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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45화 (245/293)

245화

-지식의 신과 진실의 일부 (4)

정우는 자신의 볼을 매만졌다.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멈출 길이 없었다.

아무르타트.

자신의 친우였지만 자신을 배신한 자라고만 여겼던 그 역시 피해자에 불과했다.

빌어먹게도.

속이 뒤집히고, 위산이 역류하여 목구멍을 불태우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단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흐르고 있는 눈물을 제외하고선.

[ 마지막 남은 용족의 강인한 정신과 육체는 부정한 마력에 저항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탓에 영역에 편입하지 못하고 동떨어지고 말았으니, 그것이야말로 부정한 존재의 계획이라는 것을 깨닫기엔 그 역시 부족했습니다. ]

옛이야기를 설명하듯, 고저 없는 말투로 지식의 신이 첨언했다.

저항하였다.

때문에 오히려 어둠의 계획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 사실이 가슴에 묵직한 통증을 가져다주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메아리는?”

[ 메아리라면… 당신이 새로이 이름을 부여한 서큐버스 여왕의 이름이군요. 그녀는……. ]

* * *

심해까지 가라앉아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던 그녀에게 한 줄기의 빛이 비쳤다.

얼마만의 빛인가.

동아줄처럼 여긴 그것을, 그녀는 멍한 정신으로도 굳게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수면 위로 떠 오른다.

그럴수록 그녀의 정신은 조금 더 맑게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일.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다니엘의 마력에 기대어 그의 정신에 깃들던 때가 떠올랐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자신이 온전하다는 것에 무한히 감사했다.

자신이 이렇게 온전하단 소리는 다니엘 역시 온전하다는 의미였으니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니엘의 건재는 그녀에게 희소식 그 자체였다.

그렇게 환호성을 지르며 마지막 빛을 향해 돌진하자.

화아악-!

밝은 빛과 함께 정신이 또렷해졌다.

마치 잠들기 이전처럼.

자신을 수면 아래에서 꺼내 준 마력의 정체를 알기도 전에, 그녀는 곧장 자신의 친우이자 영혼의 반려인 다니엘을 불렀다.

“다니엘!”

어딘지 모르게 무미건조한 다니엘의 얼굴을 보며, 그녀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넌, 누구냐.”

“……!”

다니엘의 반문엔 말 그대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넌 누구냐니.

그건 기억을 잃은 자의 전유물과 같은 질문 아닌가.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대답보다 먼저 자신과 다니엘의 계약을 살폈다.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하지만 이윽고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건 뭐야!’

다니엘의 정신.

그곳의 대부분이 기이한 봉인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을.

‘…누군가가 기억을 봉인했어!’

그녀는 다니엘과 정신이 연결되어 그의 허락하에 모든 정신을 살필 수가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허락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정신의 대부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억의 대부분이 봉인되었어. 자신의 능력과 존재.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도만 남아 있는 걸까?’

대부분의 기억이 봉인된 탓에 확인할 수 있는 건 지극히 적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위험해!’

그녀는 다니엘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아주 짧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다니엘의 결정과 거의 일맥상통했다.

“우리에… 대한 기억을 버린 거야?”

“……넌, 누구지?”

다니엘이 재차 물었다.

“…그렇구나. 이 힘. 이걸 넌 다른 방향으로 활용했어.”

“누구냐고 물었다.”

“제약에 따른 보상. 참…… 고약한 방법을 택했구나. 다니엘.”

그 말에 다니엘이 손을 뻗었다.

마야의 작은 형체가 다니엘의 손아귀에 잡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왜 저항하지 않지?”

다니엘은 요정과 같은 형체의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의구심을 표했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부르고.

자신의 반문에도 혼자 생각에 잠기더니.

힘만 주면 곧 소멸시킬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저항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다니엘은 손아귀에 힘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어둠의 공간.

빛이 한 점 없는 것 같은 어두움은 아니었지만, 검은 안개가 자욱한 이곳은 그보다 더 기이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니엘의 뇌리에 그간의 상황이 떠오른다.

벌써 몇 년인가.

셀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곱씹고 곱씹었음에도, 시간은 여전히 더디게 흐르고 자신의 목적 역시 달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드는 감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피로감.

언제까지 이곳에서 전투를 벌여야 하는 건지 가늠이 가지 않기에 느껴지는 피로감과 실제 전투를 벌이며 가해지는 피로감이 합쳐져 자신의 정신을 좀먹어 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넌, 강한가?”

한참 고민하던 다니엘이 마야를 보며 물었다.

강함?

예전의 다니엘은 상대에게 강하냐, 약하냐를 논하지 않았다.

그저 선하냐 악하냐를 논했을 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다니엘의 질문에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강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약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나가떨어질 정도로.

‘하지만… 이 힘을 더 키워 나간다면, 어쩌면…….’

그녀는 다니엘의 손에 운명을 맡긴 게 아니었다.

기억이 봉인된 탓에 아무리 질문을 던져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잡은 동아줄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니엘의 손아귀에서.

그것을 파악해 냈고, 심지어 그 짧은 사이에 약간이나마 적응까지 끝마쳤다.

지금은 강하지 않다.

하지만 강해질 여지는 많았다.

“……그런가. 그렇다면… 넌 날 아는 것 같으니, 잠시 두고 보지.”

다니엘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마야였지만 가만히 허공에 떠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다니엘의 표정, 눈빛, 말투, 말의 내용에서.

그녀는 다니엘이 지닌 감정을 확신했다.

그는 지금.

“…외롭구나? 걱정 마. 내가 곁에 있어 줄 테니까.”

“…….”

외로워하고 있었다.

지독하리만큼.

* * *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존재가 자신을 기억한다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건, 의외로 불쾌하지 않았다.

불쾌함을 느끼기 이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득 차 있는 외로움을 해소시켜 줄 유일한 상대가 되었으니까.

“난 너에 대해 기억이 나질 않아.”

“상관없어. 그렇다고 해서 네가 다니엘이 아닌 건 아니니까.”

“……하지만 네 말대로 영혼의 계약을 맺은 건 분명해 보이는군.”

그리고 그녀를 통해 영혼의 계약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녀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 종속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간의 외로움 속에서, 이 자그마한 존재 역시 자신 못지않은 외로움을 이기고 버텨 냈다는 사실에 다니엘은 옅게 감탄했다.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결국, 그와 그녀는 다시 한번 친구가 되었다.

예전보다는 훨씬 서먹서먹하고 거리감이 있었지만.

그녀는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결정했다.

“언제까지 너라고 부를 거야?”

마야의 물음에 다니엘이 잠시 고심했다.

어둠의 영역에서 긴 세월 동안 전투를 벌이며 마모된 감정들은 그를 예전과는 조금 다른 성격으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친우들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웠음에도 기본적인 성향만큼은 남아있는지.

‘막상 정을 주면 떼지 못해.’

유독 정에 약한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편린이랄까.

마야는 그것이나마 다니엘이 붙잡고 있었다는 것에 적잖게 안도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그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귀환할지.

언제 이곳을 공략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상황이었다.

덩그러니 떨어진 지옥에서 홀로 버티고 있었을 그를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아려왔다.

다니엘은 몇 번이나 거듭되는 ‘이름’에 고심했다.

넌 누구냐고 물었고, 마야라고 대답했음에도 그는 마야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기존의 친구에 대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 사람처럼, 그것에 대해 입에 담는 걸 꺼려 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불러.”

“……내가 원하는 대로?”

다니엘이 새로운 지역에서의 괴물을 짓이기며 중얼거렸다.

이름이라.

한참이나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메아리.”

“응? 메아리? 왜 그런 이름을….”

그녀의 말에 다니엘은 아주 조그만 음성으로 혼잣말을 했다.

“…내 음성이어도 좋으니, 대답이 들려왔으면 좋겠으니까.”

“…….”

마야.

아니, 메아리는 그런 그의 중얼거림에 조막만 한 입술을 깨물며.

앙증맞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곁에 있어 줄게!”

다부진 그녀의 표현에 다니엘이 피식 웃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으나.

“……저건.”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선 표정을 굳히며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키메라의 형태와 고스트의 형태.

두 종류를 모조리 공략한 다니엘은 이미 메아리와 함께 다른 지역에 진입한 상황이었다.

최소한 여섯 개의 지역이 있을 거라 예상한 것에 따르면, 이곳을 공략하고서도 앞으로 세 개의 지역을 더 공략해야만 했다.

반대로 말하면 앞으로 네 명의 신을 만나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중의 한 명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지렁이의 형태를 닮았다.

하지만.

“……크다.”

세상에서 제일 커다란 몬스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다.

얼핏 보기엔 민둥산을 떠올릴 정도로.

두 번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상대를 파악하지도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두 번의 경험으로.

그리고 메아리의 존재로.

다니엘은 어렵지 않게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름 모를 신과 더불어 매우 희미하게 느껴지는, 세계수의 기척에서.

“…….”

천천히 어둠의 마력을 끌어 올리는 다니엘의 곁으로, 메아리가 날아올랐다.

* * *

아무르타트.

그를 떠올리자 연상되는 기억의 파편은 의외로 메아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정우는 그러한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 ……여기까지군요. ]

생각에 잠겨 있던 정우는 지식의 신의 뜬금없는 메시지에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설마.”

[ 더 이상의 대화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기록이 여기까지인 건가?”

[ 그건 아닙니다. 얻어야 할 걸 얻지 못했기에 대답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일 뿐입니다. ]

지식의 신의 말에 정우는 적잖게 안도했다.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자신의 과거.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그걸 얻기 위해서는.

“…세계수를 얻으면 되겠군.”

세계수의 묘목.

그게 기억의 트리거였다.

“한 가지만 더 묻지.”

[ 짧게, 말씀하십시오. ]

“여기까지가 네 계획인 건가?”

세계수를 비롯하여 여러 신과 교류하며, 자신의 계획을 웃도는 계획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지구로의 이동.

더불어 환생까지.

이전에 정우는 이 모든 것들을 그가 계획했다고 판단했다.

그에 대한 질문.

[ 아닙니다. ]

하지만 의외로 지식의 신은 부정했다.

“그럼 원래 세계로의 귀환이 목적인 건가?”

[ 아닙니다. ]

눈살을 찌푸리며 지식의 신의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정우에게 지식의 신은 묘한 말을 꺼냈다.

[ 저는 지식을 탐구하는 자. 다른 이름으로는 ‘기록자’라고도 불립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오로지 그것뿐입니다. ]

‘오로지?’

묘한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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