 아수라는 벌어지지 않는 제 입에 흠칫 놀랐다.
정신보다 육체가 먼저 반응했다.
다부지게 깨문 이빨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덜덜.
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을 인식하기도 전에.
“흐, 흐억!”
돌연 뒤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수라가 전면을 경계하며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주술사였다.
그의 눈과 귀, 코와 입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 양이 심상치가 않았다.
“…왜, 어떻게……!”
그는 자신의 상태에 두려움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직접적으로 헌터와 대치한 게 없었다.
하지만 막상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건 자신이었다.
그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이해가 될 수 있을까.
자연의 힘을 다룬다는 이가 니들 붐을 막기 위해 다급히 사용한 마력에.
부정(否定)이 섞여 있었음을.
정우가 선고했다.
“내리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