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38화 (238/293)

238화

-어둠의 마력 (3)

* * *

“클리어다!”

누군가의 외침은 무의미했다.

그랜드 캐니언을 가로지르듯 높게 솟은 고성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전투에 잠깐이라도 참여했던 모든 플레이어는 그에 따른 보상을 받았으니까.

가장 먼저 적합률이 상승하고, 마력이 성장했다.

강세기, 유서린, 김하란을 비롯한 새로운 S급인 사사키 후유까지도 은근히 놀랄 정도로, 귀족을 죽인 이들의 보상은 엄청났다.

“…이 정도 수준에서 마력이 이만큼 오를 거라곤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데….”

강세기가 눈가를 좁혔다.

전투를 복기하는 그의 머릿속은 연신 복잡했다.

세뇌로 일본에 얽매여 있을 때에도, 그는 S급의 플레이어였다.

대마법사나 뇌신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을지언정, 여타 S급에 비해서는 뒤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전투가 계속 이어졌으면, 패배하는 건 자신이었을 거란 사실을.

보스도 아니다.

‘…고작해야 사천왕 따위에게 위협을 느껴야 하다니.’

강세기는 자신이 상대한 적을 떠올렸다.

‘다시 싸워도 자신이 없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그가 본 보스와 한정우의 전투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뇌신이나 대마법사는 자신이 세뇌를 당하지만 않았어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이 있는 위치가 눈에 보였으니까.

자신의 재능이 그들보다 못하다고 여겨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둘은 아니었다.

각성과 동시에 자신보다 한발 앞서서 성장하더니, ‘마왕’이라는 이명처럼 세계관 끝판왕이 되어 버린 놈과.

‘…말이 안 되잖아. 각성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각성한 지 일 년 만에 자신을 추월하여 질투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든 한정우까지.

그중에서도 강세기는 한정우가 사람 같이 보이지가 않았다.

“……난 이만 돌아가지.”

질린 표정으로 하루를 기다린 그는 유서린에게 인사했다.

“전 한정우 플레이어를 만나고 돌아갈 거예요. 김하란 플레이어도 이곳으로 오기 전 작전을 진행해 주시면 돼요.”

“……으음.”

“팀 버튼 협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유서린 플레이어?”

“부탁드린 대로 두 분의 공간 이동을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저 차를 타고 가시면 곧장 공간 이동을 하실 수 있습니다.”

팀 버튼의 안내에 강세기는 두 말없이 몸을 돌렸고, 김하란은 잠시 그랜드 캐니언 방향을 주시하다가 주춤 몸을 돌렸다.

둘을 보내고 난 뒤, 유서린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녀의 눈치를 보며, 팀 버튼은 주변을 정리했다.

공략에 나선 플레이어들을 전부 귀가시키며, 데니 라이언에겐 소송을 걸겠다는 엄포를 놨다.

불과 한 시간 전에야 정신을 차린 데니 라이언은 자신이 짐이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팀 버튼의 말은 그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를 빠득 갈고는 길드로 돌아갔다.

그를 따라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전투였다.

“저… 유서린 플레이어?”

“저는 무시하셔도 됩니다. 아니, 저만 두고 다 철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서린의 말에 팀 버튼은 입맛을 다시고선 협회 소속 플레이어를 이끌고 사라졌다.

공략이 성공하고 보상이 들어왔기에 모두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휑한 공간에서.

“……한, 정우.”

유서린은 정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 볼 때의 모습.

성장할 때의 모습.

일본에서 자신을 구해 줄 때의 모습.

뱀파이어 로드와 싸우던 모습까지.

“……어?”

유서린은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정우 씨가… 로드를 죽였던가?’

아니었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그녀는 움찔했다.

어디론가 보낸다는 느낌이 강했지, 죽인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어디론가 보내 버렸기 때문에 클리어가 된 건가? 근데 왜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클리어가 된 거지?’

의문이 생겼다.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물어봐야겠어.’

한정우에게로.

* * *

“주인님!”

뾰족한 음성이 정신을 일깨웠다.

뿌연 시야에 초점이 잡힌다.

자신을 부르던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작은 외형이 커지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외형이 등장한다.

연한 붉은색의 눈동자엔 걱정이 가득 맺혀 있었다.

메아리.

그녀가 자신을 불렀다.

정우는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묘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녀의 존재 자체를 잊었던 때를 떠올리자 그녀의 존재가 굉장히 거리감 있게 느껴졌다.

어쩐지 미안하면서도 모호한 감정으로 시선을 마주치고 있자, 메아리가 물었다.

“…괜찮은 거 맞죠?”

“……어. 괜찮아.”

정우는 메아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의 보상대로 기억이 떠올랐다.

‘퀘스트의 보상인지, 세계수의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기억을 되찾고 있어.’

정우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 가장 기억하고 싶어 하는 최후의 기억을 얻기 위해선, 어둠의 영역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떠올려야 한다고.

“…그나저나 어떻게 넘어온 거지?”

긴 세월의 기억을 압축해서 보았기 때문일까, 두통으로 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욱신거리는 머리를 지그시 누른 채로 메아리를 보았다.

“음? 뿔이…. 다 흡수한 거군.”

“맞아요. 뿔의 마력은 전부 흡수했어요. 덕분이었죠.”

“덕분?”

“제가 망각한 능력 하나를 떠올렸거든요.”

메아리가 피식 웃었다.

유아에 가까운 형체에서 자라난 그녀는, 단 하나의 뿔만 회복했을 뿐인데도 성인이 다 되어 있었다.

정우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도 두통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부정(否定)’의 힘. 맞지?”

“……역시, 주인님도 약간의 기억이 떠오른 거군요!”

메아리가 두 눈을 반짝였다.

정우는 묘한 아쉬움을 느꼈다.

그녀의 부름이 트리거가 된 것인지, 아니면 때가 되어 과거의 기억 속에서 깨어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전자라면 조금 아쉬울 것만 같아서.

다니엘.

그때의 기억을 더 떠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때문에 정우의 고개는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이곳을 제외한, 확실한 장소.

‘일본에 가야겠군.’

세계수의 묘목을 확인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중국은 제이가 움직일 거야. 하데스의 빈자리를, 그라면 충분히 해결하겠지.’

하나씩 정리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일본으로 곧장 넘어가고 싶지만…….’

미뤘던 한국의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칭 샤오.

정우는 마음을 굳혔다.

“…나와도 돼.”

이곳에선 볼일이 끝났다.

정우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스르르.

어둠이 일어서며 한 형체를 갖췄다.

“격조했습니다.”

리정환이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볼 줄은 몰랐군.”

“전해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전할 말? 무슨 말이기에 여기까지 넘어온 거지?”

리정환이 숙였던 고개를 들며 정우와 시선을 마주쳤다.

“아버지께서 움직였습니다.”

열매를 품고 있던 제이가 움직였다.

그 사실은 꽤나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정우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데스의 영역만 노리는 게 아니구나.”

“맞습니다. 아버지께선 이번 기회에 모든 빌런을 쓸어 버릴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그 정도로 회복이 되었나?”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리정환의 볼이 살짝 꿈틀거렸다.

“…아마 아버지를 상대할 빌런은 없을 겁니다.”

“수르트나 스나이퍼가 있을 텐데?”

마왕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제이의 능력은 믿지만, 그런 그들을 뛰어넘는 강자가 바로 마왕이란 존재였으니까.

“없습니다.”

정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없다고?”

“네. 갑자기 증발하듯 종적을 감췄습니다.”

“……아예 못 찾은 건가?”

“네.”

“음……. 그럼 기회를 노리는 걸 수도 있지. 예전처럼.”

리정환이 정우의 예전이란 단어에 입술을 씹었다.

치욕의 순간.

발키리라는 패를 숨겨 두었던 패배의 순간은, ‘리’의 유일한 오점이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왜?”

“그들의 종적은 알지 못하지만, 그들의 정보원을 조금 압니다.”

“음….”

“아무래도 그때 이후로 저도 마음을 놓지 못해서 말입니다. 정보를 캐내는 것에 모든 전력을 쏟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를 대표할 정도의 용병 국가인 북한이 조금 주춤한 것이 공개석상에 리가 등장하지 않기 시작한 이후였다.

때문에 여러 추론이 오갔는데.

‘실상은 상당수의 전력을 빌런의 정보를 캐내는 데 썼던 거군.’

이제야 그 비밀이 밝혀진 셈이었다.

정우는 그제야 리정환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를 직감했다.

“나군.”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우의 눈빛이 변했다.

수르트가 온다.

그 사실만으로도 흥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지워졌지만, 감히 자신의 몸에 낙인을 찍었던 놈.

자신의 재능을 탐하겠다는 발칙한 발상을 떠올린 놈.

리정환이 주춤 물러설 정도로 정우의 주변은 서늘했다.

‘엄청나군…. 이 정도의 마력이라니.’

S급인 자신조차 감히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그랬던 존재감이.

스읏.

어느 순간 사라졌다.

더불어 정우의 고개가 돌아간다.

‘응?’

한발 늦게 리정환이 이변을 알아차리고선 정우에게 말했다.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사사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는 하나 리정환은 지금 등장하는 이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유일한 듀얼 클래스, 징벌의 처녀 유서린.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훈련시켜 아버지의 모든 능력을 계승한 자신.

‘한번 붙고 싶어지니까….’

리정환은 호승심이 이는 것을 억눌렀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따로 있어.’

리정환은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플레이어 중에 최강이라 불리는 사람을… 만나는 거니까.’

유서린보다 더 흥미가 생기는 사람이었다.

뇌신, 알렌 보머.

그를 만나야 했다.

정우는 그런 리정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에 녹아들며 사라지는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제이가 아들을 낳아서 제 능력을 고스란히 물려줬다니…. 신기한 감정이군.”

“그러게요.”

정우의 옆에 서 있던 메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존재를 부정한 건가?”

“맞아요.”

“그 힘을 보니 옛 기억이 떠오르네.”

정신을 되찾기 전에 보았던 힘이 바로 저것이었다.

부정의 힘.

정신적인 모든 부정을 이끌어 내는 힘은, 꿈을 다루며 정신을 조작하는 능력을 한계 너머까지 성장시킨 마야의 손에서 재탄생했다.

“편하군.”

“편하죠. 대화도 다 부정할 수 있으니까요.”

메아리가 환하게 웃었다.

리정환이 정우의 곁에 서 있었음에도 메아리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건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걸 부정했기 때문이었다.

S급까지 속이는 힘.

정우는 새삼스럽게 이 능력이 얼마나 위험했던 것인지 떠올렸다.

이윽고.

기척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협곡 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린 한 인형이.

쿵!

바닥을 굳게 디디며 나풀거리는 머리를 정리했다.

“꽤 인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군요.”

“……한정우 씨.”

유서린이 걱정 가득한 눈동자로 정우를 돌아보았다.

“어머. 저거… 봐라?”

메아리의 눈초리가 뾰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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