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칭 샤오의 정체 (4)
“날 지목한 거 같은데?”
초능력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좌우의 남자들을 돌아보았다.
남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
“흐응.”
초능력자는 콧소리를 내며 정우를 돌아보았다.
“어쩌지? 혼자 싸우는 건 불가능할 거 같은데.”
부르르.
정우는 어깨를 슬쩍 떠는 모습을 보였다.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는 절망감의 표현처럼.
“…너넨 누구지?”
정우가 초능력자 양옆의 남자들에게 물었다.
정우의 것보다 더 두껍고 거대한 지팡이를 손에 쥔 남자의 푸른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얼굴을 반이나 가로지르는 타투가 그의 모습을 더욱 위압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모건 스틸러.”
“……주술사.”
“아시아인은 대(大) 자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거짓말이었군.”
사석에서 만났으면 꽤 괜찮은 말동무가 되었을 것 같은 대주술사였다.
위압감이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어조나 음색은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저게 주술사의 특징이지. 자연과 닮아 편안함을 주는…. 과연 대주술사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심지어 과거 이계에서의 친우와 비슷한 실력으로 보였다.
“넌?”
마른침을 삼키며 묻는 정우를 가만히 주시하던 상대가 툭 하니 쏘았다.
“이곳이 미팅 장소던가. 말이 많군.”
코웃음과 함께 사내는 품에서 검을 꺼냈다.
곡선이 인상적인.
시미터(Scimitar)였다.
“……카심.”
“눈이 없는 건 아니군.”
자신의 친우와 같은 이름의 플레이어.
카심은 인도의 S급 플레이어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무장테러단체 소속이었다가 플레이어가 되어 정부의 지원을 받은 인물로, 무장테러단체 쪽에서는 변절자라며 거센 비난을 했었다.
그 결과는.
‘…전멸이었지.’
무장테러단체의 전멸.
자신이 속했던 집단뿐만 아니라 그와 연결된 집단조차 모조리 쓸어버린 악랄함에 모두는 기함했지만.
그 대상이 무장테러단체라는 것에서 공분보다는 찬사를 받으며 신분의 세탁이 성공한 인물이었다.
두 개의 시미터를 휘두르는 그는 초승달을 연상시키는 검술로도 유명했다.
“거물들이군.”
정우의 말에 초능력자가 입꼬리를 비틀며 턱짓했다.
“보스가 작정을 했더군.”
“보스란 게… 칭 샤오를 말하는 건가?”
“칭 샤오…. 그렇지?”
‘…음?’
정우는 속으로 의아함을 품었다.
‘왜지? 반응이 이상한데?’
초능력자는 칭 샤오라는 이름에서 잠시 멈칫했다.
그 이름을 감히 부르기 어렵다, 이런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저.
‘잠시 고민한 거 같은데?’
그 이름에 대해 잠시 고민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어쩌면 여러 이름으로 활동한 건지도 모르겠군.’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제야 떠오르는 건, 오버레이였다.
“…칭 샤오가 본명이 아니군.”
정우의 말에 초능력자가 피식 웃었다.
답변은 없었지만, 답변을 들은 기분이었다.
정우는 눈가를 좁혔다.
본명이 아니란 소리는 다른 말로 하면 칭 샤오라는 제작자가 실제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오버레이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 능력이 있었다.
‘제임스 밀러는 저것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이나 했을까?’
오버레이에 대한 연구를 놓지 않고 있는 제임스 밀러였지만 성과는 부족해 보였다.
성과를 얻었다면 자신에게 진즉 연락을 했을 테니까.
정우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으나.
‘상관없겠지. …곧 만날 테니까.’
배움의 장터이자 청년들의 웃음과 추억이 가득했을 장소는, 피와 시체로 더럽혀졌다.
비단 이곳뿐이랴.
어느 곳에서든 전투가 벌어졌다면, 정우는 놈들의 시체를 만드는 것으로 전투를 끝맺음했을 테니까.
“사담이 길어. 회복할 시간을 줄 거야?”
초능력자가 셋 중에 가장 발언권이 센 것처럼 보였다.
정우는 뒤로 툭, 몸을 던졌다.
부웅!
손가락 두 마디 거리를 두고 복부를 횡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미터의 예기가 피부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카심의 눈동자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흥미가 생긴 모양.
‘전위는 아수라, 중위는 초능력자, 후위는 대주술사인가…. 까다로운 조합이군.’
카심은 두 개의 시미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마치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아수라와 같은 맹공을 펼친다고 해서 아수라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었다.
웃긴 건 그가 그런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 무장테러단체 소속일 때라는 점이었다.
때문에 몇몇은 아직도 카심의 정체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있긴 했지만, 정부 소속이 되면서 무수히 많은 성과를 만들어 낸 그였기에 인도를 비롯한 주변국에서 카심의 위치는 공고했다.
때문에 아수라라는 이명 역시 사용하는 것에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정우는 아수라의 움직임을 기억해 냈다.
지금처럼 일발적인 기습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폭넓은 기술을 자랑했다.
상체를 숙이고 한 발을 앞으로 크게 뻗어 내면서 베는 검은 마치 채찍과 같았다.
그런 변칙적인 공격 또한 그의 공격 중 하나였으니, 기세를 뺏기면 그의 초승달과 같은 예리한 검을 아수라의 여섯 개의 검처럼 막아 내야만 했다.
가히 폭풍과 같은 검술.
그게 바로 아수라의 특징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까앙!
“속도라면 나도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아서….”
정우는 창끝으로 시미터 하나를 쳐 냈다.
위로 튕기는 시미터의 사이로 아수라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투둑!
상체를 기울이며 이격에 나서려던 정우가 기이하게 몸을 뒤틀었다.
콰르르-!
갑작스럽게 대지를 뚫고 나온 넝쿨이 함정 속의 창처럼 허공을 찢어발겼다.
힐끗.
정우가 후위의 대주술사를 보았다.
콰드드드-!
갑작스럽게 들린 소리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면서도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내야 했다.
훤히 드러났던 목 부위를 스쳐 지나가는 시미터의 기세가 날카로웠기에.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랜스였다.
이곳저곳에서 뽑혀 나온 철골들이 제 마음대로 뒤엉켜 하나의 거대한 흉물스러운 랜스를 만들었다.
초능력자의 힘.
사이코키네시스만을 단련한 S급의 가공할 힘이 낙하했다.
거인의 창이나 다름이 없는 그것이 정우의 뒷걸음질에 맞춰 낙하했고.
그그그-!
정우는 염동으로 그걸 멈춰 세우려고 했으나 결국 힘이 빠진 듯 다급히 몸을 굴려 일격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우르릉, 쿠쿵!
건물 하나가 무너지며 굉음과 함께 흙먼지를 뿜어냈다.
스윽.
정우는 볼을 타고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으며 셋을 노려보았다.
“염동력이 상당한데?”
초능력자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자신의 힘을 맞받아치던 기세가 예사롭지 않게 날카로웠으니까.
마법사에 창술사.
그리고 초능력까지.
“제대로 놀아 보자고!”
초능력자가 흰 이를 드러내며 양손을 펼쳤다.
드드드.
솟구치는 잔해들.
그 사이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오히려 기회를 잡은 사람처럼 아수라가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잔해들이 포탄과도 같은 힘과 기세를 머금고 쏘아졌다.
더불어 내려가는 온도까지.
주술의 힘이었다.
“합공이라……. 한번 부딪쳐 보지.”
정우의 주변으로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이건.”
소속을 완전히 옮겼다지만 제임스 밀러의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
이따금씩 유아영을 가르치며 비서로서의 역량을 키우긴 했지만.
제임스 밀러의 천재성을 자극하는 한 물건의 파악엔 관심을 뗀 적이 없었으니까.
오버레이(Overlay).
하지만 한 가지 더.
그의 관심을 사는 물건이 있었으니.
“…닮았다.”
일본의 미해결 지역을 공략하고 나온 묘목 한 그루.
바로 그것이었다.
미해결 지역의 불법 점령자들이 사라지고 인간이 다시 오갈 수 있는 지역이 되었음에도, 세이렌의 영역은 을씨년스러운 방치가 계속되었다.
외곽이야 도시 수복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은 출입이 엄금되었다.
일본 삼대 길드 중 하나인 타소가레 길드는 무너졌지만, 후유 길드가 그 자리를 꿰차면서 강세기와 공조하여 해당 지역을 지켰고.
세이렌에 의해 점령이 된 이후로는 아예 잊어버렸던 지역이 되었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관심도 빠르게 식어 버렸다.
덕분에.
제임스 밀러와 닥터 브라운을 비롯한 연구진들은 해당 지역을 탐색, 관찰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지원까지 해줘서 가져온 여러 장비를 통해 며칠째 이곳을 파악하던 제임스 밀러는 닥터 브라운과 눈을 마주쳤다.
오버레이.
그리고 기이한 빛을 뿌려대는 저 작은 나무까지.
둘의 파장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마력분해장치를 사용하는 건 어떤가?”
“저 나무에는 불가능해. 오버레이라면… 더 구할 수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분해해 보고 싶은 심정이긴 한데, 아쉽게도 이게 전부라 손을 못 대고 있어.”
“음… 여분이 없군. 의외로군.”
“그게 무슨 말이야?”
“대대적으로 적을 색출했던 적이 있지 않았나? 그때 오버레이가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니고….”
“있었지. …있었어.”
제임스 밀러의 눈동자에 수심이 생겼다.
마치 도박장에서 전 재산을 탕진한 사람처럼, 순식간에 참담한 눈동자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기다릴 걸 그랬어.”
“무슨 소리지?”
“…정우가 마력분해장치를 떡하니 선물로 안길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기다릴 걸 그랬다고!”
잠시 생각하던 닥터 브라운은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게 있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마정석분해장치로 사용했군.”
“그 데이터가 이거야! 지금 지니고 있는 이거!”
제임스 밀러가 태블릿을 탁탁 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일제! 옛 명성은 어디로 가버리고 수준도 낮아! 정우가 조금만… 몇 달만 일찍 만들어 줬어도 이 꼴은 안 났다고!”
그는 진짜로 어이가 없었다.
당시엔 마정석분해장치만이 유일한 연구 기계였기에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고 쳐도.
마력분해장치가 어지간해야지.
마정석분해장치와는 차원이 다른 물건에다가 세밀한 조종으로 연구 성과마저 좋았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무려 여덟 개를 날렸어! …젠장!”
그리고 남은 최후의 오버레이였다.
막상 처음 구할 때만 하더라도 여러 개를 구할 줄 알았는데, 각국에서도 이걸 자체적으로 연구한다고 제임스 밀러에게 넘겨주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성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정도 성과도 없었으면 진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를 일이지.”
제임스 밀러가 혀를 찼다.
부족하기는 하지만 연구 성과는 있었다.
그는 자타공인 천재 연금술사였으니까.
연금술을 하기 위해서는 마력 컨트롤이 뛰어나야 했다.
더군다나 예민한 감각이나 빼어난 기억력 등 여러 스킬로 보정이 되고 있었으니, 세계수 묘목을 보면서 오버레이를 떠올리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의외의 장소였지만 제임스 밀러로 하여금 연구 데이터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근데 진짜 느낌이 비슷해.”
오버레이와 묘목의 감각은 비슷했다.
정확히는 마력의 파장.
그것이 거의 흡사했다.
닥터 브라운은 연구 장비의 모니터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오차 범위가 굉장히 좁았다.
같은 물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오버레이는 덧씌울 사람으로 만드는 게 아니었나?”
입에 담기도 버겁지만 오버레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건, 덧씌울 사람 그 자체였다.
하데스가 아들을 희생하여 자신의 거짓된 신분으로 삼았듯이.
해당 인원의 죽음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하지만 이건 나무였다.
정체불명의, 변화를 이끌어 낸 존재.
그것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에 제임스 밀러는 눈가를 좁혔다.
“칭 샤오가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세계에 있는 건 확실하군.”
“천재 제임스 밀러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고,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사실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어.”
“후후.”
“정우가 올 때까지. 둘의 연관성을 확실히 입증할 거다.”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걸세. 도와주지.”
닥터 브라운과 따뜻한 시선을 마주친 제임스 밀러가 묘목과 오버레이를 번갈아 보며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