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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46화 (246/293)

246화

-칭 샤오의 정체 (1)

“후욱!”

유서린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중상을 입히며 시작한 전투였다.

하지만 스나이퍼는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기이한 아티팩트를 사용하며 자신을 압박했다.

더군다나 그녀도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미국 플레이어 협회의 공조도 무너트리며 수년간의 도주에 성공하여 등급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자.

도살자가 바로 스나이퍼의 경호원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도살자의 도주 능력은 대부분 스나이퍼로부터 비롯되었다.

움직임, 속임수, 빠른 기동력까지.

도살자보다 월등한 능력을 지닌 스나이퍼는 치명상을 입은 와중에도 반격의 기회를 제대로 노렸다.

차라리 성기사의 능력을 발현했으면 나았을 텐데, 공격력이 향상하는 대신 피해가 증폭되는 버서커의 능력을 택한 탓에 그녀는 딱 한 번 틈을 내주었고.

“……역시, 강하네.”

그 때문에 굉장히 버거운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하지만 처음의 치명상.

그리고 근접전이라는 유리한 상황까지 얽혀 승리는 유서린의 차지가 되었다.

“하…… 허허. 쿨럭!”

자신의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몇 번 터트리다가 울컥 피를 토한 스나이퍼는 탁한 눈동자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꽤나 맑은 날씨였다.

죽기엔 아까울 정도로.

정보도 잘못되었다.

중간에 무언가가 끼어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건은 서로에게 득이 되는 것이었다.

스나이퍼는 한정우를 잡는 데 도움을 주고, 수르트는 뇌신을 잡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으니까.

S급 둘이서 붙는 전투가 얼마나 치열할지 알고 있는 그였기에 실수를 가장하여 한정우를 죽일 생각이었지만.

“…죽는 게 내가 될 줄이야.”

심지만 남은 촛불처럼, 꺼져 가는 음성이 입안에서 웅얼거렸다.

스윽.

그림자가 하늘은 가린다.

마치 네겐 저 맑은 하늘을 보며 죽을 권리도 없다는 듯, 역광으로 그림자가 진 유서린이 하늘을 가렸다.

“…쿨럭.”

“후우. 왜 이런 강한 힘을 가지고 빌런 짓을 한 거지?”

유서린의 물음에도 스나이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여력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으니까.

연신 피를 토하는 스나이퍼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유서린이 검을 들었다.

죽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때.

유서린의 검은 스나이퍼의 목만 살짝 베고 땅에 박힐 뿐이었다.

왜?

그런 의문이 들기도 전에.

“죽기 전까지만 살려 줄게. 널 죽여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 쿨럭.”

안 그래도 멍하던 정신이 쏟아지는 피와 함께 뚝 끊겼다.

때를 놓치지 않고 유서린은 미약하게 치유 능력을 사용했다.

죽을 고비만 넘길 수 있도록.

“후우…….”

기절한 스나이퍼를 보다가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땀으로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 방향을 보았다.

바로 정우가 사라진 장소였다.

수르트의 죽음과 동시에 갑자기 사라진 기척.

자칫 낭패를 볼 뻔했던 틈이 생긴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한정우.”

사라진 자의 이름을 되뇌며 유서린은 눈가를 좁혔다.

“어디로 간 거지?”

공간 이동으로 넘어간 것치고는 마력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얼핏 게이트의 느낌도 든 것 같아서 묻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힘겨운 전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기묘한 기시감에 그녀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착각인가?’

그녀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스나이퍼를 결박한 후 조금의 치료를 더 해준 뒤 걸음을 옮겼다.

다 잡은 스나이퍼를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 든 감각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렇게 스나이퍼의 곁에서 벗어난 그녀는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성장하기 위해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며 던전을 공략했던 그녀였다.

그랜드 캐니언에서 던전이 생긴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위치만 약간 차이가 있을 뿐 그랜드 캐니언은 그녀에게도 생소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왜 어디선가 경험한 거 같지?’

이런 상황을 어디선가 겪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타났다.

츠츳!

미약한 소음과 함께.

툭.

저렇게.

“……유서린 씨?”

유서린은 검은 공간에서 툭 하니 튀어나오는 정우를 멍하니 보았다.

* * *

[ 마력이 성장하였습니다. ]

이젠 수치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마력이라는 수치가 깨진 것처럼 정체불명의 글자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마력이 성장한다는 느낌만큼은 여전히 동일했다.

정우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역시.”

유서린이 스나이퍼를 죽인 정우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마력이 성장하네요.”

“알고 계셨잖아요.”

“그랬죠. 하지만… S급이라서 그런가, 성장폭이 생각 이상이에요.”

그녀의 눈에도 도드라질 정도의 성장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게임처럼 변한 실시간의 성장.

몬스터를 잡으면 족족 반영되는 성장을.

‘마력이라는 형태로 미리 진행하고 있던 게 한정우 씨가 아닐까?’

정우는 이미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정우가 화제를 돌렸다.

“칭 샤오 주변의 경계는 확실한가요?”

“…아, 네. 적어도 빠져나가진 못했을 거예요.”

“음…. 협회장님께서 직접 움직였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정우는 못내 칭 샤오의 숨겨진 여러 능력이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유서린은 희미하게 웃으며 정우의 걱정을 일축했다.

“대부분의 S급이 그러하듯, 협회장님께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여러 능력이 있어요.”

유서린이 고개를 돌렸다.

한국이 있을 것 같은 방향이었다.

“바람의 결계라는 이름의 결계는, 협회장님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물론, 이걸 사용하면 상당한 반발력에 휩싸이지만… 적어도 ‘플레이어’는 결계를 통과할 수 없어요.”

“플레이어만 막는다고요?”

“네.”

“…그렇다면, 마력의 통과를 막는 거겠군요.”

“정확해요.”

정우는 유서린의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인가요?”

“…아뇨.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말을 돌린 정우는 생각에 잠겼다.

바람의 결계.

‘형태만 다르게 한… 단절의 결계잖아?’

그건 단절의 결계와 매우 유사했으니까.

단절의 결계는 마력을 거르는 거름망과 같았다.

당시의 엘프는 모든 사람이 마력을 머금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 마력 자체를 거부하는 결계를 만들었다.

세계수의 힘을 보호하며, 외부의 접근을 막을 요량으로.

하지만 그 때문에 세계수조차 결계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마력으로 모든 게 이루어진 세계수의 영향력이 줄게 되었다.

어쩌면 정신의 신과 더불어 어둠의 영역을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

‘…세계수였을지도 모르겠군.’

세계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는 지식의 신을 떠올렸다.

지식의 신의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고, 정신을 어지럽혔다.

때때로 떠오르는 기억은 더한 갈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무르타트.

그… 역시.

[ 부정한 힘은 그 근원이 있어야만 효력을 발휘합니다. 최후의 용이 당신의 자리를 노린 것은, 그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질시와 자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젠장…….’

아무르타트에 대한 기억 역시 온전치가 않았다.

떠오르는 것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추억이라는 단어로 부를 만한 기억이 적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로.

그의 표정으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과 함께하겠다던 의지를 빗대어 본다면, 질시와 찬탈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하더라도…….

‘누구나 다 그늘은 있으니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찬탈자.

제대로 된 기억이 나지 않을 때, 그는 눈동자의 주인공을 그렇게 칭했다.

자신의 자리를 찬탈한 자.

그렇기에 자신 역시 찬탈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하지만 그때의 결정이 무색하게 벌어진 일의 사이즈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렇기에 고민이 거듭될 수밖에 없다.

기억은 온전치 않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은 어둠을 제거했다는 점이었다.

그것의 근원이 되는 틈을 봉인했고, 그 봉인은 자신이 죽고서도 유지되며 약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기억 속의 어둠의 강력함을, 지워 버릴 정도로 자신은 분명히 강해졌다.

그럼에도 최후를 맞이했다.

부정한 기운.

어둠의 마력, 그 자체에 대한 부정(否定)에 의해.

그렇기에 정우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어둠의 마력에 대한 부정은, 자신이 어둠을 공략할 때 얻었던 능력 그 자체였으니까.

“…아직 더 생각할 게 남았나요?”

한참을 기다리던 유서린이 슬쩍 물었다.

정우는 그제야 생각을 지운 채로 쓰게 웃었다.

“아니요. 곧장 이동하죠.”

하지만 일단.

칭 샤오부터 잡아야 할 일이었다.

‘그다음엔… 아버지…… 일도 해결해야지.’

의도적으로 진입하지 않은 마녀의 마을의 상황이 매우 궁금했지만, 정우는 애써 한숨과 함께 복잡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

스윽!

곧장 완성되는 마법진과 함께.

세계가 반전된다.

일렁이는 세계 속에서, 유서린은 다시 한번 확신했다.

언젠가.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노라고.

화아- 악!

밝아진 시야 너머로 보이는 건.

“…음? 한정우와 유서린… 플레이어군.”

경계 태세를 풀고 있는 유지석 협회장이었다.

미국에서 한국까지.

그것도 특정 인물을 지정하여 행해지는 공간 이동엔, 유서린도 입만 벌린 채로 말을 잇지 못했다.

협회장과 인사를 나눈 뒤에 정우는 결계를 확인했다.

‘확실하군. 단절의 결계와 비슷해.’

바람의 결계는 단절의 결계와 매우 흡사했다.

바람이라는 특이성만 제외한다면, 거의 같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대화 끝에.

“결계는 중단하지 말아 주십시오.”

“음? 그럼 자네도 들어가지 못할 텐데.”

유지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우는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결계를 향해 다가간다.

파직.

마력을 거부하는 힘.

이걸 통과하는 여러 방법 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방법은 바로 이것이었다.

스스스.

‘……어? 왜 존재감이 옅어지는 거지?’

유서린은 정우의 존재감이 흐려지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정우의 존재감은 빠르게 옅어져 눈으로만 파악이 가능해졌으니까.

‘…마치 마력이 전부 소멸한 사람 같아.’

“마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구나…. 저렇게까지 사용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이군.”

유지석 역시 정우의 마력 운용을 놀라워했다.

이윽고.

모든 마력이 사라진 정우는 어렵지 않게 결계를 통과한다.

결계 안쪽으로 사라진 정우의 모습을 가만히 보던 두 S급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엄청나구나.”

“저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강해요….”

“음. 벌써부터 널 뛰어넘었다면… 그의 실력은 마왕에 준할 정도겠구나.”

마왕이라는 단어.

유서린은 흠칫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마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그랬던 자를 입에 아무렇지도 않게 담는 걸 보니, 유서린은 못내 신경이 쓰였다.

‘…어쩌면 아버지도 이 격변이라는 걸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유서린의 고운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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