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어둠의 마력 (5)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거친 존재감의 접근에 정우는 그 속담을 떠올렸다.
[ 악의(惡意)를 감지하였습니다. ]
‘왔다.’
리정환의 정보는 확실했다.
유추에 불과했지만, 그것 또한 어느 정도의 정보를 토대로 완성되는 것이니까.
‘스나이퍼도 왔군.’
멈춰서는 스나이퍼의 기척도 느껴졌다.
‘웃기는군. 여전히 자신들이 우위에 있을 거라 자부하는 만용이….’
스나이퍼의 감지력은 직업적인 특성상 여타 플레이어보다도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근접 공격이 불가능한 게 아니지만, 스나이퍼의 공격은 대부분 저격으로 이루어졌으니까.
그렇기에 그의 이명이 스나이퍼가 된 것이고, 그의 능력은 원거리일 때 빛나는 것이었다.
스나이퍼가 멈춰 선 거리는 어지간한 플레이어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거리였다.
‘한 40km 정도는 되겠군.’
안력에 특화된 스킬과 마력을 부여하는 스킬, 총의 능력을 강화하여 본래의 능력을 뛰어넘게 만드는 스킬까지.
정우는 해당 스킬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직업을 알고 있었다.
‘…인챈터로군.’
바로 인챈터였다.
정우가 마정석에 마법진을 새기며 그 효능을 변화, 증폭시켰던 것처럼.
‘설마 인챈터까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스나이퍼 역시 사물 강화가 가능한 존재였다.
‘인챈터가 싸우기에 총은 너무도 적합한 물건이지.’
이제야 스나이퍼의 능력이 이해가 되었다.
다른 여러 가정이 오가는 인물이었지만, 실질적인 능력은 인챈트였다.
‘그것만 똑 떼어서 가지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이긴 하지만… 이 시스템.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지게 된 건지 모르겠군.’
인챈트는 여러 능력이 수반되어야지만 가능한 작업이다.
마력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야 하고.
마법진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마법적 이해도가 뛰어나야 하며.
총알에조차 마법진을 새길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작업이 가능해야 했으며.
이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의 마력 제어력이 우수해야만 했다.
모든 걸 물 흐르듯 해야지만 가능한 작업이 바로 인챈트였다.
하지만 정우가 느끼기에 스나이퍼는 마법적인 재능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마법진을 그릴 정도의 이해도를 지녔다.
새삼스럽게 이게 너무도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화르르륵!
전설의 피닉스가 이러할까.
허공에서 펼쳐진 양손을 따라 불꽃이 넘실거렸다.
그 형태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독수리와 같았다.
실제로 등장과 동시에 아래로 뚝 떨어지는 기세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정우는 가만히 수르트의 낙하를 바라만 보았다.
이윽고 마력이 깃들지 않은 육안으로도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을 때.
수르트의 불꽃이 폭사하듯 정우에게 내리꽂혔다.
파이어 레인.
휘젓는 날개를 따라 불꽃의 깃털이 비처럼 내리꽂혔다.
하지만 정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스윽!
손을 휘저을 뿐.
“……!”
수르트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인사에 가까운 공격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공격을 지워 버렸으니까.
그랬다.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정우에게 다다르기도 전에 화염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경악도 잠시.
수르트의 손가락이 퉁, 튕겼다.
쿠르르릉!
정우는 지면으로부터 느껴지는 진동과 함께 솟구치는 열기를 느끼며.
쿵!
발을 굴렀다.
“……이, 이게 말이 안 되는데?”
어찌나 놀랐는지 후속타를 준비하지도 못한 채로, 수르트는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자신의 공격이 두 번이나 무산되어 버렸다.
처음보다 두 번째의 경악이 더 컸다.
발현 자체를 억누른 것이었으니까.
“…그때완 다른 눈빛이군.”
정우의 말에 수르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우를 만난 건 그리 예전이라 부를 수 없는 과거의 일이었다.
그의 재능에 기대를 품으며 제약의 인장을 심을 때의 일본에서.
그땐 정우가 경악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수르트를 보았다.
끝내 그 존재감을 이겨 내지 못했다면 쓸모없이 죽어 버렸을 상황이었다.
F급 플레이어가 S급에서도 최상위권의 존재감을 버틴 것.
그게 수르트의 흥미를 끈 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수르트는 그때보다 지금의 자신이 더 강해졌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상대 역시 S급에 올랐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왕의 자리를 넘보는 자신과 이제 갓 S급에 오른 자의 수준이 같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문제는 정우였다.
불과 일 년 만에 모든 게 뒤바뀌었다.
경악과 두려움의 눈빛을 보내는 건 더 이상 정우가 아니었다.
불가해의 괴물.
그것을 보는 눈빛을 보내는 건.
“…으득, 예상보다 더 성장했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건지 모르지만……, 그게 네 능력이라면, 그것조차 내가 취할 것이다!”
수르트였다.
정우는 수르트의 고함에 피식 웃으며 손을 까딱했다.
“그럼, 와라.”
콰앙!
땅이 폭사하며 수르트가 불로 이루어진 클로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 * *
“……내가 무엇을 본 거지?”
경악한 이는 수르트만이 아니었다.
정우에게 이미 접근을 들킨 것도 모른 채 엄폐를 하고 있던 스나이퍼 역시 스코프 너머의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르트의 공격이 두 번이나 무산되었다.
그도 S급 플레이어였다.
두 번째 방어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강대한 힘으로 짓눌렀다. 수르트의 일격을… 짓누를 정도의 힘이라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이게 고작해야 1년 차 플레이어의 힘이라니.
“……죽여야 한다.”
그렇기에 스나이퍼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연신 울려대는 경종의 판단을 믿었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기에 숨을 죽이고.
스코프 너머에 집중한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수르트의 공격은 매서웠다.
그랜드 캐니언은 불의 협곡이 되어 버렸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한 대지는 부글부글 들끓으며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하지만 상황을 주시하던 스나이퍼는 곧장 진실을 깨달았다.
‘…용암조차 수르트의 힘일 뿐이야! 이게 말이 되나. 대지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게?’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름 아닌 수르트였다.
빌런의 다섯 왕 중 하나이자 마왕에 가장 근접했다고 칭해지는 인물.
실질적으로는 차이가 상당했지만, 저 재능을 집어삼키면 어떻게 변화될지 몰라 우연을 가장한 채로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둘의 판단은 달랐다.
놈은 사로잡아 삶아 먹을 존재도, 헐떡거리는 숨을 가볍게 끊을 존재도 아니었다.
‘어차피 난 놈을 죽일 생각이니… 사력을 다해야겠구나!’
스나이퍼는 타이밍을 노렸다.
자신이 개입할 적절한 타이밍.
그때부턴.
‘기가 차는군…. 나와 수르트의 합공이라니…. 리조차 발키리와의 합공을 감당하지 못해 패배했거늘. …승부를 자신할 수도 없다는 게 믿을 수가 없구나!’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는 알지 못했다.
은신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기척을 제대로 숨기지도 못하는 한 인물이.
자신을 향해 조금씩 접근하고 있음을.
메아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상대해도 충분한데… 전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건가요?
유서린의 곁에서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메아리가 애매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 * *
태양과 같은 이글거리는 구체가 낙하했다.
정우는 지팡이를 비틀며 창처럼 들었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춰 한껏 뒤로 몸을 비틀고선.
‘찌른다.’
퉁!
둔탁한 파공성과 함께 지팡이를 찔렀다.
창술사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힘껏 찌르기.
별다른 능력이 없어 보이는 그것이 만들어 낸 여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세상을 불태울 것 같던 열기가 사그라든다.
불의 구를 지워낸 건, 그보다 더한 힘이었다.
바람이 촛불을 끄는 것처럼.
정우가 내지른 일격은 수르트의 힘을 무자비하게 찢어 버렸다.
으득.
수르트는 자신이 자부하는 일격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에 이를 갈았다.
마법사였다.
매직 미사일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며 여러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였다.
‘근데… 이건 뭐지?’
지팡이 끝을 돌려 잡고 창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기세가 달라졌다.
마법을 억누르던 형태와는 달리.
모든 게 끊어진다.
스킬과 연결되었던 마력 자체가 끊어진다.
마력의 공급이 끊기니 스킬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었다.
화염구도.
화염의 강도.
화염으로 만든 클로조차 모든 게 무산되어 버렸다.
주춤.
처음으로 수르트는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치려고?”
정우의 싸늘한 조소가 귓가를 자극했다.
손을 휘젓는 그의 열기는 어느새 힘을 잃어버렸다.
저벅.
정우가 천천히 수르트에게 다가갔다.
불꽃이 튀었지만, 정우의 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수르트는 이를 앙다물며, 마력을 갈무리했다.
불의 왕이라 불리며 수르트라는 멸망의 존재로 칭해지게 된 그였지만.
그의 능력은 방대했다.
강탈로 빼앗은 재능은 F급이었던 그를 S급으로 만들 정도로 다양했고, 그것들을 갈고 닦은 수르트의 실력은 마법사보다는 마법 전투사에 가까웠으니까.
손아귀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을 지워 버린 그의 손에 들린 건, 불꽃의 클로가 아니었다.
묵빛의 클로.
마력이 아닌 요사스러운 기운을 내뿜는 아티팩트가 수르트의 손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게 본신이라는 건가?’
불의 왕이라는 이명보다도 지금의 모습이 더 수르트와 어울렸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타인의 재능을 강탈할 정도의 집요함과 잔혹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거지?”
“말해 줘야 하나, 그걸?”
“……후우.”
수르트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타앙!
어지간한 플레이어는 감지조차 하지 못할 저격이었다.
하지만 이미 상대의 위치는 물론 호흡과 마력의 운용까지 파악하고 있던 정우에겐.
스윽.
“……!”
피하기 어렵지 않은 공격이었다.
상체만 비틀어 저격을 피한 정우의 뒤편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단번에 정우를 죽이기 위한 일격.
뇌신은 물론 마왕조차 일격에 없앨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하던 저격이 허무하게 실패했다.
벌떡!
스나이퍼는 스코프에서 눈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장 도주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총을 잡았고.
여러 암살에 성공했던 그였다.
그 결과 S급을 암살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를 스킬을 자신의 재능과 접목시켜 빌런들의 왕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런 그의 본능은 이 실패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기다렸다는 듯 피한 상황.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지만, 스나이퍼는 자신이 들켰다는 것을 확신했다.
수르트가 놈을 잡고 있을 때.
‘이때 도망쳐야 해…. 지체하면 죽는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단 한 발이었지만 상대와의 격차가 느껴졌다.
빠르게 땅을 박차며 도주하려던 스나이퍼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몇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본능이.
그렇기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띄웠다.
서걱!
하지만 들릴 리 없는 소음이 들리고, 왼쪽 발목으로부터 막대한 통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적이다!’
존재할 리 없는 적의 등장.
자신의 발목을 벤 적의 모습이, 스르르 드러난다.
“……징벌.”
침음과 함께 상대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두 눈이 벌게진 유서린은 이미 전력으로 스킬을 사용 중에 있었다.
버서커.
그녀의 대검이 허공에서 몸을 비트는 스나이퍼를 향해 무자비하게 떨어졌다.
콰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