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칭 샤오의 정체 (3)
비스듬히 몸을 돌리며 지팡이를 내지른다.
지팡이 끝에 맺힌 오러가 빌런을 관통하며 지나간다.
촤악!
그대로 회전을 시키며, 옆에서 달려드는 다른 놈의 목을 베어 버렸다.
피와 피.
죽음과 죽음.
‘…대체 뭘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거냐?’
정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빌런 협회의 목표는 매우 유명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체계.
자신들이 군림하며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계획.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생존이었지.
살아야 누릴 것 아닌가.
‘…이상해.’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이상했다.
성전에 참여한 광신도가 이러할까.
동료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자신의 죽음에도 고통에 신음을 내지를 뿐 눈동자엔 기이할 정도로 굳건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자신의 죽음조차 한낱 소품처럼 여길 만한, 원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파직!
손짓에 번개가 내리꽂혔다.
파르르 떠는 빌런은 그 와중에도 정우를 향해 도끼를 내질렀다.
힘없이 내지른 도끼였지만, 의외로 그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힐끗.
정우는 뒤편을 보았다.
몰려들 이들을 압도할 만한 확연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세 명인가?’
칭 샤오를 잡으러 온 장소에서 의외의 상황을 마주했다.
‘이건, 염동이야. 이 정도 거리에서 염동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 명밖에 없지. 놀랍군. 초능력자가 칭 샤오의 수족이었다니.’
허리를 숙이며 창이 된 지팡이로 지면을 쓸었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적들을 향해.
“타올라라.”
정우는 망설임 없이 언령을 사용했다.
쿠릉!
화아아- 악!
전조 증상 없이 터진 불길이 수십의 적을 집어삼켰다.
비명이 난무하고, 매캐한 살타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제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달려들던 적도 그때만큼은 주춤, 눈동자가 흔들렸다.
“불어라.”
불꽃이 바람을 타고 넘실거린다.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여러 스킬을 사용하는 적들이었지만.
화르르륵!
불꽃은 바람을 타고 퍼지기만 할 뿐 꺼질 생각이 없었다.
그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가 불꽃을 억눌렀다.
그 틈을 타서 불꽃을 소멸한 적들이 정우를 보며 살기를 터트렸다.
‘대주술사!’
정우는 폭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모를 수가 없었다.
이건 주술의 힘이었으니까.
초능력자, 대주술사.
이들은 초창기 S급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각기 S급 던전을 공략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인물들이기도 했다.
특히 초능력과 주술이라는 이능은 일반적인 능력이 아니기에 세간의 관심을 사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둘은 접점이 없기로 유명한 인물들인데….’
그게 다 계획이었다고 생각하니 정우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구지?’
초능력자와 대주술사는 대마법사엔 미치지 못하지만 적어도 강세기와 비견될 만한 인물이었다.
다른 한 명도 그에 준할 터.
‘제대로 준비했군.’
정우는 칭 샤오의 패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예전이었다면 골치가 아팠겠어.’
확실히 뱀파이어의 성을 공략하기 전의 자신이라면 S급 세 명을 상대로는 승산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뱀파이어의 성은 자신이 어둠의 영역에 있을 때의 일을 떠올리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어둠의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잊은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 차이는 매우 컸다.
그 강력한 존재들조차 어둠의 마력에 먹혔던 것을 떠올리면, S급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니까.
그렇기에 자신을 향해 죽음마저 등한시한 채 달려드는 빌런들은, 부나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놈들을 뒤로 날려 버린 뒤에, 대마법만 두 개를 연속으로 준비해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우는 차분히.
혼자서 무쌍을 찍는 장수처럼, 우직하게 놈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반격하며 나아갈 뿐이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둠의 마력에 대한 적응.
환상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았다고는 하지만, 그 모든 걸 단번에 체득해 내기에는 육체가 달랐다.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정우였으니 이 정도까지 운용하는 게 가능했지.
그게 아니었으면 아마 몇 년은 꼬박 어둠의 마력을 다루는 것에만 치중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바로 힘의 안배였다.
‘아마 뇌신이나 마왕조차 이 정도의 수엔 밀릴 거야.’
그게 당연했다.
대학교를 가득 채운 적과 마왕 앞의 사천왕처럼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 명의 S급까지.
제아무리 마왕이라 할지라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
예전의 정우는.
즉, 다니엘일 때의 정우는 대기의 마력을 품는 것으로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소유했었다.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건 모든 생물체를 통틀어 드래곤이 유일할 정도였으니, 다니엘은 마력에 익숙해지다 못해 드래곤의 영역까지 발을 들인 셈이었다.
덕분에 드래곤 아무르타트와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여러 몬스터와의 결전도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
근원에 가깝게 파악하는 이해력.
그 이해력으로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사용하는 적응력.
그것은 정우를 가히 신이라 불리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더없이 완벽한 체계라고 자부했고, 그에 따른 여러 성과를 내놓았다.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이 사용하는 검증된 방법에 대해선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자신은 몰랐다.
품지 않은 마력은 그저 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즉, 자신은 마력이라는 집을 소유한 게 아니라 임대한 셈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어둠의 영역에서 자신은 빠르게 말라 갔다.
마력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공간에 덩그러니 놓이자, 더없는 무력감이 찾아왔을 정도니까.
입장과 동시에 마력을 머금고 있지 않았다면.
본능적으로 마력 대신에 부정한 기운을 마력으로 치환하지 않았다면.
‘난 여기에 없겠지.’
자신은 여러 신이 그러했듯 무언가를 발견했을지언정 목숨을 내놓아야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온전하지 않은 기억 너머로도 자신은 어둠의 영역을 공략했다.
던전을 공략하는 플레이어처럼, 최후의 무언가를 부수거나 없애거나 쟁취함으로써!
저 시뻘게진 눈알이 익숙했다.
어둠의 영역은 온갖 군상의 집합체였다.
되다만 육체가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공간.
이리저리 비틀린 것들이 수없이 등장하던 공간.
‘…그다음인 모양이군.’
그런 감정만이 남아 뇌리를 꽉 채우고 있는 것을 보니, 정신의 신을 만난 이후의 기억이 잔상처럼 박혀있는 모양이었다.
정우는 한숨을 쉬며 몸을 빙글 회전시켰다.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여 지팡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형태가 되어 버린.
이제는 완연한 창의 형태가 되어 버린 검은 창이 선을 그리며 비틀리고 회전했다.
촤아악!
그사이를 이질적이나 더없이 어울리는 붉은 점과 면들이 수놓는다.
[ 마력이 상승하였습니다. ]
끝도 없이 들리는 악의에 대한 경고 사이로 소득에 대한 알람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빠득.
정우는 괜스레 이가 갈렸다.
어둠을 놓친 건가?
모르겠다.
어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였던가?
그런 것 같다.
고민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부정적인 감각만이 전신을 장악해 나갔다.
욕설이 목구멍을 간질거리며, 손가락 끝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한 명의 적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던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강하다.
하지만 자신들도 강하며, 자신들은 수적으로도 우세에 있다.
그런 맹신으로 생겼던 자신감은 입을 다물게 만들었으나.
“으아아!”
처음으로 비명이 터졌고.
“흐, 흐아!”
다음으론 겁먹은 기합이 터졌다.
다물어졌던 입이 벌어지고, 꽉 닫혔던 성대가 열려 바람을 빼게 만들 정도로.
“후욱, 후욱, 후욱!”
적은 강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마, 막아!”
침입자에 대한 징벌.
혹은 단죄.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던 적으로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A급의 말에 B급이 C급의 등을 떠밀고, A급의 발길질에 B급이 떨리는 눈동자로 달려드는 게 흔해졌다.
틈틈이 맹공격을 퍼붓는 A급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강한 자들이 보다 약한 자들을 사지로 떠미는 일이 자연스러운 법칙처럼 자리하기 시작했다.
수를 세진 않았지만 이곳에 모인 수는 정확하게 일 천이었다.
그리고 정우에게 죽은 수는 딱 그 절반.
오백 명이었다.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양옆으로 사라지는 느낌.
꽉 차 있던 공간에 구멍이 뻥뻥 뚫리는 느낌은.
“주, 죽이란 마, 말이야!”
힘과 수로 우위를 점하며 당연하게 떠올렸던 결말마저 뒤흔들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죽은 뒤의 부활.
혹은 죽은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시대.
육안으로 목도했고 간접적으로 경험했기에 생겨났던 자신감조차 잡아먹을 정도의 무자비한 죽음이.
지익.
놈들의 발을 뒤로 끌게 만들었다.
죽이라는 누군가의 지시와는 달리 주춤 물러선 이들 덕분에.
정우는 전투가 벌어진 이후 처음으로 발길을 멈출 수 있었다.
과거 어둠의 영역에서 싸웠을 때의 무자비함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엔 조금의 쉼도 허락되지 않는 시기가 연이어 일어났고, 식욕과 수면욕이란 게 사라지지 않았다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기가 끝도 없이 발생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도 쉬웠다.
‘…조금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어.’
정우는 고리를 형성했다.
과거의 자신은 대여로 마력을 사용했지만, 지금의 자신은 마력을 구입한 셈이었다.
물론, 지속적으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구입 자체가 취소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과거보단 나았다.
‘기억이 없음에도 이런 선택을 했다 이거지.’
찰나에 든 판단이었다.
미해결 지역의 마력으로 고리를 만드는 건.
하지만 기억의 일부를 되찾고 보니 이건 정답에 가까웠다.
아니,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답이었다.
마력은 자신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회전하며 증폭했고.
과거에 비해 지속성은 짧아졌을지언정 안정성은 비교도 되지 않게 뛰어나졌다.
마력 폭주 따위는 허락하지 않을 정도의 마력 컨트롤을 지닌 자신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조금 약한 면모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정우는 의식적으로 천천히 숨을 골랐다.
차분하다 못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심박 수를 무시하며, 지금의 대치를 갈증을 채우는 수분처럼 대했다.
움찔!
“놈도 지쳤다. 쳐라!”
먹잇감을 발견한 개미 떼처럼.
우르르 다시 한번 적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우는 또다시 움직였다.
창을 휘두르고, 마력을 폭사하며.
건재함을 자랑했고, 버거움을 흉내 냈다.
“……괴, 괴물.”
“어, 어떻게 이 인, 원을 저, 전부… 다!”
시체 사이에서 덩그러니 전의를 잃어버린 채 서 있는 두 명의 빌런 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A급.
불과 일 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쥐고 흔들 역량이 있었던 이들이 이젠 자신의 손에 제 목을 맡기고 있었다.
정우는 이 사실이 절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서걱!
베어 버린 두 명의 시체가 툭 바닥으로 쓰러졌다.
짝짝짝.
그것이 마치 신호가 된 듯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자신을 관람하고 있던 놈들이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박수를 친 사람은 유일한 여자.
“…초능력자.”
“날 알고 있어?”
“널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나 할까?”
“하긴. 내가 유명하긴 하니까.”
사이코키네시스.
소위 염동력이라 불리는 이능을 극한까지 단련한, S급 플레이어.
때마침 정우도 염동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어둠의 영역에서의 내 주력이 염동이었으니… 시험해 봐도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