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칭 샤오의 정체 (2)
플레이어는 오갈 수가 없다.
바람의 결계의 정의는 그러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마력을 품지 않은 일반인의 경우에는 어렵지 않게 결계를 넘나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이곳에 남은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일반인은 어렵지 않게 결계 밖으로 빠져나왔고.
소란은 내부의 플레이어의 협조로 인해 많지 않았다.
협회는 이미 칭 샤오의 근거지 근처 호텔을 전부 수배하여 이들을 수용할 공간을 만들었으니.
불만이 높지 않은 제대로 된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건 뭘까.
[ 악의(惡意)를 감지하였습니다. ]
[ 농밀한 악의(惡意)가 당신을 노립니다. ]
악의라는 단어가 끝도 없이 등장했다.
한국의 인천에 펼쳐진 결계 안이, 마치 빌런 협회의 본부라도 된 것처럼.
남은 플레이어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결계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수는, 상당했다.
마치 총력전을 연상시킬 만큼.
내부에서 협조를 해주었다던 플레이어는 어디로 간 건지.
정우는 마치 함정에 발을 들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함정이라…. 그럴 수도 있지.’
단절의 결계라면 오버레이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오버레이는 타인의 존재를 덧씌우는 것이기에, 마력이 없는 존재로의 변환은 불가능했다.
F급 플레이어의 마력조차 막을 정도로 촘촘한 결계는, 유지석이 무려 삼 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매진하여 만든 초유의 결계였다.
대마법사와 대주술사조차 뚫지 못한 단절의 결계를 연상시킬 만큼 견고했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웃기기도 했다.
‘두 명의 절대자가 뚫지 못한 결계를 한 명의 S급 플레이어가 완성한 게 웃기는군.’
새삼스럽게 스킬이라는 체계를 고심하게 되었다.
촤악!
하지만 생각은 짧았다.
무언가가 허공을 가르며 쏘아졌기 때문이다.
‘인천대학교 방면인가?’
꽤나 커다란 캠퍼스 안쪽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정우는 초대장과 같은 단검을 손등으로 툭 쳐 내었다.
짜르르.
그러고는 손등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독까지?’
“……음.”
정우가 슬쩍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둠의 영역에서의 기억을 보았기 때문일까.
정우는 자신의 감정이 이전보다 훨씬 냉정해졌다는 것을 자각했다.
하지만.
‘적을 앞둔 입장에선 나쁠 것도 없지.’
결코 부정적인 영향이라고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전투에 있어서 냉정한 감정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으니까.
더군다나 상대는 칭 샤오였다.
시스템을 누구보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존재.
‘…지식의 신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존재라고 했었지.’
놀랍게도 지식의 신조차 칭 샤오의 정체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칭 샤오는 지식의 신이 설계한 이 체계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정우가 고심한 결과.
칭 샤오에게 닿은 손의 정체는 두 종류였다.
‘넓게 보면 하나겠지만….’
하나는 아무르타트.
세계수와 자신의 계획하에 새로운 세상으로 이동했던 존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둠의 존재.’
어둠의 영역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낼 정도로, 강력한 존재.
아무르타트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으니 결국 한 존재의 영향력이 칭 샤오에게도 미쳤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한 가지 의문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악의에 대해선 기억에서 봤어. 어둠의 마력을 머금은 존재의 기척. 나는 분명히 그렇게 정의했었어.’
악의 감지란 능력은 그렇게 탄생했다.
빌런이 악의를 지니고 있는 건, 어둠의 마력을 품고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제 자신의 의지를 지니고 있는 건지, 어떻게 일반적인 마력처럼 사용하는 건지 의문이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환영 인사치고는 거창하군.”
네 왕 모두가 죽은 상황이다.
남은 빌런 협회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에 가까워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각국에서조차 최상위 전력으로 판단하는 A급의 수가 상당했다.
B급은 말할 것도 없었고, C급 이하의 수는 벌떼와도 같았다.
“…대체 이만한 수를 어떻게…….”
그것에 경악하던 정우가 새삼스럽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던전이군.”
게이트 안의 세계.
어렵지 않은 추론이었다.
자신 역시 경우는 다르지만 비슷한 장소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칭 샤오는 도주를 포기했다.
그리고 결전을 준비했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은, 그와 같았다.
하지만 정우는 가시가 걸린 것처럼 목구멍이 먹먹했다.
칭 샤오가 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던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정우에게는 그를 사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의도적이거나 심적으로 그를 놓아주어야만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칭 샤오의 정체는 여태껏 그 누구도 파악하지 못했다.
빌런이라면 이를 갈고 쫓아다니는 뇌신도.
UN과 협약하여 세계 각국의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대마법사도.
오버레이라는 것을 정우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오버레이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심지어 칭 샤오는 오버레이를 비롯한 수많은 아이템의 제작자였으니 전 세계에서 혈안이 되어 찾아다녔을 텐데도 말이다.
비단 빌런 협회에 몸담았다는 이유로 사살 혹은 포획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이왕지사 사로잡아서 그 힘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 테지.’
비밀리에 이용할 계획도 세웠을 게 분명한 인물이었다.
그런 자에 대해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베일에 싸였던 인물이.
‘내 등장을 기점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더불어… 예전엔 날 파악하러 오기도 했지.’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정우는 이조차 간단하게 여겨지지가 않았다.
정문을 기점으로 정우와 적이 나뉘었다.
혼자와 다수.
그것도 수천에 달할 것 같은 수는 기가 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이 덕분에 정우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놈은 자신의 아군을 결계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동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즉, 세계 어디에 있든 던전을 통해서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 증거로 바로 앞에서 자신에게 악의를 발산하고 있는 놈의 생김새는 전형적인 백인이었다.
뒤로는 흑인.
동양인.
딱 봐도 한국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의 수가 상당했다.
‘어쩌면 진짜로 놈들의 본진을 치는 걸지도 모르겠군.’
스윽!
정우가 지팡이를 꺼냈다.
그와 더불어.
파앗!
여러 스킬로 숨어 있던 놈들이 일제히 정우에게 달려들었다.
화살과 마법이 하늘을 수놓았고.
아군의 존재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정우만을 노린 무자비한 일격이 이어졌다.
발을 묶는 대가로 죽을 수밖에 없음에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놈들의 눈동자엔 일말의 망설임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정우는 그런 그들을 보며.
우웅- 웅!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그와 동시에 펼쳐진 건.
우에- 에엥!
요란한 벌 떼의 소리였다.
매직 미사일.
하지만 정우의 그것은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과는 달랐다.
“……!”
등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에도 흔들림이 없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몇십 개가 아니었다.
수백, 수천의 수.
갑작스럽게 생겨난 무수히 많은 매직 미사일이, 적을 노리며 폭사했다.
콰콰콰쾅-!
사방으로 퍼지는 매직 미사일의 향연에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놈들이 기겁을 하며 몸을 비틀어댔다.
하지만 매직 미사일의 수는 많았고.
적의 수도 많았다.
대충 던져도 맞을 만큼.
* * *
“……저게 이제 갓 S급이 된 사람이라고?”
눈살을 찌푸린 남자가 옆을 돌아보았다.
“매직 미사일이면 네 능력이 천적일 텐데?”
“그래도… 놀라운 건 놀라운 거지.”
“하기야.”
여자가 남자의 말에 동의했다.
대학교에서 가장 높은 건물 위에 선 세 명의 인물은 정우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법사라고 했지?”
“그런데 몸놀림은 전사 못지않은데?”
“오, 지팡이를 창처럼 사용하네?”
“…확실히, 강해.”
“우릴 불러 모을 정도로?”
“음… 저게 전부라면, 우리가 가볍게 이기겠지.”
“그 이상이라도 의미는 없어. 세상천지에 S급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으니까.”
“…….”
“욕심 많은 네 명을 앞에 세우고 우릴 뒤에 빼냈을 때부터, 우린 그의 숨겨진 비수였어.
“그렇지….”
“우리의 첫 의뢰이잖아. 그럼 해내야지. 그렇기 위해 협공도 맞춰 왔으니까.”
사내가 헛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한 명을 상대로 협공을 펼쳐야 한다는 게 지금도 웃기기만 하군.”
“간은 보지 말자. 저 수를 뚫고 우리 앞에 왔을 때 얼마나 지쳤는지도 생각하지 마. 그냥 최고의 적을 상대한다는 느낌으로….”
“잔소리는 그만. 알겠으니까.”
“푸흐. 그래.”
사내가 웃음을 흘렸다.
“조금씩 도움을 주지 그래?”
“조금씩?”
“화살의 궤도를 바꾸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테니까.”
여자가 사내의 말에 입술을 비틀며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다.
“먼저 시험해 봐라?”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미안하고.”
“미안할 것까지야. 좋아. 나쁠 건 없지.”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상당한 거리의 화살 두 개가 허공에서 방향을 꺾었다.
인위적인 움직임.
“여전히 방법을 모르겠단 말이야.”
“뭐가?”
“네 능력. 뭐랄까, 우리 것과는 조금 다르니까.”
“사이코키네시스라면 저놈도 다룰 수 있다고 들었어.”
“…저놈이라면, 헌터도?”
“어.”
사내가 여자의 말에 놀란 눈빛으로 정우를 보았다.
일선을 무너트린 채 전진하는 그는, 마치 유선을 구하러 수천의 병사를 관통했던 조자룡을 떠올리게 했다.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전투를 이어 나가는 정우의 모습은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저걸 다 죽일 때까지 놔두라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네.”
힘을 빼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여러 사안이 침입자에 대한 대처로 보기엔 모호했다.
“음…. 보스는 뭐 하고 있지?”
“모르겠군. ‘준비’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보스는 우리가 뚫릴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군.”
약간은 기분이 상했다는 듯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다른 한 명이 말했다.
“아니. 어쩌면 그걸 수도 있겠어.”
“그거?”
“보스가 찾던 것들. 그걸로 만든 걸 이미 확인했잖아.”
“……아! ‘재료’인가? 저놈이?”
“그럴 수도 있겠군!”
그들은 보스가 준비하던 걸 떠올리며 한정우를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그가 만약 보스의 계획의 가장 중요한 ‘재료’라면.
“…확실히 강하겠어.”
“저게 전력이 아니란 소리지?”
“우리 셋을 전부 부른 이유가 있었군.”
무려 빌런 협회의 모든 전력을 전부 소모해서라도 상대의 전력을 낮출 필요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드디어 볼 수 있는 건가?”
“그분을!”
그분을 불러낼 가장 중요한 재료였으니까.
빌런 협회는 세계를 재탄생시키는 걸 목적으로 했다.
체제와 체계의 개편.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설립.
그걸 위해서 이들은 목숨마저 바쳤다.
그분이 강림하면, 죽은 자들도 되살아나며 영원한 힘을 얻게 된다고 하였으니까.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보스를 보았기에, 이들은 죽음이란 단어에 무감각해졌다.
침입자만 사로잡아라.
그리하면 다시 살 수 있으리니.
보스의 말을 들으며 광신도처럼 순교를 하듯 목숨을 던지는 모습에.
부르르!
세 명의 강자들은 때가 이르렀음을 깨닫고는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이제 곧.”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