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37화 (237/293)

237화

-어둠의 마력 (2)

꺄하하.

“엄마, 나 이거 사줘!”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자기야. 우리 이것 좀….”

“흐흐. 오늘도 돈 좀 벌어 보자고!”

무수한 군상들이 떠들어댔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움찔.

“뭐 해? 왜 갑자기 멈춰 서?”

안나가 뒤를 보며 물었다.

“……지금이.”

“어? 이상해.”

몸을 돌린 안나가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만히 자신을 살피던 안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또 연구한 거야? 잠은? 밥은 좀 먹었고?”

이마를 짚는 손길이 익숙했다.

조금은 서늘한 감각.

“…뭐야? 왜 깜짝 놀라? 너… 뭔가 죄 지었니?”

안나의 얼굴에 수심이 생겨났다.

피식 웃은 다니엘이 고개를 저으며 이마의 손을 떼어 냈다.

“아니. 그런 건 없어.”

“흐응. 그래. 알았어. 아무튼… 축제라고. 다니엘!”

안나의 들뜬 음성이 장내를 울렸다.

“…축제?”

“잊었어? 우리 도시가 설립된 기념 축제잖아!”

안나의 옆을 지나가던 이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좋은 날이에요!”

안나도 밝게 웃으며 화답했다.

“오늘 이상하네. 얼른 가자. 공연을 한대.”

안나가 손을 쭉 뻗어 다니엘의 손을 잡아당겼다.

주춤 끌려간 다니엘이 안나와 함께 거리를 걸었다.

도시 설립 축제.

청탑을 중심으로 생겨난 도시는 치외 법권 지역이었다.

왕국의 한 도시에 불과했고, 청탑주는 영주에 불과했지만.

“이로써 우리 도시는 자유야!”

“만세! 청탑주님, 만세!”

귀족의 여러 폭정에 시달리던 이들로서는 도시의 설립이 반갑기만 했다.

“우와… 솔레인이다!”

안나가 환호성을 질렀다.

유명 음유시인인 솔레인은 궁전 행사에도 초청되는 인물이었다.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이 연기와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위대한 청탑주와 그의 기사들이라는 제목이래.”

안나가 재잘거렸다.

다니엘은 묘한 감정에 빠졌다.

안나의 대화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일순간 의문이 들었다.

“내 이야기야?”

“응? 누구 이야기?”

“안나, 네가 그랬잖아. 청탑주와 기사들이라고….”

“어. 청탑주 님과 그의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

“……?”

“왜 그래?”

“안나…. 내가 누구지?”

“누구긴. 다니엘이지.”

“내가… 청탑주가 아니었나?”

안나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진다.

푹, 한숨을 내쉬며 다니엘을 포옥 껴안는 안나가 울먹거렸다.

“또…구나?”

“또?”

“내 친구 다니엘. 청탑주 님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게 네 소원이었잖아.”

“……소원?”

“어! 그래서 매일 연구하고 있잖아! 마력을 느끼는 방법을….”

안나가 기어이 눈물을 뚝 떨어트렸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는 순간, 다니엘은 가슴이 저릿했다.

“내가… 마력을 느끼는 연구를 하고 있어?”

흑!

기어이 안나가 울음을 터트렸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이 흥겨운 광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둘의 모습을 연신 힐끗거렸다.

다니엘은 자신을 안아 주는 안나의 체온을 느끼면서도 주변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어둠이라고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는, 환희가 가득했다.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던 이들도 고개를 돌리며 축제에 참여했다.

모두가 즐거웠다.

즐겨.

즐기지 못하는 것에 묘한 부담감이 생겨났다.

다니엘은 안나를 보았다.

“청탑주는… 누구지?”

청탑주가 궁금해졌다.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우리의 주인이자, 우리를 지켜 주는 수호자야.”

다니엘은 고개를 들었다.

마법등으로 가득한 환한 거리 너머로 보이는 높은 탑을 가만히 보았다.

그래, 저곳은 내가 평생을 갈망하며 들어가고 싶었던 곳이야. 내게 있어선 꿈과 같은 장소… 난 탑주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잖아.

다니엘은 안나의 손을 붙잡았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과연 이곳을 두고 ‘그곳’에 돌아가야 할까?

……그곳?

“다니엘? 우리 이것도 먹어 볼까?”

안나가 방긋 웃으며 닭 꼬치를 내밀었다.

코끝을 찌르는 냄새를 맡자 꼬르륵, 배가 요동을 쳤다.

턱이 아플 정도의 침이 흘러나왔다.

“오, 이거 맛있다!”

안나가 크게 한 입 베물고선 소스를 입가에 묻힌 채로 씨익 웃었다.

다니엘은 꿀꺽, 침을 삼킨 후에 닭 꼬치를 입에다 가져갔다.

즐겁잖아.

“…….”

우뚝.

다니엘의 손이 멈췄다.

벌어지던 입도 다물어졌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의아해하는 안나가 무어라 말을 했지만, 다니엘은 그저 이곳을 차분히 둘러볼 뿐이었다.

행복의 순간.

보고 싶은 사람.

맛있는 음식.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

모든 것이 이루어진 이 세계를 가만히 보던 다니엘이 닭 꼬치를 안나에게 건넸다.

“…왜 안 먹어? 다른 거 사줄까?”

의아해하는 안나를 가만히 보던 다니엘의 눈꼬리가 아래로 늘어졌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봐서 좋네.”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그 미소가 사라지는 데까진 불과 몇 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방금의 미소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싸늘한 표정이 다니엘의 얼굴에 깃든다.

“…하지만 여기까지야.”

이곳은 독이다.

바라마지않는 순간에 대한 갈망이 주어진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존재에 대한 부정(否定)이 이어진다.

그 결과 이것이다.

부정의 공간.

자신마저 부정하는, 정신의 힘.

“후유증이 상당할 것 같네.”

다니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걱정 어린 표정으로 다가오는 안나에게 고개를 저었다.

더불어 다니엘의 존재감이 커진다.

츠츠-.

존재감에 따라 주변이 일그러진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노이즈가 낀 세상의 반경이 넓어진다.

“…다니엘!”

안나의 비명 같은 고함을 무시한 채.

‘의지’를 가다듬은 다니엘의 마력이 폭사한다.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 내 친구들과 관련된 모든 추억을 ‘버린다’. 그 대가로,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얻겠다’.”

스스로 정한 제약.

스스로 정한 보상.

추억에 대한 부정으로 포기하지 않는 의지는 적합했다.

언약이 성립되었다.

* * *

“……거대하군.”

정신을 차리자 보이는 건 거대한 유령이었다.

흐트러지는 유령의 모양새가 유독 도드라졌다.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츠츠-.

강대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유령을 보면서도 다니엘은 담대하게 준비했다.

추억을 버렸다.

그런 개념은 남아 있었다.

어떤 추억인지, 누구인지, 어떤 장면인지.

마치 기억 상실에 걸린 사람처럼, 그 어떠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니다.

드문드문 연결되어야 할 장면이 비어 있었다.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건 확실했다.

친구라 여기지 않았기 때문인지, 세계수에 대한 것도. 지식의 신에 대한 것도 기억엔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다른 모든 이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얼굴도, 말투도, 행동도…….

진한 아쉬움이 한순간 생겼다가 사라졌다.

캬아- 아아-!

거대한 유령이 포효했다.

이 유령은 이전의 놈들과는 달랐다.

강력한 저주로 물리적인 능력까지 행하던 이전의 유령과는 달리, 이 거대한 유령은 물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의 부정(否定)에는 더없이 적합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정신이었다.

사람을 무너트리는 정신적인 공격.

그것에 특화된 것이 바로 저 거대한 유령이었고, 이 지역의 ‘보스’나 다름이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언약을 맺었다.

포기하지 않는 힘.

그것이야말로 이 보스를 어렵지 않게 공략할 수 있는 키였으니까.

거대 유령의 마력이 넘실거리며 지속해서 다니엘을 유혹했다.

쉬라고.

즐기라고.

충분히 모든 걸 다 잘해 왔노라고.

원한다면 구멍이 송송 난 치즈 같은 기억조차 메꿔 주겠노라고.

악마의 유혹 같은 그것이 지속해서 다니엘을 괴롭혔다.

포기하지 않는 힘이라 해서 괴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일순간의 유혹에 혹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니엘의 시선은 흔들리다가도 단호하게 바뀌었으며, 망설이다가도 굳건해졌다.

그때마다 유령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실패에 대한 처벌처럼.

마치 언약의 반발처럼 말이다.

그렇게 유령의 형체가 반 정도 줄어들었을 때였다.

“……?”

아련한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긴 세월 동안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 자신의 내부로부터 퍼져 나왔다.

아니.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이제야 개화하는 것 같아….’

확연한 존재감이 자신의 내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니엘의 정신이 분산된 틈을 타 거대 유령이 발악을 해댔지만, 언약으로 완성된 불굴의 의지를 무너트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저 기운을 흡수하고 있다!’

자신의 내부에 이런 기운이 존재하는 줄, 다니엘은 알지 못했다.

더불어 그 기운은 자신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였다.

존재감.

그렇게 표현한 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른 존재.

‘누구냐……, 넌!’

내심 경악하는 다니엘의 혼란과는 달리 내부의 존재는 확실히 자신의 존재감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거대 유령의 형체가 조금씩 흩어지며 작아진다.

다니엘은 가만히 이 현상을 주시했다.

이 존재감의 정체를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걱정이 되질 않아.’

이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희한하게도.

다니엘이 망설이며 상황을 주시하는 사이, 정체불명의 존재의 존재감은 명확해졌다.

형체마저 생겨날 정도의 존재감.

그것이 손을 뻗었다.

“…….”

아무 말도 없이 등장한 그것은, 전설에나 나오는 페어리를 닮았다.

작고 귀여운 외형.

나비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것만 같은 모호한 분위기가, 페어리를 닮은 이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존재를 페어리라 여길 수가 없었다.

쭉 뻗은 날개는 박쥐의 그것을 닮았으며.

이마에 솟은 두 개의 뿔은 권위를 상징하듯 단단해 보였고.

채찍 같은 꼬리는 발끝에 닿을 정도였으며.

붉은 안광은 결코 페어리의 선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묘한 기색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터진 탄성은 절로 낯이 뜨거워지는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엔.

거대했던 형체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쪼그라들어, 이젠 페어리와 비슷한 사이즈로 변한 유령만이 발작하듯 도망치고 있을 따름이었다.

빼앗겨서는 안 될, 마지막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스읍.

페어리를 닮은 이는 무자비했다.

한 올도 남기지 않은 채로, 유령의 기운을 흡수했다.

움찔.

자신조차 경악스러울 정도의 존재감을 내뿜는 페어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과 시선을 마주쳤다.

이윽고 앙증맞은 입을 열어.

“……다니엘!”

“……!”

자신을 불렀다.

다니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주인님!”

정우가 눈을 부릅뜨며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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